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발로 걷다 보니 발바닥에 물집이 생겼는지 따끔거렸다. 발가락에 힘을 주어 발가락을 모으고 걸으니 그나마 좀 덜한 것 같았다.
마주치는 사람들의 힐끔거리는 눈빛들을 감당하기 어려워 고개를 푹 수그리고, 온 신경을 발바닥에만 쏟으며 절뚝절뚝 걷다 보니 어느새 그 골목이다.
아홉 살, 국민학교 2학년이 되니 반 친구들이 다 바뀌었다. 모두 다 낯이 설었다.
등굣길, 며칠 함께 지내는 동안 낯이 익은 같은 반 친구를 만났다. 낯은 익어도 조금 서먹한 사이.
'니 이런 거 할 줄 아나?' 그 친구가 물었다.
'어떤 거?'
'이거 하민서 학교가마 빨리 가는데...'
'그 기 뭔데...?'
대답 대신 씩 웃던 친구가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운동화가 좀 작은지 뒤쪽을 구겨 신고 있었는데, 공을 차듯 한쪽 발을 앞으로 휙 차니 발에서 벗어난 그 친구의 운동화가 마치 비행기처럼 저만큼 하늘로 날아올랐다가 땅으로 툭 떨어졌다. 친구는 한쪽발로 깡충깡충 뛰어가서 그 신발을 다시 신었다.
내 쪽으로 돌아보던 그 친구가 다시 씩 웃었고, 처음엔 어리둥절하게 쳐다보던 나도 그 친구를 마주 보며 씩 웃어주었다.
우린 금방 친한 친구가 되었다.
그 놀이는 그때까지 내가 해보지 못했던 아주 새롭고 신나는 놀이였다.
날개 달린 운동화가 빙글빙글 하늘로 날아올랐다가 떨어지는 모습은 힘차고 아름다운 곡선이었다.
그 친구는 그 놀이의 합리적인 규칙도 정해두고 있었다.
<사람이 있을 때 하면 안 된다.>
<너무 높이 차면 안 된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깔깔대며 하던 그 놀이는 모든 놀이가 그렇듯 차츰 경쟁이 되어갔다.
'누구 신발이 더 멀리 날아가나?'
내 운동화는 이미 그 놀이에 익숙한 친구의 운동화보다 꼭 두세 걸음쯤 뒤쳐져 떨어졌다. 학교 도착하기 전에 나도 한번 이겼으면 하는 경쟁심이 나를 초조하게 만들었다.
'이번에는 꼭 이겨야지...'
숨 한번 힘껏 들여 쉬고 냅다 발을 내지르는 순간 아차! 하는 느낌이 왔다. 물론 멋진 비행이긴 했지만 방향이 틀렸다. 좁은 골목길, 신발은 왼쪽으로 비상하더니 툭!.
길옆의 낯선 집 슬레이트 지붕 위에 떨어지고 말았다.
슬레이트 지붕이라서 운동화 떨어지는 소리가 요란하게 났다.
겁이 난 친구와 나는 얼른 골목 안쪽으로 숨어서 눈만 빼꼼 내밀었다.
누가 나오는 듯했지만, 겁이 나서 제대로 보지도 못했고, 불행하게도 친구와 나는 그 사태를 현명하게 대처할 슬기와 지혜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둘이 멀뚱히 서로 쳐다만 보다가 지각은 할 수 없고... 하는 수 없이 갑자기 신발을 잃어버린 불쌍한 한쪽 발의 양말을 벗어 가방에 구겨 넣고 맨발로 걸어 학교를 갔다.
친구들의 놀림도, 발 아픔도 견딜 만은 했다. 그러나 그 사고를 집에 가서 어머니께 말해야 된다는 부담이 그날 수업시간 내내 내 마음을 천근만근 무겁게 만들었다.
그 골목에 들어서자 회색 슬레이트 지붕 위에는 내 운동화가 아침 모습 그대로 날개를 접은 채 쉬고 있었다. 콧잔등이 시큰해지더니 눈물이 핑 돌았다.
'익이 오나~'
어머니는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따뜻한 목소리로 날 맞아주셨다.
그 목소리가 간신히 닫아둔 내 눈물꼭지를 열어버렸을까?
갑자기 굵은 눈물이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고개를 푹 숙이고 어깨에 맨 가방도 내려놓지 않은 채 손등으로 눈물을 훔치면서 꺽꺽 울었다.
늘 그래왔듯이 어머니는 내가 친 사고에 대해서 내 예상과는 달리 반응하셨다.
꺽꺽 울면서 두서없이 말하는 내 말을 다 들으신 어머니.
'아이고 내 새끼. 발이 얼매나 아팠겠노... 쯧쯧...'
신발을 잃어버린 잘못을 혼내지도 않고 내 발 걱정을 먼저 해주셨다.
하루 내내 내 마음을 무겁게 만들었던 짐은 그 순간 사라졌고, 마음은 평소처럼 다시 가벼워졌다.
큰형이 잠자리채를 가져가 날개 접은 내 신발을 내려오고, 누나들이 내 발에 잡힌 물집을 터뜨리고 소독을 해준다고 부산을 떨던 그날의 기억은 오래도록 잊혀지지 않는 추억이 되었다.
저녁 쉼터에 자리를 잡고 발가락과 발등이 보호되는 안전운동화를 벗다가 문득 그 옛날 하늘을 날던 운동화가 떠올랐다. 과거의 추억들은 이미 오래전 지나간 시간의 흔적들로 사라졌다가도 문득문득 지금의 어떤 일과 연이 닿으면 마치 어제 있었던 일처럼 생생하게 되살아 난다.
새해에는 또 얼마나 많은 추억들을 길러낼 수 있을까?
