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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상버스 도입 의무화·특별교통수단 운영비 지원 내용 등 국회 통과
시외버스는 저상버스 의무화 제외, 특별교통수단 운영비 지원은 의무 아냐
홍남기 기재부 장관 집 앞에 모인 장애인들 “예산 없이 권리 없다” 외쳐
마포경찰서, 전동휠체어 스위치 끄고 들어 옮기는 등 장애인에 ‘강경 진압’
이형숙 서울시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대표가 발언하고 있다. 목에는 홍남기 기재부 장관을 긴급현상수배하는 피켓을 걸고 있다. 그의 뒤로는 경찰들이 방패를 들고 서 있다. 왼쪽 카메라 렌즈 가까이에 있는 한 활동가가 입은 몸피켓에는 “장애인 권리를 권리답게 보장하라! 예산 없이 권리 없다!”고 적혀 있다. 사진 강혜민
“전동휠체어는 장애인의 몸입니다. 그런데 경찰이 장애인의 전동휠체어 스위치를 꺼버리고, 휠체어를 번쩍번쩍 들어 옮겼습니다. 기획재정부(아래 기재부)가 장애인을 우롱하니까 경찰도 장애인을 우습게 봅니다. 우리는 오늘 홍남기 기재부 장관에게 장애인 권리 보장을 위한 예산을 제대로 반영하라고 요구하러 왔습니다. 우리의 투쟁을 통해 앞으로 경찰이 장애인을 무시하고 휠체어를 제멋대로 손대는 일 없도록 권리를 쟁취합시다!” (이형숙 서울시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대표)
- 교통약자법 개정안 통과됐지만… 장애인들이 투쟁한 이유
31일 오전, 마침내 국회 본회의에서 장애계가 그토록 바라던 교통약자이동편의증진법(아래 교통약자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하지만 2021년의 마지막 날인 오늘, 장애인들이 영하의 추운 날씨에도 맨바닥에서 또다시 투쟁을 벌인 이유는 무엇일까?
같은 날 오후 2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전장연)는 서울 마포구 공덕동 홍남기 기재부 장관 집 앞에서 기재부에 장애인권리 예산 반영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러나 기자회견 도중 마포경찰서 소속 경찰들이 무리하게 장애인 활동가들을 강경하게 진압하는 바람에 기자회견은 여러 차례 중단됐다. 경찰들은 기자회견 장소를 넓혀달라고 요구하며 이동하는 장애인 활동가의 전동휠체어 전원을 강제로 끌 뿐만 아니라, 휠체어 탄 활동가를 들어 올려 강제로 이동시켰다.
경찰이 휠체어 전원을 강제 차단한 것에 대해 이형숙 대표가 분함을 터뜨리며 눈물을 훔치고 있다. 사진 강혜민
경찰이 휠체어 탄 장애인의 이동을 방패로 막고 있다. 사진 강혜민
경찰의 취재 방해도 유달리 극심했다. 전동휠체어 전원이 꺼진 이형숙 대표가 수십 명의 경찰에 의해 둘러싸인 상황을 취재하고자 비마이너 기자가 다가가자 경찰은 “위험하다”는 이유로 접근을 막았다. 취재방해에 항의하자 경찰은 기자의 가슴 아래를 두 팔로 감싸 안은 채 번쩍 들고선 수차례 강제로 신체를 이동시켰으며, 이 과정에서 경찰의 강경 진압으로 목에 건 비마이너 기자증은 끊어졌다.
이날 경찰의 과도한 진압에 분노한 장애인들은 마포경찰서를 향해 강한 규탄의 목소리를 냈다.
31일 오후 2시, 마포구 공덕동 홍남기 기재부 장관 집 앞에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장애인 권리 예산 반영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사진 강혜민
- 시외버스는 저상버스 의무화 제외·특별교통수단 운영비 지원은 ‘임의조항’
교통약자법 개정안은 지난 27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아래 국토위), 그리고 30일 법제사법위원회(아래 법사위)를 거쳐 오늘(31일) 오전, 재석 228명 중 찬성 227명, 기권 1명으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교통약자법 개정안이 31일 오전, 재석 228명 중 찬성 227명, 기권 1명으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국회방송 캡처
이번에 통과된 교통약자법 개정안에는 버스 대·폐차 시 저상버스 도입을 의무화하는 조항이 새롭게 신설됐다. 또한 국가 또는 도(道)가 특별교통수단(장애인 콜택시)의 이동지원센터 및 광역이동지원센터의 운영비를 지원할 수 있는 내용도 추가됐다.
그러나 개정안에는 여전히 한계가 남아있다.
먼저 저상버스 의무 도입 대상이 ‘시내버스’나 ‘마을버스’만 해당할 뿐, ‘시외·고속버스’는 제외됐다. 또한 도로의 구조·시설 등이 저상버스 운행에 적합하지 않을 시에는 저상버스를 도입하지 않아도 되는 단서조항이 달려, 향후 버스 운송사업자와의 마찰이 예상된다.
