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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반기 뇌과학 강좌에 이어 하반기 강좌 까지, 많은 분들의 관심과 호응속에 잘 진행되고 있습니다.
3세 신화, 우리가 속아 온 ‘뇌’의 신화
신성욱 (과학 저널리스트)
지난 10월 4일 서울 삼각산재미난학교에서 열린 부모특강 내용을 정리해 싣습니다. ‘뇌 과학과 교육’에 대해 세 번 더 연재할 예정입니다. _편집실
뇌 발달, 지능발달?
저는 과학 저널리스트입니다. 과학자가 아니죠. 과학자가 무슨 공부를 하는지 공부하는 게 제 일이에요. 그 중에서도 어린이와 청소년의 뇌가 주된 관심사예요. 여긴 주로 초등학생 부모들이 많으시네요. 걔네들이 사람 구실하려면 얼마나 더 있어야 할까요. 제가 말하는 사람 구실은 엄마아빠한테 다달이 꼬박꼬박 용돈 주는 걸 말해요.(웃음) 한 이삼십 년은 있어야겠죠.
다음 세대인 이 아이들은 어떤 세상을 살게 될까요. 제가 말하는 건 막연한 ‘어떤 세상’이 아니고, 아주 구체적인 세상이에요. 우리 세대가 기를 쓰고 좋은 대학 들어가려고 했던 건 명문대 졸업장을 따기 위해서였잖아요. 그건 인생에 아주 유용한 티켓이 됐어요. 취직하거나 시집,장가갈 때도 유리했죠. 그런데 그 효력이 갈수록 약화되고 있어요. 작년 통계를 보면 이른바 스카이, 스카이대 졸업생들 중 45퍼센트가 취업을 못 하고 있어요. 예전에 명문대 졸업생을 찾은 이유는 그들이 고급 정보를 많이 가지고 있어서였는데, 지금 같은 지식정보화시대에는 그들이 아니어도 얼마든지 좋은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기회가 많아졌어요. 그러니 굳이 그 친구들을 쓸 필요가 없는 거예요. 게다가 인구까지 급감하고 있으니 대학에 들어가는 패턴, 직업을 선택하는 방식이 앞으로 굉장히 많이 달라질 거예요. 그 변화의 속도마저 무척 빠르고 폭도 넓죠. 그래서 다음 세대를 어떻게 잘 길러야 할까, 정말 중요한 문제예요. 오늘 그런 애기를 해드리려고 해요.
옆 사람과 인사 한 번씩 나누세요. 손도 한 번 잡아보세요. 제가 지금 뭘 했냐면, 여러분의 뇌를 살짝 열었(?)어요. 농담도 아니고 비유도 아니에요. 뇌는 기쁘고 즐겁고 신나는 것을 좋아하는데 기쁘고 즐거우면 머리가 좋아져요. 근데 언제 가장 기쁘고 즐겁고 신나느냐, 나 아닌 다른 존재와 마음을 주고받을 때예요. 뇌의 별명은 ‘소셜 브레인’이에요. 소셜은 ‘사회적’이라는 뜻 정도로 번역할 수 있죠. ‘사회적 뇌’가 무슨 말일까요. 인간을 사회적 동물이라고 할 때 보통 제도를 먼저 떠올리는데, 사실은 ‘관계’를 말해요. 인간의 뇌는 관계의 산물이에요. 그래서 나 아닌 다른 존재와 관계 맺는 것을 좋아해요. 그리고 그때 머리가 좋아져요. 반대로 혼자 있으면 뇌가 고장 나요. 그래서 우울증이 오고, 병에 걸리죠.
어디 가서 ‘뇌’ 이야기만 하면 부모님들 눈이 반짝반짝해지더라고요. 아이의 뇌에 대해 정보가 많아지면 ‘지능 발달’에도 도움이 되겠다고 생각하시는 거죠. 근데 사실 그렇지 않아요. 아이들의 뇌를 어떤 ‘지능’으로만 이해하는 것은 과학적으로도 맞지 않을 뿐 아니라, 인간을 천박하게 이해하려는 나쁜 태도가 깔려 있어요. 물론 지능도 중요하죠. 그런데 그 지능이나 생각이 인간의 지능, 인간다운 생각으로 구현되려면 여러 가지 부수적인 게 많이 필요해요. 뇌는 사실 그 일을 훨씬 더 많이 해요.
