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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역사문화연구모임(역사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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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게시글
동아시아 역사 토론장 오호(五胡)의 쟁패 12 - 성한의 흥망
야스페르츠 추천 0 조회 478 09.03.22 00:04 댓글 2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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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09.03.23 03:31

    첫댓글 사천-운남 지역에 근거한 국가들은 무엇보다 국력을 '비축'하는 것이 우선이고 그런 다음 '상황'에 따라 타 국가를 노려야 하는데 이 수와 이 세 부자는 그 점에서 실패한 듯합니다. 석 호의 방식은 '국력 낭비'의 지름길이건만 지나치게 외식적인 부분에만 신경을 쓴 모양이군요. 여하간 오늘도 잘 읽고 갑니다.

  • 09.03.25 09:23

    사실 국공내전에서 국민당군에게 두 가지 방책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사천-운남-청해등의 서부지역으로 후퇴한다. 다른 하나는 본토를 포기하고 대만으로 후퇴한다. 이 중, 후자를 선택했습니다. 사실, 이 선택이 단기적으로는 꼭 실패한 선택이라고는 볼 수 없었습니다. 일단 대만은 1949년 기준, 중화민국 전체 공업생산량의 1/3, 전기는 1/4을 쓰는 선진지역이었으니까 말입니다. 김준수님의 말씀대로 국력비축할 시간적 여건이 없었던게 당시 국민당의 한계였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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