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일인 것 같다. 고려대 운동장에서 만난 차두리(22. 고려대)의 모습은 선입견을 완전히 깨트린 해맑음 그 자체였다. 만나기 전까지 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내성적이고 별로 말이 없는 무뚝뚝한 청년일 것으로 생각했는데 직접 만난 그는 대학 신입생다운 패기와 적극성, 자유스러움을 모두 지니고 있었다. 어떤 질문에도 막힘 없이 대답이 술술 이어졌다. 당시 아버지가 심적으로 힘든 상황이었는데도 그는 전혀 내색하지 않았다. '쿨'한 청년이라는 기억을 담고 기분이 좋게 헤어졌다. 그리고 2년 만에 다시 만난 차두리는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변해 있었다. 예전의 보기 좋은 가벼움은 사라지고 얼굴에 웃음기도 찾아보기 힘들만큼 점잖았다. 너무 달라졌다고 말했더니 이젠 말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 때라 쉽게 대답하기가 어렵다고 한다. 달려온 시간대로 훌쩍 성장해 버린 것이다. 골드컵 대회 참가를 위해 출국 전에 만난 차두리는 이젠 매스컴의 관심이 조금은 버겁다는 걸 하소연했다. <글 이영미(일요신문)>
<나의 영웅>
차두리는 그 이유에 대해 어른스런 시각을 내비쳤다. 별로 잘한 것도 없는데 갑자기 주목을 받고 있어 걱정되는 것도 사실이다. 잘 할 대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붕붕 띄워주다가 조금이라도 실수를 할 경우 그 대가가 2배로 되돌아온다는 걸 아버지를 통해 여실히 보고 느껴기 때문이데,얼마전 어머니 오은미씨가 "인터뷰는 진짜 축구를 잘할 떄 해도 늦지 않다"고 충고한 게 두고두고 가슴에 남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축구선수가 운동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버지를 통해 보고 배웠다. 아버지는 축구선수의 '교과서'이면서 진정한 프로 선수라면 어떻게 행동하고 생활해야 하는지를 직접 보여주셨다. 아버지 때문에 축구를 시작했고아버지처럼 되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분명한것은 아버지와 나는 서로 다르다는 사실이다."
차두리는 아버지를 영웅시했다. 태어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따라다닐 누구누구의 아들이라는 타이틀을 부담스러워하기 보단 오히려 좋아하고 즐거워했다. 어떤 인터뷰 자리에서도 빠지지 않고 나오는 아버지와 관련된 질문을 지겨워하기보단 매번 최선을 다해서 대답하려고 노력했다. 그만큼 아버지를 존경했기 때문이다.
"물론 아버지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이 있다는 걸 알고 있다. 고지식하고 쉽게 타협하지 않으려는 꼿꼿함이 부담스럽게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아버지는 아시아 선수 중 최초로 유럽 벽을 넘은 선수다. 사람들은 그런 점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하는데 내가 보기엔 그런 단단함이 있었기 때문에 독일에서 성공을 했다고 생각한다."
처음부터 차범근 전 감독에 대한 질문을 하려고 했던 것은 아니다. 말문을 열어가면서 이상하게 차 전 감독 얘기가 튀어나왔고 그의 아들은 항상 그랬듯이 아버지에 대한 나름대로의 평가를 내리면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해 나갔다.
대학생인데 가장 아쉬운 점이 무엇인지를 물었다. 친구를 좋아하는데 그 좋아하는 친구와 자주 어울릴 수 없다는 사실과 축구를 위해선 모든 것을 절제해야 하는 점이라고 한다. 1,2학년 때는 그걸 잘 모르고 친구들과 어울리며 시간을 허비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큰 목표가 생겼기 때문에 사생활을 자제하고 쉴 때는 운동만 한다는 설명이다.
<아버지, 언론, 그리고 차두리>
차두리한테 2001년은 너무나 소중한 시간들이었다. 부상으로 독일에서 재활훈련을 할 때만해도 국가대표팀. 특히나 2002 월드컵은 자신과는 거리가 먼 존재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그 멀게만 느껴졌던 대표팀 발탁이 성사됐고 일회용일 거라는 주위의 추측을 무시하고 차두리는 골드컵에서 히딩크 감독과 매스컴의 집중 관심을 받았다.