인지교육의 위험성
여기 운전할 줄 아시는 분들, 자동차에 대해 다 알고 계시나요? 엔진의 구조, 공기의 저항, 공부하셨나요? 기계, 열역학, 모듈 그런 거 다 몰라도 우리는 운전하고 있죠. 뇌도 모듈마다 자기 일들을 알아서 하고 있어요. 우리가 지금 교육이라고 부르는 것은 철저히 인지 능력, 지적 능력만 뽑아내서 극대화시키는 거예요. 학교에서 하는 건 백퍼센트 인지교육이에요. 수학 문제 풀고, 언어 처리하고. 뇌가 하는 여러 가지 일 중에서 그것만 해요. 쉽게 말하면 공장에서 자동차를 만드는데 운전하는 게 중요하다고 하면서 운전대만 신경 써서 만드는 거예요. 엔진,서스펜션, 다른 부품은 엉망이어도. 지금 우리가 이런 우스꽝스러운 일을 하고 있어요. 우리가 뇌에 대해서 오해하고 있는 것을 말씀 드리려고 해요.
간단하게 퀴즈를 내볼게요. 이 영상 보시면 하얀 옷 입은 학생 세 명, 검은 옷 입은 학생 세 명이 나오죠. 하얀 옷 입은 친구들이 서로 몇 번 패스하는지, 세어 보세요. 자, 몇 번 했나요? 정답은 열여섯 번이에요. 하지만 맞췄다고 좋아하긴 일러요. 이게 진짜 문제가 아니고, 영상 속에서 사실은 아이들 사이로 고릴라가 지나갔어요. 고릴라 찾으신 분 계신가요? 반도 못 찾으셨네요. 다들 하얀 옷 입은 아이들을 부릅뜨고 보고 계셨죠? 어째서 이런 일이 생겼을까요. 이 실험을 ‘안 보이는 고릴라’라고 부릅니다. 뇌가 작동하는 방식을 확인해주는 실험이죠. 자신은 모든 것을 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뇌는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골라서 봅니다. 뇌는 굉장히 허점이 많아요.
자연주의 철학이나 자연 과학, 서양에서 18~19세기에 우리 인간이 만물의 영장, 다른 동물들과 구별되는 아주 특별한 존재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인간의 뇌에 대한 온갖 신화들이 나왔던 거예요. 제가 말씀드리는 뇌에 대한 해석들은 1990년대 이후에 제기된 새로운 뇌 과학이에요. 현대 뇌 과학의 역사는 150년 정도 되는데, 90년대부터 살아 있는 사람의 뇌를 실시간으로 볼 수 있는 장비들이 나오기 시작했어요. 그 전에는 살아 있는 뇌를 실시간으로 들여다 볼 재간이 없었죠. 그래서 어떻게 연구했냐면, 죽은 사람의 뇌를 꺼내서 관찰하거나 뇌를 다친 사람의 행동을 연구했어요. 그런데 90년대 이후에 실시간으로 살아있는 사람의 뇌를 직접 관찰할 수 있게 되면서 우리가 잘못 안 게 많구나, 만물의 영장이라던 인간이 이렇게 허점이 많구나 하는 걸 알게 되었어요.
분명히 두 눈 부릅뜨고 있지만 뇌는 정보를 다 처리하지 못해요. 제가 지금 퀴즈를 내면서 “하얀 옷 입은 학생을 주시하도록” 유도를 했죠.매 순간 우리의 뇌는 바보 같아서 정보를 다 처리하지 못해요. 지금 내가 알고 있는 지식과 정보들은, 내가 보고 싶은 것만 골라서 쟁여 놓은 결과예요. 그래서 그걸 너무 깊이 믿다가는 바보 꼴을 면할 수가 없게 되는 거죠. 아이를 기르는 방식도 이게 심화되는 것 같아요. 어른들이 보고 싶은 것만 봅니다. 아이들을 볼 때. 있는 그대로 보기보다는 어른이 보고 싶은 것만 골라서, 또 그것을 극대화 시켜 놓고 이걸 교육이라고 부르고 있어요. 그게 바로 인지교육이에요. 굉장히 위험하죠.
