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든 살, 산수(傘壽)의 의미
여든 살을 산수(傘壽)라고 한다. 우산 산(傘) 자에 목숨 수(壽) 자를 더한 말이다. 사람의 삶은 대개 네 번의 큰 변환기를 지나간다. 유년기와 청년기, 장년기와 노년기이다. 그 길고도 굽이진 여정을 사람들은 인생 역정이라 부른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을 마친 뒤 비로소 이승을 떠나는 것이 인간의 숙명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세상을 살다 보면 안타까운 사연들이 적지 않다. 신문을 펼칠 때마다 삶의 여정을 끝까지 마치지 못한 채 도중에 생을 접는 이들의 이야기를 접하게 된다. 인생의 계절을 다 누리지 못한 채 떠난 삶들을 생각하면 안타까운 마음이 앞선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나와 오랜 친구들은 다행스럽게도 그 네 번의 변환기를 무사히 지나온 사람들이다. 돌아보면 유년기에는 두려움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6·25 전쟁의 포화 속에서 살아남았다. 청년기에는 4·19와 5·16, 그리고 유신의 시대를 지나왔고, 장년기에는 5·18과 12·12 사태를 비롯한 격동의 세월을 견뎌냈다. 대통령의 탄핵과 구속이라는 정치적 격변 또한 지켜보며 살아왔다.
이제 노년기에 이르렀다. 우리가 바라는 모습 그대로 나라가 자유민주주의의 굳건한 반석 위에 서 있다고 말하기는 어려울지 모르지만, 그래도 여기까지 무사히 살아왔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할 일이다. 여든의 나이에도 바다 구경하면서 두 발로 걸을 수 있고, 스스로 숨 쉬며 일상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하나의 축복이 아닐까.
산수(傘壽)의 ‘산(傘)’ 자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커다란 우산 아래 사람 넷이 서 있는 듯한 모습이 보인다. 마치 유년기, 청년기, 장년기, 노년기라는 네 번의 인생을 품어 안고 있는 것 같다. 사람은 살아가며 비바람 치는 세상의 풍파를 피할 수 없다. 때로는 넘어지고, 때로는 상처 입고, 때로는 길을 잃기도 한다. 그러나 그 모든 세월을 지나며 비로소 삶은 깊이를 얻고 완성되어 간다.
여든 살이 되면 그 긴 세월을 살아낸 자신에게 비로소 커다란 우산 하나를 씌워 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제 더는 비바람 속에서 서둘러 달리지 않아도 된다고, 수많은 고비를 견디며 여기까지 온 삶을 다정하게 감싸 안아 주는 것이다. 그것은 지금까지 버텨온 세월에 대한 위로이자, 스스로에게 보내는 조용한 경의이기도 하다.
이처럼 여든 살은 단순히 나이를 의미하는 숫자가 아니다. 수많은 성공과 실패, 기쁨과 상실, 그리고 크고 작은 상처까지 모두 품고 지나온 시간의 무게다. 그 긴 인생 역정을 마친 뒤 비로소 마음의 평정을 찾아가는 나이이기에, 예로부터 사람들은 여든 살을 우산 산(傘) 자로 받들어 공경해 온 것이 아닐까. 그래서 산수란, 단지 여든이라는 숫자가 아니라 긴 세월의 비바람을 견뎌낸 사람에게 삶이 조용히 씌워 주는 한 자루의 우산인지도 모른다.
(26.5 백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