또한 특별교통수단은 지역 간 차별을 철폐하기 위해 중앙정부의 (광역)이동지원센터의 운영비 지원이 필수적이다. 이에 따라 이번 개정안을 통해 국가나 도가 특별교통수단의 운영비를 지원할 수 있게 되었지만, 기재부의 압박으로 국토위를 거치면서 법 개정안 원안의 ‘해야 한다’가 ‘할 수 있다’로 바뀌었다. 즉, 의무가 아닌 ‘임의규정’이기 때문에 언제든지 ‘운영비를 지원할 수 없다’가 될 수 있는 여지가 남겨졌다.
특히 특별교통수단은 이번 개정안 통과 과정에서 보조금관리에 관한 법률(아래 보조금법)과의 충돌로 인해 수차례 진통을 겪었다. 그동안 ‘장애인특별운송수단(운영비)’은 보조금법 시행령에 따라 국가 보조금 지급 제외 사업에 해당했다. 이 때문에 특별교통수단은 오로지 지자체의 권한으로 예산이 편성되어, 지역 간 이동권 격차가 크게 벌어지는 결과를 초래했다.
따라서 이번 교통약자법 개정안에는 특별교통수단 운영비에 국비 지원이 반영되도록 했지만, 기재부는 거듭 특별교통수단 운영비가 보조금법 시행령에 국비 지원이 불가한 사업으로 되어있다며 수용이 곤란하다는 의견을 냈다. 지난 30일, 법사위에서 기재부가 이런 의견을 또다시 내비치자, 전주혜 국민의힘 국회의원은 지난 8일 전장연의 ‘윤석열 후보 따라잡기’ 투쟁 사진을 보여주며, 기재부의 예산 반영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피력하기도 했다.
지난 8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기습 시위로 윤석열 후보를 만났다. 이준석 대표와 윤석열 후보가 박경석 전국장애인야학협의회 이사장의 말을 듣고 있다. 주변에 수많은 시민과 취재진이 있다. 박경석 이사장의 머리 위에는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님, 20년을 기다렸습니다. 장애인 이동권, 접근권 완전 보장! 교통약자이동편의증진법 개정을 약속해 주십시오!’라고 적힌 작은 현수막이 펼쳐져 있다. 오른쪽 건물에는 건물 외벽을 뒤덮을 만큼 큰 크기의 현수막이 걸려 있고 ‘장애인권리보장법, 장애인탈시설지원법 제정하라’라고 적혀 있다. 사진 하민지
- 법 개정 돼도 기재부 손에 맡겨진 예산… “예산 없이 권리 없다”
결국 기재부의 압박으로 특별교통수단 운영비 지원이 ‘임의규정’으로 통과되었지만, 상위법률이 개정되었기 때문에 보조금법 시행령 개정은 피할 수 없게 됐다. 이에 따라 향후 보조금법 시행령에서 특별교통수단 운영비에 관한 ‘국비 지원 제외’ 내용이 삭제되고, 국비 지급 비율이 결정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전장연은 특별교통수단의 운영비에 대한 기준보조율은 국비 50%, 지방비 50%의 예산으로 책정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영하의 추운 날씨에 현수막을 잡고 있는 손이 시리다. 장갑 없는 맨손을 꼭 쥔 채, 다른 손으로는 피켓을 들고 있다. 피켓에는 “광역이동지원센터 운영비 국비와 지방비 5:5로 반영하라!” 고 적혀 있다. 사진 강혜민
전장연은 “구체적인 예산의 비율을 정하지 않으면, 1원을 반영해도 반영하는 것이 된다. 법 개정은 했지만 결국 기재부 입맛에 맞게 넘겨진 것에 불과하다”면서 “우리는 기재부의 장애인권리예산 책임이 명확해질 때까지 매일 오전 8시, 혜화역 지하철 승강장 앞 출근 선전전을 비롯한 투쟁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동권 관련 예산 외에도 전장연은 기재부에 △장애인평생교육시설 국비 지원 △하루 24시간 활동지원 예산 보장 △장애인거주시설 예산만큼의 탈시설 지원 예산 보장 등 장애인 권리 예산을 촉구하고 있다. 내년도 거주시설 예산은 6224억 원으로, 탈시설 지원 예산 24억 원의 259배에 달한다.
박경석 전국장애인야학협의회 이사장은 “오늘 교통약자법이 통과됐지만 결국 예산 문제가 걸렸다. 탈시설도 마찬가지다. 장애인은 거주시설이 아닌, 지역사회에서 마음껏 이동하며 살아갈 수 있는 예산이 필요하다. 이게 과연 기재부가 막아야 할 문제인가” 되물으며, “지금 이 기자회견에도 탈시설 한 장애인들이 자신의 권리를 함께 요구하고 노래 부르며 춤추고 있다. 지역사회가 변화되는 모습이 바로 이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이제 기재부는 경찰을 앞세워 장애인들을 괴롭히지 말고, 예산을 내놓아야 한다. 범인은 홍남기 장관이다. 기재부를 겨냥해 예산을 쟁취하자”고 외쳤다.
