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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타래처럼 엉켜버린 인생 (완결편)
단편소설 / 백화 문상희
https://youtu.be/Hp9AKZykXYs?si=6s4ZcV4NBtszHMLy
https://youtu.be/ciaEYF7SMGk?si=ZaveyG-wzjeZ9구입하
실타래처럼 엉켜버린 인생
단편소설 / 백화 문상희
(제1부 )
조영호는 3년 전 아내가 대장암 판정을 받고
간병을 위해 퇴직을 했다.
암투병이 시작되고부터 금융업계에서 퇴직을 한 후
금융인답게 퇴직금을 증권에 투자하고
몇 년을 쉬었으나 육신이 빠르게 퇴화하는 것을
느끼고 안 되겠다 싶어 고향 친구 진우가 운영하는
건강식품 회사에서 영업 일을 시작했다.
건강식품 판매는 일종의 피라미드 식 판매였다.
영호는 육십 전후에 기력이 떨어지는 지인들에게
녹용인삼 판매를 하여 영업실적이 좋았다.
"야~~!
영호야,
자넨 금융업계에서 오랫동안 일을 해서 그런지
실적이 무지하게 좋구나~!"
"에이~!
그것은 지인들에게 판매를 해서 그렇지 뭐!"
"아니야,
저번달에도 톱으로 판매왕이었잖아!
잘하면 자네가 사장인 나보다도 소득이 많겠구나!"
"그거야 진우 자네가 판매 노하우를 잘 알려줬으니
나야 그냥 따라서한 것이지 안 그런가?"
"그건 그렇고 영호야!
IMF 후폭풍으로 주식이 계속 하락세인데
증권을 회수해서 실속 있는 여기다 투자해라!
이번에 우리 거래처에서 자금사정이 어려워 제품을
반값에 덤핑처리 한다고 하니 우리가 아도 쳐서
창고에 두고 판매하면 완전 떼돈을 벌 수가 있잖아!
나는 사고 싶어도 큰돈이 없어 살 수가 없단다."
"글쎄,
나는 사업을 해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다 진우야!"
"에이 영호야!
자네가 판매를 하면서 자네 눈으로 직접 봤잖아?
마진이 5할인데 반값에 제품을 들여오면
8할까지 올릴 수가 있어 영호야!"
"아무리 홍삼 녹용이 몸에 좋다고 해도 고정고객이
이 제품을 계속해서 사 먹을지 그것은 의문이잖아!"
"걱정하지 마라 영호야!
한국사람은 몸에 좋다면 까마귀도 잡아먹잖아?"
여하튼 영호 자네가 투자를 해준다면 수익도
자네가 6, 내가 4할로 분배를 하고
또 자네가 금융업계에서 일을 오래 했으니 나 대신
대표이사를 맡아서 해주게나!"
"글쎄,
여하튼 생각을 좀 해보겠네!"
"그래, 영호야!
거래처 덤핑 없어지기 전에 결정을 하게나~!"
영호는 사실 삼 사 개월 판매 영업을 해서 번돈이
예전에 직장 월급보다 더 많았다.
그리고 주식에 투자한 돈은 계속 내리막으로
벌써 원금의 30%는 날아간 상태였다.
영호는 건강식품 덤핑 생각이 계속 머리에서 맴돌아
진우에게 투자를 하기로 마음먹고 주식을 처분했다.
"진우야!
자본금을 어떻게 투자를 하면 되겠냐?
"야 이 사람아!
이제부터 자네가 대표이사인데 법인통장에
넣어놓고 도장과 통장은 자네가 관리하면 된다네!"
"글쎄 , 그런가?"
"그래, 이 친구야!
이번에 거래처에 가서 자네 이름으로 계약을 하고
영수증 받은 후 대금을 지불하면 깔끔하잖아!"
"그래, 알았네!"
진우는 그날저녁 직원들을 모아놓고 회식을 하면서
친구인 영호가 자본금을 투자하고 대표이사가
된 것을 직원 모두에게 알렸다.
사무실이래야 사십 대 여경리 한 명과 택배와 배달을
담당하는 직원까지 두 명과 책상 3개에 창고
뿐이었다.
판매원 역시 육십 대 전후로 지인들에게 건강식품을
판매하는 것이었다.
판매가의 30% 마진에다 본인이 데려온 사람이
판매를 하면 5%씩 마진이 높아진다.
즉, 피라미드 식 영업방식이라 회사에는 실직한 사람들이
밑져봤자 본전식으로 들끓었다.
더군다나 건강식품을 절반가격에 구입한다면
그야말로 대표에겐 고수익의 메리트가 있었던 것이다.
영호는 이런 것을 보고 투자를 결심하고
집으로 돌아와 벌써 3년째 대장암 투병 중인
집사람과 조심스럽게 의논을 했다.
"여보,
나 퇴직금 받은 돈 주식투자로 벌써 30%가 날아갔어
차라리 그 돈을 빼서 지금 하고 있는 건강식품에
투자를 할까 하는데 당신 생각은 어때요?"
"아이고,
나는 당신이 예전에 직장 다닐 때처럼 매달
이백만 원씩 가져다주니 더없이 고맙지 뭐예요!
그런 일은 당신이 나보다 훨씬 나으니까
당신이 알아서 하세요!"
