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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여성시대 미작
안녕 여시들!!
어제 새벽에 4편을 올렸는데
오늘 탄력받은김에 한편 더 올려^0^
매번 재미있게 읽어주는 여시들 다시한번 고마워요♡♡
오늘은 최고의 권력을 휘두르면서
그에 걸맞게..ㅎㅎ 여성편력도 화려했던 한나라 무제의 여인들에 대해서 가져왔어!
어떤 문헌에서는 무제의 궁녀(일하는 궁녀 말고 정말 밤시중 들기 위한 궁녀!)가
무려 만명이었다는 설도 있더라구..;;
네이버 검색에서도 '한무제'라고 치면 '한무제 정력'이 자동검색어로 나올정도;;
무제의 총애를 받으면서 가족들까지 부귀영화를 누렸지만
다들 말년은 쓸쓸했던ㅠㅠ 무제의 여인들 시작할게요~
#1 쫓겨가는 궁녀에서 태황태후가 된 중국 최고의 신데렐라 http://cafe.daum.net/subdued20club/LxCT/125595
#2 태자를 갈아치운 황제의 누나 장공주 유표 http://cafe.daum.net/subdued20club/LxCT/126359
#3 유부녀 출신이 황후로... 왕황후 이야기 http://cafe.daum.net/subdued20club/LxCT/126731
#4 집안 불화로 모두를 망쳐버린 희대의 막장가족 회남왕과 형산왕 이야기 http://cafe.daum.net/subdued20club/LxCT/1276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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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황한무(진나라 시황제와 한나라 무제)'라는 말이 회자될 정도로 중국 역사에 큰 족적을 남긴 무제.
한나라를 세운 고조 유방, 어머니 여태후의 영향 아래 힘을 쓰지 못했던 혜제, 여태후 집권 때 허수아비로 세운 어린 소황제 둘,
안정적인 통치로 '문경지치'라는 만들어낸 문제와 경제에 이어 황제로 즉위했다.
무제는 한나라의 통치 이념을 유교로 확립시키고,
흉노의 침입을 제대로 막아 내 서역 나라들과 교류해 나라의 부를 쌓는 등
한나라 제국의 시대를 본격적으로 안정시킨 황제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화려한 업적과는 달리, 무제의 황실은 항상 시끄러웠다.
무제의 황제 등극부터 여인들의 손으로 이루어졌다.
(#2 태자를 갈아치운 황제의 누나 장공주 유표 참고)
무제의 황후는 일찌감치 정해졌었다.
바로 장공주의 딸 진황후(진아교)다.
무제가 태자도 아닌 평범한 왕자였을 시절,
고모 장공주에게 이렇게 말했었다.
"저토록 아름다운 아교를 부인으로 맞이한다면,
금으로 만든 집에 고이 모셔두겠습니다."
이 일화에서 나온 '금옥장교'라는 말은
아름다운 부인을 극진히 모신다는 뜻이었는데,
사내의 마음이 덧없음을 한탄하는 뜻으로 바뀌고 말았다.
바로 무제의 마음이 금방 바뀌고 말았기 때문이다.
진황후와 그녀의 어머니 장공주의 힘으로 황제의 자리에 오르게 된 이후,
무제의 마음은 진황후가 아닌 다른 여인에게 향했다.
무제의 친누나 평양공주는 고모 장공주가 그랬듯
동생인 황제에게 미인을 공급하는 마담뚜 역할을 하고 있었다.
평양공주의 집에는 노래를 하는 하인과 하녀들이 많았는데,
무제가 누나 집에 놀러갔다가
수많은 여인들 중 노래하는 하녀 위자부를 보면서만 기뻐했다.
이날 무제는 바로 휘장을 친 수레 안에서
위자부의 시중을 받았다.
(드라마 '위자부'의 위자부)
이후 위자부는 궁에 들어가 마침내 임신까지 하게 되었고,
위자부의 동생 위청은 벼슬자리에 올랐다.
