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약봉서성의 어머니(일직 소호헌1588-1631)
고성이씨 임청각의 이명의 다섯째아들 이고의 무남독녀 퇴계문하생인 서해로 시집감
15세때 열병을 앓고 장님됨 옥신각신 하다가 두루마기 가 찢어졌는데 내가 꿰메어 줄테니 해서 아주 잘꿰맴
그 바느질 솜씨에 반해 결혼
세살때 아버지가 돌아가자 어머니 스믈세살에 청춘과부로 서을로 올라감 (지그 중림동 약헌성당자리) 약식과 약과 약밥, 약주를 빚어 아들공부시킴. 서성은 훗낭 급제 병조판서를 지내고 돌아간뒤 영의정으로 추대 되었다
어머니는 물태위선 (勿怠爲善) 즉 선한일을 하기를 게으르게 하지 말라는 가훈으로 교육함
약봉의 아들 4형제중 맏아들은 우의정 그의손자가 영의정 을 지냈으며 네째아들 경주가 선조의 딸과 결혼 .
그의후손들은 영의정 6명 좌의정 1명 대제학 5명을배출해 450년전에 한어머니의 결단의 리더쉽과 가문경영과 기업가들이 본받아야 할 덕목이다
*류실이 이바구
의성김씨에서 무실로 시집간 류실이가 가난하여 시아버지 묘쓸자리가 없자 친정에 와서 묫자리 하나 달라고 조른다
그묫자리는 삼대정승이 날 터라 친정아버지는 택도 없었다
그러나 류실이는 시집간 내 집안이 더 중요하였기에 밤새도록 버지기로 물을 퍼이고 날라 물괴락을 만들고서
이렇게 묫자리에는 물이 고이면 안좋은 터라 하여 아버지를 꿰어 시어른을 모셨더니 훌륭한 자손들이 줄줄이 나와 오늘날의 무실마을을 만들었다
많은 독립운동가를 배출했으며 류안진도 그의 후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