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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202
#적그리스도
적그리스도가 되기 위한 조건으로는 성경을 잘 알아야된다는것과 성경대로 행하지 않는다는것과 큰 영향력을 모두 갖춰야한다.시대별로 구분하자면,예수님과 사도들의 시대에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과 대제사장들이,교부시대에는 온갖 이단 우두머리들이,신앙개혁 시대에는 교황을 비롯한 로마교 사제들이 당대의 적그리스도들이었다.그러나 시대적인 적그리스도들은 그 시대가 지나면 교회와 성도들에게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로마교 또한 신앙개혁 이후 수백년의 기간동안에 그리스도교와 너무많이 벌어져서 서로 다른 종교가 되다시피 했기 때문에 더이상 교회의 적그리스도라고 치부하지 못한다.그렇다고 그들과 무언가 하나가 되고자 공통점 찾기위해 교류해도 된다는 것은 아니다.그렇다면 지금 시대에는 적그리스도를 다른데서 찾아야하는 것이 당연지사인데,적어도 우리나라에서 앞의 세 조건을 모두 만족시키는 적그리스도는 교회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이름이 잘 알려져있고 영향력이 있는 거짓목사들이라 할 수 있다.
#벨기에신앙고백서 15.#원죄 (3)
It is therefore so vile and enormous in God's sight that it is enough to condemn the human race, and it is not abolished or wholly uprooted even by baptism, seeing that sin constantly boils forth as though from a contaminated spring.
그러므로 이 원죄는 하나님 보시기에 전 인류를 정죄하실 정도로 너무나 사악하고 막대한데다가, 세례로도 무효화 되지도, 전부 근절되지도 않으므로, 마치 오염된 샘과 같이 온갖 죄를 뿜어내는 것을 봅니다.
Nevertheless, it is not imputed to God's children for their condemnation but is forgiven by his grace and mercy-- not to put them to sleep but so that the awareness of this corruption might often make believers groan as they long to be set free from the "body of this death."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하심으로 그들이 받을 정죄함이 전가되지 않고 용서를 받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은 자녀들을 잠자는 자로 내버려 두지 않으시고 자신들의 부패함을 인식하게 함으로써 믿는 자녀들이 종종 “이 사망의 몸”에서 건짐 받기를 신음하면서 고대하게 하십니다.
아담과 하와가 범죄하기 전에는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선하심만 알면 되었을 뿐 굳이 악이 무엇인지 알 필요가 전혀 없었다. 그러나 그들이 선악과를 먹은 이후로는 악이란 것이 무엇인지를 스스로 체험함으로써 그 실체에 대해 알게 된 반면에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선하심은 더이상 현재의 체험으로가 아니라 과거의 지식으로만 남겨지게 되었다. 그리고 역설적이게도 그들의 자손들은 처음부터 원죄 가운데서 태어났기 때문에 하나님과 그리스도께로부터 기원하는 참된 선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하게 되었고, 죄악에 대해서도 그것이 정말로 악한 것인지 분별하지 못하고 혼동하는 상태가 됨으로써 선악과의 본래의 효과를 누리지 못하게 되었다. 즉, 선악과의 본래 효과인 선악에 대한 지식은 아담과 하와 당사자에게만 잠시 주어졌었던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과 그리스도께서는 창세 전에 구원하시기로 선택하신 성도들에게는 성령을 보혜사로 보내시고 그들의 영을 거듭나게 하심으로써 선과 악을 참되게 분별할 수 있게 하셨다. 그러나 성도들이 성령으로 거듭났다고 하는 것은 죄악된 본성에서 해방되어 완전하게 선한 존재로 탈바꿈하게 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이 땅에서 살아가는 동안 얼마나 될지는 알지 못하더라도 그리스도께서 정하신 분량까지 지속적으로 점진적으로 자라가는 시작 단계에 접어든 것이다. 따라서 성도들은 신앙생활을 하면 할수록 이전보다 더 폭넓게 선악을 분별할 수 있게 되는데, 안타깝게도 육체까지 거듭나게 되는 것은 아니라서 마음은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선을 행하고자 하여도 육신이 연약하여 하지 못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함을 깨닫게 된다. 또한 여전히 영혼과 육체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죄성의 영향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과, 자신의 죄성이 처음보다 더 가면 갈수록 뿌리 깊은 것을 보게 되므로 사도 바울처럼 스스로 곤고한 사람이며 사망의 늪에서 어떻게 빠져나올 수 있을까 뼈저리게 탄식하게 마련이다.
