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CGV에서 방영해 주던 아포칼립토란 영화를 우연히 봤습니다.
정말 간만에 은은한 사색에 잠기게 만드는 매력적인 영화더군요.
이 영화에서 그려내는 풍경은 마야 문명을 계승한 16세기 무렵의 북중미
대륙입니다. 인구가 500만 명이 넘는 거대 제국인 아즈텍을 필두로 수많은
부족들이 각지의 원시림에 흩어져 살아가는 모습들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부싯돌 하늘>부족의 일원인 재규어 발은 가족들과 함께 수렵활동을 하며
평화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어느날 정체불명의 강한 적들이 습격해와
창졸간에 족장인 아버지를 잃고 포로가 되어 미지의 세계로 끌려가 버립니다.
알고 보니 그들은 마야 문명하의 부족 중 최고도로 진보한 아즈텍 제국의
전사들이었습니다. 그들에게는 한 가지 사악한 풍습이 있으니, 전쟁 포로들을
제단 위에 올리고 날카로운 흑요석 칼로 심장을 빼내고 목을 잘라서 제물로
바친다는 것이었습니다.
순식간에 두 명의 동료가 심장과 목을 잃은 채 버려지고, 드디어 주인공이 죽을
차례가 되었는데 갑자기 하늘이 깜깜해지는 현상이 발현합니다. 개기일식이
일어난 것인데, 제사를 주관하던 제사장은 하늘이 더 이상 제물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해석하고 포로 학살을 그만둡니다.
그때부터 이 영화의 백미라 할 수 있는 <포로사냥>놀이가 시작됩니다. 포로를
두 명씩 풀어주고 도망가게 한 뒤 이쪽에서는 활을 쏘거나 창을 던져 죽이는 것
입니다. 설령 포로가 안 죽고 수백 미터를 도망간다 해도 최전방에 무식한 몽둥이
를 든 최종 처리자를 두어 마무리를 하게 했습니다.
마찬가지로 두 명의 동료가 달아나다 살해되고 드디어 우리의 호프 재규어 발의
차례가 되었습니다. 그는 믿을 수 없는 속도로 지그재그로 교란하며 도망갔으며
화살을 맞긴 했지만 초인적인 정신력으로 최종 처리자마저 살해하고 무한도주를
시작했습니다. 뒤이어 아즈텍 7전사들의 무시무시한 추적이 펼쳐졌습니다.
광대한 북중미 일대의 밀림을 무대로 쫓고 쫓기는 드라마틱한 사투가 펼쳐지는
광경은 그야말로 전율 자체였습니다.
영화에서 표현하려는 주제가 무엇이던 간에, 많은 상념에 빠져들게 만드는 훈훈한
작품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같은 문명 간에도 이토록 현저한 문화수준의 차이가 발
생한 점이며 어제까지 웃고 떠들며 놀던 가족이나 동료들이 다음날 졸지에 처참한
시신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매우 잔인한 장면들이 많으므로 비위가 약하거나 심약한 노약자분들은 시청을 금하
셔야겠지만 나름대로 감수성이 풍부하고 담이 크신 분들이라면 꼭 한번 보시기 바
랍니다. 정말 후회없는 영화가 될 것입니다.
첫댓글 전 보고나서 느낀게.. 정말 잔인하다는것. 그리고 마지막 장면이 가장 인상깊었습니다. 아즈텍 사람들이 잘난척했는데... 사실 더 잘난 놈들이 다가오고 있었다는 것...
그렇죠...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는 격이랄까..... 하지만 그 덕분에 잔혹한 포로처형제도와 식인 풍습이 없어졌으니 한편으론 다행인 듯.
아포칼립토 저도 정말 감명깊게 봤습니다 ^^
마야판 도망자랄까.. ㅎㅎ
ㅎㅎㅎ 그냥 도망자가 아니라 완벽한 도망자인 것 같습니다. 지형지물을 자유자재로 이용하는...
아...도망자같은 류라면 재밌겠는데,전 잔혹한건 너무 싫어하는지라...ㅠㅠㅠㅠ 나중에 기회가 되면 참고 봐야겠어요~
하긴, 너무나 잔인한지라 희귀새님처럼 꾀꼬리같은 한 떨기 감수성으로 중무장한 분들이 시청하신다면 크나큰 심적 타격을 받을 것입니다. 그래도 안 보면 좀 아쉽겠네염... 잔인한 대목에서만 살짝씩 눈 가리고 보셔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겁내지 마세요! 믿는 자에게 복이 오나니~~~
'잔학'의 기준이 뭘까요...유럽의 식민지 정복기...미국의 원주민(인디언)사냥은 더하면 더했지 덜하다고는...
잔학의 기준은 집단마다, 문화마다, 국가마다 크게 다를 것입니다. 누군가가 저에게 무엇이 정당하고 무엇이 그른가를 판가름하라 한다면 쉬운 일이 아니겠죠. 하지만 사람이 원초적으로 순수하게 잔인함을 느끼는 순간은 인류 전체를 통틀어서도 어느정도 보편적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가령 사람을 살해하는데 있어서 총이나 칼로 한번 죽이고 마는 것과, 죽이는데 있어서 심장을 가르고 목을 따며 서서히 죽이는 것을 즐기는 것의 차이랄까요?
한 이익집단의 이기적이고도 전략적인 행위에 관한 그릇됨을 논한다고 한다면 유럽의 식민지 정복이나 미국의 원주민 사냥도 결코 순수하게 정당화되지는 못할 것입니다. 하지만 논점을 오로지 <잔학함>에만 초점을 맞춘다면, 무엇이 더한가는 본능적인 감각에 근거하여 답이 충분히 나오리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