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 曾子有疾 召門弟子曰 啓予足 啓予手 詩云 戰戰兢兢 如臨深淵 如履薄氷 而今而後 吾知免夫 小子 증자가 병이 위중하자, 제자들을 불러놓고 말하기를, “내 발을 펴보고 내 손을 펴보아라. <시경>에 이르기를 ‘매우 두려워하고 조심하여 깊은 못에 임한 듯이 얇은 얼음을 밟은 듯이 하라’고 했으니. 지금 이후에야 나는 (부모가 주신 내 몸을 다칠까 하는 근심에서) 벗어난 줄을 알겠다. 제자들아.”라고 하였다.
啓開也 曾子平日 以爲身體受於父母 不敢毁傷 故於此 使弟子開其衾而視之 詩小旻之篇 戰戰恐懼 兢兢戒謹 臨淵恐墜 履氷恐陷也 曾子以其所保之全示門人 而言其所以保之之難如此 至於將死而後 知其得免於毁傷也 小子門人也 語畢而又呼之 以致反復丁寧之意 其警之也 深矣 啓는 연다는 뜻이다. 증자는 평소에 신체는 부모에게서 받았으니 감히 훼손하고 손상시킬 수 없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여기에서 제자들로 하여금 그 이불을 걷고 열어서 자기 몸을 보게 하신 것이다. 시는 소민 편이다. 전전은 두려워하는 것이고, 긍긍은 조심하는 것이다. 못에 임하면 빠질까 두렵고, 얼음을 밟으면 깨질까 두려운 것이다. 증자는 온전하게 보전한 바를 문인들에게 보여주면서, 그것을 보전하기 어려움이 이와 같으니, 장차 죽으려 할 때에 이르러서야 훼손하고 손상시킴을 모면하였음을 아는 것이라고 말한 것이다. 小子란 문인들이다. 말이 끝났어도 다시 불러서 반복하고 간곡한 뜻을 지극히 하였으니, 그들을 경계함이 깊은 것이다.
新安陳氏曰 此字指今病時 與上平日字對 신안진씨가 말하길, “此자는 지금 병이 났을 때를 가리키는 것으로서, 위의 平日이라는 글자와는 대조가 된다.”고 하였다.
新安陳氏曰 述前日常恐難保此身 幸今日得以全保此身也 신안진씨가 말하길, “예전에는 항상 이 몸을 보전하기 어려울까 두려워하였는데, 다행히도 오늘 이 몸을 온전하게 보전할 수 있었다고 서술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
2 | ○ 程子曰 君子曰終 小人曰死 君子保其身以沒 爲終其事也 故曾子以全歸爲免矣 尹氏曰 父母全而生之 子全而歸之 曾子臨終而啓手足 爲是故也 非有得於道 能如是乎 范氏曰 身體猶不可虧也 況虧其行以辱其親乎 정자가 말하길, “군자의 경우는 죽음을 終이라고 말하고, 소인은 死라고 말한다. 군자가 자기 몸을 보전하여 죽는 것을 자기 일을 마치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므로 증자는 온전하게 저 세상으로 돌아가는 것을 책임을 면한 것으로 여긴 것이다.”라고 하였다. 윤씨가 말하길, “부모가 온전하게 낳았으니 아들도 온전한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다. 증자가 임종에 이르러 손과 발을 열어서 보여준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도에 터득한 바가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이와 같이 할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범씨가 말하길, “신체도 오히려 이지러뜨릴 수 없는 것인데, 하물며 자기 행실을 이지러뜨려서 자기 부모를 욕되게 하는 것에 있어서랴!”라고 하였다.
小人曰死 : 見記檀弓乃子張將死之言 예기 단궁에는 도리어 ‘자장이 장차 죽으려 할 적에(子張將死)’라는 말이 보인다.