"알았어,
그러면 우리 여기에 투자를 해서 노후에 편하게
살 수 있도록 해봅시다."
"그래요 여보!"
영호는 결심을 하고 투자를 하기로 결론을 내렸다.
며칠 후 부사장인 김진우가 건강식품 거래처
사장을 만나서 계약을 하기로 했다고 대표이사인
조영호에게 말했다.
"내일 건강식품 거래처 구정재 사장과 점심을 먹고
창고에 가서 제품을 본 후 계약을 하기로 하세!"
"그러세!
그래도 자네가 창고에서 제품을 보고 계약을 하는 것이
좋겠네!"
이튿날 거래처 구정재 사장과 대표이사인 조영호,
그리고 부사장 김우진 세 사람은 일식집에서 만났다.
"안녕하십니까 구정제 사장님!
이분이 이번에 자본금을 투자하고 대표이사로 취임한
조영호 대표이사입니다."
"아이고, 반갑습니다 조사장님!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네~, 저도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조영호라고 합니다."
세 사람은 식사를 마치고 근처에 있는 창고로 갔다.
약 50평 정도의 창고에는 건강식품 박스가
가득 쌓여있었다.
구정재 사장은 박스 두 개를 테이블에 올려놓고
조영호 사장에게 자세히 설명을 해주었다.
"저는 이번에 녹용과 홍삼 재료를 저렴한 가격에
대량으로 구입하여 잔뜩 제품을 생산하고나니
자금이 고갈되어 현금 회전을 하고자 덤핑으로
부득이하게 처분을 하는 것입니다."
"네~,
사정이 그렇게 되셨군요!"
"아이고,
이번 기회에 이 제품을 절반가격에 구입하시면
조사장님은 정말 떼돈을 버는 겁니다."
"그러면 몇 박스를 얼마에 해주시는 겁니까?"
그러자 구정재 사장은 전자계산기를 꺼내어
두드리기 시작했다.
"김우진 사장님과 지금껏 100개들이를 박스당 오만 원에
거래를 했었답니다.
이에 절반가격이면 이만 오천 원입니다.
그러면 4천 박스니까 정확히 1억 원입니다.
계약금은 20% 주시고 잔금은 일주일 내로
주시면 됩니다.
그리고 제품 보관이 어려우시면 창고비는
안 받을 테니 그냥 여기 다두고 언제든지 필요한 만큼
출고를 하셔도 됩니다.
또한 이 제품은 진공포장이라서 유통기한이
삼 년이니까 걱정은 안 하셔도 됩니다.
잔금 주시는 날 창고 열쇠도 드리겠습니다."
"아이고, 조영호 대표!
자네 복이 터졌구먼 그래
창고도 무상으로 빌려준다니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그래, 그것은 우진이 자네 말이 맞네!"
조영호 대표이사는 2천만 원의 계약금을 지불하고
영수증을 받아 계약이 체결되었다.
사업 성공 플랜에 들떠서 집으로 돌아온 조영호는
현관문을 열자마자 기겁을 했다.
거실 소파 아래에 집사람이 쓰러져 있었고
바닥에는 흥건하게 피가 고여있었다.
영호는 다급하게 수화기를 들고 119에 신고를 했다.
"여보세요?
지금 집사람이 하혈을 하고 쓰러져 있답니다 "
"네, 선생님!
흥분하지 마시고 차근차근 집주소부터 알려주세요!
그리고 부인은 지병이 있으셨나요?"
"네~,
집사람은 대장암으로 대장 절제술을 하고 계속
항암치료를 받고 있었답니다."
"예, 알겠습니다.
구급차를 보냈으니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약 10분이 지나서 구급차가 도착을 했고
구급대원은 인공호흡과 응급처치를 진행하였고
영호 집사람은 왕십리 집 근처 대학병원
응급실에 도착을 했다.
"환자분이 아직 맥박은 뛰고 있으나 의식이
없으니 지혈제 투입 후 엑스레이와 CT 촬영 후
결과를 알려드리겠습니다."
"예, 알겠습니다.
의사 선생님!
어떻게든 의식이 돌아오도록 부탁드립니다."
"네~,
저희들은 최선을 다 하고 있답니다 "
영호는 집사람이 응급실로 실려 들어간 후
두 시간 동안 좌불안석을 하며 입이 타들어갔다.
두 시간이 지나서 가운과 마스크를 한 응급실
주치의가 조영호를 마이크로 불렀다.
"주다희 보호자분 응급실 주치의 방으로
들어오세요!"
영호는 부리나케 주치의 방으로 들어갔다.
"의사 선생님 집사람은 어떻게 됐나요?"
"네~,
보호자분!
진정하시고 제 말을 들어주세요!
주다희 환자가 대장암 투병 중이라 하셨지요?"
"예, 그렇습니다 선생님!"
"엑스레이와 CT 촬영결과 급성 장출혈이
있었고요 또 혈액검사 결과 암세포가 급격히
늘어났으며 이미 담낭까지 암세포가 전이되었습니다.
건강이 회생불능 상태였습니다.
저희는 최선을 다했지만 안타깝게 사망하셨습니다.
조금 전 영안실로 옮겨졌으니 저희 직윈과
함께 가셔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영호는 넋을 잃고 직원을 따라서 영안실로 갔다.