하나님과 그리스도만을 믿는 것으로 만족했던 나 자신의 모습 속에서 갈수록 하나님과 그리스도가 아닌 세속적인 것을 자꾸만 추구하고 의지하려는 것을 보고서는 탄식에 빠지게 된다. 다른 종교의 조각상들은 물론이거니와 기독교나 천주교에서의 예수상과 마리아상 등도 우상이라 여겨 거들떠도 보지 않는 것으로 만족했던 나 자신에게서 가면 갈수록 육체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들에 마음을 빼앗기는 것을 발견하고서는 어쩔줄 몰라하며 애통하게 된다. 하나님, 여호와, 성부와 성자와 성령,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호칭을 매우 조심스럽게 대하는 것으로 만족했던 나 자신에게서 성경의 문구로 시덥잖은 농담이나 하는 것을 보면서 걱정하게 된다. 일요일마다 빠지지 않고 꼬박꼬박 교회에 나가 예배와 봉사를 하는 것으로 만족했던 나 자신에게서 일요일에 교회 이외의 장소와 시간에서는 유흥을 즐기고 상품 거래와 소비와 기타 잡다한 일들을 하는 것을 보면서 부끄럽게 여기게 된다. 더 나아가서 평일에도 매 순간을 하나님과 그리스도 앞에 산 제사로 드리지 못하는 것에 신음하게 된다. 예전에는 부모가 내 의사랑 상관없이 나를 낳았으니 키우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제대로 양육받지 못하면 부모자식 관계를 단절해도 된다고 생각했으나, 이제는 부모가 아니었다면 영생을 얻는 거듭남의 기회도 얻지 못했을 것을 알고 감사하면서도 더 공경을 하지 못하는 것이나 과거에 부모에게서 받은 부정적인 경험들 때문에 관계 회복에 주저하는 자신을 보면서 슬픔에 젖기도 한다. 예전에는 사이가 안좋은 상대에게는 직접적이거나 겉으로 드러나는 가해만 주지 않으면 된다고 여겼으나, 이제는 그런 사람들을 여전히 깊게 증오하는 나 자신의 모습을 탄식하게 된다. 예전에는 나에게 해악을 끼친 자들에게 그대로 또는 더 크게 보복하는 것을 정의라 여겼으나, 이제는 그러한 보복을 여전히 주님께 온전히 맡기지 못하고 복수심에 젖어있는 나 자신의 모습에 괴로워한다. 예전에는 국가지도자나 정부가 저지르는 불법과 불의에 물리적으로 시위하고 규탄하며 심지어 저주와 조롱과 악담을 하는 것을 당연한 정의라고 여겼으나, 이제는 정부의 불법과 불의에도 잠잠히 애통하며 도리어 마음에 안드는 지도자를 위해서 축복과 선한 기도를 해야하는데도 그러지 못하는 자신의 모습에 탄식하게 된다. 육체적으로 실질적인 불륜이나 성범죄만 저지르지 않으면 혼전 성관계 정도는 괜찮지 않겠느냐고 여겼던 것에서, 이제는 끊임없이 음욕이 끓어오르는 나 자신을 보면서 경악을 금치 못하게 된다. 사회법으로 금지된 절도나 강도만 저지르지 않는 것으로 만족했던 것에서, 이제는 여전히 물질적인 유익을 한푼이라도 더 얻고자 편법을 쓰려는 자신에게 환멸을 느끼게 된다. 악의적인 거짓말만 하지 않으면 된다고 생각했던 것에서, 이제는 설령 선의의 거짓말이라 하더라도 혹여나 하게 될까봐 근심하게 된다. 나에게 없는 것을 남이 가지고 있는 것에 드러내놓고 시기 질투만 안하면 되었으나, 이제는 내 마음속에 여전히 남이 가지고 있는 것들을 내 것인 것처럼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내 모습에 좌절하기도 한다. 건강과 재산을 잃었을 때에는 이것들이 다시 회복된다면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더 많이 헌신하겠노라고 다짐하지만서도, 정작 어느 정도 회복되고 나면 자기자신의 육체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위해 거의 대부분을 쓰고 소위 주님의 영광을 위한 일에는 체면치레 정도만 하게 되는 모습에 낙담하기도 한다. 행동으로 섬기는 신자들은 성경지식을 소홀히 여기고, 성경지식에 탁월한 신자들은 행동으로만 섬기는 신자들을 무식하다고 무시한다.
