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거기에 미군기지가 있었고, 지금은 죠셍징 국방부가 있고 대통령실이 있을까는 ?
죠셍징 스스로 자주적으로 계획된게 아니라 . 대일본제국 통치시대 일제시대 당시 일본에 의해 모든게 설계되었음.
남산에 조선신궁이 있었다 . 그 조선신궁이 굽어 살피는 내려다 보이는 드넓은 터가 . 바로 용산이었다. 이 용산에 . 신의 가호를 받는 . 대일본제국 일본군이 주둔을 한거야.
그리고 이 대일본제국군이 . 신속하게 중국으로 이동하기 위해 .용산역이 거기 있었던 거여 ... 용산역 주변에 공터에 일본 제과 회사들이 들어섰는데 . 이게 오리온 되고 해태 되고 . 크라운 된거여 . 이 제과회사들이 . 과자 존나게 만들어서 . 용산 일본군한테 납품을 한거여 .
해태 연양갱은 . 바로 이 일본 제과회사가 . 일본군 한테 납품하던 전투식량이었어 ... 조선에 연양갱 없었다 . 해방되고 일본군 전투식량이던 연양갱이 . 해태라는 회사로 재탄생 되서 판매되서 조선인들이 먹기 시작한거여
조선시대 용산은
돈이 없던 조선 직업 군인들이 많이 살았음
그런 관계로 용산에는 조선 군 관련 시설들이 많았음..선혜청 창고. 등등
(용산 원효 대교에서 서울역까지는 일직선 평지임.. 용산나루에서 세금으로 올라온 쌀 싣고 오기가 편함.그래서 남대문 시장이 발전했고
남대문 시장 주 상품이 쌀이었음.. 동대문시장은 구리 양평에서 농사지은 채소가 올라왔음.그래서 동대문 시장은 약초.채소시장이 발달했음)
임오군란후 고종의 요청을 받은 청군이 주둔하기 시작했음.,
이때 청군이 흥선대원군을 청군 주둔 막사로 좋은 술이 있으니 오시라고 초대해 납치해 심양으로 끌고감.
청군이 물러 난뒤 용산에는 조선주둔 일본 여단이 주둔했고 합방후 20사단 이 주둔했음
일제 패망후 미군이 주둔하기 시작함.
한줄: 용산은 조선시대부터 군사 시설과 조선시대 직업군인들이 많이 살았음...
노무현이 체결->평택공사-->이명박+박근혜(용산미군 이전 10년연장) ->문재인 싹다 평택기지로 다 이전.
용산미군이 평택으로 다 옮긴건 노무현과 문재인의 합작품이라고 보면 된다.
이명박, 박근혜는 최소한 동두천은 몰라도 용산기지는 서울에 있기를 바랬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