하얀 천 아래에 누워있는 사람은 분명
아내 주다희였다.
영호는 오열을 하며 망인에게 소리쳤다.
"이 사람아!
갈려면 작별인사라도 하고 갈 것이지 이게 무슨
날벼락이요!
내가 건강식품 회사에서 돈 벌어 온다고 그렇게
좋아라 하더니 이게 무슨 일이냐 말이오!"
영호는 이미 싸늘하게 식은 아내의 손을 붙들고
오열을 했다.
"저~,
선생님!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
이만 고정하시고 검안 절차를 진행해 주세요!"
"예~, 알겠습니다 선생님!"
영호는 서류에 보호자 서명을 하고 손도장을 찍었다.
밖으로 나온 영호는 연거푸 줄담배를 피우며
눈물을 삼켰다.
그리고 정신을 가다듬고 전방부대에 장교로
근무하는 아들에게 전화를 하고
일본에서 살고 있는 큰딸에게 국제전화를 했다.
이튿날 장례식장에 아들과 며느리가 오고
이틀 후 발인날에 딸과 사위가 왔다.
영호는 가족 외에는 아무에게도 아내의 사망 소식을
알리지 않았다.
그러나 어떻게 알았는지 건강식품 판매회사!
부사장인 친구 진우가 찾아왔다.
아니, 진우야!
여기는 어떻게 알고 찾아왔냐?"
"응~, 예전에 네가 얘기를 했잖아!
자네 집사람이 여기 대학병원에서 대장암
수술하고 여기서 치료받고 있다고 했잖아!
삼일동안 출근도 안 하고 전화도 없어서
분명히 자네 집사람에게 문제가 있나 보다 해서
병원에 전화를 해보고 사실을 알았다네!
여하튼 뭐라고 위로를 해야 할지 모르겠네"
조문을 마친 진우는 거듭 위로의 말을 건넸다.
"그래, 진우야!
나는 집사람이 급하게 저세상으로 떠나는 바람에
경황이 없다네!
그러니 자네가 회사일을 당분간 맡아서 하게나!
어차피 예전에 자네가 운영하던 회사니까 말이야!"
"그래, 알았네!
그나저나 이런 자리에서 말하기는 좀 그렇지만
건강식품 계약건은 어떻게 했으면 좋을까?
잔금을 치르지 않으면 계약금이 날아가잖아!"
"그래, 이미 계약을 했으니 잔금을 치르고
물건을 인수해야지!
책상 서랍에 통장과 도장이 있으니 자네가
찾아서 잔금을 치르고 물품을 인수하게나!
서랍 열쇠는 여기 있다네!"
"그래, 영호야!
그럼 계약건은 자네 말대로 진행하겠네!
여하튼 마음 잘 추스르고 안정이 되면 그때
출근을 하게나!"
"그래, 진우야!
자네가 알아서 내대신 진행을 잘해주게!"
영호는 진우가 만든 판매회사라서 잘하겠거니
하고 경황이 없어 통장과 도장까지 맡겨버렸다.
그것이 나중에 천추의 한이 되었다.
영호는 삼일 내내 죽은 아내 곁을 지켰고
예전에 아내 다희가 했던 말을 기억했다.
"여보, 만약 내가 당신보다 먼저 죽으면
화장을 해서 내가 어릴 적 물놀이하던 삽교천
쌍다리 아래 흐르는 물에 뿌려주세요!"
영호는 아들과 딸이 따라오겠다는 것을
뿌리치고 차를 몰아 삽교천으로 향했다.
그곳은 명절 때 처갓집에 가면 삽교천 둔치를
걸으며 아내가 어릴 적 자랑을 했던 곳이다.
영호는 분골을 흐르는 물에 뿌리며 한없이 울었고
갑자기 허전함이 가슴에 밀려들었다.
"여보, 먼저 가시게!
나도 죽으면 당신 있는 곳으로 가도록 할게!"
영호는 돌아오는 서울이 그렇게도 멀게 느껴졌다.
장례를 마치자마자 아들은 부대 책임자로서
급히 원대복귀를 했고 딸도 직장일 때문에
일본으로 돌아갔다.
이미 암투병 중인 아내의 죽음을 예견했지만
그렇게 급하게 세상을 뜰 줄은 영호도 몰랐다.
영호는 집으로 돌아와 텅 빈 방문을 열고
허전함에 털썩 주저앉아 버렸다.
영호는 아내의 유품정리를 해야 했고
아내의 일기장을 보면서 울고, 생일 때마다 사준
목도리며 옷을 하나씩 꺼내면서 또 한없이 울었다.
태어나면 언젠가는 가는 것이 당연한 것이지만
몇십 년 정이든 사람을 보내는 것이 한스러웠다.
영호는 아내의 유품을 싸들고 다시 아내의
유골을 뿌린 삽교천을 찾았다.
다리 아래서 유품들을 태우며 한없이 또 울었다.
"여보, 이제는 이게 마지막이 될 것 같아!
저 하늘나라에서는 내가 갈 때까지 제발
아프지 말고 살아요!"
영호는 유품을 모두 태우고 다시 서울로 올라와
거의 한 달 동안을 두문불출하며 지냈다.