그럼에도 주님께서는 이러한 성도들의 신앙의 탄식을 버리지 않으시고 하나하나 다 귀담아 들으셔서 우리의 영에 거하시는 성령을 통해 성경을 깨닫게 하셔서 우리로 하여금 당신을 바라보게 하신다. 그래서 성도들은 한편으로는 자신의 모습속에서 곤고함을 느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주님 안에서 영원불변하는 구원의 확실한 소망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Therefore we reject the error of the Pelagians who say that this sin is nothing else than a matter of imitation.
그러므로 우리는 이 원죄를 그저 죄를 모방하는 성향 외에 아무 것도 아니라고 말하는 펠라기우스주의자들의 오류를 거부합니다.
사람의 죄가 단지 다른 사람과 환경으로 인한 모방과 학습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결국 거슬러 올라가서 아담과 하와의 죄책을 하나님과 그리스도께 돌리고 주님을 범죄자로 취급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왜냐하면 그들의 범죄는 다른 누군가의 범죄를 보고 따라해야 하는데, 그들 이외에는 그리스도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20220202
#요한계시록 #Revelation 1:5-8
5 또 忠誠된 證人으로 죽은 者들 가운데에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恩惠와 平康이 너희에게 있기를 願하노라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罪에서 우리를 解放하시고
and from Jesus Christ, who is the faithful witness, the firstborn from the dead, and the ruler of the kings of the earth. To him who loves us and has freed us from our sins by his blood,
et a Jesu Christo, qui est testis fidelis, primogenitus mortuorum, et princeps regum terræ, qui dilexit nos, et lavit nos a peccatis nostris in sanguine suo,
καὶ ἀπὸ Ἰησοῦ Χριστοῦ, ὁ μάρτυς ὁ πιστός, ὁ πρωτότοκος τῶν νεκρῶν καὶ ὁ ἄρχων τῶν βασιλέων τῆς γῆς. Τῷ ἀγαπῶντι ἡμᾶς καὶ λύσαντι ἡμᾶς ἐκ τῶν ἁμαρτιῶν ἡμῶν ἐν τῷ αἵματι αὐτοῦ,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사람으로서도 하나님의 영원하신 독생자이시면서도 이 땅에서 친히 구속사역을 담당하시면서 보이지 않으시는 하나님을 충성스럽게 증언하셨다.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을 증언하신 것은 다른 누구에게서 듣거나 보거나 체험한 것이 아니라 영원 전부터 성자 하나님과 연합하심으로써 삼위일체 하나님의 모든 것을 스스로 아신 것들이었다. 성령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인성의 영에 영원 전부터 완전충만하게 거하시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인성은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신 분이시다. 구약 시대에도 몇몇 선지자들에 의해서 죽었다가 살아난 자들도 있었고 예수님과 사도들도 몇몇 죽은 자를 살리신 바 있으시지만 그들이 살아난 것은 자신들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 그리스도의 능력에 힘입어서 살아난 것이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독생자로서 하나님이신 성자와 연합하신 분으로서 하나님이신 성령께서 완전충만히 거하신 분으로서 스스로의 능력으로써 살아나셨기 때문에 죽은 자들 가운데에서 먼저 부활하신 분이시라 할 수 있다. 또한 성도들은 비록 육신으로는 죽어도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심판주로 오시는 마지막 날에 영광스럽게 부활하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죽은 성도들 가운데에서 먼저 부활하신 분이시다. 한편 믿지 않는 자들은 육체로도 죽고 마지막 날에는 심판을 위해 불명예스럽게 부활하게 되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심판받을 자들에 대해서도 심판의 주로서 먼저 부활하신 분이시다. 땅의 임금들은 세상의 군주들과 통치자들을 비롯해서 교회와 교회 지도자들과 왕 같은 제사장이라 불리는 성도 각자와 심지어 공중권세 잡은 마귀들의 세력까지도 모두 아우른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다는 것은 지금 계신 셋째 하늘뿐만 아니라 태초에 창조하신 물질 세계 전체의 주가 되신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편 하나님의 영원하신 독생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물질 세계의 주가 되신다는 것은 영은 고결하고 육은 미천하다는 영지주의식 신앙을 배격하고 우리가 육신으로 감각할 수 있는 물질 세계도 하나님과 그리스도께는 매우 귀중한 소유물임을 가르친다. 사람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따라 지어진 사람도 보이지 않는 영혼과 보이는 육체의 연합체이고 사람의 영혼은 육체가 아니고서는 아무것도 행할 수 없으므로 사람의 육체 또한 비록 땅의 흙으로 지음받았다 하더라도 영혼과 동등하게 고귀한 취급을 받아 마땅하다. 