지하방·옥탑방…극빈층 3천여명/재개발에 밀려, 이산가족 신세도/공공임대주택 등 주택 대책 절실
집 구하지 못해 떨어져 살기도
80대 김 모 할머니(중구 반구동). 중학생인 손자와 달랑 둘이서 살아가는 김 할머니는 작년까지 중구 동천변의 다 쓰러져가는 집에서 살았다. 남의 땅에 집을 지어 무허가 건축물인데다 판자를 얼기설기 엮어 지어 생활하는데 불편한 점도 많았지만 그런대로 살아갈 만했다. 그런데 이곳에 작년부터 재개발 사업이 시작되면서 주위의 주택과 빌라가 하나둘씩 철거돼 김 할머니도 어쩔 수 없이 집을 떠나야 했다. 하지만 땅도 없고 무허가 건축물이어서 보상은커녕 당장 방 한 칸 마련하기 빠듯한 처지에 놓이게 됐다. 작년 연말에야 겨우 가까운 곳으로 작은 월세방을 얻어 나올 수 있었다. 방을 구해 다행이지만 기초생활비로 받는 월 40여만원 중 월세 20여만원을 내고 병원비 등을 제하고 나면 생활비는 금세 바닥난다.
최근 들어 중구, 남구 등을 중심으로 재개발사업이 진행되면서 전·월세로 살다 하루아침에 내쳐진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사를 하더라도 얼마간의 여유라도 있으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당장 마땅한 거처를 구하지 못해 길거리에라도 나앉아야 할 판이다.
중구종합사회복지관 박세철 사회복지사는 “재개발 지역에서 월세로 살다 보상비도 없이 떠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며 “상대적으로 집값이 싼 중구 병영지역 등으로 오는 사람들도 있지만 지하 단칸방이라도 있으면 좋을 사람들이 한 둘이 아니다”고 말했다.
공공임대아파트인 병영삼일아파트가 있지만 대기자가 워낙 밀려 있고 대부분은 700~800여만원에 이르는 보증금도 마련하지 못하는 처지다. 박세철 사회복지사는 “집을 구하지 못해 가족이 따로 떨어져 사는 이산가족도 있다”며 “울산 곳곳에서 재개발이 진행되고 있지만 집 없는 빈곤층에 대한 주거대책은 전혀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3천여명이 부동산 극빈층
심상정의원이 통계청에 요청해 분석한 ‘전국 시·도별 주택사정’(2005년 기준)에 따르면 울산지역 부동산 극빈층은 자그마치 3천여명에 이른다. 번듯한 주택이나 아파트가 아닌 지하방, 옥탑방, 판잣집, 비닐집, 움막, 동굴 등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1306가구 2971명이나 된다는 것이다.
이 중 반지하를 포함한 지하실에서 사는 사람이 515가구 1292명, 옥탑방이 209가구 496명, 판잣집·비닐집·움막이 299가구 629명, 동굴·업소의 잠만 자는 방·건설현장 임시 막사 등이 283가구 554명이다. 시·군·구별로는 남구가 449가구로 가장 많고, 중구 337가구, 울주군 277가구, 동구 155가구, 북구 88가구 순으로 나타났다.
지하방과 옥탑방에 사는 가구는 대부분 일반 가구처럼 자기 집이 아닌 전세 또는 월세로 살아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하방 중 자기 집에 사는 비율은 24.3%로 일반가구 58.8%의 절반에도 못 미친 반면 전·월세 비율은 68.5%로 일반가구 37.7%의 2배 가까이 됐다. 특히 월세 비중이 49.3%로 일반가구 20.2%에 비해 크게 높았다. 옥탑방도 자기 집에 사는 비율이 18.2%에 그친데 반해 전·월세는 73.3%로 나타나 대부분 마땅한 집을 구하지 못해 지하방이나 옥탑방 등을 전전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만5천가구가 2채 이상 소유
반면 집이 한 채로 모자라 2~3채 이상 소유하고 있는 가구도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울산지역 주택 중 2000년부터 2005년까지 새로 지은 집은 모두 5만160호로 매년 1만호 이상씩 새로 지었다. 이 때문에 오래되고 낡은 주택을 허물고 재건축 또는 재개발한 물량을 대체하고도 5년 동안 주택수가 3만7600호가 불었다.
