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박집 아저씨의 설명을 들은 뒤 우리는 계곡으로 향했다. 계곡이 시작되는 곳 길 오른쪽에 큰 바위가 있는 데 그곳에는 ‘갈은동문’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그곳을 지나 우리는 옛 은둔자의 길을 따라 들어가고 있었다. 너럭바위가 나왔다. 어제도 다녀간 곳이지만 맑고 투명한 물이 오전 공기 아래서 더 반짝반짝 빛났다. ‘갈천정’이다.
너럭바위에 엎드려 녹은 얼음 사이로 흐르는 계곡물에 손을 담갔다. 물속도 손에 만져질 듯 다 보인다. 이런 계곡이 계속 이어진다. 그 위가 신선이 내려와 놀다 갔다는 ‘강선대’다. 커다란 바위 절벽에 누군가 성황당의 그것처럼 돌을 쌓았다. 그 옆 절벽 바위에는 ‘강선대’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신선이 내려왔다’는 뜻의 ‘강선대’는 이 이름만큼이나 주변 풍경이 보기 좋았다. 큰 바위 위에 앉아 주변 풍경을 감상한다. 한참을 그렇게 쉬었다. 길은 상류로 이어졌지만 우리는 강선대에서 조금 내려와서 또 다른 계곡길로 접어들었다.
강선대에서 조금 내려오면 마을로 가는 길과 또 다른 계곡을 가는 길이 만나는 삼거리가 나온다. 계곡과 밭 등이 있는 곳이기 때문에 길 구분이 확실하지 않아 삼거리지만 삼거리 구분이 확실하지 않다. 강선대에서 돌아나가다 보면 아까 올라온 계곡길 말고 왼쪽으로 난 길을 택해서 걷는다. 마른풀이 바람에 흔들리며 서걱거린다. 작은 물줄기 계곡이 나왔고 계곡을 건너 더 위로 올라갔다. 길은 계곡 양쪽 옆으로 나 있다. 간혹 계곡 자체가 길이 되기도 했다. 가다가 길이 끊기면 계곡을 건너 길을 찾아서 걸어야 한다. 길이 없는 곳도 있다. 그렇게 길을 찾아 걷다가 길을 멈추어야 했다.
나무와 넝쿨에 길이 사라졌다. 그 넘어 이끼 낀 돌무더기가 보였다. 간신히 길을 만들어 가보니 밭이었을 법한 지형이었다. 돌무더기는 산 위로 올라가면서 층계를 이루고 있었다. 이른바 ‘계단식 밭’이었다. 밭과 밭의 경계이자 밭이 유실되는 것을 막기 위해 돌을 쌓았던 것이다. 아무렇게나 자라난 나무와 넝쿨 잡풀, 돌에 낀 이끼 앞에 선 마음에 녹록치 않은 세월, 낯선 땅에서 새 삶을 일구어야만 했던 화전민들의 애잔한 마음이 전해지는 것 같았다.
계곡은 계속 상류로 이어졌고 우리는 애써 계곡을 따라 올라갔다. 오랫동안 사람 발길이 닿지 않았는 지 길도 보이지 않았다. 계곡 양쪽을 오가며 길을 찾는데 희미한 길 자국이 보였다. 그나마 계속 이어지지 못하고 중간에 끊기곤 했다. 화전밭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곳에서 이번 걷기여행을 끝냈다. 마을로 내려가는 길 아까 지나왔던 갈론계곡 갈천정 여울이 ‘돌돌돌’ 거리며 흐른다. 또 놀러오라는 인사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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