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천은 언제부터 시작하는가?]
1. 선천과 후천의 어원
우리가 쓰는 일상생활의 용어 가운데, 본래부터 몸에 지니고 있는 성질이나 체질을 '선천'이라 하고 세상에 나온 뒤에 환경이나 노력에 의해 변하는 성질이나 체질을 '후천'이라고 한다. 따라서 시간적 선후차로 구별하자면 선천은 생전에 이미 얻어진 것이고 후천은 생후에 얻어진 것을 말한다.
오전은 볕(陽)이 길어지는 과정이고 오후는 그늘(陰)이 길어지는 때이므로 선천은 활동적이며 강건한 양이 주장하는 때이고 후천은 안정적이며 유순한 음이 떳떳함을 얻는 때이다. 양물을 대표하는 것은 하늘인 건도(乾道)이고 음물을 대표하는 것은 땅인 곤도(坤道)인 까닭에 선천을 건도, 후천을 곤도로써 표현한다.
문헌적으로는 주역 건괘문언전(乾卦文言傳) 구오(九五)에 공자께서 "대저 대인은 천지 일월 사시 귀신과 더불어 덕·밝음 차례 길흉을 합한다. 하늘보다 앞서 해도 하늘이 어긋나지 않게 하며(先天而天弗違), 하늘에 뒤따라서는 하늘의 때를 받드니(後天而奉天時), 하늘도 어기지 않는데 하물며 사람이나 귀신이 대인의 행하는 바를 어길 수 있겠는가!"라고 대인을 설명하신 구절에서, 연원(淵源)한다.
2. 후천도래의 구체적 시기.
논어에 "加我數年하야 五十以學易이면 可以无大過矣리라" 하신 공자의 말씀은 선천시대를 마감하는 때가 대과시대이고 천도가 선천에서 후천으로 바뀌는 중천시기의 과도기를 큰 허물없이 잘 넘겨야 함을 이른다.
129,600세(歲)를 천도의 대주기로 한 소강절 선생의 황극경세도(皇極經世圖)에도 선천 마지막 시기가 대과에 해당하고 선천을 상징하는 주역상경도 실제 마치는 괘가 대과이다. 대과란 크게 지나침을 말하는데 선천에서 후천으로 넘어가는 중천과도기를 뜻하기도 하며, 역수상으로는 기영(氣盈)한 도수인 대과도수를 가리키는 것이다.
앞에서 언급한 공자의 말씀은 대과의 큰 허물이 없도록 선천시기의 마지막 때를 넘겨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역의 근본원리인 50대연(大衍)의 이치를 궁구하여 기영한 대과의 역수(曆數)를 중천교역시기에 모두 해결해야함을 지적한 것이기도 하다. 야산선생은 이 대과시기를 정확히 밝히는 한편 과도한 대과역수를 50대연법으로 해결한 경원력(庚元歷)을 창제하였다. 대과도수와 황극경세도에 대한 내용은 지면상 다 싣기 어렵고 그 설명이 번거로우므로 생략하고 대신 윷놀이와 바둑판에 비전(秘傳)되어 내려온 후천비결을 소개한다.
1) 윷놀이에 얽힌 비결
우리 민족 고유의 민속인 윷놀이의 말밭은 가운데 열십을 그어놓고 그리는데, 말이 지나가는 자리가 29이다. 그런데 맨중앙의 수는 황극(皇極: 큰 중심)의 수로 세지 않으니 28이 되어, 하늘의 북극성을 중심으로 28宿 별자리를 형상한 일종의 천문도(天文圖)인 셈이다. 본래 윷놀이는 연말(歲暮)에서 연초(元旦)로 넘어갈 때만 노는데, 말밭에서 네 마리 말을 먼저 빼는 넉동빼기로 승부를 가린다.
여기에는 선천을 마치고 후천으로 넘어가는 비결이 담겨있는데, 야산선생은 "말밭은 선천에서 후천으로 넘어가는 오회(午會) 중천인 때를 뜻하는 것이고 한 접은 100이고 한 동은 1,000이므로 넉동은 곧 4,000이다. 여기에 아까 윷판의 28점을 10배한 280(=28×10)을 보탠 단기 4280년 丁亥년에 선천이 끝나게 된다"고 하셨다. 지금의 서기로 따진다면 1947년에 해당한다. 후천원년이 되는 서기 1948년은 마침 우리나라에 민주공화정부가 처음 들어선 때이다.
2) 바둑판에 얽힌 비결
우리나라가 윷놀이로써 이러한 비결을 숨겨놓았듯이 중국에서는 요임금이 아들인 단주(丹朱)에게 만들어 전했다는 바둑판에 그 비결이 있다. 바둑판은 가로 세로가 각기 19줄씩이므로 사방으로는 72줄이 되는데, 이것은 기삼백(朞三百) 360일(1년)에 72候가 있듯이 요임금 탄생후 중천 72甲(72×60= 4320년)이 되는 때에 후천이 도래함을 말하는 것이다. 그 때가 서기로는 1948년이다.
논어 선진편(先進篇)에 하루는 공자께서 제자들에게 기탄없이 제각기 품은 뜻을 말해보라고 하였다. 다른 제자들이 세상에 대한 포부를 표명했던 것과는 달리 曾點(증자의 아버지)이 "늦은 봄에 봄옷이 다 만들어졌거든 冠者 五六人과 童子 六七人으로 더불어 沂水에서 목욕하고 舞雩산에 바람쐬면서, 시를 읊고 돌아오렵니다"고 뜻을 밝히자, 이에 공자께서 깊이 찬탄하시며 "내가 너와 더불겠노라" 고 답하였다.
겉으로는 단순히 유유자적(悠悠自適)하며 소요유(逍遙遊)하는 경지를 희구한 듯 하지만 미래(후천)를 바라본 공자와 증자의 뜻이 담긴 이 글에서, 堯紀72甲의 바둑판 도수의 중요한 근거를 찾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