아내를 그렇게 힘들게 해던 여름이 지나가고
영호는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9월 첫째 월요일에
마음을 추스르고 출근을 했다.
사무실에 도착한 영호는 아연실색을 해야 했다.
사무실 문은 굳게 닫혀있고 "임대,,라는
팻말이 붙어있었다.
"아니, 월요일인데 왜, 문이 닫혀있을까, "
영호는 의구심에 곧장 관리사무실을 찾아갔다.
"안녕하십니까 관리소장님!
105호 사무실이 왜 잠겨있습니까?"
"아~, 거성실업 사장님 오셨군요!
김우진 사장님 께서 사무실 이사를 한다고 해서
사무실을 뺐답니다.
계약서상 권리자가 김진우 사장님으로 되어있어
보증금까지 들려주었습니다."
영호는 무엇인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에 진우의
집으로 전화부터 했다.
"이 번호는 없는 전화번호이니 다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뚜뚜뚜 ᆢ"
"아니 그럴 리가 없는데 이상하다?"
영호는 뭔가 이상한 느낌에 차를 몰아 건강식품
구정재 사장을 찾아갔다.
"어떻게 오셨는지는요?"
"네~, 백세건강 구정재 사장님을 찾아왔습니다."
"구정재 사장님이요?
그 사람은 예전에 여기 창고 관리인이었는데
벌써 오래전에 그만둔 사람입니다!"
"그러면 여기에 제품을 보관한 사람은 누구인가요?"
"네~, 그것은 영등포에 공장이 있는 백세건강
주식회사입니다!"
"그러시면 혹시 연락처가 있습니까?"
"아이고 그럼요!
제가 여기 관리인인데 당연히 알지요!
여기 전화번호와 주소도 있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영호는 전화보다 확실하게 사연을 알고 싶어
바로 주소지대로 공장으로 달려갔다.
영호는 물어물어 찾은 공장으로 가서
막무가내로 사장실로 들어갔다.
"안녕하십니까,
구정재 사장님 이신가요?"
"아니요,
저는 이원식입니다.
그런데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영호는 그간의 사정을 얘기하고 도움을 청했다.
"아니, 제가 만든 제품을 덤핑처리 하다니요!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그 창고에 있는 제품은 미국 수출품으로
이미 어제 화물선에 선적되어 미국으로 떠났습니다.
백세건강 대표이사는 분명히 나 이원식입니다.
그리고 여기 대표이사 직인도 모두 가짜입니다.
구정재 그 사람은 창고 대여회사 관리인이었고
이미 퇴사한 사람이랍니다.
그리고 그 사람은 창고 제품을 빼돌리다가
적발되어 해고가 된 사람입니다."
사장님 께서 그 사람에게 사기를 당한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니 잘 알아보시고 해결하세요!"
"네~, 잘 알겠습니다.
여러 가지 도움 말씀 고맙습니다."
영호는 청천 하늘에 날벼락을 맞은 것이다.
아내의 죽음으로 슬픔이 가시기도 전에
또 한 번 좌절을 겪어야 했다.
영호는 아들 딸 모두 분가하고 아내마저
저세상으로 떠난 마당에 큰 집에 살아야 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에 40년 동안 살아온
집을 처분했다.
영호는 요즘 유행하는 최신식 원룸 오피스텔을
구입하여 이사를 했다.
40년이 된 구옥을 팔아 그돈으로 겨우 구입한
신개념 주택이었고
그것은 어쩌면 아내가 없는 썰렁한 거실을
피하기 위한 방편인지도 모른다.
(제2부) 인생사 1장 2막
영호는 아내 장례를 치르고 원룸 오피스텔을
구입하느라 현금은 거의 바닥이 나버렸다.
그러나 자식들에게 손 벌리는 것은 죽기보다
더 싫었다.
그것은 자식들에게 평소 자수성가를 교훈으로
가르친 이유이기도 하다.
영호는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던 아내의
다이어 목걸이와 반지 그리고 본인의 반지도
팔기로 마음먹었다.
"그래 가지고 있으면 뭐 하겠냐!
돈도 떨어지고 하니 이번에 팔아버리자 영호야!"
오래전 결혼 30주년 기념으로 산 것이지만
그동안 보석값이 많이 올라 일 년은 거뜬히
지낼 수 있는 돈이 마련되었다.
영호는 진우의 소식을 백방으로 알아보았으나
소식은 오리무중이었다.
영호는 할 수 없이 집안 정리를 모두 마치고
고향인 원주 진우의 집을 찾아가기로 마음먹었다.
영호는 먼저 고등학교 다닐 때 가끔 놀러 갔던
진우의 집을 찾았다.
마침 진우의 노모가 마루에서 나물을 다듬고
계셨다.
"안녕하세요 모친!"
"아이고 누구시더라 양반?"
"네~,
진우의 고등학교 친구 영호입니다."
"그렇구먼!
나는 이제 나이가 들어 눈이 흐릿해 잘 안 보인다네!
마루로 올라오게나!
내가 고구마 찐 거라도 가져올게!"
"아이고, 괜찮습니다 모친!
그나저나 진우는 집에 없나요?"
"아이고, 그 미친놈이 초봄에 들렸다가
집을 나간 뒤 소식이 없다네!
