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뤼청' 기념사업을 한다면 광주광역시민은 강기정을 소환하라
정율성은 "민족상잔의 6.25 전쟁이 발발하자 중공군을 위로하고 북한 정부 수립에 기여하고 조선인민군 행진가를 만들어 6.25 전쟁 남침의 나팔을 불었던 조국의 부모형제들의 가슴에 총부리를 겨눈 공산군 응원 대장이었던 명백한 적군으로 중국과 '북한의 영웅'인 그를 위한 기념사업은 민주주의의 성지 광주광역시와 광주시민 대한민국 국민을 모독하는 파렴치한 짓이라 기념사업을 한다면 광주시민들은 그를 소환해야 한다.
그것은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을 무너뜨리는 데 앞장선 괴뢰 적군을 국민의 세금으로 기념한다는 것은 5·18 묘역에 잠들어 있는 민주주의 투사들을 욕보이는 일이며 헌법의 가치를 부정하는 사업에 국민들의 혈세를 마음대로 쓰겠다는 한심한 지자체 단체장이기 때문이다.
명분으로 끌어들이는 역사적 그 어느 인물도 정율성과 비교하는 자체가 한심한 역사인식이기 때문이다.
율성이라는 인물이 항일운동에 참여한 것은 사실이라는 근거와 자료는 없다. 명백한 사실은 6.25 당시 북한군과 중공군의 편에 선 인물인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 샤를 보들레르가 극찬한 바그너
'악의 꽃(Les Fleurs du mal)'의 시인 보들레르는 문학뿐 아니라 미술, 음악 등 여러 예술 분야에 대한 글을 남긴 뛰어난 비평가이기도 했던 그는 24세 때 '1845년의 살롱(Salon de 1845)'이라는 책을 출판하며 미술 평론가로 먼저 데뷔하였고, 평생 소설과 시집은 단 한 권씩만을 남겼을 뿐이다.
글쓰기는 그에게 있어 예술적인 삶을 유지하는 수단이었고, 화가 들라크루아, 마네, 사진가 나다르, 음악가 리스트 등 다양한 예술가가 보들레르의 손끝에서 새롭게 조명되었다. 리하르트 바그너도 그중 하나였다.
프랑스를 대표하는 시인은 독일을 대표하는 음악의 거장을 그야말로 “알아보았다”. 보들레르는 정식으로 음악 교육을 받은 적이 없고 베토벤과 베버를 제외한 다른 작곡가들에 대해서도 그리 많이 알지 못하여 음악에 대한 전문성은 부족했지만 자신을 “마치 바다처럼 에워싸는” 바그너 음악에 대한 열정은 보들레르로 하여금 기꺼이 펜을 들게 만들었다.
1860년 파리에서 세 차례에 걸쳐 바그너 연주회가 열렸다. 보들레르는 이 연주회에 참석한 직후 바그너에게 직접 편지를 써 보낸다.
“선생님은 제게 지금껏 경험해본 적이 없는 엄청난 음악의 즐거움을 느끼게 해주셨습니다.” “저는 이 음악이 ‘제 것’이기라도 한 것처럼 느꼈고 사람이 사랑하도록 예정된 사물들을 알아보는 것처럼 그 음악을 알아봤던 것입니다.”
○ 이스라엘
샤를 보들레르가 극찬한 음악가 바그너도 히틀러에 기여한 '빌헬름 리하르트 바그너'라는 이름이 이스라엘에 금기가 된 것은 유대인인 이스라엘 민족이 음악에 무지해서가 아니다. 그런 바그너조차 적어도 이스라엘 땅에 침공해 유태인을 직접 죽인 적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바그너를 금기시하고 있다.
○ 프랑스
전후 프랑스, 드골 정부하 재판에서 사형 선고를 받은 나치 부역자는 6천500여명이며, 이중 1천500명은 실제로 처형됐다. 징역형을 받은 부역자만 해도 3만8천여명이다.
지역사회와 민간단체로부터 비공식적으로 처형당한 부역자도 1만여명에 달한다. 무시무시한 피바람에 '관용'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있었지만 드골 정부의 입장은 단호했다.
드골은 이렇게 말했다. "프랑스가 다시 외세의 지배를 받더라도, 다시는 민족 반역자가 나오지 않을 것이다."
나치 지배하 괴뢰정부(비시) 수장과 지식인에 대한 처벌 수위는 더 높았다.
