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심심해서 옛날 얘기 하나 해보련다. 십몇년전에 히트친 광고가 하나 있었다. "남자에게 정말 좋은데... 표현할 방뻐비 음네..." 어눌하고 투박한 경상도 사투리로 광고가 의외의 대박을 치는 바람에 일약 유명세를 탔고, 업계의 시기질투로 소송전까지 휘말렸었다, 특정 성분및 효능에 대한 언급이 없었던 바람에 결국 승소를 햇는데. 사실 그효능은 동의보감에서 노골적으로 적시하고있는 산수유(山茱萸)이다. 오늘 산수유 얘기를 해보려고 한다, 신라 48대 경문왕은 헌안왕이 아들이 없이 죽는 바람에 장인의 왕위를 물려 받아 14년간 왕위에 있었다. 경문왕은 공식적인 아들 둘이 49대헌강왕과 50대정강왕이고 딸은 51대진성여왕이다, 장인인 헌안왕의 두딸이 모두 경문왕의 부인이었지만, 역사에 야사로 남아있는 장보고의 딸도 경문왕의 아들을 낳았다 장보고는 46대 문성왕8년에 죽었지만 그이전의 세력은 왕권을 넘어서고 있었다. 장보고가 죽고 경문왕이 왕이 되자 진골이 아닌 장보고의 딸은 세력권 밖으로 밀려 나게 되고 정통성이 약한 왕권은 흔들리고 재위 기간 세번의 역모 사건과 더불어 사회는 극도로 혼란스러워 졌다. 장보고의 딸이 낳은 아들은 이빨이 난채로 태어났다고 한다. 이에 일관이 나라가 망할 징조이니 죽여야 한다고 하여 군사를 보내 살해하고자 하였으나, 어미가 아기를 빼앗기지 않으려고 아랫층 밖으로 던지니 하녀가 받아들고 도망쳐 살릴수 있었다. 하녀가 아기를 받을때 눈을 찔려 애꾸가 되었으며, 외할아버지의 성을 따서 궁예라 하였다 장보고의 본명은 궁복 또는 궁파이다. 궁예가 헌안왕의 아들일것 이라는 설도 있으나 경문왕에 더 무게가실린다. 경문왕은 항상 귀까지 덮히는 두건으로 당나귀 귀 처럼 생긴 귀를 가리고 다녔는데, 두건을 만드는 북두장이가 임금님의 신체 비밀을 발설하지 못해 입이 근지러웠던 차에 대나무숲에 들어가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다." 하고 독백으로 스트레스를 풀곤하였다. 그후 바람이 불때마다 대나무 숲에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다." 하는 소리가 들려 오자 화가난 왕이 대나무를 모두 베어버리고 그자리에 산수유를 심도록 하였다고 삼국유사에 기록이 있다.(乃伐竹 而植 山茱萸) 이것이 우리 나라 산수유에 대한 최초의 기록이다. 산수유는 우리땅에 귀화한지는 오래 됐지만 산과들에 자생하지 않고 식재에 의해서만 군락을 이루며 자란다. 구례, 의성,이천, 봉화, 양평등에 오래된 군락지들이 있어 꽃이 필때는 많은 관광객이 몰린다, 산수유꽃은 생강나무와 함께 가장 먼저 봄을 알리 기도 하지만, 납매나 풍년화 히어리등보다는 약간 늦게 핀다. 산수유꽃과 혼동도는것이 생강나무꽃인데 같은 시기에 같은 꽃을 피우지만 자세히보면 산수유꽃에는 꽃자루가 있고 생강나무꽃에는 없으며 냄새를 맡아보면 약하게 생강 냄새가 난다. 나 어렸을때 구례출신 처녀들은 모두 앞니 사이에 구멍이 뜷려 있다고 했다, 산수유를 약재로 사용하기 위해서 씨를 발라 내야하는데 구례에서는 어려서 부터 여자들이 앞니로 까서 씨를 발라냈다고한다. 정선아리랑과 소양강처녀에 노래에 나오는 동백은 생강나무를 이르는 강원도 말이다. 생강나무를 쪽동백이라고도 부른다. ㅡ지 덕 영 씀 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