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이 세대를 본 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 하도록 하라."[ 로마서 12:2 ]
☆ 순간의 선택이 평생을 좌우합니다
25세에 미국의 최연소 은행장이 된 조셉 패트릭 케네디는 한 기자에게 “35세에는 백만장자가 될 생각이다.”라고 호언장담했습니다.
1인당 연평균 소득이 1,000달러에 간신히 진입하고, 빵 한 덩어리 가격이 9센트 밖에 되지 않는 1915년에는 얼토당토않은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나 케네디는 이 원대한 야심을 훌륭히 완수했습니다.
그는 월가에서 트레이딩하면서 1922년에 단 한 번의 거래로 65만 달러나 되는 차익을 올렸습니다.
행운은 심지어 주식 시장이 최악의 폭락을 기록한 대공황 때도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는 폭락 직전에 가지고 있던 주식을 다 팔아 버렸습니다.
케네디의 타이밍 감각은 1933년에도 기막히게 맞아떨어졌습니다.
그는 금주법이 끝나기 직전에 위스키 회사인 듀어와 괜찮은 조건에 주류 수입 계약을 맺었고, 할리우드 영화 산업이 전성기에 들어설 무렵에는 RKO 영화사를 공동으로 차렸습니다.
그의 재산은 8,000만 달러 이상으로 불어났습니다.
그는 합리적 경제인의 빛나는 모범이었습니다.
사생활에서도 케네디는 ‘합리적 자기 이익’을 유감없이 추구했습니다.
아름다운 은막의 스타 글로리아 스완슨과 혼외 관계를 유지하다가, 그녀의 영화가 예산을 크게 초과하자 즉시 그녀를 버렸고 뒷감당까지 다 떠넘겼습니다.
말년에 이르러서는 돈에서 정치권력으로 관심을 옮겼습니다.
그는 주영 미국 대사에 임명되었고, 자신의 장남을 미국의 대통령으로 만들겠다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러나 이 특별한 아일랜드계 미국인이 누린 행운은 후대까지 전해지지 못했습니다.
케네디가 미국의 대통령에 앉히고자 했던 잘생기고 매력적인 장남 조셉 2세는 제2차 세계대전에서 폭격 작전을 수행하는 중에 전사했습니다.
그의 나이 겨우 29세였습니다.
케네디의 아름다운 딸 캐슬린 애그니스는 데본셔 공작의 후계자인 윌리엄 캐번디시와 결혼했을 때만 해도 모든 것을 다 가진 듯 보였습니다.
하지만 결혼 후 4개월 만에 캐번디시가 교전 중 전사하면서 캐슬린 애그니스는 미망인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녀 역시 1948년에 비행기 추락 사고로 죽었습니다.
케네디의 차남 존은 정말 대통령이 되었지만, 1963년 11월 22일 댈러스에서 암살당했습니다.
셋째 아들 로버트는 1968년 대통령 선거 유세 중 총에 맞아 암살당했습니다.
막내아들 테디에드워드는 1969년 자동차를 몰고 가다가 채퍼퀴딕 섬의 다리 아래로 추락했습니다.
테디는 간신히 목숨을 건졌지만 동승했던 메리 조 코페크네는 익사했습니다.
다음 세대 케네디가의 운명은 더욱 비극적이었습니다.
1984년 조셉 케네디의 손자이며 로버트 케네디의 아들인 데이비드가 마이애미의 한 호텔에서 약물 과용으로 사망했습니다.
데이비드의 동생 마이클은 1997년에 스키 사고로 죽었습니다.
1999년에는 존 F. 케네디 2세가 비행기를 직접 몰고 가다가 롱아일랜드의 차가운 밤바다로 추락하면서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200% 실패할 걸 알면서도 왜 나는 똑같은 행동을 반복하는가(더글러스 켄릭, 블라다스 그리스케비시우스 저)>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저자는 “조셉 케네디는 평생 동안 내리는 결정마다 행운이 따랐다.
하지만 왜 그의 후손들은 마치 자석에 이끌리듯 불운한 선택을 했을까?”라고 질문을 던집니다.
어떤 사람은 저주를 받아서 그렇다고 말하는데 저주를 받은 것이 아니라 선택의 문제였다는 것입니다.
장남이나 차남을 대통령 선거에 출마시키는 것이든, 주류를 수입하는 것이든, 쇼 비즈니스에 진출하는 것이든, 아니면 할리우드의 신인 여배우와 염문을 뿌린 후에 그 여배우를 버리는 것이든 상관없이 인간의 모든 선택은 결국 ‘이게 내게 무슨 득이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합리적 자기 이익’으로 선택했다는 것입니다.