우리에게 물질 세계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은혜와 평강이 있어야 하는 이유는 우리가 아무리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존재라 하더라도 죄악된 세상에서는 복음을 위해 많은 고난과 핍박과 환난을 겪어야 하기 때문이다. 세상의 기준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 것들도 성경과 성령의 기준으로는 명백히 죄가 되는 것들이 많으므로 그리스도인의 삶은 세상이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힘들수밖에 없다. 따라서 우리가 세상에서의 고난을 넉넉히 이길 수 있으려면 당연히 이 죄악된 세상마저도 통치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평강이 필수적일 수 밖에 없다. 우리를 향하신 그리스도의 사랑은 창세 전 그분 자신 안에서 구원하시기로 선택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에 기인하며 하나님의 사랑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므로 영원불멸한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인류를 사랑하신 것이 아니라 오로지 당신의 보혈로 구원하신 백성과 자녀들만을 사랑하시는데 그들이 인류의 조상인 아담과 하와가 저지른 범죄와 이로 인한 자기 스스로의 범죄로 영원한 멸망을 당할 지경에 처했으므로 그리스도께서는 당신 자신의 피를 흘리심으로써 영원 전부터 택하신 백성들의 모든 죄를 씻어주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 땅에 태어나신 어느 순간에 별안간 당신 자신이 행하실 구속사역을 인지하신 것이 아니라, 그분의 인성 자체가 창세 전 영원 전부터 삼위일체 하나님과의 구원협약을 맺으셨기 때문에 창세 이후로 한시라도 그 사역을 잊어보신 적이 없으셨던 것이다. 그러한 그리스도의 피흘리신 구속사역으로 말미암아서 구약 성도들은 생전에 볼 수 없었던 구원이 드디어 성취되었음을 알고 기뻐하였고 신약 성도들은 구원의 확신으로 하늘 나라를 소망하며 살아갈 수가 있는 것이다.
6 그의 아버지 하나님을 爲하여 우리를 나라와 祭司長으로 삼으신 그에게 榮光과 能力이 世世토록 있기를 願하노라 아멘
and has made us to be a kingdom and priests to serve his God and Father--to him be glory and power for ever and ever! Amen.
et fecit nos regnum, et sacerdotes Deo et Patri suo : ipsi gloria et imperium in sæcula sæculorum. Amen.
καὶ ἐποίησεν ἡμᾶς βασιλείαν, ἱερεῖς τῷ Θεῷ καὶ Πατρὶ αὐτοῦ, αὐτῷ ἡ δόξα καὶ τὸ κράτος εἰς τοὺς αἰῶνας τῶν αἰώνων· ἀμήν.
사람으로나 하나님으로나 하나님의 영원하신 독생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당신 자신의 피를 흘리심으로써 우리를 우리의 죄에서 해방시키신 이유는 다름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참 아버지이신 하나님의 나라와 권세와 영광을 위하셨기 때문이었다. 이는 미처 성도인 우리조차도 인식하지 못하는 우리 자신이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께 얼마나 귀하고 소중한 존재인지를 드러내준다. 사도 베드로가 성도들을 가리켜 하나님께서 택하신 족속이고 왕 같은 제사장이라 한 것은 사도 요한이 기록한 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하나님 아버지의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셨다고 한 것과 같은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신성으로나 인성으로나 하나님의 영원하신 독생자이시므로 사람으로서도 하나님의 모든 영광과 능력이 영원히 있으시기 때문에 우리가 그러기를 원한다 하더라도 더 채워지거나 증가하거나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한정된 언어와 인식으로는 그렇게밖에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찬양할 수 밖에 없으므로 우리는 황송함을 무릅쓰고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찬양하는 것이며 감사하게도 하나님과 그리스도께서는 그런 우리의 부족한 찬양도 기쁘게 받아주신다.
7 볼지어다 그가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各 사람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者들도 볼 것이요 땅에 있는 모든 族屬이 그로 말미암아 哀哭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
"Look, he is coming with the clouds," and "every eye will see him, even those who pierced him"; and all peoples on earth "will mourn because of him." So shall it be! Amen.
Ecce venit cum nubibus, et videbit eum omnis oculus, et qui eum pupugerunt. Et plangent se super eum omnes tribus terræ. Etiam : amen.
Ἰδοὺ ἔρχεται μετὰ τῶν νεφελῶν, καὶ ὄψεται αὐτὸν πᾶς ὀφθαλμὸς καὶ οἵτινες αὐτὸν ἐξεκέντησαν, καὶ κόψονται ἐπ’ αὐτὸν πᾶσαι αἱ φυλαὶ τῆς γῆς. ναί, ἀμήν.