진황후는 위자부가 총애를 받는다는 말을 듣고 분노하여
하녀를 시켜 저주하다가 황후 자리에서 폐위되었다.
위자부가 자연스레 다음 황후 자리를 이어받았다.
(드라마 '위자부'의 위청)
위황후의 동생 위청은 위장군이 되어
흉노의 침략을 막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황제가 위청에게 공을 세우도록 편의를 봐 주며
미천한 출신인 다른 장군을 어려운 상황에 몰아넣기도 했다.
(드라마 '위자부'의 평양공주)
남편과 헤어져 홀로 지내고 있던 평양공주는 위청과 재혼했다.
평양공주는 처음에 자신의 하녀였던 위자부의 오빠와 어찌 결혼할 수 있겠냐고 했지만,
이제 그는 황후의 오빠이고 나라의 대장군이라며 설득하자 공주가 받아들였다.
무제 남매와 위자부 남매가 겹사돈을 맺은 것이다.
위자부의 친정조카 곽거병도 위청의 뒤를 이어 대장군이 되었다.
위황후는 40년 동안이나 황후 자리를 지켰다.
하지만 위황후도 나이가 들고 미색이 예전같지 않자
무제는 왕부인, 이희, 이부인 등을 차례로 총애한다.
(드라마 '위자부'의 이희)
이부인도 평양공주의 노래하는 하녀였다.
그녀의 오빠 이언년 역시 노래를 만들고 연주하는 일을 했다.
하루는 이언년이 황제 앞에서 노래를 불렀다.
'북쪽에 어여쁜 사람이 있어 세상에서 떨어져 홀로 서 있네.
한 번 돌아보면 성을 위태롭게 하고 두 번 돌아보면 나라를 위태롭게 한다.
어찌 경성이 위태로워지고 나라가 위태로워지는 것을 모르리요만
어여쁜 사람은 다시 얻기 어렵도다'
'경국지색'이라는 말을 생겨나게 한 노래다.
노래를 들은 무제는 과연 그런 미인이 있겠느냐며 코웃음을 쳤지만,
바로 노래를 부른 이언년의 누이동생이 천하절색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부인을 입궁시켜 후궁으로 삼았다.
무제는 이부인과 이언년 남매를 동시에 총애했다.
이연년은 음악의 신이라 불릴 정도로 무제의 뜻에 맞는 음악을 잘 만들어냈다.
음악을 담당하는 장관까지 올랐고,
심지어 무제가 너무나 총애하여 이언년과 함께 잠자리에 들 정도였다.
하지만 이부인이 죽자 이언년에 대한 총애도 금방 식어버렸다.
이부인은 몸이 약해 젊은 나이에 죽게 되었는데,
무제가 직접 이부인의 마지막을 보러 찾아온다.
아무리 총애하는 여자라도 후궁의 임종에 황제가 찾아오는 것은 엄청난 일이었다.
하지만 이부인은 무제가 방에 들어오자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쓰고 얼굴을 보이지 않는다.
무제가 한번만 얼굴을 보여달라고 부탁했지만 끝까지 황제의 청을 거절했다.
무제가 돌아가 후, 이부인의 가족들은
자신들을 위해서라도 황제의 청을 들어주지 그랬냐고 했지만,
이부인은 이렇게 말한다.
"가족들을 위해서 얼굴을 보이지 않은 거예요.
황제께서는 저의 미모를 총애하셨는데,
마지막에 이렇게 스러진 용모를 보시면
제 가족들을 소중히 대하지 않으실 겁니다."
이부인의 안타까운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부인의 오빠 이언년은 얼마 후 황제의 명에 의해 목숨을 잃는다.
무제의 다음 총애는 구익부인에게 향한다.
무제가 일흔살 때 구익부인에게서 아들 하나를 얻는데,
아들의 이름은 유불릉이었다.
