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 씻던 소리 귀를 돌아나가고 곱게 물들었던 적운 사라졌는데 하늘 품은 거울은 저만치 밀려나 미세한 소리 들릴 뿐 올려다보니 은하빛 화려하다 저 별만큼 살아온 헤아릴 수 없는 세월에서 하나 건져낸 찬란한 얼굴 처음 마주친 곳에서 눈 속으로 걸어 들어온 소녀 윤기 흐르던 그 모습 하나가 삶에 종교가 되어 한순간도 잊히지 않는다 사람을 독백하며 야전 침대 위에 백야로 지내는 밤 은하에 홀로 반작이는 너는 변하지 않는 내 삶의 이정표다
역사는 분류가 있다. 우주의 역사는 우주가 쓰고 지구의 역사는 지구가 쓰며 사람의 역사는 사람이 쓴다. 흐름을 기록하는 게 역사이며 그 기록을 확인하지 않는 다면 역사가 아니다. 하므로 역사는 흐름이며 확인이다. 만약 확인되지 않는 역사라면 있으나 마나 한것으로 존재하지 하지 않는다. 그런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사람의 역사다. 국가를 경영하고 사회를 운영하며 집단의 기록을 말하는 게 아니라 개인의 역사를 말한다. 또 개인의 역사 중에 무엇이 가장 중요하고 우선되는가. 사랑의 역사다. 한 사람이 일생을 살며 수 많은 일에 봉착하게 되며 그것을 뚫고 개척하는 것이 삶이라면 최고 높이로 기록되는 것은 사랑이다. 정신과 육체로 나눠진 사람이 오직 사랑만은 하나로 통합되어 혼연일체가 되는데 그런 사람의 역사는 개인마다 다르지만 전부가 한통속이다. 사람의 눈을 뜨는 시기는 사춘기부터다. 이때 만난 인연이 사람으로 굳어지지 않아도 그것을 잊지 못한다. 잊지 못할 뿐이 아니라 영원히 지속되어 흐르는 강물에 띄워도 흘러가지 않고 오직 자신의 삶에 귀속된 물체가 된다. 그래서 아프다. 백도연 시인은 누구나 같은 성장 과정을 거쳤지만 유독 심하게 앓는 병적인 첫사랑이 되었다. 모래 씻는 소리는 파도가 내는데 붉은 구름이 덮어버리고 하늘 품은 거울은 미세한데 은하수의 빛은 화려하다는 표현은 처음 만난 소녀의 신비함을 나타낸다. 그 은하에서 마주친 첫대면의 장면은 이세상 어떤 만남보다 고귀하다. 그 모습 그대로 평생을 기억하며 종교의 순정으로 기록하는 사람의 무게는 실로 지구의 크기보다 넓고 무겁다. 더구나 그 얼굴을 이정표 삼아 살아온 삶은 끝마리에 다가선 지금도 거룩하다는 시인의 고백은 이땅의 모든 사랑의 귀감이다.[이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