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阿彌陀經 : ‘아미타경’인가 ‘아미따경’인가?
南無阿彌陀佛 : ‘나무아미타불’인가 ‘나모아미따불’인가?
보정(普淨) 서길수 (koguri@hanmail.net)
Ⅰ. 머리말
지난 4월 아미따경을 우리말로 옮겨 전자책을 내고, 대만에서 나온 만화를 우리말로 옮겨 종이책과 전자책을 냈습니다.
이 두 책은 지금도 언제든지 공짜(無料)로 다운받을 수 있습니다.
아미따경 : http://www.upaper.net/bulmowha/1034147
만화 아미따경 : http://www.upaper.net/bulmowha/1034146
두 책이 나간 뒤 몇 가지 중요한 반응이 있었으나 두 달 동안 다른 나라에 갔다 오느라 이에 대한 대답을 못했습니다.
이제 간단하게나마 답을 하려고 합니다.
가장 많이 나오는 이야기가 아미따경 산스크리트본을 한문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생긴 외래어에 관한 문제입니다.
우선 인터넷에서 나온 문제 제기를 보도록 하겠습니다.
1) 아미따경, 아미타경 명칭의 혼란
2014.06.24. 09:28 http://cafe.daum.net/Jeongtosun/za7/4430
만화 아미따경을 보면 역자께서 우리 한국불교에서 통용되는 <아미타>란 발음을 <아미따>로 읽는 이유에 대해 언급해 놓았다.
산스크리트에는 '따'와 '타'라는 전혀 다른 글자가 있어 '아미따'로 읽지 않고 '아미타'로 읽으면 본뜻을 잃어버리기 때문이다라고 주석을 달아 놓았다.
그렇지만 우리 한국불교에서 천년을 넘게 사용되어온 아미타라는 부처님의 명칭인 고유명사를 갑자기 '아미따'라고 하니까
도리어 혼란한 생각이 들고 오히려 이질감이 느껴지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고유명사의 경우 어차피 외국어를 차음하여 우리발음으로 부르는데는
정확한 발음을 사용하지 않아도 본래의 뜻이 변질되어지지 않는다고 생각된다.
가령 거의 모든 사람들이 '오렌지'라고 부르는 외국 과일을 어느 날 여성 장관 한사람이 '어뤤지~'라고 발음하니까
도리어 사람들이 거부감을 느끼고 그 장관의 발음을 흉내 내며 희화하 하는 풍경이 벌어졌다.
어뤤지~를 오렌지라고 부른다고 그 본뜻이 달라질까?
또 우리말에서도 '아버지'라는 고유명사인 표준어(사실은 경기도 지방언어임)를 경상도에서 '아베'라고 부른다고 그 뜻이 달라질까?
그동안 아미타불이라고 부른 염불행자들은 본뜻이 달라졌을 테니 그렇다면 모두 왕생하지 못했을까?
앞으로는 반드시 아미따라고 불러야만 왕생할까? 이런 의문이 든다.
물론 본래의 원음을 찾아내는 작업도 굉장한 노력과 의미가 있지만은
이미 널리 통용되고 있는 발음들을 바꿔서 도리어 혼돈을 주는 것은 역작용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기존의 우리발음으로 불렀던 <비구>를 <빅슈>로 <승가>를 <샹가>로 <대 목건련>을 <마하 마욷갈라야나>로 등 등 .....
여러 명사들을 <원음>으로 바꿔 놓으니 도리어 이질감이 느껴지고 불자들에게는
애써 번역한 만화 아미타경에 대한 거부감으로 작용하여 아미타경을 널리 펴고자하는 본래의 취지와 달리
아미타경에 선뜻 다가서지 못하게 만들지는 않을까 하는 염려가 된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
2) 저도 '사노라면' 님과 전적으로 생각이 같습니다.
조념염불에 나모아미따불로 할 경우에 임종자가 거부감으로
마음이 일념이 되기가 어려워 도리어 왕생에 장애가 되리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천만 불자가 나모아미따불로 바꾸기는 어렵습니다. 아니 바꿀 수 없을 것입니다.