예수 그리스도께서 구름을 타시고 승천하실 때 천사들은 그분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어찌할줄 모르는 제자들에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늘로 올리신 그대로 강림하실 것이라고 훈계한다. 그 때는 단지 수백여 명의 제자들만 주님의 승천을 목격했지만 마지막 날에는 지구의 온 세계 사람들이 구름을 타시고 강림하시는 심판주 예수 그리스도를 목격하게 된다. 예수 그리스도를 찌른 자들이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때 직접 그분을 채찍질하고 찌른 군병들과 그분을 십자가에 넘겨준 유대 종교지도자들과 온 유대인들과 본디오 빌라도는 물론이고 아벨을 죽인 가인부터 세상 끝날까지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대적하여 교회와 성도들을 괴롭히고 핍박한 모든 대적자들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다메섹에서 사울에게 나타나셔서 사울이 성도들을 핍박한 것이 곧 당신 자신을 핍박한 것이라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란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와 성도들을 직접적으로 대적하지는 않더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오직 유일한 구원자로 믿지 않은 모든 자들과 형식적으로는 교회에 속하였다 하더라도 내면적으로는 참되게 그리스도를 믿고 순종하지 않는 외식하는 자들을 의미한다. 아무리 탁월한 도덕성을 갖췄다 하더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독생자이시며 유일하신 구원자로 믿지 않는다면 설령 인간 사회에서는 존경과 명예와 유익을 얻을 수 있을지는 몰라도 하나님 나라에는 들어갈 수 없고 영원한 불못에 던져질 뿐이다. 또한 교회에서 아무리 외적으로 경건하고 헌신된 모습을 보이더라도 성경과 성령의 원리가 아니라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위해 하는 자들은 거짓 목사, 거짓 신자로 판명되어 주님께로부터 알지 못하는 범법자로 판결받게 된다. 대적자와 불신자들과 거짓 목사와 거짓 신자들은 그리스도의 강림하심을 보면서 자기들의 돌이킬 수 없는 영원한 멸망을 인식하게 되므로 그들에게 남은 것은 오로지 슬피 울며 이를 가는 것 밖에는 없다. 지구는 둥글고 전 세계 각지에 퍼져 사는 사람들은 낮과 밤이 다르고 활동 시간이 다르고 심지어 계절까지 다른데도 불구하고 사람의 육체를 가지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구름을 타고 강림하시면서 전세계 모든 사람들에게 동시다발적으로 보이실 수 있으신가 하는 의문이 생길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상식적으로 선이 점을, 면이 점과 선을, 입체가 점과 선과 면을 포함한다는 것을 알고 있듯이,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은 이 땅의 낮은 차원이 아니라 사도 바울이 체험한 셋째 하늘에 속한 차원조차도 뛰어넘는 차원의 존재이시기 때문에 물리법칙으로는 불가능한 동시다발적인 강림하심이 가능하시다.
8 主 하나님이 이르시되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前에도 있었고 將次 올 者요 全能한 者라 하시더라
"I am the Alpha and the Omega," says the Lord God, "who is, and who was, and who is to come, the Almighty."
Ego sum alpha et omega, principium et finis, dicit Dominus Deus : qui est, et qui erat, et qui venturus est, omnipotens.
Ἐγώ εἰμι τὸ Ἄλφα καὶ τὸ Ὦ, λέγει Κύριος ὁ Θεός, ὁ ὢν καὶ ὁ ἦν καὶ ὁ ἐρχόμενος, ὁ Παντοκράτωρ.
사람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영원 전부터 하나님이신 성자와 연합하시고 하나님이신 성부의 독생자이시며 하나님이신 성령께서 인성의 영에 한량없이 완전충만하게 거하시므로 사람으로서도 주 하나님이라 불리심이 마땅하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알파와 오메가이시라는 것은 하나님으로서 뿐만 아니라 사람으로서도 성육신 때가 처음이 아니라 세상의 처음과 마지막이시라는 뜻이다. 그분이 이제도 계시다는 것은 지금 이 순간에도 당신 자신의 영이신 성령을 우리에게 보내시고 역사하신다는 것이다. 그분이 전에도 계셨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으로서 뿐만 아니라 사람으로서도 성육신 전 구약 시대 뿐만 아니라 창세 전부터 계셨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사람으로서 아담과 함께 동산을 거니셨고 모세에게는 등을 보이셨으며 이사야와 에스겔과 다니엘 같은 선지자들에게는 영광의 인자의 모습으로 나타나셨고 아브라함과 기드온과 마노아 같은 인물들에게는 이 땅의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나셨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영원하신 독생자로서 하나님께로부터 모든 전권을 받으셨기 때문에 그분의 눈에 보이는 인성이 직접 눈에 보이지 않으시는 하나님을 대신하여 심판주로 오시는 것이다. 그분의 인성이 하나님께로부터 모든 권세를 받으셨으므로 그분의 인성 또한 하나님으로서 전능하시다.
