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09090909
2009.09.09. 51세
오늘은 특별한 날이라네.
2009년 =========> 09
9월 ==========> 09
9일 ==========> 09
아버지 간지 9일 => 09
- 마지막 간다는 것.
8월31일. 아버지가 이상하니 와보라는 말을 듣고 버스 정류장으로 가는 중에 아내의 전화, 함께 가자고, 아니 함께 가야 한다고..
집으로 돌아오니 그새 운명하셨다고 연락이 왔네 .
아내와 함께 떡볶이 가게 영업준비하던거 대충 정리하고 서울 본가에 도착하니 아버지는 벌써 병원에 안치..
어머니 첫제사 치룬지 한달여.
향년 93세
1917년생 박정희 대통령과 같은 나이.
총맞아 죽은 박통보다 울아버지가 훨 편안히 가셨다.
- 장례
평소 아버님 누차 말씀하셨다.
화장해서 흔적을 남기지 마라.
그래도 흔적을 남기고픈 큰형의 바램으로
화장은 하고 가루가 된 유해를 선산 어머니 옆에 모셨다.
적당한 절충인가?
난 아들에게 예기 했다. 나 죽으면 깨끗히 화장해서 수목장해라~
- 삼오제
돌아가시고 3일장 ; 돌아가신 날부터 1,2,3일장
삼오제 ; 3일장 끝나는 날부터 1,2,3일째
합이 오일째 지낸단다.
- 돌아간 분을 위하여.
어머니 가셨을 때 절에서 49제를 올렸다.
어머니처럼 아버님도 해 드리자는 큰형님 내외를 나머지 형제들(누님둘, 작은형, 나)이 설득하여 하지 않기로 하였다.
작은형이 한마디했다.
아버지가 남겨준 것이 근검 절약인데.. 아버님이 49제를 원치 않을 거라고..
- 아버지 일생
한일 합방기에 7남매의 맏으로 태어나 16세부터 가장이 되어 평생를 동생들 굶기지 않고 가정을 꾸려 가는 것
아들딸 8을 낳아 셋을 가슴에 묻고, 나머지 다섯을 굶기지 않고 가정을 꾸려 가는 것.
아직 싱글인 둘째 형을 가실 때까지 안타까워 하셨다.
식민지와 일본 징용, 해방, 6.25 등 험한세상 다 격었다. 당연히 죽을 고비도 수차례 넘기고
- 병원사와 자연사
요즈음 죽기도 힘든 세상이다.
고치기 힘든 병에 걸리거나 노환으로 입원하더라도 마지막까지 산소흡기, 식량공급용 호스 등을 사용하고.
수술을 하면 몇 개월 더 살수도 있고 죽을수도 있는 경우가 생겨, 자손들이 의견이 엇 갈려 힘들어 하는 경우를 주변에서 많이 보았다.
울 아빠는 행복하다.
특별한 병없이, 노환으로 병원 알아보려던 참에 돌아가셨다.
- 가까운 아들, 먼 아들
돌아가시기 일주일 쯤 전 본가에 갔다.
모시고 사는 형, 떨어져 사는 나.
함께 아버지를 화장실에서 씻겨 드렸다
뼈 밖에 없다고 울먹이는 형, 감정없는 나.
내가 가려고 하자 '아버지가 한번 알아본 다음에 가라'고 보채는 형.
결국 아버지 왈, '정순이라고?'
그게 마지막이었다. 형 고마워!
- 고마운 친구들, 지인들
초등학교 친구들.
졸업하고 처음 만납 고등학교 친구.
멀리 창원에서 찾아 온 입사동기, 법우(法友)들
울산에 달려와 다시 출근한 군대동기.
큰형은 내 손님이 부조한 돈을 모아 나에게 주셨다. '네가 지금 가장 힘들고, 친구관리 잘했다'라고 하며..
- 108배
오늘도 108배 했다.
내 아빠는 지금 어디 있는걸까?
2004년 천안에서 모실 때, 백내장 수술하신 후
첫댓글 저는 지금 95세로 혼자 생활하시는 아버지를
한 달에 한 번 찾아뵙고 있습니다.
부친은 고향인 공주에 계시는데, 날로 쇠약해
지고 고집만 부리는 지라 난감할 때가 많아
고든님 글을 읽으며 생각이 많습니다.
아직 의식이 또렷할 때 아버지를 즐겁게 해야
후회가 적겠다는 자각이 드네요.
생각이 많으시겠습니다. 전 고향이 예산인데 신풍으로 시집가신 누님이 86세가 되셨네요. 그 위의 큰 누님은 돌아가셨습니다.
아는 젊은 친구의 말에 의하면 노화를 되돌려 계속사는 과학기술이 수십년내로 현실이 될 수도 있다고 합니다.
지금도 시력저하 등으로 불편한데 90대로 생각해도 수십년을 더 살아야 하니 생각이 많습니다.
제 큰매형의 예을 보면 처를 잃고 혼자 살면서 마음도 몸도 갑자기 쇄락하셨는데 서울 아들집으로 옮기고 경로당에도 나가고 사람들과 함께 하면서 쾌할해 지시고 건강도 좋아 보입니다.
아버님도 사람들하고 교류가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열에서 1 이 채워지지 않은 숫자 9,
동양권에서는 9자가 좋다고 하더군요.
서양에서는 Lucky 7이라고 하지만...
아버님은 잘 살다 가신 것 같습니다.
자제분들도 다 화목하신 것 같고
특히 큰형님은 장남다우신 면모와
덕행을 갖추신 분이군요.
글이 좀 딱딱한 듯...^^
그래도 알아 보게 뜻은 명확하네요.
잘 읽었습니다.
"대한민국에서 장남으로 살아가기"란 책 제목이 생각납니다. 언젠가 큰형님 이야기 하나 써야 할 듯 싶습니다.
세상의. 모든 아버지는 위대합니다
저만 빼고!
부친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을 봅니다.
수필방에서 편안하게 글 쓰시기를 바랍니다.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저희도 어머니가 갑자기 심근경색으로
돌아가시고 그다음해 아버지는 제게 통일되면
고향에 찾아가 내대신 할아버지 산소에 술한잔
올려드리라는 유언을 남기시고 돌아가셨습니다
그러셨군요. 유언을 지킬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가까이 어딘가에 계실 겁니다.
저의 어머닌 구름으로도 오시고
바람으로도, 달로도 별로도, 때론 집 뜰에
피는 꽃으로도 오시곤 합니다. ㅎ
아! 그렇군요.
불교식으로 하면 온 세상 부처아닌 것이 없군요.
낼 출근길 달을 별을 다시 한번 자세히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