분명한 것은 내일 아침에는 그 옛날 아침 햇살을 받으며 힘차게 하늘을 날아오르던 그 날개 달린 운동화를 떠올리며 안전운동화를 신고 기운차게 텍사스로 돌아가는 길을 달릴 것이라는 것. ㅎ
첫댓글 저도 경험이 있는 듯한 얘기네요
하얀이름표가 있는 검정운동화와
노란 고무신을 주로 신었습니다
변두리라도 도시에 살다보니
그 시절에 운동화를 신었네요.
골목에 나가 놀 땐 고무신 신었습니다. ㅎ
ㅎ
이전 아이들, 우리들이지요 그땐 모두 참 순진했어요 , 요즈음 아이들 9살이면 운동화때문에 울진 않지요
그땐 운동화도 귀한 시절이었어요. ㅎ
상표는 기억이 안 나지만요. ㅎ
글을 읽다가
웃은 일이 몇 번이나 될까요.
개구장이 어린 시절은
마음자리님의 글을 통해서 자주 웃게 됩니다.
잘 못을 저질러 놓고는
엄마의 꾸지람을 생각하면
걱정이 태산이었지만,
엄마의 다독거림은 세상이 다 내 것이었지요.
그 표현을 아주 적절히 하시니 ...
아무 걱정도 없던, 그시절 그때를 생각만 해도
마음이 넉넉해집니다.^^
다독거림에는 세상이 평화롭겠지요.^^
공감합니다
제 어머닌 제가 혼나겠구나 싶은
큰 사고에는 오히려 저를 품고
다독여주시고, 이건 별일 아닌데 싶은 일엔 혼을 내시곤 하셨어요.
어릴 땐 이해가 안 됐는데, 이젠
어머니 그 마음이 다 이해되니
어머니 생각 날 때마다 울컥합니다.
이 글을 읽다 보니 나는 국민학교때 학교 신발장에 넣어두었던 신발을 잃어 먹어서
집에 까지 맨발로 걸어왔던 적이 있었던게 기억이 납니다
그 신발을 도둑질 해간 사람도 나쁜 사람이지만
그 당시 신발 분실은 가끔 있었습니다
신발을 잊어 먹고 담임 선생님에게 보고를 했으면
쓰레빠 라도 구해 주셨겠지만 그때는 그 생각을 못했습니다
다 지나간 추억입니당
충성 우하하하하하
"물건이 사라진 건 '잃어버린' 것"이란 걸 '잊어 버린신 것' 가타요 ㅎㅎ
@고든 맞습니다
고쳤습니다
저는 신주머니 세대라 ㅎ 신발을
늘 주머니에 넣어 걸상에 걸어두어서
도둑 맞은 적은 없네요. ㅎ
우리 세대는 비슷한 추억이 많을 겁니다.
저는 겨울에 새로 산 바지를 입고 나가서 불을
피우고 놀다가 불똥이 튀어 태워먹은 기억이
있습니다.
그 바지에 다른 천을 덧대 꿰매주시던 엄니는
안 계시지만요 ^^;;;
하이고... 애타셨겠네요.
담배를 안 태운지 4년쯤 되었는데..
피우던 시절, 담배 불똥이 셔츠에
날라붙어 구멍을 내서 속상해하던
기억들이 살아 납니다. ㅎ
참 글을 잘 쓰시네요.
저는 중학교 때 공부는 안하고 철봉에서 살았는데, 모자는 여러번, 우와기도 잃어버렸습니다. ㅠㅠ
저는 철봉이나 평행봉을 잘 못했는데
잘하는 친구들을 부러워했지요.
철봉에 몸을 접고 한바퀴 돌던 날,
지구가 같이 한바퀴 휙 돌던 경험은
오랜 시간이 지나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형이 있고 누나가 있고 얼메나 좋을꼬?
아우는??
형 둘 누나 둘, 동생은 없고. ㅎ
ㅎ나는 초등학교 시절에는 하얀 고무신을 신었어요. 고무신을 접어서 배처럼 시냇물 위에 띄우고 놀았던 추억이 되살아. 납니다
고무신 뒷축을 뒤집어 세워서
빼딱구두라고 하며 놀던 생각도
납니다.
막내라 참 좋으셨겠어요.
누나들이 치료해 주고, 형님이 큰 키로 운동화 찾아주고,
어머님은 막내라 귀여워만 하셨고..
저도 운동화에 대한 추억은 많아요.
자매는 셋. 그 중 가운데인 나는 절대로 언니 운동화는 물려신기 싫어
해서 엄마께 뗏장을 놓아 언니와 똑 같은 운동화를 기어코 사주시게 만들고, 아래 여동생은 나보다 의젓하게 아무말 없이 언니들 운동화 물려받고, 말표였나? 호랑이표 였나? 아무튼..
재미있는 글 감사히 읽었습니다.
저는 어릴 때를 돌아보면 늘 받은
기억밖에 없어요.
초6에 수학여행을 경주로 다녀왔는데
제가 가지고 놀 장난감 뱀 하나만
사왔다가 ㅎ 식구들이 다들 내 선물은? ㅎㅎ 무안하고 미안했던 기억이
납니다.
커쇼님이 여전히 씩씩하게 삶을
열어나가는 이유가 댓글에 있네요.
항상 응원합니다~
그러게요 하루종일 얼마나 맘 고생 많이 하셨어요ㅠㅠ
큰형 잠자리채로 신발을 꺼냈으니 천만다행 이예요.
화수분같이 샘솟는 맘자리님의 이야기 새해에도 기대만땅인거 아시는거죠.
더불어 새해에도 안전운행하시기를
소망합니다.^^
천일야화처럼 제 이야기도 끝이 없네요. ㅎ 올해도 변함없이 이어질 겁니다.
나무랑님 올려주실 글들도 기대하면서요.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