합리성의 경제학 시각에서 보면 케네디가의 2대와 3대에 연달아 일어난 비극적 죽음은 불가사의한 저주라기보다는 운 나쁜 도박의 연속에 가깝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조셉 케네디의 후손들은 불운이 아니라 잘못된 판단이라는 저주에 걸렸을지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조셉 케네디 2세는 그전에도 폭격 작전을 여러 번 수행했기 때문에 제대할 자격이 충분했답니다.
그런데도 철통 방어를 하고 있는 독일군 포격 기지를 향해 전투기에 폭탄을 한가득 싣고 날아가겠다고 자원했다는 것입니다.
이런 경솔한 판단력은 조셉 케네디의 손자인 마이클의 죽음에서도 드러난다고 합니다.
그는 스키를 타고 산비탈을 빠른 속도로 내려오다 나무와 충돌해 죽었답니다.
그리고 조셉 케네디의 막내아들 테디가 차를 타고 가다 채퍼퀴딕 섬의 다리 아래로 추락한 사건은 당시 밤늦게까지 파티를 즐기다 돌아오는 길이었답니다.
인간은 의사 결정을 할 때 자주 비이성적이고 잘못된 판단과 결정을 내린다는 것입니다.
무서우리만치 합리적이었던 조셉 패트릭 케네디와 달리 불행을 당한 그 후손들은 비합리적 결정을 내렸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본능과 감각에 충실한 감정적 선택을 하므로 곤욕을 당하기도 합니다.
감정적 선택보다 조금 더 객관적인 것은 이성에 기반을 둔 합리적 선택이라고 합니다.
소비자의 선택 원리는 “효용극대화” 에 있고 생산자의 선택 원리는 “이윤극대화”에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 행동을 결정하는 것은 이성보다 감정이 지배할 때가 많습니다.
<마음대로 고르세요>의 저자 켄트 그린필드는 그의 책에서 현명한 선택을 하는 능력을 키우기 위한 네 가지 방법을 제안합니다.
첫째,
선택의 배경으로 작용하는 상황과 환경의 위력을 인정하라는 것입니다. ‘친구따라 강남 간다’는 것입니다.
둘째,
우리의 한계와 '비이성적인' 성향을 인정하라는 것입니다.
조심하지 않으면, 인간의 성향을 잘 아는 사람들이 동원하는 온갖 방식에 끌려갈 수 있다고 합니다.
셋째,
자기 습관에 유념하라고 합니다.
사람은 일상적인 것과 친숙한 것, 기계적으로 반복되는 것을 좋아한다고 합니다.
넷째,
문화의 영향력을 인식하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고 합니다.
감정에 의한 선택이 때로는 편하고 유익할 수 있지만 중대한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서는 이익을 기반으로 하는 ‘합리적 자기 이익’의 선택을 넘어 공동체가 함께 살아가는 ‘합리적 바름’을 추구하는 선택을 해야 합니다.
감정적 선택에는 고비용의 후환이 기다리고 있을 수 있습니다.
합리적 자기 이익만을 위한 선택에는 후손과 사회에 구정물을 흐르게 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신앙인은 감정과 이성을 뛰어넘는 신앙적 선택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찾아 선택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통해서 말씀하십니다.
모든 주권이 창조주 하나님의 손에 있으니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
참된 지혜로운 선택은 구세주 예수님을 믿고 의지하고 겸손하게 순종하며 모든 것을 예수님께 맡기는 것이랍니다.
"네 모든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순간의 선택이 평생을 넘어 영원을 좌우합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지 말지어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악을 떠날지어다."
"이것이 네 몸에 양약이 되어 네 골수를 윤택하게 하리라."(잠3:5-8)
인간을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 말씀합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12:2)
할렐루야 ~~!!
사람들의 말에 휘둘리지 말고 창조주 하나님의 말씀대로 모든 것을 주님께 기도하고 맡기고 순종하는 것이 지혜랍니다.
오늘도 예수님과 함께 기쁨과 감사와 소망으로 가득한 행복한 시간 되시길 축복하며 기도드립니다.
<은혜로운 찬양 >
https://youtu.be/-jZ9o3NF0F8?si=9KOmSgzpvcZ7coSe
첫댓글 할렐루야 아멘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