정선에 카지논지 뭔지가 생겼다고 동네사람이
구경 갔다가 진우를 보기는 봤다는데 여하튼
가을이 다되도록 나는 꼬락서니도 못 봤다네!"
"네~,
알겠습니다 모친!
제가 한번 찾아보겠습니다.
건강하게 잘 지내세요 모친!"
"그려, 잘 가게나!"
영호는 혹시나 해서 진우 집을 찾았지만
역시나 허사였다.
영호는 사촌동생 사는 시골에 들렸다가
정선 카지노를 가보기로 마음먹었다.
동생 영수가 사는 동네는 진우 집을 2kn 정도
지나가서 있다.
영호는 해거름 한 저녁때 동생 집에 도착했다.
마침 동생은 마당에서 가을겆이 농사일을
하고 있었다.
"아이고, 영호 형,
어서 오세요!
추석 때 못 내려온다고 전화를 했는데
무슨 일 있으세요?"
"그래, 너 향수가 암투병 하다가 급작스럽게
저세상으로 가는 바람에 못 왔어!"
"아이고, 그러면 연락을 하지 그랬어!
여하튼 형 위로의 말씀드립니다."
"그냥, 조용히 보내주고 싶어서 아무에게도 말
안 했으니 그렇게 알게 동생!"
바깥이 시끌벅적 소란스럽자 재수 씨와 막내
영서도 밖으로 나왔다.
"아이고 아주버님 오셨군요 어서 오세요!
"네~, 제수씨!
잘 지내셨지요?"
"오빠, 여기 나도 있는데!
어쩐 일로 불쑥 내려오셨어요?"
"그래, 그런 사정이 있어서 내려왔단다.
영호는 마루에 걸터앉아 아내가 급작스럽게 죽은 사연과
진우에게 사기당한 사연까지 늘어놓았다.
"아이고, 오빠!
여러 가지로 마음고생이 많았군요!"
"그래,
막내 너는 어쩐 일로 오빠집에 왔니?"
"아이고, 형!
매제 진서방이 알코올중독이 되어 맨날 술 처먹고
행패나 부리고 살림이나 짜들고 그래서
결국은 이혼하고 보복당할까 무서워 우리 집에
머물고 있어!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내가 이혼하라고 했어!"
"그랬구나 막내야!
너도 마음고생 많았구나!"
"그런데 오빠!
진우오빠 마누라 성자는 상지여고 내 동기예요!
둘이는 잘 살고 있는지 모르겠네요!
성자는 집이 멀어서 친구들과 학교 근처에서
자취를 했답니다."
"그래?
"예,
성자 신랑도 주머니에 돈만 생기면 색시집으로
노름판으로 내가 이혼한 신랑과 똑같아요!
그래서 결국은 오빠에게 사기를 쳤군요!"
"그래,
그러면 진우 마누라 집이 어딘지 알고 있니?
진우가 처가 동네에 숨어있는지도 모르니
찾아가 봐야겠다."
"예, 오빠!
그런데 성자네 집은 여기서 멀어요!
시내버스 타고 소초면에 내려서 시오리는
걸어서 올라가야 돼요!
옛날에 방학 때 성자네 집에 놀러 간 적이 있는데
면사무소 뒤쪽으로 계속 올라가서 선황당
고개 넘어가 성자네 집이에요!"
"그래?
어쨌거나 진우를 찾으려면 멀어도 내가
가봐야겠다.
혹시 주소는 알고 있으면 좀 알려다오!"
"예, 오빠!
내 가방 수첩에 있으니까 적어올게요!"
"그래, 고맙다 막내야!"
"아이고, 오빠!
일억씩이나 되는 큰돈을 사기 쳤으니
어쨌든 찾아봐야지요!"
영호는 오랜만에 재수 씨가 차려준 시골 밥상을
삼 남매가 막걸리를 곁들여 맛있게 먹었다.
"영호 형,
저 아랫채에 군불 지펴놨으니 오랜만에 고향
집에서 마음 편하게 자요!"
"그래, 고맙다 영수야!"
그때 막내 영서가 진우 마누라가 사는 동네
주소를 적어서 오빠에게 내밀었다.
"오빠,
주소는 여기 있는데 산길이라서 오빠네
승용차로는 올라갈 수 없는 농로 길이니
차라리 차를 여기 다두고 버스 타고 가세요!
그리고 동네 이름은 선황당골이고요
동네까지 차로 갈려면 멀리 평창군 쪽으로
돌아가야 됩니다.
주소는 원주시 소초면 수암리 산 123 번지가
성자네 부모님 집이에요!
여하튼 한번 찾아가 보세요!"
"그래?
친구라니까 웬만하면 너도 같이 가보자꾸나!"
"오빠,
사실은 저 유방암에 걸렸어요!
제가 다니는 산부인과에서 서울에 있는 큰
병원에 진료기록과 소개서를 써줘서 내일
서울로 가는 기차표 예약도 해놨어요!
그러니까 내가 주소 뒤에 약도를 대충 그려놨으니
오빠 혼자 다녀오세요!"
"아이고,
어쩌다 막내 너까지 암이냐 글쎄!"
사실 작은 오빠에게도 말 안 했어요!
