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편
깨어진 것도 성스러운 것
우리가 버리는 들쭉날쭉한 깨어진 조각들은 하찮음을 상징하는 동시에, 신비로운 힘의 매개체이기도 합니다.
역사 속에서 부서진 것들보다 더 흔한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그리고 들쭉날쭉한 모서리를 가진 것들보다 우리의 불완전한 삶과 더 공감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매 세대마다 버려지고 인류학자들에 의해 발굴되는 파편들은 어디에나 널려 있습니다. 아마도 그 때문에 도자기 파편이 유대인의 전설과 유대인의 마법에서 그토록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어디에나 있고 가치도 거의 없는 조각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조각들은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다윗 왕이 성전의 기초를 파던 이야기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탈무드 산헤드린 편에 따르면, 훗날 그의 아들 솔로몬이 지을 성전의 기초를 왕이 직접 파던 중, 그는 깊고 원초적인 물을 뒤흔들게 됩니다. 이야기의 일부 판본에서는 다윗이 기초석을 건드렸다고 합니다. 비록 그 돌을 움직이지 말라고 경고했지만, 왕은 어쨌든 그렇게 했습니다. 물이 솟아올라 세상을 뒤덮었습니다.
다윗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지만, 토기 조각에 하나님의 이름을 적어 솟아오르는 물속에 던지면 물이 가라앉을 것이라는 직감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이름이 지워질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그것을 적는 것을 두려워했습니다. 그는 도움을 청했고, 그의 현자 중 한 명이 세상을 구하기 위해서라면 그렇게 해도 좋다고 확인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그 토기 조각에 이름을 새겨 물속에 던졌고, 물은 잦아들었습니다. 시편의 마지막 15편인 ‘상행시편(psalms of ascent)’은 이 이야기를 기념하기 위해 지어졌다고 전해집니다.
저는 이 이야기를 오랫동안 곰곰이 생각해 왔습니다. 한편으로는 이 이야기가 생태학적 의미를 담고 있어, 우리가 창조의 경계를 무시할 경우 어떤 일이 벌어질 수 있는지 경고하는 듯합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이 이야기는 부서진 조각의 신비로운 힘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물론 물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하나님의 이름 그 자체이지만, 그 이름은 반드시 새겨져야 하며, 고대판 종이 조각인 파편이 바로 그 새김의 매개체입니다. 고대 세계의 맥락에서 이 조각들은 백지나 다름없습니다. 날카로운 모서리가 있더라도 여전히 유용하며, 의미 있는 무언가로 재탄생될 수 있습니다.
다른 탈무드 문헌들에서도 이 깨어진 조각의 마법적 힘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샤밧』 편에서는 한 무리의 현자들과 함께 배에 타고 있던 한 마녀가, 사람의 몸에 닿았던 파편을 이용해 해를 끼치는 마법을 부릴 수 있음을 암시합니다. 고대 토라 미드라쉬 모음집인 『미드라쉬 탄후마』에는 출애굽 당시 모쉐가 요셉의 유해를 회수한 전설이 실려 있습니다. 요셉의 관이 나일강 바닥에 가라앉아 있었으나, 모쉐는 깨어진 조각에 “일어나라, 황소여(arise o bull)”라는 글을 적어 강에 던졌습니다. 그러자 요셉의 관이 수면 위로 떠올랐습니다.
그러나 깨어진 조각은 동시에 연약함과 무상함을 연상시키기도 합니다. 욤 키푸르(속죄일) 예배문은 인간을 “케레스 니슈바르(חֶרֶשׂ נִשְׁבָּר, kheres nishbar)”, 즉 깨진 조각에 비유합니다.
탈무드 용어에서 누군가를 “파편과 같다”고 여기는 것은 그 사람을 무시하고 경멸하는 태도를 의미합니다. 파편은 신비로운 힘의 매개체이자 동시에 무의미함의 상징입니다.
파편은 심지어 세계 창조에서도 역할을 합니다. 가장 유명한 유대교 우주론 중 하나인 루리아 카발라(Lurianic kabbalah)는 ‘셰비라트 하케일림(שְׁבִירַת הַכֵּלִים, shevirat hakeilim)’, 즉 그릇의 파손으로 알려진 사건을 묘사합니다. 이 이야기는 만물의 태초에, 신이 원초적인 빛을 담을 그릇을 창조했다고 전합니다. 그러나 그 그릇들은 빛을 담기에 충분히 강하지 못해 깨져버렸고, 빛과 파편(켈리포트, קְלִפּוֹת,kelipot, 껍질)이 사방으로 흩어졌습니다. 우리 인간은 여전히 그 파편들을 주워 모아 흩어진 빛을 원래의 온전한 상태로 되돌리고 있으며, 이를 통해 언젠가 구원이 찾아오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아마도 이 모든 이야기들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천사가 야즈리엘(Yazriel)인 이유일 것입니다. 루이스 긴즈버그의 『유대인의 전설』에 따르면, 야즈리엘의 임무는 세상의 모든 파편 위에 지워진 신의 이름을 다시 새기는 것입니다.
제 최근 저서인 『유대인의 내세에 관한 가이드』에서 야즈리엘은 천사, 악마, 집의 정령, 신화 속 생물들을 만나러 떠나는 여정에서 독자의 안내자 역할을 합니다. 야즈리엘은 우리의 상처와 파편을 깊이 이해하면서도, 동시에 재생과 갱신을 위한 우리의 잠재력 또한 잘 아는 이상적인 안내자입니다.
내 소중한 물건들이 담긴 진열장에는 몇 개의 깨어딘 조각들이 있습니다. 사페드(Safed)의 묘지에서 주워 온 유리 조각과, 저녁 해변에서 주워 온 조개 껍질 조각들입니다. 그리고 내 아파트 어딘가에는, 예전에 애용하던 깨진 머그잔이 있습니다. 그 안에는 여전히 파편들이 들어 있어, 수리되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 마음속에는 더 많은 깨어진 조각들이 있을 것입니다. 깨어진 수백 번의 바람과 믿음, 꿈 꿔왔던 많은 시간, 수많은 관계와 그 연결들...
이 깨어진 조각들은 우리가 버리는 것들이지만, 동시에 재활용되고 구원받을 수 있는 무언가를 향해 우리를 이끄는 지표가 되기도 합니다. 깨어진 조각들의 힘이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상처를 인정하고, 우리 세상을 다시 하나로 이어가도록 영감을 주기를 바랍니다.
이 글은 Rabbi Dr. Jill Hammer의 “What’s Broken Is Also Holy”- initially appeared in My Jewish Learning’s Shabbat newsletter Recharge on May 16, 2026.-를 기반으로 번역, 편집되었습니다.
By Torah & Juda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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