慶源輔氏曰 終者成其始之辭 死則澌盡泯滅之謂 君子平日以保身爲事 故於將沒可以言終 경원보씨가 말하길, “끝마친다(終)는 것은 그 처음의 뜻을 이룬다는 말이다. 죽는다(死)는 곧 다하여 없어지고 사라진다는 것을 일컫는 말이다. 군자는 평소에 자기 몸을 보호하는 것을 일로 삼기 때문에, 장차 죽으려 할 적에 끝마친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新安陳氏曰 此推廣餘意 形體固全受 德性尤全受之大者 身體雖全德行有虧 不可謂之全歸 尤爲辱親也 記祭義 樂正子春曰 吾聞諸曾子 曾子聞諸夫子曰 父母全而生之 子全而歸之 可謂孝矣 不虧其體不辱其親 可謂全矣 亦謂德行之不可虧也 신안진씨가 말하길, “이것은 그 나머지 뜻을 미루어 넓힌 말이다. 형체는 본래 온전하게 받은 것인데, 德性은 더더욱 온전하게 받은 것 중에서 큰 것이다. 신체가 비록 온전할지라도 덕행에 이지러짐이 있다면, 온전하게 돌아간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이고, 더더욱 부모에게 욕이 되는 것이다. 예기 제의에, 악정자춘이 말하길, ‘내가 증자께 그것을 들었는데, 증자께서는 공자님께 들었다고 하면서 말씀하시길, 부모께서 온전하게 낳아주셨으니, 자식이 온전하게 돌아가야 하는데, 이를 일컬어 효라고 말할 수 있다고 하셨다고 하였다.’고 하였다 한다. 그 몸을 이지러뜨리지 않고 그 부모를 욕되게 하지 않는 것을 일컬어 온전히 한다고 말한 것이니, 역시 덕행을 이지러뜨려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朱子曰 曾子云 戰戰兢兢如臨深淵如履薄氷 此乃敬之意 此心不存 則常昏矣 今有人昏睡 著遇身有痛痒 則蹶然而醒 蓋心所不能已則自不至於忘 中庸戒謹恐懼皆敬之意 주자가 말하길, “증자는 전전긍긍하며 깊은 못에 임한 듯하고, 얇은 얼음을 바밟는 듯이 하라고 말했는데, 이것은 곧 공경한다(敬)는 뜻이다, 이 마음이 보존되지 않으면, 곧 항상 혼미할 것이다. 지금 어떤 사람이 혼미하게 잠을 자다가, 몸에 아픔과 가려움이 있는 지경을 당하면, 곧 깜짝 놀라며 깨어날 것이다. 대체로 마음이 그만 둘 수 없는 바라면, 저절로 잊어버리는 지경에 이르지는 않을 것이다. 중용의 ‘경계하고 삼가며 두려워함’이란 말도 모두 공경한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曾子奉持遺體 無時不戒謹恐懼 直至啓手足之時 方得自免這箇身已 直是頃刻不可不戒謹恐懼 如所謂孝非止是尋常奉事而已 當念慮之微有毫釐差錯 便是悖理傷道 便是不孝 只看一日之間內而思慮 外而應接事物 是多多少少 這箇心略不檢點 便差失了 至危者無如人之心 所以曾子常常恁地 戰戰兢兢 如臨深淵 如履薄氷 증자가 물려받은 몸을 받들어 유지함에 있어 경계하고 삼가며 두려워하지 않은 때가 없었으니, 그저 이불을 들어 내 손과 발을 보라고 말한 때에 이르자 비로소 스스로 그 책임을 면하게 되었을 뿐이다. 이 몸은 이미 한시라도 戒謹恐懼하지 않아서는 안 되는 것이니, 예컨대 소위 孝라는 것이 일상적으로 받들어 섬기는 것에 그침이 아닌 것과 같을 따름이다. 생각하는 것에 조금이라도 약간의 어긋나고 잘못됨이 있다면, 곧바로 이치에 어긋나고 도를 손상시키는 것이자, 곧바로 불효인 것이다. 그저 하루 안에 안으로 생각하고 밖으로 사물에 응접하는 것이 얼마나 많은지 살펴본다면, 이러한 마음을 조금이라도 점검하지 않는다면 곧바로 어긋나고 잘못될 것이다. 지극히 위태로운 것 중에서 사람의 마음만한 것이 없다. 그래서 증자는 항상 이렇게 전전긍긍하면서 깊은 못에 임한 듯이 하였고, 얇은 얼음을 밟는 듯이 하였던 것이다.
