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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로운 사람, 베풂을 이롭게 여긴다
글쓴이 박석무 / 등록일 2025-09-01
공자의 중심사상은 ‘인(仁)’입니다. ‘인’의 의미를 제대로 알아 올바르게 실천에 옮기는 일이 인간의 기본 도리라고 믿고 경학 연구를 통해 ‘인’의 참 의미를 밝히는 공부에 집중한 학자가 다산 정약용이었습니다. 다산은 귀양지에서 고향의 이복동생 약횡(若鐄)에게 보낸 짤막한 편지에서 어떤 행위가 ‘인’인가를 아주 쉽게 설명해주었습니다. 인간이 행해야 할 참으로 많은 인한 행위가 있겠지만 의원 생활을 하는 아우에게 반드시 행해야 할 한 가지를 가르쳐주었습니다.
“새벽종이 울리면, 커다란 말을 문 앞에 매어두고는 ‘영의정의 명령이오’라고 말하고, 또 커다란 당나귀를 뒤이어 매어 놓고는 ‘병조판서의 명령이오’라고 말한다. 또 커다란 말을 뒤이어 매어 놓고는 ‘훈련대장의 명령이오’라고 말한다. 뒤따라서 가난한 선비 한 사람이 와서는 ‘나야 말도 없는 사람이지만 우리 어머님의 병세가 위독합니다’라고 하면서 슬프게 눈물을 흘린다. 네가 세수를 마쳤으면, 맨 먼저 가난한 선비의 집으로 가서 자상하게 병세를 살펴보고 정확히 처방을 내려주고, 그다음에야 여러 귀한 집으로 가는 것이 옳다”(又爲舍弟鐄贈言)라고 일러주었습니다.
이어지는 글에서는 “몸소 행하는 일이 공손하고 예의 바르면 훌륭하다는 칭찬이 나오고, 훌륭하다는 칭찬이 나오면 하늘이 준 복록(福祿)에 이르게 되니, 귀한 집안에서는 너의 생활을 후하게 해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동쪽에서 베풀어도 보답은 서쪽에서 나오기도 한단다. 그러므로 공자는 『논어』에서 ‘지혜로운 사람은 인을 이롭게 여긴다(知者利仁)’라고 했는데, 이것을 일컫는 말이다”(윗글)
아우에게 형이 가르쳐주는 지혜, 이렇게 따뜻하고 부드러운 가르침이 어디서 또 찾을 수 있을까요. 의원 생활을 하는 아우에게 권력자들의 위세에 굽히지 말고 가장 힘없고 가난한 집안의 위독한 환자부터 먼저 보살펴주는 인술을 베풀어야 한다는 가르침, 사회적·경제적 약자를 가장 우선시하는 마음, 그런 마음을 행동으로 옮기는 일이 바로 인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먹고 살기 위해서 의원 생활을 하는 아우, 권력과 부를 누리는 고관대작들의 집안 환자를 먼저 보살펴준다면 당연히 큰 혜택을 받을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가난한 선비 집안의 환자를 먼저 도와준다면 당장은 큰 혜택을 기대하기 어렵겠지만, 결국에는 고관대작들 집안의 큰 혜택이 반드시 따르게 됩니다. 가난한 사람에게 베풀어도 부잣집의 혜택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인’의 효용, 이것을 가르쳐준 다산의 지혜는 역시 뛰어나기만 합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인을 이롭게 여긴다”라는 공자 말씀을 이렇게 적절하게 인용한 글도 드물 것입니다. 본디 공자는 “어진 사람은 인에 편안하고 지혜로운 사람은 인을 이롭게 여긴다”라고 말했습니다. 남을 도와주고 베풀어주는 일이야 본인으로서는 손해 보는 일이지만 베풀어주는 일을 이롭게 생각하는 마음과 행위가 바로 ‘인’의 뜻이라고 풀이합니다. 다산처럼 실감 나게 해석해주는 풀이가 어디 쉬운 일인가요. 그렇습니다. 도와주는 일은 혜택을 바라고 강자나 부자를 도와주는 일보다는 역시 가난하고 힘없는 약자를 도와주는 일이 참다운 도움입니다. 영의정·병조판서·훈련대장의 그 큰 위세를 모두 물리치고 가난한 선비부터 도와주는 다산의 지혜, 역시 아름답기만 합니다.
■ 글쓴이 : 박석무
· (사)다산연구소 명예이사장
· 다산학자
· 우석대학교 석좌교수
· 고산서원 원장
· 저서
『다산의 마음을 찾아―다산학을 말하다①』, 현암사
『다산의 생각을 따라―다산학을 말하다②』, 현암사
『다산에게 배운다』, 창비
『다산 정약용 평전』, 민음사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역주), 창비
『다산 산문선』(역주), 창비
『다산 정약용 유배지에서 만나다』, 한길사
『조선의 의인들』, 한길사 등
『목민심서, 다산에게 시대를 묻다』 , 현암사
첫댓글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