큰 오빠가 같이 가자고 해서 못 가는 이유를
밣히다보니 말이 나온 거예요!"
"그래,
치료비 없으면 내가 좀 보태줄까?"
"아이고, 오빠!
올케언니 돌아가시고 사기까지 당했는데
오빠는 무슨 돈이 있겠어요!
걱정 마세요 오빠!
저 이혼하고 직장 다녀서 그 정도 돈은 있으니 걱정 마세요!"
이튿날 영호는 오랜만에 시골집에서 호젓한
밤을 보내고 재수 씨가 끓어준 북어 해장국으로
속을 풀고 터미널로 향했다.
어차피 오래된 소형 승용차로는 올라갈 수 없는
길이라서 동생 영서의 말대로 했다.
터미널에서 소초면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소초면 소재지에 내려서 면사무소 뒷길로
접어들었다.
그때부터 길은 비포장에 길 중간에는 잡초가
우거져 길인지 숲인지 알 수가 없었다.
영서의 말대로 언덕을 오르다 보니 선황당이 나왔다.
대낮인인데도 불구하고 요란한 오색 깃발로
채워진 선황당은 보기만 해도 등골이 오싹했다.
"아이고, 일찍 출발하길 잘했구나!
이 동네는 새천년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산골 오지라
을씨년스럽구나!"
영호는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스스로 위안의
마인드컨트롤로 가던 길을 재촉했다.
고갯길은 시월의 날씨를 무색하게 서늘한
바람이 불어왔다.
영호는 정오가 넘어서 고개를 넘어 어렴풋이
마을 동네 윤곽이 눈에 들어왔다.
영호는 산길을 넘어오느라 피곤함 보다는
사람을 만나지 못한 게 의아했다.
그만큼 수암리 선황당골은 오지 마을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마을 어귀에 들어서자 남정네는
안 보이고 빨래터에 아낙네들이 모여 시끌벅적
무명적삼을 입은 채 희멀건 허벅지 드러내고
젖무덤이 춤을 추고 있었다.
모두들 세상사 분풀이 하듯이 방망이질 열중이었다.
영호는 쳐다보기가 민망해서 곁눈질에 어험 어험,
하고 큰기침을 했다.
아낙네들은 하나같이 궁금증에 영호를 힐끔힐끔 쳐다보았다.
도심에선 새천년이 왔다고 떠들썩한데
이 동네는 아직 1970년대 모습 그대로였다.
내가 사는 서울에선 정전이 되거나 세탁기가
고장이 나면 빨래를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나중에 하는 게 할 텐데...
여기선 아낙네들이 개울에서 손빨래를 하고 있었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이 마을 남정네 들은
산골에 먹고살 것이 없어 근처 석회광산을 다녔거나
멀리는 황지 탄광이나 문경 탄광으로 돈벌이
나가고 열댓 가구 거의가 아낙네들 뿐이라서
흡사 과부 집성촌 같았다.
광부들 중에는 탄광 매몰로 죽은 사람도 있다고
들었다.
아낙네들이 영호를 힐끔힐끔 쳐다본 이유는
산골에 보기 드문 키가 훤칠한 멋쟁이 남정네가
왔으니 말이다.
영호는 망설이다가 입을 떠었다.
"안녕하세요 아주머니 들,
저~, 혹시 김우진이라고 이 동네에 사는지
궁금해서 여쭤봅니다."
그때, 오십 대 초반으로 보이는 아주머니가
바짓가랑이에 물을 줄줄 흘리며 일어났다.
"김우진은 어찌 찾는다요?
내가 아는 사람이니까 따라오세요!"
그 아주머니는 빨래 거리 주섬주섬 챙겨서
고무대야를 머리에 이고 앞장을 섰다.
"언니들, 나 먼저 가요~잉!"
아주머니는 고쟁이 끈을 졸라매고 큰 엉덩이
흔들면서 저만큼 앞서서 바쁘게 걸어갔다.
아주머니는 빨래대야를 장독대 근처에 두고
마루에 걸터앉았다.
"그래, 신사양반!
김우진은 어찌 찾는데요?"
영호는 우진이가 벌인 일과 동생 영서에게
들은 얘기들을 늘어놓았다,
"아이고,
그러면 영서네 큰 오빠 되는 분이시군요!
그래 영서는 잘 지내는가요?
저도 못 본 지가 오래됐답니다."
"네~,
사실은 영서도 남편이 그렇게 속을 썩여서
이혼을 하고 지금은 유방암 때문에 서울에 있는
큰 병원에 갔답니다."
"휴~~~,
영서도 편한 팔자는 아니었군요!
그나저나 그 인간이 또 일을 벌였군요!
생전 서방이 준 돈은 평생 받아보지를 못했는데
어쩐 일로 돈을 천만씩이나 주고 가더라 했지요!
그 뒤로 몇 달간 코빼기도 못밨답니다.
풍문으로 들은 얘기는 정선 카지노에서
봤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돈 천만 원도 그 인간이 이곳저곳에
빌린 돈 갚느라 다 써버렸지요!"
아주머니는 한숨을 내쉬며 푸념을 늘어놓았다.
"네~, 그런 사연이 있었군요!"
"그나저나 여기는 해가 일찍 떨어진답니다.
