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오지 않는 2026. 5월을 보내면서---
젊은 날에는 세상을 이겨야 하는 줄 알았다. 억울하면 끝까지 따져야 했고, 잘못된 것은 반드시 바로잡아야 속이 시원했다. 그래서 늘 마음속에 분노 하나쯤 품고 살았다. 세상 돌아가는 일에 화를 내고, 사람들에게 실망하고, 현실과 맞서며 살아온 날들이었다.
그러나 세월은 사람을 조금씩 바꾸어 놓는다. 그렇게 강했던 마음도 어느 날 문득 지쳐버린다. 끝까지 붙들었던 미움도 시간이 지나니 재처럼 흩어지고, 이기고도 허무한 순간들이 많아졌다. 무엇보다 힘겨웠던 것은 세상과의 싸움보다 내 마음속 분노와의 싸움이었다.
그래서인지 요즘은 유튜브 뉴스나 시사 이야기도 예전처럼 오래 붙들고 있지 않는다. 세상 소식을 모르자는 것이 아니다. 다만 좀처럼 고쳐지지 않는 현실에 분노하며 귀한 시간을 보내기에는 남은 인생이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그동안 음으로 양으로 걱정도 하고, 해야 할 말도 충분히 해왔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우리 세대의 걱정도 지나친 노파심일지 모른다. 시대는 변하고 세상은 언제나 다음 세대의 몫이 되어 흘러간다. 젊은 아들들과 젊은 세대를 이제는 조금 믿어보려 한다. 부족해 보여도 그들 또한 자기 방식으로 세상을 배우고, 아파하고, 길을 찾아갈 것이다. 우리 역시 젊은 날에는 서툴렀고 흔들리며 여기까지 오지 않았던가. 사실 지금도 그동안 내가 굳게 믿었던 정의와 신념이 최선이었나하는 회의도 가끔은 느낀다.
오늘도 세상일에 분노하며 밤잠을 설치는 친구들이 있다면 이제는 조금 내려놓자고 말하고 싶다. 우리 남은 인생만큼은 서로 얼굴 붉히며 싸우기보다, 좋은 벗들과 웃으며 살아가는 시간이 더 소중하지 않겠는가. 이제는 함께 산을 찾아 들꽃을 바라보고, 바다를 찾아 파도 소리를 들으며 살아가자. 말없이 흐르는 강물과 끝없이 펼쳐진 수평선을 바라보다 보면, 마음속 응어리들도 조금씩 풀려나가는 것을 느끼게 된다.
젊은 날에는 성공이 행복인 줄 알았다. 더 높이 올라가야 하고, 더 많은 것을 이루어야 인생이 빛나는 줄 알았다. 그러나 긴 세월을 지나고 보니 사람을 끝내 행복하게 만드는 것은 거창한 성공이 아니었다. 마음 편히 웃을 수 있는 벗 몇 사람과 어울려 김치찌개 먹으러도 가고. 오늘 하루 무사히 저무는 저녁노을, 그리고 욕심 없이 잠들 수 있는 평온한 마음이었다.
산은 말없이 많은 것을 가르쳐 주고, 바다는 아무 말 없이도 사람의 마음을 품어준다. 그래서일까. 나이가 들수록 사람은 다시 자연을 그리워하게 된다. 이런 마음으로 마음 편한 동무들과 강릉나들이방을 만들어 둘레길도 찾고 바다로 간다.
강물은 쉼 없이 흐르지만 지나간 물을 붙잡지 않는다. 사람도 그렇게 살아야 하는 것인지 모른다. 지나간 분노와 미움은 강물에 띄워 보내고, 남은 세월만큼은 조금 더 따뜻하고 평온하게 살아가는 것. 어쩌면 그것이 늙어가는 사람이 마지막에 배우게 되는 삶의 지혜인지도 모르겠다.
(26. 5 - 백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