(ㅇㅂㅌ, ㅅㅁㄷ, ㅌㄱㄱㅎㄴㄹㅁ, ㅁㅅ, ㅈㅅㅂㅇ ㅂㄹㄴㄴ)
이번엔 초성퀴즈를 내볼게요. 맞춰보세요. 영화나 드라마 제목이에요. 제가 이 힌트를 드리는 순간 뇌에서는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과 정보를 영화나 드라마에 관련된 것으로 재배열 합니다. 최근에 자신에게 익숙한 정보라는 맥락에 따라 퉁치는 방식으로 해결하려고 하죠. 여러분 대부분 ‘아바타’라고 대답하신 건 그게 최근 자신에게 가장 익숙한 정보이기 때문이에요. ‘오발탄’이라고 하신 분, 굉장히 독특한 취향이시네요. 1960년대 영화거든요.(웃음)
우리는 흔히 자기가 열심히 자료조사도 하고 공부하고 생각하고 판단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기의 생각과 행동에 의미를 부여하기 좋아해요. 근데 대부분의 생각과 판단, 행동은 어떤 맥락에 의해 작동해요. 맥락은 내가 만드는 게 아니라 누가 만들어줬거나 휩쓸려가요. 일일이 꼼꼼히 따지려면 에너지를 많이 써야 하니까요.
뇌의 신화, 교육이 상품이 되었다.
작년에 <워싱턴포스트>에서 한국 교육상황을 분석한 기사가 실린 적이 있는데 같이 실린 사진의 제목이 ‘4백만 달러의 교사’였어요. 우리 돈으로 60억 원이 넘죠. 인류 역사상 최초로 일 년에 60억 원을 버는 교사가 바로 한국에 있어요. 한국 교육이 이미 완벽하게 시장의 영역으로 넘어갔다는 말이죠. 배 속에 아이가 생기면서부터 부모들은 뭘 사다 안겨줘야 똑똑한 아이, 건강한 아이가 될까를 고민하죠. 교육은 다음 세대를 길러내는 일이에요. 인류 역사상 단 한 번도 교육은 돈벌이의 수단이 된 적이 없어요. 양육, 교육이라고 하는 것은 공동체의 소중한 전통이고 문화였기 때문에 지극 정성으로 간직하려고 했어요. 이걸 돈벌이 수단으로 이용한다는 건 상상도 못했는데, 불과 한 세대 만에 상황이 바뀌었어요. 본격화된 것은 90년대죠. 물론 그전에도 학원은 있었지만 이렇게 압도하는 상황은 아니었어요.
제가 『조급한 부모가 아이를 망친다』는 책을 쓰기 위해, 신문 5대 일간지(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한겨레신문, 경향신문)와 지상파3사(KBS, MBC, SBS)를 분석했어요. 20년 치 기사 중에서 ‘뇌’ 자가 들어가는 내용을 뽑아놓고 뇌 과학에서 아이들의 뇌 발달에 대해 어떻게 말하고 있는지 분석했죠. 신문에 아이들의 뇌에 대해서 가장 많이 발언한 사람은 누구여야 할까요. 과학자나 교육자, 의사… 아무튼 뇌를 공부한 사람이어야겠죠. 근데 그게 아니었어요. 가장 많이 말한 사람이 사설학원장이에요. 각 신문마다 교육 섹션이라는 게 있어요. 사설학원장들이 쓴 기사 형태의 광고가 많이 등장합니다. 과학적 근거가 희박한 아이들의 뇌 얘기가 많이 등장합니다. 아이의 뇌에 관한 믿을 수 없는 정보들이 상품화되어 유통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것들을 뇌 과학자들은 ‘신경계 신화’, ‘뇌의 신화’neuromyth라고 말해요. 하도 엉터리 정보를 많이 생산하고 유통하니까 과학자들이 이런 말을 만들었어요. 그들이 ‘신화’라는 말을 쓰는 건 부정적 의미예요. “이거 뻥이에요”라는 뜻이죠. 모차르트 효과라고 들어보셨죠? 임신했을 때 태아한테 모차르트 음악 들려주면 IQ가 좋아진다고 해서 우리나라에서도 방송국에서 다큐 만들고, 태교용 음반 만들어 팔았잖아요. 그런데 독일 정부에서 조사한 결과, 이 태교가 전혀 과학적 근거 없다는 결과가 나왔어요. 모차르트 태교 같은 정보들이 미디어에 등장할 수 있는 이유는 ‘과학’이라는 겉포장을 하기 때문이요.