#20210202
#민수기 #Numbers 34:1-29
가나안 땅의 경계
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그들에게 이르라 너희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때에 그 땅은 너희의 기업이 되리니 곧 가나안 사방 지경이라
3 너희 남쪽은 에돔 곁에 접근한 신 광야니 너희의 남쪽 경계는 동쪽으로 염해 끝에서 시작하여
4 돌아서 아그랍빔 언덕 남쪽에 이르고 신을 지나 가데스바네아 남쪽에 이르고 또 하살아달을 지나 아스몬에 이르고
5 아스몬에서 돌아서 애굽 시내를 지나 바다까지 이르느니라
6 서쪽 경계는 대해가 경계가 되나니 이는 너희의 서쪽 경계니라
7 북쪽 경계는 이러하니 대해에서부터 호르 산까지 그어라
8 호르 산에서 그어 하맛 어귀에 이르러 스닷에 이르고
9 그 경계가 또 시브론을 지나 하살에난에 이르나니 이는 너희의 북쪽 경계니라
10 너희의 동쪽 경계는 하살에난에서 그어 스밤에 이르고
11 그 경계가 또 스밤에서 리블라로 내려가서 아인 동쪽에 이르고 또 내려가서 긴네렛 동쪽 해변에 이르고
12 그 경계가 또 요단으로 내려가서 염해에 이르나니 너희 땅의 사방 경계가 이러하니라
13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이는 너희가 제비 뽑아 받을 땅이라 여호와께서 이것을 아홉 지파 반 쪽에게 주라고 명령하셨나니
14 이는 르우벤 자손의 지파와 갓 자손의 지파가 함께 그들의 조상의 가문에 따라 그들의 기업을 받을 것이며 므낫세의 반쪽도 기업을 받았음이니라
15 이 두 지파와 그 반 지파는 여리고 맞은편 요단 건너편 곧 해 돋는 쪽에서 그들의 기업을 받으리라
각 지파의 기업 분할 책임자
16 여호와께서 또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17 너희에게 땅을 기업으로 나눌 자의 이름은 이러하니 제사장 엘르아살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니라
18 너희는 또 기업의 땅을 나누기 위하여 각 지파에 한 지휘관씩 택하라
19 그 사람들의 이름은 이러하니 유다 지파에서는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요
20 시므온 지파에서는 암미훗의 아들 스므엘이요
21 베냐민 지파에서는 기슬론의 아들 엘리닷이요
22 단 자손 지파에서는 지휘관 요글리의 아들 북기요
23 요셉 자손 중 므낫세 자손 지파에서는 지휘관 에봇의 아들 한니엘이요
24 에브라임 자손 지파에서는 지휘관 십단의 아들 그므엘이요
25 스불론 자손 지파에서는 지휘관 바르낙의 아들 엘리사반이요
26 잇사갈 자손 지파에서는 지휘관 앗산의 아들 발디엘이요
27 아셀 자손 지파에서는 지휘관 슬로미의 아들 아히훗이요
28 납달리 자손 지파에서는 지휘관 암미훗의 아들 브다헬이니라 하셨느니라
29 이들이 여호와께서 명령하사 가나안 땅에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기업을 받게 하신 자들이니라
여호와께서는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에게 가나안 땅의 사방 경계를 지정하신 후에 지파별로 기업을 분배할 총책임자로 제사장 엘르아살과 모세의 뒤를 이어 백성을 인도할 여호수아를 지정하시고 지파별로 한 지휘관씩 열두 명을 지정하신다. 40년 전 가나안 땅을 정탐한 정탐꾼 열두 명은 백성들이 임의로 지정하였다가 신실하지 못한 열 명의 악평으로 인해 선동되어 땅을 얻지 못하였다. 그러나 이제는 여호와께서 기업을 분배받을 지휘관들을 신실한 자들로 직접 지정하심으로써 화근의 여지를 남기지 않으신다. 40년 전 정탐꾼이었던 갈렙은 믿음으로 죽지 않고 살았으므로 이번에도 유다지파의 지휘관으로 선정된다. 여호수아는 에브라임 지파이나 모세의 후계자로서 백성 전체를 인도해야 하므로 그므엘이라는 신실한 자가 지휘관으로 선정되었다.