어차피 오늘은 못 가실 테니 제가 얼른 저녁을
대충 차려보겠습니다.
대낮부터 하염없이 푸념을 늘어놓다 보니
어느새 해가 저버렸다.
그리고 여기는 시월에도 추워서 군불을 때야 하니
방에 들어가서 계셔요!
"아이고, 여하튼 폐를 끼쳐 미안합니다."
"별말씀을요!
그래도 친구 오빠인데 정성껏 만들겠습니다.
아주머니는 호야등불을 켜서 영호손에 들려줬고
그 순간 손잡이에 두 사람의 손이 겹쳐서 둘은
흠칫 놀랬다.
영호는 등불을 들고 방으로 들어가 두리번거렸다.
옛날 영호가 어릴 때 시골에 살던 모습 그대로였다.
잠시 후 아주머니는 저녁 상을 방으로 들이밀었고
양푼에는 막걸리가 한가득 담겨있었다.
"서방이라고 있는 게 하도 쏙을 썩여서
저도 밤마다 술을 마신답니다.
산길이라서 막걸리를 구하기가 어려워
제가 직접 만들었지요!
모주라서 좀 독할 것이니 천천히 드세요!"
"아이고, 저녁상에 직접 만든 막걸리 까지요!
고맙습니다."
"친구 오빠지만 신사 양반양 반과 만났으니
우리 건배하고 드십시다."
"아이고, 좋습니다.
이런 운치 있는 가을에 시골에서 막걸리라,
너무도 잘 어울리네요 고맙습니다."
"건배~,"
둘이는 양푼으로 된 술잔을 부딪쳤다.
아주머니는 막걸리를 곁들인 저녁 식사를 마치고
상을 부엌으로 물렸다.
그런데 영호는 물소리가 나서 바깥을 빼꼼히
내다보았다.
아주머니는 샘물 옆에서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샤워를 하고 있었다.
아주머니는 작달막한 키에 잘생겼다는 생각보단
귀염상 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아차거, 아차거!
하면서도 연거푸 물을 끼얹었다.
영호는 아담하고 오동통한 여자가 가슴이 커다고 하는
말을 들은 것에 실감이 났다.
"그래, 그것이 사실이었구나!
오~, 푸짐해서 좋구나 좋아!"
영호는 모른 척 훔쳐보며 흐뭇해했다.
잠시 후 아주머니는 방으로 들어갔다.
영호도 막걸리 모주 때문에 얼큰하게 취기가 올랐다.
"에라 모르겠다.
나도 오랜만에 샘물 샤워나 해봐야겠다."
영호 역시 옷을 다 벗은 채 몸에 물을 끼얹었다.
"아이고, 시원해!
시원하다 시원해!"
영호는 술기운에 추운 줄도 모르고 샤워를 했다.
그때, 아주머니 역시 문틈으로 빼꼼히 영호의
샤워하는 모습을 훔쳐보았다.
"오~,
양놈처럼 키 큰 놈이 뭐도 커다더구먼 역시나었구나!"
아주머니는 술기운에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아~, 씻고 들어오셨군요!
저쪽 방에 이불 깔아놨으니 얼른 주무세요!"
아주머니는 모르는 척 시치미를 떼고 말을 했다.
"그래요, 아주머니!
여러 가지로 고맙습니다."
영호는 술기운이 올랐으나 샘물로 샤워를 하고
정신이 어느 정도 맑아졌다.
그런데 건넌방에서 부스럭 거리는 소리가 들려
궁금증에 찢어진 문틈사이로 훔쳐보았다.
성자는 오랜만에 멋진 외관 남자를 보고 자신도
모르게 흥분이 고조되어 습관처럼 자위를 했다.
삼십 대부터 허구한 날 서방이 집을 비우다 보니
자위가 습관이 되어버렸다.
이 동네에는 떠도는 소문도 있었다.
열댓 가구 사는 마을에 거의가 과부라서
가지밭에 가지가 다 자라기도 전에 씨가 말랐다는
풍문이 있었다.
진우의 부인 아주머니는 막냇동생 영서와 같은
오십 대 초반이었으니 영호보다 팔 년 아래의
과부 아닌 청춘과부였다.
영호 역시 잠이 들지 못하고 싱숭생숭 이었다.
문틈으로 훔쳐보니 달빛아래 옷을 벗은 채
무엇을 하는지 신음소리까지 들렸다.
영호 역시 술기운에 아랫도리 힘은 들어가고
잠꼬대를 하는지 끙끙대는 소리에 학학거리는
소리에 구경 삼매경에 빠졌다.
호기심에 문틈으로 훔쳐본 것이 흥분의
자극제가 되었다.
사실 영호 역시 아내가 암투병 중에 잠자리를
못했기에 근 5년을 홀아비 아닌 홀아비로
살아야 했다.
그때, 아주머니는 못 견디겠다는 듯이 영호에게
오라는 손짓을 했다.
영호도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 미닫이 문을 열고
건넛방 아주머니 자리로 기어갔다.
문을 넘어가며 영호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여보, 미안해!
나도 어쩔 수 없는 사내인가 봐!
사실 당신 암투병 때문에 오십 대 중반부터
홀아비 아닌 홀아비로 살았잖아!
그러니 나를 용서하시구려!"
