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인디고 조성민]
“널린 게 학교인데, 정작 내 아이가 갈 학교가 없다. 모 학교는 장애학생의 등교를 거부하고, 또 다른 학교는 절차를 운운하며 특수학급 설치를 반대하고 있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 특수학교를 지어달라는 것도 아니고, 특수학급 설치에도 부모가 무릎까지 또 꿇어야 하나!”
▲강지향 부모연대 강동지회장 ©더인디고
강지향 전국장애인부모연대 강동지회장이 장애인 교육권을 위해 언제까지 거리로 나서야 하냐며 청와대를 향해 분통을 터뜨린 말이다.
전국장애인부모연대와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는 4일 오전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차별 없는 교육, 모두가 함께하는 통합교육”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특히 장애인 부모들은 특수학급 설치를 사실상 거부한 한영고등학교(한영고) 관계자 등을 강도 높게 비판하며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제기했다.
한영고는 학교법인 동원학원 소속으로 한영외고, 한영중, 한영유치원 등 4개 학교가 서울 강동구 지역 내 한곳에 있다.
앞서 서울시교육청은 작년 11월 2일, 한영고를 2022학년도 ‘특수학급 설치 확대 추진 계획’에 포함한 데 이어 12월에는 서울 시내 각 중학교에 ‘특수교육대상자 고등학교 배치 결과(한영고 일반학급 2명, 특수학급 4명)’를 알렸다.
하지만 한영고는 ‘한영 학교 안전 및 비상대책위원회’까지 구성, 서울시 교육감을 상대로 공개 질의 및 상담 요청을 했고, 학교에는 ‘정상적인 합의 절차와 준비 과정을 요구한다’라는 현수막까지 내걸었다.
사실상 2022학년도 특수학급 설치를 전면 반대한다는 태도를 공개적으로 밝힌 셈이다.
■ 한영고, “교사·비장애학생 중증장애 이해 부족, 부모도 반발”… 특수학급 설치 반대!
한영고가 서울시교육청에 제출한 의견서에 따르면 특수학급 설치에 대해 사전 학교 법인이나 구성원들의 의견수렴도 없었고, 시설 문제나 중증장애 학생에 대한 교사와 학생들의 이해 부족 등 준비과정 없이 선정됐다고 반대 이유를 들었다.
▲지난 12월, 한영 학교안전 및 비상대책위원회 서울시 교육감에 공개질의 및 상담요청을 하는 공문을 발송했다. /자료=한영고등학교 홈페이지
특히 한영고는 “4개 학교가 시설을 공유해 교육공간이 협소하고, 교실이 부족하며, 학교 진입로의 안전이 확보되지 않은 점, 교내 전반에 경사와 턱이 많아서 이동이 어렵다”며 “최근 6년까지 특수교육대상자는 7명인데, 이들은 경증학생들이라 중증장애 학생에 대해서는 교사들의 통합교육 경험과 비장애 학생들의 장애인식 부족이 우려된다”는 의견을 냈다.
또한 “중학교, 유치원생들과의 문제뿐 아니라 유치원 학부모들의 반발도 예상된다”고 덧붙였다.
결국 한영고는 특수학급 설치는 물론이고 교사와 학생들, 특히 유치원 학부모들을 이유로 들어 중증장애 학생들의 입학에도 부정적인 의견을 표명했다.
서울시교육청이 지난 2019년 특수교육 수요자가 1명이라도 있으면 의무적으로 특수학급을 설치하도록, ‘특수학급 설치 의무화 및 확대 계획’을 추진하고, 이를 거부하는 학교에 대해선 학급 감축 등의 제재수단을 동원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하지만 일부 사립학교들은 별도의 학교법인을 통해 운영한다는 이유로 교육정책을 무시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정순경(사진 뒷줄, 맨 오른쪽). 왼쪽 옆으로는 장애인 부모들이 “차별없는 교육, 모두가 함께하는 통합교육”이라고 쓴 손 현수막을 들고 있다. ©더인디고
박경석 전국야학협의회 이사장은 “대한민국은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서로가 혐오하며 맞서게 하고 있다”면서 “청와대와 교육부, 그리고 교육청은 부모 간에 혹은 학생 간에 갈등이 일어나지 않도록 장애학생 교육권 보장과 실질적인 통합교육을 위해 구조적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촉구했다.
정순경 전국특수학교학부모협의회 대표는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공주대학교 부설 특수학교 설립 기공식에 참석해 ‘부모들이 더는 무릎을 꿇지 않게 만들겠다’고 했는데 여전히 특수학교도 아닌 특수학급조차 만들기가 이렇게 어렵다”고 토로했다.