영어는 몇 살부터 가르치는 게 제일 좋을까요? 보통 어릴 때라고 하죠. 이런 연구 결과가 있어요. 미국에서 열두 살 이전에 이민 온 아이와 열두 살 넘어서 이민 온 아이를 비교 연구했더니 열두 살 이전에 온 아이는 두 나라의 언어를 자유자재로 쓰더래요. 억양이나 발음도 정확했죠. 근데 열두 살 이후에 온 아이는 여전히 한국 발음과 억양이 남아 있다는 거예요. ‘대뇌피질의 다른 영역을 사용하기 때문’이죠. 이게 좀 어려운 말일 수도 있는데 신경계 신화와 관련된 핵심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어요.
성인은 영어를 할 때 머릿속에 한국말로 먼저 떠올린 다음 영작을 해서 말을 꺼내잖아요. 근데 어릴 때부터 영어를 하면 그런 과정을 거치지 않고 자동으로 언어가 나온다는 거예요. 한국어하고 영어가 뇌의 같은 영역을 쓰니까 따로 번역할 필요가 없는 거죠. 근데 열두 살 때까지 한국어를 쓴 아이는 이미 만들어진 모국어 영역에, 뒤늦게 영어 영역이 생겼다는 거예요.
한국의 조기교육 시장에서는 이 연구를 ‘영어 뇌 만들기’란 명목으로 각색했어요. 어렸을 때부터 영어를 해야 영어 뇌가 만들어진다는 주장인데요. 이 연구 결과가 <네이처>라는 잡지에 실렸어요. 과학계에서는 권위 있는 잡지죠. 그러자 조기교육업체들이 잽싸게 이 결과를 가져다가 자기네들 대문에 다 걸어놨죠. 그런데 과학에서 논문을 썼다는 것은 하나의 ‘데이터’에 불과해요. 뉴스에 보면 가끔 “000연구팀에 의하면, 당근이 암세포를 죽인다고 밝혀져!” 이런 식의 기사가 나오잖아요. 이 ‘밝혀져’란 말을 조심해야 해요. 그런 데이터가 생겼다는 것뿐이에요. 이게 실제로 적용되려면 비슷한 결과가 오랫동안 많이 쌓여야 하고, 많이 쌓여서 가설로 자리 잡혀야 해요. 그리고 그 가설이 오랫동안 지지를 받으면 이론으로 성장해요. 또 이론을 실생활에 적용하려면 이게 정말 가능한지 수 없이 많은 검증하는 과정이 필요해요. 신약 하나 개발하는 데만 해도 수십 년 걸린다고 하잖아요. 그러니까 ‘밝혀져’란 단어가 얼마나 위험해요. 수십 년의 과정 중 첫발에 불과한 거예요. 그런데 데이터만 보고 마구잡이로 상품으로 만들어 유통시키는 거죠. 위험천만한 일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네이처에 실렸던 논문도 많은 반론에 부딪혔고 실험 방법의 오류, 데이터의 부정확성 등이 밝혀지면서 신뢰를 크게 잃었습니다. 즉, 대뇌의 다른 영역, 같은 영역을 사용한다는 것은 언어를 쓸 때 일어나는 일반적이 뇌의 작용을 말하는 것뿐이지, 외국어 실력에 차이와는 상관이 없다는 내용의 연구 결과들이 계속 나오고 있어요. 그래서 과학계에는 그 주장이 흐지부지 사라졌어요. 하지만 1997년 발표된 논문 한편의 데이터는 인터넷 등의 매쓰 미디어에서 여전히 중요한 키워드로 살아 있습니다.