"지난해는 큰 기회를 얻은 시기였다. 내 축구 인생에서 더 좋은 길로 갈 수 있는 바탕이 됐던 해였다.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계속 이어가려고 노력하고 있고 그래서 더욱 신중해 졌다."
인터뷰 시작부터 계속해서 차분한 모습으로 일관하고 있어 나이답지 않게 너무 점잖은 것 아니냐고 말했더니 점잖은 게 아니라 신중한 거리고 정정했다. 아버지를 통해 언론과 선수와의 한계도 느꼈다고 한다. 둘의 관계는 벽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 자신의 우상을 한순간에 무참히 짓밟는 것을 보고 어쩜 언론에 대한 피해의식이 생겼는지도 모른다. 기자의 직업관을 이해하면서도 당하는 ㅇ입장에선 감정이 쌓이는 게 인지상정. 그런 그가 원래는 선수가 아닌 축구 기자가 꿈이었다고 한다.
"대학 입학할 때만 해도 희망 사항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포기 했다. 기자라고 한다면 남들 다 아는 얘기를 써선 잘 팔릴 수가 없다. 특별한 기사를 써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선 우리 가족이 겪었던 것처럼 남을 아프게 할 수도 있지 않겠는가. 너무 어려운 부분인 것 같다. 축구를 통해선 경기의 승패만 갈릴 뿐 남을 정신적으로 아프게 하는 일은 없다. 그래서 기자에 대한 꿈을 접었다.
기자의 입장에선 그 얘기가 구구 절절히 가슴에 와 닿았다.
<대표팀에서 받는 '프리미엄'>
무릎 부상으로 1년 간의 공백 기간을 가졌다. 재활하는 동안엔 그렇게 힘든 줄을 몰랐다. 운동장에서 뛰고 싶은 마음에 지리했던 시간들도 잘 이겨나갔다. 그런데 막상 다시 운동을 시작하고 보니 뜻대로 몸이 움직여주질 않았다. 쉬었던 기간만큼 다시 운동을 해야 정상적인 컨디션을 되찾을 수 있었다. 즉 부상으로 1년 쉬고, 운동을 하며 또다시 1년이란 시간을 기다려야만 했다. 차두리는 그 시간들이 가장 힘들었다고 토로한다.
고려대 조민국 감독이 기자한테 했던 얘기가 있었다. 차두리가 부상에서 완전히 회복하려면 좀 더 기다려야 한다는 말이었다. 그 말을 들은 지 얼마 안돼서 대표팀에 발탁됐다는 소식을 접했다. 과연 차두리의 몸 상태가 정상적이었을까. 아니나 다를까. 차두리의 대표팀 발탁에 대해 입방아를 찧는 소식들이 여기저기에서 들려왔다. 심지어 '전시행정용'이라고 폄하하는 축구인도 있었다.
그러나 히딩크 감독은 주위의 잡음에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해서 차두리를 선발했으며 차두리도 감독의 신뢰에 대한 보답 차원에서 한눈 팔지 않고 최선을 다해 준비하고 몸을 만들었다.
"앞으로 내가 더 잘해서 월드컵에 출전한다면 그런 소문들이 나오지 않을 것이다. 아버지도 대표팀 감독을 지내셨기 때문에 잘 알고 있다. 선수 선발은 전적으로 감독 고유의 권한이고 히딩크 감독도 정당한 기준으로 날 평가했고 선발했다고 본다. 아버지의 아들이기 떄문에 그런 소문과 구설수는 항상 안고 가야만 하는 것 같다."
처음 들어가본 대표팀 생활. 예전에 어버지를 만나러 대표팀 숙수에 들르곤 했는데 지금은 선수가 돼서 숙소 생활을 해보니 감회가 새로웠다고 한다. 아마추어 선수들과는 분명 다른 수준이었고 선후배 관계없이 서로 경쟁하고 거친 남자들의 세계를 여과 없이 절감했던 시간들이었다. 특히 도움이 되는 것은 아버지의 제자가 많다는 사실. 어렸을 때부터 지금의 선배들은 형으로 부르며 허물없이 지낸 터라 다른 신인들에 비해선 '프리미엄'을 많이 받고 있는 셈이다.