아주머니는 남편이 집에 들어오지 않아 오랫동안
과부였고 영호도 아내의 암투병 중엔 홀아비 아닌
홀아비로 살았기에 두 사람은 합궁으로 온몸에
불이 붙어버렸다.
막걸리 덕분에 두 사람은 격정의 밤을 보냈다.
이튿날 아침에 동네 과부들이 아주머니네 집을
지나가며 담 너머로 힐끔힐끔 쳐다보았다.
그것은 도시에서 신사가 왔으니 궁금해서였다.
아주머니는 그것을 알고 미리 영호의 신발을
감추어 놓고 동네 여편네들에겐 시치미를 떼었다.
아침 식사를 마친 아주머니는 영호에게 정색을
하고 입을 떼었다.
제가 여태까지 저 원수 같은 남편과 붙어사는 건
제가 죄를 지었기 때문입니다."
"아니, 무슨 죄를 지었단 말입니까?'
"그게 말입니다.
네 살 베기 아들을 냇가에 데리고 나와서 같이 놀다가
동네 여편네들과 수다를 떠는 중에 그만
아이가 물에 떠내려가서 죽었답니다.
그 이후로 아무리 애를 가지려 해도 임신이
안되었지요!
사실 우리 남편은 저와 같은 도토리 키재기 덩치에
진국은 색시집에서 내지르고 어쩌다 합방이면
토끼처럼 허드레 물만 싸질러놓았으니
임신이 될 리가 만무했지요."
남편은 그 이후로 술과 노름판에 빠져서
타락을 하고 여기저기 돈을 빌려서 저는 지금까지
남의 집 품앗이 일을 해서 남편이 진 빚을 갚았답니다.
이제는 저도 서방이라면 신물이 난답니다."
"오빠,
이제부터는 오빠라고 부를게요!
오빠도 지금부터 저를 그냥 성자라고 부르세요!
어차피 친구 오빠니까 오빠고 또 오늘 우리가
만리장성을 쌓았으니 오빠가 맞잖아요!"
"그래요,
그러다 보니 우리가 그렇게 됐구먼 허허!"
"제발 저를 데려가 주세요!
제가 집안 청소에 식사준비까지 다 할게요!
그리고 시간 날 때마다 식당 일이라도 해서
조금씩 남편이 진 빚을 갚도록 할게요!"
성자는 서울로 따라가려는 욕심에 말을
둘러댔지만 솔직히 어젯밤 잠자리가 너무
황홀해서 무작정 따라가기로 결심을 했다.
성자는 체격 좋은 놈이 낮일도 밤일도 잘한다더니
역시나 속설 그대로였다고 생각했다.
성자는 영호를 따라가기로 결심을 하고
쓸데없는 것은 태워버리고 꼭 필요한 짐을
챙겨서 영호가 온 지 삼일째 되던 새벽에
동네사람 아무도 모르게 떠날 준비를 했다.
어젯밤에도 밤일을 거창하게 치렀던 영호는
깊은 잠에 빠졌으나 성자는 영호를 깨웠다.
"영호 씨,
이제 옷 입고 갑시다."
"아니,
이 밤중에 어디를 갑니까?"
"아이고,
동네사람들 모르게 새벽에 떠나야지요!"
"이 밤에 어디를 갑니까?
난 대낮에도 선황당에 귀신이 나올까 무섭던데요!"
"아이고, 걱정 마세요!
이 동네 사람들은 장날 장터에 다녀올 때면
새벽에 온답니다.
아이고,
체격이 황소 같은 사내가 무슨 겁이 그렇게 많아요!"
여고 다닐 때도 우등생이었고 머리가 좋은
성자는 둘이 떠나고 소문이 날 것에 대비해서
묘안을 짜냈다.
정자는 호야등불에 쓸 기름을 이방 저 방 곳곳에
뿌려두었고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건초더미까지
불이 이어지도록 장작을 덧대어 이어놓았다.
영호와 성자가 선황당 고개를 넘을 때쯤
성자네 집은 불길에 휩싸여 동네가 훤하게
밟았다.
"오빠,
저 집은 내가 태어난 집이지만 남편과 같이 살다가
남편과 별거 같은 생활을 하다가 결국은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집수리를 해세 제가 살았답니다.
우리가 머물렀던 우리 집은 이제는
흔적도 없이 불타서 사라졌어요!
그러니까 이제는 저의 과거도 사라졌답니다.
인생사 1장 2막이라 하잖아요?
그러니까 오늘부터 저와 새로운 삶을
살아요 오빠~!"
영호는 마음속으로 생각을 했다.
죽은 사람만 불쌍하지 산사람은 어떻게 든
살아간다는 말이 꼭 들어맞았다.
둘이는 산길을 넘어 해가 뜨기 전 원주 터미널에
도착해서 서울로 가는 첫차에 올랐다.
서울에 도착한 영호는 택시를 타고 집 앞에
도착해서 잠시 머뭇거렸다.
"그래,
성자의 말대로 인생사 1장 2막이 시작되는 거야!
아내의 기억을 지우기 위해 집을 옮기기를
참 잘했구나!"
둘이는 현관문을 열자마자 뜨거운 포옹을 하고
약속에도 없는 합창이 이어졌다.
"인생사 1장 2막을 위하여,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