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까치
나는 요즘 부자가 됐다. 이웃도 형제도 눈치 채지 못하게 조용히 부자가 됐다. 숨기려 한 것은 아니었으나 굳이 말하지 않았다. 그들이 이 글을 읽으면 서운해 할지 모르겠다. 아침에 창문을 열면 쏟아진다. 공동 주택 정원에 나가도 쏟아진다. 집을 허문 공터에서도, 옥상에 올라가서 둘러봐도 쏟아진다. 수상하겠지만 돈벼락은 아니다. 창밖 앵두나무에서는 참새들이 재재거리며 싸라기 울음을 한 뒷박쯤 쏟아 낸다. 담장 배풍등 덩굴에서는 붉은머리오목눈이들이 좁쌀 울음을 한 홉씩 쏟아 낸다. 공터 메타세쿼이아 우듬지에서는 까마귀들이 "까악 끄억~" 하며 미역줄기 같은 울음을 토해 낸다.
참죽나무에 앉은 비둘기가 "구욱 국~" 국을 끓이며 운다. '미역국엔 북어채가 제격이지!' 딱따구리가 마른 북어 패듯 죽은 나무를 두드린다. 나는 아침부터 귀로 배부르다. 한번은 공동 우편함 위에서 참깨 통 흔드는 소리가 들렸다. 어미 딱새가 다섯 개의 노랑 부리를 연주하고 있었다. 통통한 애벌레를 물고 와서 배식 차례를 기억하느라 고개를 갸웃거릴 때마다 참깨가 쏟아졌다. 어미가 떠나면 쥐 죽은 듯 고요해졌다. 내 고막은 이들만으로도 충분했는데 요즘 새로운 소리가 보태졌다. 마을 앞을 가로지르는 고속도로 건너편엔 작은 동네가 하나 있다. 용케 개발이 비껴간 그곳에는 오래된 터의 무늬가 남았다. 아파트 숲을 지나 처음 그곳에 닿았을 때 절로 탄성이 나왔다. 택배로 온 한 뼘 고향이 거기 있었다. 논두렁 밭두렁을 거닐 때 선명한 신발 자국이 남았다. 내 몫의 대지에 찍은 인감도장처럼 보였다. 거기서 그 새들을 만났다. 검은 머리와 회청색 날개, 긴 꼬리가 단박에 나를 사로잡았다. 화려하고 이국적이었다. 비교적 흔한 텃새, 물까치라는 건 나중에야 알았다. 새들마다 하늘을 나는 궤적이 다르다. 솔개는 하늘 높이 맴돌거나 정지 비행을 한다. 참새는 돌팔매처럼 일직선으로 난다. 제비는 재단사처럼 하늘 원단을 가르며 난다. 직박구리는 허공 너울을 서핑하듯 난다. 물까치들이 나는 모습은 한껏 차려입은 아가씨가 뽐내는 것처럼 보였다. 뉘라도 보란 듯 느리게 날았다. 날개깃을 손가락처럼 펼치는 모습이 허세처럼도 보였다. 먹이를 찾거나 천적을 피하기 위해 간결하게 나는 것과 달랐다. 그렇다고 공주처럼 새침한 것도 아니었다. 물까치들은 사람도 개도 무서워하지 않았다. 이 집 저 집 거리낌없이 넘나들다 고양이 한 마리만 나타나도 동네방네 떠들며 날았다. 자신들이 지켜야 할 무언가를 점검하는 듯했다. 작은 변화도 살뜰히 살피는 그들의 느리고 우아한 날갯짓 아래 마을의 일상이 펼쳐졌다. 물까치들은 내가 사는 마을에는 결코 날아오는 법이 없었다. 불과 몇 분이면 날아올 거리인데도 그랬다. 텃새들의 영역 개념이 뚜렷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지난겨울 물까치 떼가 우리 마을에 나타났다. 나는 그들이 철거 이주민 신세라는 걸 알아챘다. 동네가 개발되면서 빌딩숲이 들어서고 있었다. 산과 키를 견줄 만큼 높이 솟은 신축 건물들은 통유리 외벽으로 만들어 졌다. 유리창에 구름이 둥실 떠가고, 수백 년 제 얼굴을 보지 못한 산이 이마를 비추어 보고 있었다. 아로니아 농장을 두고 본래 주민 까치와 이주민 물까치 사이에 다툼이 벌어졌다. 물까치들은 덩치가 작고 여려 보였다. 다시 쫓겨 갈 그들을 전송해야 할 것 같았다. 결과는 예상 밖이었다. 맹금류를 쫓기도 하는 까치들도 수 십 마리가 떼로 달려드는 물까치한테는 중과부적이었다. 어느 날 아침 옥상으로 올랐다. 이웃 빌라 난간에 까마귀 떼가 모여 있었다. 메타세쿼이아 우듬지에는 까치들이, 참죽나무에는 물까치들이 앉아 있었다. 초대장도 없이 이주민들의 처우와 정착에 관한 주민 회의를 목격했다. 어느 쪽도 섣불리 짖거나 활개 치지 않고 고요히 앉아 있었다. 나는 전에도 본 적이 있다. 새들이 중요한 결정을 할 땐 울거나 짖지 않는 걸. 물까치들이 정착하면서 마을 소리 곳간이 풍성해지고, 나는 소리 부자가 됐다. 모두 도시 개발 덕분에 이뤄진 일이다. 나는 눈이 즐겁고 귀가 배부르게 되었지만 물까치들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다. 보고 싶지 않아도 고속도로 너머 우뚝 선 유리 빌딩을 하루에도 몇 번씩 볼 것이다. 그곳에 살던 주민들이 물까치뿐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수많은 들꽃과 나무와 개구리와 땃쥐들은 보따리 싸 들고 어디로 가서, 소문 없이 또 다른 부자를 만들어 주고 있을까 궁금하다.
1964년 충북 청주에서 태어난 반칠환 님은 199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시집 《뜰채로 죽은 별을 건지는 사랑》 《웃음의 힘 》 《새해 첫 기적》 등을 펴냈다. 풍자와 해학을 통해 현대 문명을 비판하면서도 어린아이와 같은 동화적 상상력을 지녔다. 자연과 인간이 하나가 되는 사회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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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반갑습니다
사랑천사 님 !
다녀가신 고운 걸음
감사합니다 ~
지금까지 잘해 왔고
앞으로도 잘 해낼 거라 믿어요
초여름의 싱그러움에
작은 응원을 실어
보냅니다 ~^^
새들의 소리를 풍성하게
들을 수 있어서 소리 부자라는
그 품성이 부자 같으네요.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언제까지 소리 부자로 살아 갈 수
있을지 모르겠군요.
재미있는 영상과 새 소리를
듣게해 주셔서 감사 합니다 !
안녕하세요
소산 님 !
다녀가신 반가운
멘트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
신록이 짙어가는
새로운 한 주
즐거운 나날들 보내시고
건승을기원합니다
~^^
좋은글 감사 합니다
반갑습니다
동트는아침 님 !
고운 흔적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
기쁨과 보람이 샘물처럼
솟아나는 알찬 한 주
보내시길 소망합니다
~^^
안녕 하세요...망실봉님
오늘도 좋은 글 담아 주셔서 고맙습니다..
새롭게 시작하는 한 주의 출발 입니다..
더 많이 행복하시고..건강 하세요
오늘도 수고 많으셨어요
반갑습니다
핑크하트 님 !
고운 멘트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
오늘도
기쁨과 즐거움이 함께하는
좋은 하루보내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