<'차두리의 아버지 차범근 감독'>
여자? 물론 관심이 많다. 장가도 빨리 가고 싶다. 올해 만나서 3년 동안 연애한 후 결혼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문제는 그럴 여자가 지금은 없다는 것. 좋아하는 여자가 있지만 마음 속으로만 간직하고 있어 성사여부가 불투명하다. 기자가 어머니 같은 여자를 원하는지 궁금해했더니 "요즘 같은 세상에 어머니 같은 여자가 있을까요?" 하고 의문을 나타냈다. 그의 이어진 설명엔 대학까지 나와서 자기 을을 버리고 운동 선수만을 위해 희생을 감수할 줄 아는 여자가 있겠느냐 하는 설명이다. 어머니가 아버지를 위해 얼마나 헌신적으로 뒷바라지를 했는지 보고 자랐기 때문에 당연히 어머니 같은 여자를 배우자의 이상형으로 꼽고 싶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것 같아 눈높이를 조금은 낮추려고 한다고.
술? 물론 마신다. 고려대 출신인데. 신입생 때는 술 먹고 '필름'이 끊긴 적도 있었다. 하지만 대표 선수가 되고 나선 술 근처에도 가보지 않았다. 앞서 얘기했듯이 자기 절제가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기이기 때문이다.
축구 외엔 할 줄 아는 운동이 없다고 한다. 볼링을 쳐도 애버리지가 100도 안나올 정도고 당구는 큐대를 어떻게 잡는지도 모른다. 얘기를 하다보니 정말 할 수 있는 운동이 전혀 없는 것 같아 약간의 실망감을 새삼 느낀다는 그이다. 그럼 친구를 만나면 뭐하고 놀까? 주로 먹는 게 일이다. 맛있는 음식을 찾아다니면서 먹고 차 마시는 게 전부라고. 정말 재미없는 젊은이다. 대학 1학년 때의 차두리는 누구의 아들이란 타이틀을 아예 떼어 버렸다. 선배를 하늘로 모시고 청소도 도맡았다. 심지어 아침에 일어나기만 하면 화장실 청소를 하러 다녔다.
다른 동기들이 '땡땡이'를 쳐도 차두리는 고집스럽게 청소와 선배들 심부름을 도맡았다. 왜 그랬을까? "나에 대한 선입견을 없애 버리고 싶었다. 아버지 아들이기 때문에 여러 가지 혜택을 받을 거라는 선입견 말이다. 그래서 허드렛일도 마다하지 않고 열심히 했다. 그런 노력이 있었기 때문에 선배들과 친해졌던 것 같다. 또 내가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 아버지의 이름이 빛이 날 수도, 빛이 바랠 수도 있다고 믿었다. 좋은 경험을 했다고 본다."
차두리는 축구 전문가들이 자신에 대해 평가하는 부분에 대해 어느 정도는 인정을 했다. 아버지완 달리 근성이 부족하고 다부진 맛이 없다는 지적도 수긍했다. 부족함 없이 자랐던 것이 근성을 떨어지게 하는 한 원인이라는 나름대로의 평가도 내려본다. 하지만 세대교체의 정점에 서 있는 2002년 월드컵 대표팀 선수로서 자신의 이름. 아버지의 이름. 그리고 코리아의 이름을 욕되게 하진 않을 자신이 있다. 그리고 언젠가는 차범근 감독의 아들 차두리가 아닌 차두리의 아버지 차범근 감독을 분명 실현시키고 싶어한다. 지금 그의 성장을 볼 땐 결코 불가능한 일이 아닌 것이다.
헉헉헉;; 너무 많아요..ㅜ.ㅜ
쓰느라 죽는줄 알았네....흠..머..베스트일레븐 가서 복사해 와도 되지만..그냥 쓰고 싶었어요~
ㅡㅡ;; 이해하세요..ㅡ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