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월 19일 연중 제2주간 (금) (마르 3,13-19) (이근상 신부)
예수님께서 산에 올라가시어, 당신께서 원하시는 이들을 가까이 부르시니 그들이 그분께 나아왔다. 그분께서는 열둘을 세우시고 그들을 사도라 이름하셨다. 그들을 당신과 함께 지내게 하시고, 그들을 파견하시어 복음을 선포하게 하시며, 마귀들을 쫓아내는 권한을 가지게 하시려는 것이었다.(마르3,13-15)
군중이 파견되는 자, 곧 사도의 이름을 가지는 여정은 세 개의 아주 흥미로운 개념으로 이루어진다; 가까이 부르심, 함께 함 그리고 파견이다.
그 분은 우리를 '가까이 부르신다.', 마르코복음은 보통 '칼레오(부르다)'면 되는데 굳이 '프로스칼레오(곁으로 부르다)'를 쓰고 있다. 거리와 방향이 생생한 역동이 있는 표현이다. 부르심이 우리의 자리를 지키며 듣는 부르심이 아니라는 말이다. 이 부르심은 우리를 당신께로 이끄는 초대다. 그러니 이 부르심을 듣는다는 말은 듣는 자리가 아니라 당신이 있는 자리로 움직이는 역동이 필요하다.
함께 지낸다고 번역한 단어는 단 하나의 전치사 meta로 이루어진 말이다. 이 메타는 보통 영어의 with로 번역하는데 희랍말에서 '함께'라는 개념은 sun(순)이라는 말이 있다. 순이 관계를 의미한다면 메타는 보다 구체적이고 공간적인 함께를 뜻한다고 한다. 그러니까 주님과 함께 지낸다는 것은 영적이고 추상적인 관계가 아니라 구체적인 삶의 공유를 뜻하는 말. 가난한 주님과 함께(메타) 한다는 말은 구체적인 가난의 불편이 없는 채로 가능한 말이 아니다.
마지막 파견하다(아포스텔로) 역시 스텔로(보내다)면 되는데 굳이 아포스(확실하게) 스텔로, 보낸다. 보내는 이와 보내어지는 이의 관계를 강조하며 보내어지는 이가 그저 헤어져 떠나보낸 자가 아니라 의도와 목적을 가지고 확실하게 보내어졌다는 점을 강조한다. 파견된자, 사도(아포스텔로스)란 보낸 자에 확실하게 연결된 자란 뜻.
세 개념을 감히 하나로 간단하게 요약하면, 예수와 결합된 자란 말씀. 끊임없이 더 가까이 다가가며, 계속해서 파견되는-더 깊게 결합되는 자란 말씀. 아득하지만 따뜻한 위로의 말씀. 감히 꿈꿀 수있는 길. 그 분 때문에.
출처: https://www.facebook.com/simonksyi/posts/pfbid02FuuXd43HnbgWC6vTGChWJfUVy87VX1wcQtgjGXoZGSaUB8Gv5zj6beq7e4CcBTsf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