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초, 다섯 살이었던 나는 엄마 손을 꼭 잡고 기차역으로 갔다. 김제 이모네로 떠나는 둘만의 첫 여행이었다. 사진으로만 보던 기차를 타다니, 동네 시장이 외출의 전부였던 꼬맹이에게 그보다 신나는 일이 또 있었을까. 하지만 기차는 기대만큼 빠르지도 멋지지도 않았다. 비둘기호는 좁고 허름한데다 입석 승객들로 인해 발 디딜 틈 없이 혼잡하고 소란스러웠다. 그 사이에서 엄마는 표정이 어두웠다. 눈치를 살피던 나는 어느새 엄마 무릎을 베고 까무룩 잠들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엄마가 나를 황급히 깨우더니 당신이 입고 있던 폭이 넓고 긴 헤진 치마 속으로 밀어넣었다. 승차표 확인 때문이었다. 아버지를 대신해 생선 행상으로 육 남매를 키우느라 하루 세끼 챙기기도 벅찼던 엄마에게는 가장 저렴한 비둘기호의 기차표조차 살 돈이 없었다. 그러니까 우리는 무임승차를 한 것이었다. 엄마의 눈물겨운 노력에도 눈치 없이 발버둥치는 나 때문에 승무원에게 들키고 말았다. 우리는 다음 역에서 내려야 했다. 엄마는 눈물을 흘리며 사정을 이야기했다. 엄마의 순하고 슬픈 얼굴 때문이었을까, 비루한 행색 탓이었을까. 역장은 우리에게 기차표를 사 주고 우유도 줬다. 그 덕에 우리는 이모네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다. 그런데 엄마가 나만 두고 떠날 준비를 했다. 행상 나가면 아이 맡길 데도 없거니와 입 하나라도 덜고 싶었던 엄마가 부유한 이모에게 나를 맡기려고 데려온 것이었다. 나는 엄마의 치맛자락을 꽉 붙들고 울며불며 애원했다. "엄마, 나 밥 안 먹어도 돼. 엄마 따라갈래!" 그러나 엄마는 뒤도 안 돌아보고 기차역으로 떠났다. 그 후로 나는 매일 기차역 쪽을 바라보며 엄마한테 가겠다고 떼를 썼다. 깊은 상처로 남은 기억 때문인지 나에게 기차 여행은 낭만 대신 가난한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그 시절이 사무치게 그리워지더니 기차를 떠올리면 가슴이 뭉클해졌다. 기차는 내가 처음으로 접한 다른 세상이었기에 그런 것이리라. 2년 전, 남편의 퇴직과 동시에 한적한 지방 소도시로 터전을 옮겼다. 귀촌할 곳을 물색하면서 기차역이 있는지를 가장 먼저 고려했다. 서울에 갈 때면 으레 기차를 타는데 그때마다 여행하듯 설레곤 한다. 얼마 전, 엄마와 함께 기차에 올랐다. 아흔이 넘은 엄마는 커피 한 잔을 들고 창밖을 바라봤다. 상념에 젖은 듯한 엄마에게 그때가 생각나는지 묻자 대답 대신 눈물을 보였다. "그렇게 고생만 시켰는데… 이렇게 잘 자라 줘서 고맙다." 엄마는 그때 당신보다 훨씬 나이를 먹은 나의 손을 꼭 잡았다. 누구와 함께하든, 목적지가 어디든 기차는 수많은 이야기를 싣고 흐른다. 하루하루 숨이 찰 만큼 빠르게 변하는 시대에 그 시절 비둘기호처럼, 그 열차가 싣고 있던 사연들처럼, 예스럽고 느린 것들이 새삼 그립다.
홍혜자 | 전북 완주군 작은 보답
엄마는 나 때문에 고생을 많이 했다. 뱃속에 있을 때는 입덧으로 힘들게 하고, 태어나서는 밤낮을 바꿔 괴롭혔단다. 15개월에도 7킬로그램밖에 나가지 않아 애간장을 녹였고, 엄마가 아니면 유아차를 만지지도 못하게 했다고 한다. 기억은 나지 않아도 나를 키우는 과정이 꽤나 고됐을 거다. 그럼에도 엄마는 살 붙으라고 열심히 모유를 먹이고 우유도 따로 챙겨 먹였다. 심지어 뽀얘지라며 분유 탄 물에 목욕까지 시켰다. 나는 엄마의 노고와 사랑을 양분으로 무럭무럭 자랐다. 그래 놓고 배은망덕하게 나 혼자 알아서 컸다고 착각했다. 엄마가 허리 때문에 꼼짝도 못하니 머리 좀 감겨 달라고 했을 땐 버럭 화를 냈다. 그러고는 뒤돌아 생각했다. '엄마는 내가 어릴 때 잠도 못 자고 먹지도 못하면서 날 보살폈을 텐데… 좀 너무했나?' 슬며시 온수를 켜고 괜히 큰소리로 빨리 오라며 닦달했다. 엄마는 욕실 문턱에 수건을 깔고 목욕탕 의자를 베고 누웠다. 머리카락을 천천히 물로 적시고 샴푸 거품을 내서 문지르고 린스까지 해 줬다. 이후 종종 엄마의 머리를 감겨 준다. 그냥 그러고 싶어서. 어설픈 솜씨 때문에 엄마의 눈과 귀에 물이 들어가지만 엄마도 싫지 않은 눈치다. "머리 감겨 줄까?" 물어보면 됐다고 하다가도 못 이기는 척 자리 잡는 걸 보면. 나도 엄마에게 머리를 빗어 달라거나 땋아 달라고 할 때가 있다. 엄마는 귀찮다는 듯 굴지만 정성스레 만져 준다. 그 손길이 좋아서, 나는 자꾸만 빗을 들고 엄마에게 간다. 김정아 | 인천시 계양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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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좋은글 감사 합니다
반갑습니다
동트는아침 님 !
고운 멘트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
오늘도
기쁨과 즐거움이 함께하는
좋은 하루보내세요
~^^
옛날 이야기 속에서나 찾아 볼 수 있는
비들기호 기차
청년이었던 나도 무임 승차를 가끔
했었지요.
추억은 아름답지만
그 시절로 돌아 가라면 아무도 가지
않겠지요.
물질적으로는 지옥에서 천국으로
바뀌었지만 인정은 그렇지도 못한 것
같은 지금 입니다.
반갑습니다
소산 님 !
공감가는 고견주셔서
감사합니다 ~
초여름의 싱그러움에
작은 응원을 실어
보냅니다 ~^^
안녕 하세요...망실봉님
오늘도 좋은 글 담아 주셔서
고맙습니다..
더 많이 행복하시고..건강 하세요
오늘도 수고 많으셨어요
반갑습니다
핑크하트 님 !
다녀가신 고운 걸음
감사합니다 ~
초여름의 싱그러움에
작은 응원을 실어
보냅니다 ~
오늘도 모든 일이
잘 될것입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