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9일(연중 제16주일) 의인의 관대함
상선벌악(賞善罰惡), 하느님이 ‘착한 사람에게는 상을 주시고, 악한 사람에게는 벌을 주신다.’는 우리 믿음은 마지막 날 하느님 앞에서 있을 일이다. 영화에서도 악당이 득세하다가도 나중에 가서야 패배하고 벌받는다. 그렇게 될 줄 알면서도 주인공이나 착한 이들이 고통받고 억울한 일을 겪는 걸 보면서 마음 졸이게 되고 속상하다. 영화가 끝날 때까지, 하느님 앞에 서게 될 때까지 우리는 세상의 악과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는 거 같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밀과 가라지 비유를 들려주신 걸 보면 옛날에도 그랬고, 아마 세상 끝나는 날까지 그럴 거 같다. 아무도 악을 바라지 않고, 지극히 선하신 하느님이 만드신 세상에 왜 악이 있는지 모르는 채로 우리는 가리지와 함께 자라야 한다.
이 세상에 왜 악이 있는지, 좋은 씨만 뿌린 그 밭에 왜 가라지가 자라는지, 예수님도 시원한 대답을 주시지 않는다. 그저 ‘원수가 그렇게 하였구나.’라고만 하신다. 그제도 만취한 20대 운전자가 몰던 차에 80대 할머니가 세상을 떠나셨다는 뉴스를 봤다. 그 할머니는 폐지를 주어 모은 돈 중에서 매달 30만 원씩 가족에게 보냈다고 하니 더 마음 아프고 눈물이 났다. 도대체 세상이 왜 이런 건지, 그런 악들을 모두 없애버리고 싶은 우리 간절한 바람에 비해 예수님이 하신 그 대답은 무성의하게 보일 정도다. 그런데 예수님은 “하늘나라는 자기 밭에 좋은 씨를 뿌리는 사람에 비길 수 있다.”(마태 13,24)고 하셨다. 가라지를 뽑아내는 게 아니라, 좋은 씨를 뿌리는 거다. 가라지를 가려내서 태워 없애는 건 마지막 날 추수 때에 주님이 하실 일이다. “수확 때까지 둘 다 함께 자라도록 내버려두어라. 수확 때에 내가 일꾼들에게, 먼저 가라지를 거두어서 단으로 묶어 태워 버리고 밀은 내 곳간으로 모아들이라고 하겠다.”(마태 13,3) 그때까지 가리지와 함께 자란다. 우리는 악한 현실에 눈물로 저항하고 견디며 계속 좋은 씨를 뿌린다.
산책길에 한두 달 동안 여기저기 모아 둔 쓰레기가 눈에 거슬릴 정도가 됐다. 그날은 비닐봉지를 들고 집을 나섰다. 쓰레기를 줍는데 마주 오던 분이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플로깅 하시네요. 멋지십니다.’ ‘감사합니다.’ 플로깅(Plogging)은 스웨덴어로 ‘이삭을 줍다(Plocka upp)’와 영어 ‘조깅(Jogging)’의 합성어로, 산책이나 조깅을 하면서 길가의 쓰레기를 줍는 환경 보호 활동을 이르는 말이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 그런데 조금 귀찮은 일, 그러면서도 실천하는 사람을 보면 기분 좋아지고 괜히 부끄러워지는 일이다. 혹시 모르지 않나, 그 사람도 다음에는 비닐봉지 하나 들고서 나올지.
하늘나라는 아주 작은 겨자씨와 같아서, 그게 밭에 뿌려져 자라면 새들이 그 안에서 쉬고 몸을 숨긴다. 또 하늘나라는 누룩과 같아서 밀가루 반죽은 한껏 부풀게 한다. 우리가 받은 지상 사명, 천상 계명은 서로 사랑하라는 것이고, 가장 작은 이들을 주님이라고 여기고 잘해주는 거다. 악을 처단하는 건 우리 일이 아니다. 그러려면 일생 악(惡)만 생각하고 악당들만 쫓아다녀야 할 거다. 그러면 나는 생각도 마음도 몸도 온통 악이 되지 않을까? 내 밭에 선한 씨를 계속 뿌린다. 기회가 주어질 때마다, 기회가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좋은 일을 많이 해서 내 안에 선한 씨를 뿌리고 자라게 해야 한다. 남는 건 선한 것뿐, 악은 타서 없어진다. 내 선이 더 커져서 입만 아니라 눈도 귀도 몸도 모두 하늘나라에 들어가기를 바란다. 하느님이 지금 당장 그 악당들을 벌주거나 없애버리시지 않는 건 그들에게도 뉘우치고 돌아올 기회를 주시는 거다. 오늘 지혜서는 우리에게 지혜를 준다. “당신께서는 힘의 주인이시므로 너그럽게 심판하시고 저희를 아주 관대하게 통솔하십니다. 당신께서는 무엇이든지 원하시는 때에 하실 능력이 있으십니다. 당신께서는 이렇게 하시어 의인은 인자해야 함을 당신 백성에게 가르치시고 지은 죄에 대하여 회개할 기회를 주신다는 희망을 당신의 자녀들에게 안겨 주셨습니다.”(지혜 12,18-19) 우리가 지녀야 할 관대함은 악을 외면하거나 허용하는 게 아니라 하느님이 그들에게도 기회를 주시고 또 마지막 날에는 그들이 모두 하나도 남김없이 다 타 없어질 거라는 믿음이다. 마치 결말을 다 알고 있는 영화를 보는 거와 같다.
예수님, 제 안의 선이 더 자라나기를 바라고 또 그렇게 하겠습니다.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더 큰 선을 찾게 도와주소서.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