말년에 얻은 막내아들이 너무나 사랑스러웠는지,
위부인의 아들 유거가 태자 자리에 있었는데도
과도하게 막내아들을 편애하고, 대여섯살의 나이에 벌써 왕으로 봉한다.
마침 조정에는 태자 유거를 두려워하는 강충이라는 신하가 있었다.
태자의 스승이 사소한 잘못을 한 것을 고발해 벌을 받게 한 악연이 있었다.
태자가 황제가 되면 자신의 목숨이 위태롭다고 느껴
강충은 태자를 모함하기 시작한다.
안그래도 막내아들을 사랑스러워하던 무제가
죽음을 앞두고 판단이 흐려졌던 것일까.
태자가 자신을 주술로 저주했다는 강충의 모함을 그대로 믿는다.
가만히 있으면 죽을 수밖에 없음을 느낀 태자는
강충을 죽이고 군사를 모아 무제와 수도 장안성에서 사투를 벌인다.
이 전투로 사상자가 수만 명이나 나왔다.
결국 태자는 죽고 그토록 총애받았던 위황후도 자살한다.
시간이 흐르자 무제는 자신이 속았다는 것을 깨달았던 듯 하다.
자신의 명으로 태자를 진압한 승상의 허리를 베어 죽이고,
태자를 포위한 병졸들까지 모조리 죽였다.
심지어는 황제의 편에도, 태자의 편에 서지도 않은 신하들까지
비겁한 기회주의자라며 처형했다.
무제가 죽기 며칠 전, 느닷없이 구익부인에게 화를 냈다.
아무 이유도 없이 구익부인을 끌어내 다짜고짜 처형했다.
당연히 구익부인의 아들 유불릉이 태자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 신하들은 어안이 벙벙했다.
무제는 며칠 후 예정대로 막내아들 유불릉을 태자로 선포했다.
신하들이 물었다.
"어찌 태자의 어머니를 죽이셨나이까?"
무제는 이렇게 대답했다.
"예로부터 국가에 난이 발생한 까닭은 군주의 나이가 어리고 어머니는 장성하기 때문이다.
태후가 홀로 살면 교만하고 음란해져서 제지할 사람이 아무도 없다.
너희는 여태후의 일을 듣지 못했느냐."
이렇게 여덟 살의 태자를 세우고는 이틀 후, 무제의 파란만장한 생애가 끝이 났다.
무제의 여인들은 모두 쓸쓸한 최후를 맞았다.
진황후와 구익부인은 버려졌고,
위황후는 스스로 자살해야만 했다.
이부인만이 마지막까지 사랑받았지만,
죽어서까지 황제의 사랑으로 자신의 가족들을 지킬 순 없었다.
무제는 황제라서 방탕한 사랑을 한 걸까,
황제이기 때문에 진짜 사랑을 할 수 없었던 걸까.
<참고자료>
사기 세가 - 민음사, 사마천 지음, 김원중 옮김
사기 열전 - 을유문화사, 사마천 지음, 김원중 옮김
사기 교양 강의 - 돌베개, 한자오치 지음, 이인호 옮김
첫댓글 여시야 글 완전재밌게봤엉!!!! 고마웡!!!!
항상 잘보구있어 고마워 여시ㅎㅎ
헐 파란만장하다....글쪄준 여시~글 고마웡!!!!계속 쭉 따라읽을게!!!!꿀잼!!!!
와 여시 너무 잘읽고가 고마워!!!
잘읽고가요! 역사가 재밌어...
와 이 글 한편에 책 3권의 내용이 들어간거야?? 시간벌엇네 나는! 여시덕분에
고마워!!
아냐아냐 저 세권에 엄청 많은 내용 있는데 그중에 한나라 무제의 여자 관련된 내용만 모았어용~
기다렸어♡ 진짜 유익하고 꿀잼~ㅋㅋ
고마워 덕분에 재밌게 잘읽었어^^
진짜 대단하다 완전 재밌게 읽었엉 여시 수고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