장애인 활동가들이 공덕역 안전문(스크린도어)에 장애인 권리 예산을 촉구하는 내용이 담긴 스티커를 붙이고 있다. 사진 강혜민
- 지하철 투쟁에 경찰 ‘무리한 강경 진압’, 장애인 활동가 119 후송
홍남기 장관 집 앞에서 기자회견을 마친 전장연은 이날도 지하철 투쟁을 이어나갔다. 그러나 경찰의 과도한 대응과 서울교통공사 지하철 보안관의 휠체어 이용자에 대한 몰이해로 활동가들은 크게 분노할 수밖에 없었다.
3시 40분경 지하철 승강장에 도착한 활동가들은 장애인 권리보장예산을 촉구하는 내용이 담긴 손피켓을 안전문(스크린도어)에 붙였다. 7분 후, 지하철이 오고 휠체어 이용자들이 한 줄로 서서 지하철에 탑승하던 중 사람들이 다 탑승하지 않았는데도 1분 만에 지하철 문이 닫히면서 한 사람의 팔이 문에 끼는 사고가 발생했다. 다행히 문은 곧 다시 열렸으나, 커다란 사고로 이어질 뻔한 위험한 순간이었다. 그러나 이후에도 지하철은 휠체어 탄 장애인이 탑승하는 도중에도 다시 급하게 문을 닫았다.
장애인들이 타는 도중 닫힌 지하철 문이 갑자기 닫혔다. 한 사람의 팔이 지하철 문에 껴있다. 사진 강혜민
이에 대해 휠체어 이용 장애인들이 항의하며 지하철 문을 막아서자, 곧 수십 명의 경찰이 뒤에서 강제로 밀고 지하철 안으로 들어오면서 현장은 아수라장이 됐다. 경찰은 문을 막고 섰던 유진우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를 지하철 내로 밀어 넣고, 바로 뒤에 있던 박경석 이사장을 승강장 쪽으로 빼내려고 했다. 이 과정에서 유진우 활동가는 신발이 벗겨지고 발등이 바닥에 쓸리면서 크게 다쳐 119로 후송됐다.
당시 박경석 이사장 곁에 있었던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활동가는 “(유진우 활동가와 박경석 이사장 사이에) 경찰 한 명이 들어와서 휠체어 탄 박 이사장 무릎 위에 앉았다. 그리곤 갑자기 사방에서 경찰이 박 이사장을 덮쳐서 찍어 눌렀다”면서 “‘제발 하지말라’고 소리쳤는데 경찰은 내 무릎도 뒤에서 찍어 눌렀다”고 상황을 설명했다. 이어 “오늘 경찰이 너무 감정적으로 폭력 대응했다. 대체 왜 이렇게까지 하는지 모르겠다. 특히 하반신마비 장애인(박경석 이사장을 지칭)의 하반신을 찍어 누른 거에 대해선 책임을 물어야 한다. 관등성명을 요구했는데도 제대로 밝히지 않았다”고 분개했다.
박 이사장은 “하반신 감각이 없어 눌린 지도 몰랐다. 욕창도 있어서 걱정된다”고 비마이너에 전했다.
유진우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가 공덕역에서 지하철 문을 막아서고 있다. 피켓에는 “장애인 권리예산 기획재정부 마음대로 규탄한다!”고 적혀 있다. 그 뒤로는 박경석 전국장애인야학협의회 이사장이 있다. 사진 강혜민
공덕역에서 여의도역까지 가는 6분 동안에도 지하철 내부는 평탄치 않았다. 서울교통공사 지하철 보안관 서너 명이 계속해서 장애인의 휠체어 뒷 손잡이를 잡은 채 놓지 않은 탓이다. 장애인 당사자가 불쾌함을 표하며 “휠체어에서 손 떼라”고 계속 소리쳤음에도 이들은 놓지 않았다.
이에 대해 기자가 ‘왜 붙잡고 있는지’ 등에 관해 물었으나 지하철 보안관 그 누구도 답하지 않았다. 관등성명을 물어도 “대답하지 마”라고 서로를 입단속 시키며, 심지어 목에 찬 명찰을 확인하려고 손을 뻗는 기자에게 “폭행죄에 해당한다”고 말하곤 명찰을 옷 속으로 숨기기도 했다. 서울교통공사 측의 강경 대응에 재차 물었으나 지하철 보안관들은 기자에게 “알아서 쓰세요”라고 답했다.
서울교통공사 지하철 보안관들이 장애인의 휠체어 뒷손잡이를 꽉 잡고 있다. 사진 강혜민
한편, 영등포구 이룸센터 앞 양대법안(장애인권리보장법·탈시설지원법) 농성장에 도착한 전장연 소속 활동가들은 오후 6시, 새해를 맞아 2021년 ‘제야의 화형식’을 열었다. 이들은 새해가 시작되는 1월 3일에도 장애인 권리 예산 확보를 위한 대대적인 투쟁을 진행할 예정이다.
여의도역에서 휠체어 탄 장애인들이 지하철 문을 막아서고 있다. 그 뒤로 검은 옷을 입은 서울교통공사 지하철 보안관들이 핸드폰으로 촬영을 하거나 팔짱을 낀 채 이를 바라보고 있다. 사진 강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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