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이 지역이나 언어로 구분되기보다 음악 자체로 들리고 사랑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방탄소년단(BTS) 7명이 지난달 29일 각자의 소셜미디어에 함께 올린 글은 짧지만 파장이 엄청났다.
올해 지구에서 가장 뜨겁게 컴백한 팝스타가 내년 미국 최고 권위의 그래미 어워드에 작품을 내지 않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대놓고 '보이콧 선언'(미 뉴욕타임스.NYT)을 한 것이나 다름없다.
사태는 그래미를 주관하는 미 레코딩 아카데미가 6월 '베스트 아시안 팝 뮤직 퍼포먼스(Best Asian Pop Music Per formance)'
부문을 신설한 게 발화점이었다.
그래미는 '아시안 팝 예술의 깊이와 다양성, 탁월성을 조명하겠다'며 존중하는 척했지만, 현지 반응조차 냉소적이었다.
본상에서 공정하게 겨루게 하기보다, 지역별로 울타리를 치려는 의도로 읽혔다.
실제로 영미 언론들은 차별(discrimination) 보다'게토화(Ghettoizatrion)'란 표현을 즐겨 썼다.
나치의 유대인 거주 지역 게토처럼, 거두고 격리했단 뜻이다.
'그래미는 너무 하얗다'
그래미의 이런 작태는 낯선 풍경이 아니다.
힙합이 대중음악의 중심축으로 떠오르던 1989년, 그래미는 랩 부문을 따로 만들고는 생중계에선 빼버렸다.
당시 여러 뮤지션이 참가를 거부했다.
2010년대에도 켄드릭 라마나 비욘세의 명반이 백인 아티스트에게 밀려 '올해의 앨범'에서 고배를 마시자,
대중은 '#Grammys So White(그래미는 너무 하얗다)'라며 격분했다.
2017년 수상자인 영국 가수 아델조차 '비욘세가 받았어야 한다'고 했을 정도다.
2020년엔 선정 과정을 뒤에서 주무르는 '비공개 심사위원외'의 존재까지 드러났다.
이후 그램;가 체질 개선을 위해 노력하지 않은 건 아니다.
심사위도 폐지했고, 유색인종과 여성의 투표 비중도 늘렸다.
이 과정에서 BTS와 지코, 트와이스 같은 K핍 뮤지션도 투표권을 행사할 회우너 자격을 얻었다.
하지만 BTS에 대한 그래미의 대응은, 그들이 여전히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사선을 지녔음을 드러낸다.
하비 메이슨 주니어 최고경영자(CEO)는 'BTS의 선택에 슬펐지만, 그들의 결정을 이해하고 존중한다'고 했다.
하지만 공식 홈페이지에선 BTS의 과거 그래미 공연 영상을 슬그머니 내려버렸다.
보복성이란 비난이 이는데 별다른 해명도 없다.
속좁은만 자인한 셈이다.
물론 BTS가 원래대로 출품했다고 헤ㅐ서, 스래미에서 중료 상을 받는단 보장은 없다.
그간 BTS는 세계 음악차트 정상에 수 차례 오르며 신드롬을 일으켰지만 번번이 장르 부문 후보에만 이름을 올렸다.
2021,2022년 시상식 단독 공연도 시청률을 위한 '그래미 베이트(Grammy Bait.미끼)'였다는 지적이 없지 않았다.
진정한 다양성의 의미 알아야
어쩌면 BTS의 선언이 단순히 '상복(賞福) 없음'에 대한 불평으로 비칠 수 도 있다.
하비만 그간 전례를 보건대, 그래미 편을 들어주긴 어렵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이번 사태를 'BTS의 점잖지만 강렬한 질책(a striking rebuke)'이라며 '아시아 팝 아티스트들은
그래미에서 소외돼 왔다'고 짚었다.
NYT 역시 '인종과 언어가 K팝을 바라보는 서구권 시각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는 BTS의 중요한 화두'라며 손을 들어줬다.
구차한 명분을 내세우며 또 하나의 벽을 쌓는 시상식은 권위를 유지하기 힘들다.
게다가 이제 내년 '베스트 아시안 팝 뮤직 퍼포먼스' 상을 받는 이는 누구라도 찝찝할 수밖에 없다.
진짜 다양성과 포용성은 '전용 칸'에 나눠 앉는 게 아니다.
동일선상에서 그걸 깨닫지 못하면, 언젠가 격리되는 건 자신들일 수도 있다. 정양환 문화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