南軒張氏曰 曾子當死生之際 其言如此 與易簀之意同 啓手足示保其身而無傷也 戰兢臨履 曾子平日之心 所以爲敬而無失也 至是而知免於戾 所謂全而歸之也歟 남헌장씨가 말하길, “증자가 죽고사는 즈음에 당하여 그의 말이 이와 같았으니, 댓자리를 바꾸는 일과 그 뜻이 같았다. 이불을 열어 손과 발을 보게 한 것은 자기 몸을 보전하여 상하게 함이 없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전전긍긍하며 깊은 못에 이른 듯이 하고 얇은 얼음을 밟는 듯이 한 것은 증자의 평소 마음이었다. 따라서 공경함을 행하되 잘못이 없었던 것이다. 이에 이르러 어그러짐을 면한 것을 알았다고 한 것은 이른바 온전히 하여 돌아간다는 것을 알았다는 것이리라!”라고 하였다.
慶源輔氏曰 父母全而生之 子全而歸之 此祭義所載 曾子述孔子之言也 今若此 可謂非苟知之 亦允蹈之矣 曾子平日見道明信道篤 故能始終不息如此 경원보씨가 말하길, “부모께서 온전하게 낳아주셨으니, 자식도 온전하게 돌아가야 하는 것이다. 이것은 예기 제의에 실린 말인데, 증자가 공자님의 말씀을 전술한 것이다. 지금 이와 같다면, 그저 이를 알 뿐만 아니라 또한 진실로 그것을 실천하였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증자는 평소에 도를 알아봄이 명확하였고 도를 믿는 것이 독실하였으므로, 능히 처음부터 끝까지 쉬지 않음이 이와 같을 수 있었던 것이다.”라고 하였다.
西山眞氏曰 曾子之啓手足也 蓋以爲知免矣 而易簀一節 猶在其後 使其終於大夫之簀 猶爲未正也 全歸之難如此 學者其可不戰兢以自省歟 서산진씨가 말하길, “증자가 이불을 열어 손과 발을 보게 한 것은 대체로 스스로 면했음을 알았다고 여겼기 때문이나, 댓자리를 바꾼 한 節이 그래도 그 후에 있었으니, 만약 그가 대부의 댓자리에서 생을 끝마쳤더라면, 여전히 올바르지 않았을 것이다. 온전히 돌아가는 어려움이 이와 같으니, 배우는 자가 어찌 전전긍긍하여 스스로를 살피지 않아서야 되겠는가?”라고 하였다.
雲峯胡氏曰 范氏正恐學者但以曾子不虧其身而已 則將有僥倖苟免之意 故又特以不虧其行申言之 所以厲中人也 曾子嘗曰 仁以爲己任 死而後已 至此可謂能實踐其言矣 운봉호씨가 말하길, “범씨는 바로 학자들이 단지 증자가 자기 몸을 이지러뜨리지 않았다는 것만 가지고서, 장차 요행히 구차하게 면하려는 뜻을 가질까 두려워하였다. 이 때문에 다시 특별히 그 행실도 이지러뜨리지 않는다는 것을 가지고 거듭 말했던 것이니, 이는 중인들을 면려한 것이었다. 증자는 일찍이 말하길, 仁을 자기의 소임으로 여기고 죽은 뒤에서야 그만 둔다고 하였으니, 여기에 이르면, 자신의 말을 능히 실천하였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