그래도 아이를 영어 잘하는 아이로 키우고 싶으시다면, 비법이 있어요. 초 3~4학년까지 동네 말을 잘 하면 돼요. 한국말도 아니고 서울말도 아니고 자기가 살고 있는 동네에서 쓰는 말이요. 인간은 언어 유전자를 본능으로 갖고 태어나요. 실제로 언어를 잘 하려면 유전자라는 설계도가 적절한 재료를 만나야 해요. 아이들은 자기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말이 그 ‘재료’예요. 이건 언어의 본질과도 닿아 있는데, 언어라는 것은 단어나 문장이기 이전에 소통의 도구죠. 그래서 아이들이 단어나 문장 이전에 익혀야 할 것은 소통이고, 그래서 주변 사람들의 언어를 잘 써야 해요. 그걸 ‘기축언어’라고 불러요. 우리에게 그건 한국어죠. 그중에서도 자기 사는 동네의 언어가 기축언어예요. 기축언어가 잘 닦여 있어야 두 번째, 세 번째 언어도 가능한 거예요. 이 맥락 없이 “허술한 뇌 때문에 영어는 어릴 때 가르쳐야 한대!” 하고 기축언어가 만들어지기 전에 아이를 영어 유치원에 보내는 건 절대 해서는 안 될 짓이에요. 아이들은 모성어, 즉 엄마 아빠가 쓰는 말,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쓰는 말을 쓰지 못하면 공포심을 느껴요. 왜요? 소통할 수 없으니까. 그래서 영어유치원에 다니는 아이들의 첫 번째로 느끼는 심리 변화가‘공포’예요. 그런데 참으면서 그 언어에 적응하죠. 왜냐하면 엄마가 좋아하니까. 사실 그건 재밌어서 익힌 게 아니라 적응한 거예요.
아이들이 태어날 때 인간의 뇌는 굉장히 수준이 낮은 상태로 출발해요. 설계도는 인간의 유전자지만, 공사 중이기 때문에 예를 들어 8개월 된 아기의 종합적인 뇌의 능력은 지금 개보다도 떨어지는 상태예요.(웃음) 지금 단계가 그렇다는 거예요. 물론 인간은 불과 두 살에 그 단계를 가뿐히 뛰어넘어요. 자기 몸과 뇌에서 공사를 계속 해나간다는 뜻이에요.
기고 일어서기 시작하는 단계의 아기들을 보면, 인간이 되기 위한 과정이 굉장히 더딘 것 같지만 사실 오랜 기간 급속하게 뇌와 인간의 집을 짓는 공사를 계속하고 있어요. 인간의 유전자라고 하는 설계도를 바탕으로 하고 있죠. 아이들이 억지로 영어 유치원에 적응하면 기축언어가 제대로 되지 않았기 때문에 1차 공사가 마무리되는 시점부터 문제가 생기기 시작해요. 나이로 치면 18세 정도부터 소통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해요. 영어는 잘 하는데 소통이 잘 안 되는 거예요. 그 아이가 커서 무역을 한다고 쳐봅시다. 무역이란 일이 영어 잘한다고 됩니까.수완도 있어야 하고, 그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들여다 볼 줄도 알아야 하고, 아부도 해야 하고 온갖 사회적 스킬이 필요해요.