수천 년 동안 나무아미타불이 자리 잡았는데 지금 나모아미따불 로 바꾸려고 하는 것은
길을 두고 산으로 가려는 것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보정 거사님이 나무아미타불로 돌아오는 것은 지극히 쉽습니다.
저도 나무아미타불에서 나모아미따불로 바꾸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이런 반응은 충분히 예상했던 일이고 신심이 강한 불자로서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대부분 이처럼 정식으로 옮긴이에게 물어오거나 항의도 하지 않고 자신의 생각만 가지고
이러쿵저러쿵 험담만 하는 사람들에 비해 신행을 바르게 하려는 노력이 있는 분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면에서 토론의 장을 만들어준 두 분께 감사를 드립니다.
불교 용어를 산스크리트 원문과 같은 소리로 바꾼 문제는 앞으로 두고두고 논의해야 할 큰 문제이기 때문에
여기서 다 논의하지는 않겠습니다.
다만 여기서는 실제 신행생활에 문제가 될까보아 책 제목인 ‘아미따경’ 문제와 ‘나모아미따불’에 대한 것만
간단히 보기로 하겠습니다.
Ⅱ. ‘아미따경’과 ‘나모아미따불’에 관한 간단한 고찰
1. 아미따경(阿彌陀經)
지금까지 모든 다른 번역가들이 ‘아미타경’ 이라고 옮겼는데, ‘아미따(amita, 阿彌陀)경’이라고 옮겼다.
산스크리트 글자에는 ta(따)와 tha(타)라는 전혀 다른 글자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amita를 바른소리(正音)로 옮길 때 ‘凹(ta)=따’로 옮기지 않으면 ami-ta(凹)가 아닌 ami-tha(卉)가 되어 다른 낱말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미따 붇다는 아미따(amita)+붇다(Buddha)로 모두 산스크리트를 소리 나는 대로 한자로 옮긴 것이다.
산스크리트로 된 아미따경의 본디 제목은 쑤카바띠-뷰하(Sukhāvati-vyūha)이다.
쑤카바띠(Sukhāvati)는 ‘기쁨이나 즐거움이 가득하다(full of joy or pleasure)’는 뜻으로 한문으로 극락(極樂)이라고 옮겼다.
뷰하(vyūha)는 분포(distribution) 배치ㆍ꾸밈(arrangement) 정리(disposition)란 뜻이기 때문에 글자대로 옮긴다면
‘기쁨으로만(full of joy) 꾸며짐(arrangement)’ 또는 ‘기쁨만 갖춤’이라고 옮길 수 있으며,
이 경의 뜻을 살려 옮긴다면 ‘기쁨(즐거움)만 있는 곳(나라)’이라고 옮길 수 있다.
한문으로 ‘극락(極樂, full of joy) 장엄(莊嚴)’이라고 옮겼다.
이 산스크리트 제목은 같은 정토삼부경 가운데 하나인 무량수경도 똑같기 때문에,
두 경을 구별하기 위해 무량수경을 큰 무량수경(大無量壽經)(또는 큰 경(大經),
아미따경을 작은 무량수경(小無量壽經)(또는 작은 경(小經)이라 부른다.
현장(玄奘)은 칭찬정토불섭수경(稱讚淨土佛攝受經)이라고 옮겼고,
티베트말로는 거룩한 극락장엄이라는 대승경전(Arya-Sukhāvativyūha-vyūha nāma mahāyāna Sūtra)이라고 옮겼다.
산스크리트나 다른 번역본에는 ‘아미따불’이라는 이름이 없다.
여기서 말하는 아미따불이 산스크리트 원본에서는 ‘아미따윳(Amitāyus, 無量壽) 여래(Tathāgata, 如來)’
또는 ‘아미따바(Amitābha, 無量光) 여래(Tathāgata, 如來)’라고 쓰여 있다.