#민수기 #Numbers 35:1-8
레위 사람에게 준 성읍
1 여호와께서 여리고 맞은편 요단 강 가 모압 평지에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그들이 받은 기업에서 레위인에게 거주할 성읍들을 주게 하고 너희는 또 그 성읍들을 두르고 있는 초장을 레위인에게 주어서
3 성읍은 그들의 거처가 되게 하고 초장은 그들의 재산인 가축과 짐승들을 둘 곳이 되게 할 것이라
4 너희가 레위인에게 줄 성읍들의 들은 성벽에서부터 밖으로 사방 천 규빗이라
5 성을 중앙에 두고 성 밖 동쪽으로 이천 규빗, 남쪽으로 이천 규빗, 서쪽으로 이천 규빗, 북쪽으로 이천 규빗을 측량할지니 이는 그들의 성읍의 들이며
6 너희가 레위인에게 줄 성읍은 살인자들이 피하게 할 도피성으로 여섯 성읍이요 그 외에 사십이 성읍이라
7 너희가 레위인에게 모두 사십팔 성읍을 주고 그 초장도 함께 주되
8 너희가 이스라엘 자손의 소유에서 레위인에게 너희가 성읍을 줄 때에 많이 받은 자에게서는 많이 떼어서 주고 적게 받은 자에게서는 적게 떼어 줄 것이라 각기 받은 기업을 따라서 그 성읍들을 레위인에게 줄지니라
레위 지파는 모든 지파들 중에서 가장 인구도 적고 오로지 제사와 성막 복사로만 성별 되어서 아무런 전투에 참여하지 않기 때문에 가나안 땅을 지파 명의로 할당 받지 못하고 다만 다른 지파들로부터 조금씩 제공받기만 한다. 이는 레위인들에게는 특별히 신령한 직무가 맡겨진 만큼 땅의 것에 지나치게 욕심을 부리지 말고 형제들이 제공하는 일용할 양식으로 만족하라는 것을 암시하는 것 같다. 아울러 레위 지파에게 성읍들과 초장을 제공해야 하는 다른 지파들에게는 비록 레위인들이 자기들처럼 가나안 정복 전쟁에 참여하지는 않는다 해도 눈에 보이는 아무런 공로가 없다 하여 무시하거나 외면해서는 안되고 그들이 신령한 직분을 가졌다는 것과 애굽에서의 유월절을 떠올리며 자기들의 장자들이 레위인들로 대속되었음을 감사하며 그들의 일용할 양식을 기꺼이 책임져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는 것 같다. 레위인들에게는 48성읍과 사방 2천 규빗의 목초지가 주어졌다는 것은 그것보다 더 줘서 레위인들로 하나님이 누구냐 하지 못하도록 하고 그것보다 덜 줘서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히는 일이 없게 하라는 의미인 것 같다. 이는 오늘날 교회에도 동일한 원리로 적용이 가능하다. 교회를 전적으로 섬기는 목회자들에게는 그들이 오로지 목회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필요한 재정이 제공되어야 한다. 그러나 교회 재정이 풍부하다 해서 필요 이상의 재정을 목회자에게 제공하면 재물에 취해 하나님이 누구냐 하게 되고 반대로 필요한 재정을 제공하지 않으면 목회자도 생계를 유지해야 하므로 다른 경제활동을 하느라 목회에 집중하지 못하게 되므로 반드시 균형을 맞춰야 한다. 한편 목회자 또는 지망생들은 목회 소명과 더불어 현실적인 재정 상황을 냉정하게 따져봐서 생계로 인해 도저히 목회에 전념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차라리 목회를 중단하고 생계에 전념하는 것이 타당하다.
#20190202 #순종
누군가 나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능동/수동적 순종에 대해 물어보거나 설명해달라고 한다면, 난 그것에 대해 알지도 못하고 설령 알고 있다고 해도 설명하고 싶지도 않다고 할 것이다.
다만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에 대해 알고 고백하는 바는, 그분의 신성으로는 성부 성자 성령 삼위간의 신비한 교통에 따라 성부께 순종하시며, 그분의 인성으로는 자신의 영혼의 자유의지에 따라 억지로나 강요로써가 아닌, 전적으로 자발적이고 의지적으로 순종하셨다고 고백할 뿐이다.