아이들은 경험으로 뇌를 키운다
또 하나 대표적으로 잘못 알려진 것이 3세 신화입니다. ‘3살 무렵에 아이의 뇌가 거의 다 완성된다’는 얘기 들어보셨죠? 시장이 교육을 주도하고, 교육이 완전히 산업화된 맥락에서 이걸 받아들이는 순간 여러분들은 자본의 포로가 돼요. 가끔 육아 서적이나 티브이 나와서 부모 교육 강연하시는 분들 중에 꼭 엄마들을 책망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한국 엄마들은 극성맞고, 제 자식밖에 모르고, 무식해서 오히려 애를 괴롭힌다는 거예요. 저는 그 말에 동의할 수 없어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부모의 바람은 한결 같아요. 자식을 똑똑하고 건강하게 키우고 싶은 거예요. 그건 위대하고 숭고한 거예요. 근데 그걸 가지고 돈벌이를 하잖아요. 이 3세 신화는 “시간이 없다. 모든 중요한 뇌와 관련된 것들은3세 이전에 결정 된다”는 거예요.
뇌가 발달한다는 것은 신경세포가 서로 연결된다는 거예요. 이 연결되는 부위를 시냅스라고 불러요. 예를 들자면 텔레비전을 샀어요. 이걸 연결하기 전까지는 그냥 고철 덩어리죠? 텔레비전이 작동하려면 전기선도 꼽아야 하고, 셋톱박스도 꽂아야 하고, 스피커도 연결해야 하죠.시냅스는 텔레비전을 연결하는 선들이라고 보시면 돼요. 뇌도 마찬가지예요.
생후 8개월에서 1년까지 최고치에 달했던 시냅스의 밀도가 높은데, 나이가 많아질수록 점점 떨어져요. 그럼, 인간은 성장하면서 점점 머리가 나빠질까요? 아니요. 뇌는 어릴 때 가설 공사를 해요. 일단 꼽아놓고 세월이 가면서 필요한 것만 남기면서 기능을 향상시키는 거예요. 그걸 뇌의 전략, ‘가지치기 전략’이라고 해요. 식성 같은 게 그런 거예요. 애들이 처음엔 이것저것 다 먹다가 좋아하는 음식이 생겨요. 식성을 가지치기한 거예요. 시냅스의 연결은 줄어들지만, 식성은 확고해지죠. 이렇게 만들어진 게 ‘자아’예요.
그럼 무엇으로 가지치기를 하느냐, ‘경험’이에요. 저는 왜 냉면을 좋아할까요. 왜 북한산만 보면 마음이 설렐까요. 어렸을 때 아버지가 냉면을 먹이고, 북한산을 데려갔던 기억이 있어서 그래요. 아이들에게 제일 중요한 것은 몸으로 경험하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극단적으로 열두 살까지 인지교육 전혀 안 시켜도 된다고 주장해요. 아이들이 열두 살까지 뭐가 중요한지 따졌을 때 학습지 풀고, 외국어 배우는 건 우선순위에서 한참 밀려요.
우리가 뇌의 전략을 안다면 경험, 간접 경험 아니고 몸으로 경험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는 걸 알 수 있어요. 지금 우리가 교육이라고 부르는 것은 전부 앉아서 문제만 풀어요. 아이 키우는 집 가면, 교수님 서재 수준이에요. 제발 그러지 마세요. 거실에는 텔레비전이 있어야 합니다. 가족이 같이 앉아서 개그프로 보면서 웃어야 합니다. 책은 골방에서 보면 돼요. 근데 전부 아이들 교육을 위해서 텔레비전 없애라고 하죠. 지능계발에 좋다고 하니까 전부 손으로 꼼지락대는 거 하다가, 지능만 가지고 안 된다니까 이번엔 EQ다 뭐다 극성이죠. 아이들이 가만히 앉아서 교재 교구를 만지작거리는 방식의 지능발달 훈련은 언제 해야 되는지 아십니까. 거동이 불편해질 때 하는 거예요.(웃음)
지금도 밖에 나가 보세요. 애들은 잠시도 가만히 있지를 못해요. 몸으로 경험하고 싶은 거예요. 뇌를 가다듬기 위해서 끊임없이 시도하는 거예요. 나에게 냉면이 맞는지 스파게티가 맞는지, 식물이 좋은지 동물이 좋은지 찾는 거예요. 그러니까 오만 데 손을 다 내밀어 세상을 만나려고 하죠. 아이들은 오지랖 넓은 게 지극히 정상이에요. 그래야 나중에 그 경험들이 솎아지고 뚜렷한 자아가 생기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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