그런데 꾸마라지바가 두 가지 낱말의 공통분모인 아미따(Amita, 阿彌陀)에
붇다(Buddha, 佛陀)의 약자인 불(佛)자를 부쳐 아미따불(阿彌陀佛)이란 새로운 낱말을 만들어 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아미따불을 부를 때는 반드시 ‘그지없는 목숨(아미따윳, Amitāyus, 無量壽)’
‘그지없는 빛(아미따바. Amitābha, 無量光)’이라는 낱말 가운데
‘목숨’이나 ‘빛’을 생략하고 공통분모만 가지고 만든 낱말이라는 것을 마음속에 두고 새겨야 한다.
그렇지 않고, 글자 그대로 새기면 ‘그지없이 많은(Amita, 無量) 붇다(Buddha, 佛)’,
‘붇다의 수가 그지없이 많다’는 엉뚱한 뜻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아미따(amita, 阿彌陀)’를 더 줄여서 ‘미따(mita, 彌陀)’로 쓰고 있다는 것이다.
아미따윳(Amitāyus, 無量壽) → 아미따(Amita) → 미따(mita)로 줄어들면서
그 뜻이 ‘그지없는 목숨(無量壽) → 그지없는(無量) → 모자란(不足)’으로 변질되어 버린 것이다.
산스크리트에서 아미따(amita)란 낱말은 반대를 나타내는 [아(a)]와 작은 것을 나타내는 [미따(mita)]를 합하여 만든,
곧 아+미따(a+mita)라는 합성어이다.
미따(mita)란 낱말은 빈약한(scanty, 貧弱)ㆍ작은(little, 小)ㆍ모자란(short, 不足)ㆍ짧은(brief, 短) 같은 뜻이 있고,
여기에 반대를 나타내는 접두어인 아(a)를 붙여야지만 무량(無量)이 된다.
결국 ‘미따불(彌陀佛)’이란 ‘빈약한 붇다’ ‘작은 붇다’ ‘모자란 붇다’ ‘짧은 붇다’란 말도 안 되는 번역이 되어 버리기 때문에
우리가 흔히 쓰는 ‘미타불’ ‘미타정사’ ‘미타삼존’이란 말은 삼가는 것이 좋다. (전자책 『아미따경』 주석 참조)
2. 나모아미따불(南無阿彌陀佛)
아미따불 문제는 앞에서 보았기 때문에 여기서 나모(南無)에 관한 것만 보기로 한다.
산스크리트 나모(namo)는 본디 나모스(namos)라는 중성(中性) 명사의 활용이다.
namos는 절(bow), 경례(obeisance, 敬禮), 경건한 인사(reverential salutation, 敬虔人事), 예배ㆍ숭배(adoration, 禮拜ㆍ崇拜)를 뜻하며,
나모(namo)는 주로 나모스(namos)를 다른 낱말과 합성할 때 많이 쓰이는데,
보기를 들면,
'나모 3보(三寶)'는 ‘나모 라뜨나-뜨랴야나(namo ratna-trayāna, 南無喝囉怛那哆囉夜野, 那謨囉怛那怛囉夜野)’라고 한다.
한문에서는 뜻을 따라 옮길 때 귀의(歸依)ㆍ귀명(歸命)ㆍ경례(敬禮)ㆍ귀례(歸禮)ㆍ신종(信從) 같은 낱말을 썼는데,
그 가운데 귀의(歸依)ㆍ귀명(歸命)이란 뜻으로 많이 쓰고 있습니다.
이 나모(namo)를 중국 역경가들이 소리 따라 옮길 때 남무(南無)ㆍ남무(南牟)ㆍ나모(那謨)ㆍ나마(那摩)ㆍ낭막(曩莫)ㆍ납막(納莫) 같은 여러 가지로 옮겼는데,
비록 한자는 다른 글자를 썼더라도 모두 나모(namo)라고 읽어야 한다. 당시는 모두 ‘나모’라고 읽었기 때문이다.
Ⅲ. 우리나라 불교사에 나타난 ‘아미따경’과 ‘나모아미따불’의 소리값
그렇다면 우리나라 불교사에서는 ‘아미따경’과 ‘나모아미따불’을 어떻게 읽었을까? 이 문제에 대답해 주는 것이 『진언집(眞言集)』들이다.