그러나 이 땅에 계실 때 그분의 인성은 비록 죄는 없으시더라도 연약한 가운데 계셨기 때문에, 그분의 인성이 죄에 빠지지 않도록 그분의 신성이 붙들어주셨다고 생각한다.
p.s.1. 성령께서는 하나님이심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하나님 보좌 우편에 계신 그리스도의 인성의 영혼의 지시에 따라 보혜사 역할을 수행하신다. 그렇다면 이러한 성령의 사역은 능동적 순종인가 수동적 순종인가?
#20180202 창녀 #라합
예를 들어, 윤락업소에서 일하는 어떤 여성이 참으로 극적으로 복음을 듣고 진심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어느 (대형)교회에 등록해서 다니게 되었다고 가정하자. 그리고 그 교회의 모든 사람이 그 여성이 사실은 윤락업소 종사자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하자. 그렇다면 이 여성에 대해서 교회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그 여성이 윤락업소의 일을 청산하고 참으로 믿음으로 신앙생활을 하게 되었다고 생각하고 받아들여주는 교인은 아주 소수에 불과할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대부분의 교인들은 그 여성의 앞에서건 뒤에서건, 그 여성의 과거를 가지고 수군수군하지 않을까 싶다(나도 여기에 포함).
그리고 그 교회의 교인들 중에는, 형식적인 교인들도 있어서 어떤 남자 교인들은 그 여성의 과거를 가지고 은밀하게 그 여성과 부적절한 관계를 가질 것을 제안하는 일도 있을 수 있겠다.
그런데 여기서 한가지 더 충공깽 설정을 해보자. 그 교회의 신실한 장로의 신실한 아들이, 이 여성의 진심을 알고서, 육신의 정욕으로가 아니라 신앙의 기준으로 이 여인과 결혼을 하겠다고 하자고 가정하자. 그 경우 아마도 교회가 발칵 뒤집어질 것은 불을 보듯 뻔할 것이다.
여리고의 창녀 라합이 이스라엘에 들어갔을 때 그녀의 삶이 아마도 이러지 않았을까 싶다. 하나님께 버림받을 이방 족속에다가, 이미 자신의 정조를 잃은 낮고 천한 창녀의 신분. 아무리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의 무리라고 해도, 믿음의 눈으로 라합을 대할 수 있었을까? 라합으로서는 수많은 소문과 야유와 조롱과, 심지어 이미 버린 창녀의 일을 제안받는 일까지 있었을지도 모른다. 라합이 참으로 대단한 것은, 그런 모든 것들을 참고 견딘 것이다.
그런 취급을 받고 살던 라합인데, 자신이 과연 이스라엘 내에서 평범하게 결혼하고 자녀를 낳고 살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할 수 있었을까? 아마도 그저 그 안에서 죽지 않고 구원받은 것만으로 감사하며 만족하며 살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 여인에게 살몬이라 하는 이스라엘 백성의 지도자 가문 중의 한 신실한 남자와 결혼하게 섭리하셨다. 그리고 그녀로 하여금 다윗과 예수 그리스도의 조상이 되게 하는 영광을 허락하신 것이다.
#20140202 #오병이어
예수님의 오병이어 기적이라고 하면 일반적으로는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장정 오천명을 먹이시고 열 두 광주리나 남기셨다.' 라고만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조금만 더 생각해 보면, 그 외에도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들의 필요를 얼마나 정확하게 채워주시는지를 알 수 있다. 이유인즉슨,
가정1. 성경에는 오병이어의 기적으로 배불리 먹은 무리의 수가 성인 남자만 오천명이라고 나와 있다. 여기에 여자와 아이들까지 포함하여 전체 무리의 수를 대략 2만명 정도라고 가정하자.
가정2. 한 광주리의 부피를 대략 20L로 가정하자. 그러면 열 두 광주리의 부피는 대략 240L라고 볼 수 있다.
가정1과 2에 의해서 2만여 명이 배불리 먹고 남은 음식이 240L라면, 한 명이 먹고 남긴 음식은 대략 12ml로 계산할 수 있다. 이 결과로 본다면, 한 명이 먹고 남긴 음식이 많다고 볼 수 있을까? 매우 정확한 배식(?)이 이뤄졌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하지 않을까?
하나님께서는 물론 정말 딱 떨어지게 배식을 하셔서 남은 음식이 없도록 하실 수도 있으셨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은 이유는, 예수님께서 행하신 기적을 많은 사람들에게 증거하시기 위해 최소한의 남은 음식으로 최대의 효과를 거두신게 아닌가 싶다.
(굳이 표현한다면, 경제적이고 낭비하지 않으시는 하나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