"프랑스는 관용으로 건설되지 않는다." 알베르 까뮈의 말이다.
○ 미국 샌프란시스코
샌프란시스코 인구는 2020~2022년 7.5% 감소했다. 사람만 줄어드는 게 아니다. 지난 6월 객실 규모 1위인 힐튼샌프란시스코유니온스퀘어와 4위인 파크55가 파산했다. 관광객이 돌아오지 않아서다. 또 메타, 스냅, 페이팔, 에어비앤비, 우버, 슬랙 등 수많은 기업이 떠났거나 사무실을 축소했다. 부동산 업체 CBRE에 따르면 올 2분기 기준 도심 사무실 공간의 31.8%가 텅 비었다. 코로나 팬데믹 이전엔 6%에 불과했다.
○ 왜 이렇게 되었을까?
기업이 문을 닫고 소매업체가 떠나는 이유는 범죄와 절도 그리고 직원을 안전하게 지킬 수 없는 도시라서다. ‘조직화한 절도 증가’를 이유로 작년부터 5개 점포를 줄줄이 폐쇄한 월그린 시내 매장 평균 도난액은 전국 평균의 4배였다.
○ 어디서 시작됐을까?
유명 벤처캐피털인 세콰이어의 마이클 모리츠 파트너는 지난 2월 뉴욕타임스에 ‘나 같은 민주당원도 샌프란시스코에 지쳤다’라는 글을 기고했다.
민주당에 15년간 1100만달러를 기부했다는 그는 “샌프란시스코는 시 정부를 맘대로 주무를 줄 아는 작은 그룹의 민주당 동료에 의해 불구가 됐다”고 탄식했다.
○ 진보 일당 지배의 도시
샌프란시스코는 민주당 일색의 도시다. 시는 시의회 없이 시장과 입법조직인 11명의 감독위원회에 의해 운영되는데 시장은 1965년 이후, 감독위원회는 1975년 이후 민주당 소속으로만 구성돼 왔다.
일당 지배가 이어지다 보니 진보적 정책은 점점 더 극단으로 흐러갔다. 2014년 샌프란시스코는 마약 소지를 중범죄에서 경범죄로 낮췄다.
2019년 지방검사가 된 체사 보딘은 마약 소지 등 경범죄를 기소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이를 단속하는 건 사회적 약자를 차별하는 조치로 여겼다. 2011년 절도 사건 범죄자의 약 70%가 체포됐지만 2021년엔 15%만이 체포됐다.
○ 50년 민주당 지배의 산물은...
2020년 터진 코로나 팬데믹은 극단적 정책을 심화시켰다. 시는 전염을 막겠다며 마약 및 절도죄를 지은 죄수를 풀어줬고, 수천 명의 노숙자를 호텔에 장기 투숙시켰다. 이들이 거리를 돌아다니지 않도록 마약까지 공급해줬다. 도심 야영도 합법화했다. 시청 옆에 ‘텐더로인 센터’를 세워 무료 샤워, 세탁실, 화장실뿐 아니라 깨끗한 (마약용) 주사기도 제공했다. 범죄가 확산하고 노숙자가 도심을 점령한 배경이다.
견디다 못한 시민들은 작년 6월 소환 투표를 통해 보딘 지방검사를 해임했지만 변화는 느리다.
○ 모든게 내로남불 탓...
정치인들은 소매업체가 문 닫는 건 온라인 쇼핑 확산 탓이고, 마약은 미국 전체의 문제이며, 노숙자와 절도는 원래 많았고, 폭력과 살인은 역사적으로 낮은 수준이라고 둘러대는 안이하고 무책임한 상황인식이 만연된 도시였다.
경쟁은 경제에만 필요한 게 아니다. 정치에도 경쟁을 통한 견제와 균형이 필수적이다. 샌프란시스코를 보면 한 정당에 대한 맹신 그리고 정책 극단화가 도시 몰락을 부른다.
○ 대한민국은...
특정지역의 일당지배 일색은 남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 현실이기도 하다. 샌프란시스코가 보여주는 현실을 반면교사 삼아야할 게 지금의 대한민국이요 정치권이다. 집단사고 끼리들의 폐해는 불을보듯 뻔하다. 따라서 국민들의 집단지성이 절대로 필요한 때다. 내년 대선에서 우리들의 지혜로운 선택이 필요한 이유다. 아님 나라가 망국으로 갈 것이다. 그래서 정뤼청 기념사업은 결코 해서는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