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비행 (외 1편)
허 연
태양에 대해 뭔가 쓴다는 건
어떤 긴 사연들과 대결하는 것을 의미한다
세상은 울고 태양은 뜬다
숱한 눈물이 말라서
기체가 되어버린 나방을 안다
스스로 타버린 것들
유리한 것이 불리한 것이 될 때까지
날아오른 것들
한 일과
하지 않은 일이 운명을 결정하는 법
타버리고 나서야 비로소 깨끗해지는 하늘
타버린 것들
날아오른 것들
태양은 헌신을 받아주지만
답은 해주지 않는다
타버린 나방에게만 보였던 세상이 있다
—웹진 《공정한시인의사회》 2023년 5월호
시는 검고 애인은 웃는다
용서는 해뜨기 전에 하는 거라지만
이불에서 나오듯
아파트를 나왔다
견인선이 필요하다
강의 싸늘함을 보다가
가슴을 치며 2월에 대해 쓰거나
무개화차가 필요하다
무인역사에서
이상한 용기를 내서
헤어져야 할지도 모른다
불현듯
애인은 애인이 아닌 것 같다
사랑도 사랑이 아닌 것 같다
뼛속으로 길을 내는 일인 것 같다
청하는 것보다 서로 많이 주었지만
우리는 적다
얼굴이 안 보이고
심장이 안 느껴지고
단지 시를 낳을 것이다
지난겨울은
멀리서 온 나쁜 소문처럼
아무 확신이 없었고
가엾게도
셀 수 없이 희한한 것들을 만들고
그것들은 언제나 초안이었다
애인은
혼자가 되어서 성숙해지는 것이 아니라
다시 혼자가 될 때 성숙해지는 거라고 말했다
나는
회청색 새들이
수 세기 동안 그래왔듯이 그날의 근심을 퍼뜨릴 것이다
시는 검고
애인은 웃고
우리는 달성될 것이다
어떤 날씨와 어떤 날씨의
교체에 관한 이야기다
‒《문학동네》 2022년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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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연 / 1991년 《현대시세계》 등단. 시집 『불온한 검은피』 『나쁜 소년이 서 있다』 『내가 원하는 천사』 『오십 미터』 『당신은 언제 노래가 되지』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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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비행 (외 1편) /허연
강인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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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5.17 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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