2000년 이후 늘어난 주택을 전부 무주택자가 사서 내 집으로 장만했을 경우 2005년 기준 자기 집에 사는 비율은 60.2%에 이르게 된다. 하지만 늘어난 주택 중 무주택자가 구입한 것은 3만2704호였고, 나머지 4896호는 이미 집이 있는 사람들이 사들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 때문에 상당수 가구가 집을 두 채 이상 소유하고 있는 반면 전체 가구의 37.7%인 12만7747가구 32만191명은 여전히 내 집 마련을 못해 셋방살이를 전전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통계청의 2005년도 인구주택총조사 결과 울산시 가구 중 현재 자기 집에 살면서도 타 지역에 집을 갖고 있는 다주택 소유가구는 2만4678가구에 이른다. 이는 전체 가구의 7.4%, 자가 점유가구의 12.4%에 해당한다.
2005년 8월 행정자치부가 발표한 세대별 거주자 주택보유현황을 보면 울산시 가구 중 집을 두 채 이상 가진 다주택 소유가구는 1만8274가구로, 이들이 소유한 주택은 4만2869호로 나타났다. 이 중 두 채는 1만5955가구, 세 채는 1529가구, 네 채는 318가구, 다섯 채는 90가구이다. 6~10채는 175가구로 가구당 7.2채씩 소유하고 있었다. 11채 이상 소유한 가구도 207가구나 됐으며, 평균 16.4채를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중 자기 집에 살면서 다른 곳에 한 채 이상의 집을 소유한 가구는 7.3%, 1가구 1주택자는 51.5%, 다른 곳에 집이 있지만 돈이 부족하거나 사정이 있어 셋방에 사는 가구는 3.4%, 집 없이 셋방에 사는 가구는 34.3%로 나타났다. 특히 셋방살이를 하는 가구 중 9.0%는 다른 곳에 집을 소유하고 있지만 그 집에 들어가서 살 정도로 경제력이 풍부하지 못하거나 직장 또는 자녀교육 문제 등의 사정 때문에 전·월세를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공공임대주택 턱 없이 부족
돈이 없어 집을 사지 못하는 저소득층이 손쉽게 집을 마련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는 공공임대주택. 하지만 울산지역 12만7천여가구 32만여명을 위한 공공임대주택은 10년 이상 장기임대 기준으로 5798호에 그치고 있다. 이는 총 주택의 2.1%, 전·월세가구의 4.5%에 불과해 전·월세를 살고 있는 가구의 대부분인 95.5%는 민간 전·월세집을 떠돌고 있는 실정이다. 2005년 기준 공공임대주택은 영구임대주택 2362호, 국민임대주택 2423호, 50년 임대주택 888호, 다가구매입 임대주택 125호로, 이 중 울산시가 관리하고 있는 50년 임대주택 888호를 제외하면 나머지는 대한주택공사에서 관리하고 있다.
하지만 이마저도 당장의 실질적인 혜택을 찾기 어렵다. 정부의 국민임대주택 100만호 건설계획 중 2003~2012년 사이에 울산시에 공급될 물량은 모두 2만1700호로 울산시 전·월세 가구인 12만7747가구의 17.0%, 부동산 극빈층 1306가구의 16.6배에 이른다.
이 주택들이 전·월세 가구와 부동산 극빈층에게 골고루 돌아간다면 크게 걱정할 일은 아니다. 그러나 시·군·구별 공급예정분을 보면 북구(1967호)와 울주군(1115호)에 집중돼 있고, 극빈층이 많은 남구와 중구, 동구에는 공급예정분이 거의 없어 지역별 물량 조절이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심상정 의원실 손낙구 보좌관은 “5년내 공급될 국민임대주택을 포함하더라도 울산시 전·월세 가구 대비 공공임대주택 비중은 7.1%에 머물고 있다”며 “북구 23.6%를 제외하고는 모두 10%를 밑돌고 있어 공공임대주택 비중이 절대적으로 낮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