진언집에는 당시 산스크리트-한글-한문을 함께 써 놓았기 때문에 산스크리트 원문과 한문으로 옮긴 한자,
그리고 그것을 우리나라 소리로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 하는 것이 뚜렷하게 나타나 있다.
지금까지 글쓴이가 각 도서관 고서에서 뽑아다 분석한 『진언집(眞言集)』은 다음과 같다.
1529년(중종 24) 전라도 용문사
1569년(선조 2) 전라도 同卜 無芳山 安心寺 중간
1658년(효종 9) 강원도 신흥사
1688년(숙종 14) 평안도 普賢寺
1694년(숙종 20) 전라도 母岳山 金山寺 開刊
1771년(정조 1) 전라도 화순 萬淵寺
1800년(정조 24) 경기도 양주군 도봉산 망월사 藏板
1826년(순조 26) 전라도 維摩寺
대부분 비슷한 내용을 싣고 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미묘한 변화를 읽을 수 있다.
이 가운데 1569년(선조 2)에 발행된 안심사본과 200년 뒤 1771년(정조 1)에 발행된 화순 만연사본,
그리고 19세기 들어서 1800년(정조 24) 경기도 양주군 도봉산 망월사에서 펴낸 망월사본을 주로 보면서
다른 판본도 참고하기로 하겠습니다.
1. 남무(南無)ㆍ낭모(曩謨)ㆍ낭막(曩莫ㆍ나모(那謨)에 대한 소릿값.
1) <南無=나모> : 안위제신진언(安慰諸神眞言)
진언집에 보면 ‘여러 신을 편안하게 하는 다라니(安慰諸神眞言)’이라는 다라니가 있다. 그 다라니를 복원해 보면 다음과 같다.
➊ 안심사본(1569)
나모 사만다 몯다남 옴 도로로로 디미 [ᄼᆞ+ᄫᅡ]하
南無 三滿[享+單] 沒馱喃 唵 度嚕度嚕 地尾 莎訶
巧伕 屹亙阢 蒤湑觡 湡 加冰加冰 元亦 辱扣(산스크리트는 모두 이상한 한다로 나옵니다. 첨부한 pdf 파일 참조)
(namo samanta buddhānāṃ oṃ turuturu jimi svahā)
이 진언은 1569년(선조 2) 전라도 동복(同卜) 무방산(無芳山) 안심사(安心寺)에서 펴낸 이른바 안심사본에 나온 내용으로,
南無를 나모(namo)로 읽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❷ 망월사본(1800)
1800년(정조 24) 경기도 양주군 도봉산 망월사 장판(藏板)인 이른바 망월사본에도 똑같이 南無를 나모(namo)로 읽는 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만 마지막에 sva를 읽는 법이 [ᄼᆞ+ᄫᅡ]에서 [ᄼᆞ+바]로 바뀐 것만 다르다.
그것은 그 동안 진언에서 [v] 소리로 쓰였던 [ᄫ]음이 훈민정음에서 사라졌기 때문일 것이다.
나모 사만다 몯다남 옴 도로로로 디미 [ᄼᆞ+바]하
南無 三滿[享+單] 沒馱喃 唵 度嚕度嚕 地尾 莎訶
巧(na)伕(mo) 屹(sa)亙(ma)阢(nta) 蒤(bu)湑(ddhā)觡(nāṃ)
湡(oṃ) 加(tu)冰(ru) 加(tu)冰(ru) 元(ji)亦(mi) 辱(sva)扣(hā)
안심사본(1569) 망월사본(1800)
이 진언은 두 단락으로 나뉜다.
① 나모 사만다 몯다남 / 南無 三滿[享+單] 沒馱喃) / namo samanta buddhānāṃ
② 옴 도로로로 디미 [ᄼᆞ+ᄫᅡ]하 / 唵 度嚕度嚕 地尾 莎訶 / oṃ turuturu jimi svahā
① 먼저 붇다께 귀의한다는 것이고, 이어서 두 번째 문단에서 옴(oṃ) 이하 진언이 나온다.