이어 “경증(장애학생)은 받고 중증은 못 받는, 게다가 학교 안전 운운하며 특수학급 반대를 위한 비상대책위까지 구성했다”며 “사립학교라도 정부가 예산을 투입하는 마당에 채찍도 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자회견 후 윤진철 부모연대 사무처장도 인터뷰에서 “사실상 특수학급 설치 반대 현수막을 학교 정문에 걸어 놓고, 또 관련 의견서를 홈페이지까지 게시한 것은 이 학교에 입학하려는 장애학생뿐 아니라 이미 학교에 다니고 있는 장애학생과 부모들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처사”라면서 “교육기관이 유치원 교육과정에서부터 장애와 비장해학생을 의도적으로 갈라놓고 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 “누구나 통합교육을 말하지만, 현실은 동떨어져”
사실 통합교육을 지향하면서도 특수학교 건립과 특수학급 설치 요구가 높은 이유는 장애학생에 대한 우리 사회의 배제적 환경 탓이 크다. 지역사회 주민들이 특수학교 설립을 반대하고, 교육기관마저 장애학생을 배제하는 분위기는 이미 오래다.
‘장애인 등에 대한 특수교육법(특수교육법)’ 제17조 2항은 특수교육대상자를 배치할 때는 그 대상자의 장애정도·능력·보호자의 의견을 종합 ‘거주지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배치해야 한다고 규정돼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가장 가까운 곳에 배치할 수 없는 현실이다. 특히 중, 고등학교로 갈수록 모든 학교에 특수학급이 설치되지 않아, 특수학급이 설치된 학교 중에서 순위를 정해 배치하게 된다.
▲특수교육대상. 2021 특수교육통계 /출처=교육부
교육부의 ‘2021 특수교육통계’ 따르면 전국의 특수교육 대상은 9만 8147명, 이 중 72.2%인 7만 864명이 일반학교(일반학급 16,592명, 특수학급 54,272명)를 다니고 있다. 나머지는 특수학교나 특수교육지원센터를 이용한다.
유치원 포함 전국의 특수학급을 설치한 학교는 전국의 8729곳, 97% 이상이 국·공립학교에 편중됐다. 서울 시내 고등학교는 모두 95곳에 설치됐다. 이중 사립학교는 11곳(11.6%)에 불과하다. 또 단계별 진학을 살펴보면 특수학급 설치 비율은 고등학교로 갈수록 줄어든다.
▲전국 및 서울시내 특수학급설치한 특수학교현황 /자료=교육부. 일부 편집
내 집 앞에 학교가 있어도 그곳이 한영고와 같은 사립학교가 버티고 있거나 통합교육을 지향하는 학교가 아니라면, 집에서 먼 곳으로 통학을 해야 한다. 또 서울에서는 중학교 진학 시 1~3지망까지 학교를 선택할 수 있지만, 장애학생의 경우 3지망에 배정되는 일이 허다하다.
심지어 특수학급이 폐지되는 일도 있다. 강원도교육청은 고성의 한 중학교 특수학급에 입학할 장애학생이 1명이라는 이유로 폐지를 결정했다.
강원도교육청은 그 이유로 1인 특수학급이 40개지만, 도심 소재 특수학교나 특수학급은 47곳이 과밀 학급으로 운영돼 교원 정원이 늘어나지 않는 한 1인 이하 특수학급 폐지가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강원도 원주에 사는 박혜영 통합교육학부모협의회 대표는 “강원도처럼 학교가 널리 분포된 농어촌 지역에서는 비일비재한 일”이라며 “과밀학급 해소를 위해, 교원이 적다고 결국 장애학생 1명이 희생을 당하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그러면서 “장애학생과 부모들의 궁극적인 목표는 지역사회에서 또래들과 함께 생활하고, 분리된 공간이 아닌 통합교육으로 나가야 한다. 하지만 12년 전이나 지금이나 제자리 수준”이라면서 자신의 경험을 소개했다.
박혜영 대표는 장애가 있는 첫째를 포함해 두 딸이 있다. 집 앞에 초등학교가 있지만, 특수학급이 없어 학교와 1년간 협의를 통해 마침내 큰 딸이 그 학교에 다닐 수 있었다.
박 대표는 1년간 애쓴 이유에 대해 “장애가 없는 둘째 딸이 혹여 ‘왜 언니는 다른 학교에 다니냐’고 묻게 되면, 차마 엄마로서 ‘언니는 장애인이어서 동네 학교에 다닐 수 없어’라고 말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며 “또 이것도 저것도 안 된다고 예단하며 장벽을 세우고 싶지 않았다”고 말했다.
한편 기자회견 후 부모연대와 장추련은 인권위로 자리를 옮겨 한영고의 이번 대응에 대해 “중증장애 학생 입학을 거부하는 차별에 해당한다”며 진정을 제기했다.
이들 단체는 누구에게나 평등해야 할 교육기관이 이렇게 공개적으로 장애인을 차별하는 행위를 묵과할 수 없다며 인권위의 강력한 시정권고를 촉구했다.
[더인디고 THE INDIGO]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