나모(namo)는 ‘귀의’ 한다는 뜻이고 싸만따(samanta)는 ‘모든’이라는 뜻이다. 몯다남은 붇다남(buddhānāṃ)을
그렇게 읽은 것으로 부처님을 뜻하는 ‘buddha’에 복수 여격어미 anām이 붙은 것이므로 ‘붇다들께’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흔히 염송하는 ‘붇다께 귀의합니다’라는 뜻이다.
이 진언은 현재 천수경에 나오는 ‘오방내외안위제신진언(五方內外安慰諸神眞言)’과 같은 내용으로
현행 천수경에서는 이렇게 나온다.
나무 사만다 못다남 옴 도로도로 지미 사바하(세 번)
南無 三滿多 沒馱喃 唵 度魯度魯 地尾 娑婆訶
같은 南無를 ‘나무’로 읽고 있는 것이다.
2) <낭모(曩謨)=나모> <낭막(曩莫)=나모> <나모(那謨)=나모>
그림 자료 가운데 앞 나오는 ①②③ 3편의 진언은 모두 안심사본에서 나온 것이다.
① 야차 무리를 부르는 진언(招請諸藥叉衆眞言)
② 진리를 지키는 신을 모시는 진언(招請護法神眞言)
③ 부동명왕 진언(不動尊眞言)
3편 모두 앞에 나온 한문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모두 나모로 읽어 <낭막(曩莫)=나모> <나모(那謨)=나모>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것은 산스크리트의 namo를 옮기면서 여러 가지 한자를 사용하였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고,
아울러 한문을 어떤 글자를 썼더라도 산스크리트 원문이 무엇이야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러한 경향은 230년 뒤 망월사 본에서도 마찬가지다.
④ (물) 뿌려 깨끗이 해 마라를 거느리는 다라니(灑淨護魔陀羅尼)를 보면 <낭모(曩謨)=나모>라고 읽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안심사본 안심사본
안심사본 망월사본
2. ‘나모+아미타불’에 대한 조선시대의 소릿값
1) 무량수불설왕생정토주(無量壽佛說往生淨土呪)
1771년 우리의 선조들이 외웠던 ‘맑은나라(淨土)에 가서 태어나는 것(往生)을 결정(決定)하는 다라니(眞言)’입니다.
먼저 현재 남아있는 진언집 가운데 가장 오래 된 안심사본을 복원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① [정음] 나모。아미다바야。다타가다야。
② [한자] 南無。阿弥多婆夜。哆他伽哆夜。
③ [산스크리트] 巧伕 翑亦冔莁挐 衧卡毢衧媏
namo amitābhaya tathāgataya.
④ [뜻] 아미따바(amitābha, 그지없는 빛, 無量光)에게, 여래(tathāgata, 如來)에게 귀의합니다.
산스크리트에서 아미따바(amitābha) a-mita-ābha의 겹씨(合成語)이다.
미따(mita)란 낱말은 빈약한(scanty, 貧弱)ㆍ작은(little, 小)ㆍ모자란(short, 不足)ㆍ짧은(brief, 短) 같은 뜻이 있는데,
그 낱말에 반대를 나타내는 앞가지(接頭語) [a-]을 덧붙여 a-mita가 되어
잴 수 없는(unmeasured), 끝없는(boundless), 그지없는(infinite, 無限)이라는 뜻이 된다.
아바(ābhā)는 빛남ㆍ빛살(splendour, 光彩), 빛ㆍ밝음(light, 光); 번득임(a flash), 빛깔(colour, 色),
나타남(appearance, 出現 ), 아름다움(beauty) 같은 뜻을 가지고 있다.
산스크리트에서 겹씨를 만들 때 amita-ābha처럼 앞 낱말의 끝이 a이고 뒤 낱말의 첫머리가 ā일 때는
a+ā=ā가 되기 때문에 amitābha가 되었다. 빛(光)이라는 뜻은 아바(ābhā)인데, 실제로는 아바(ābha)로 쓰고 있다.
산스크리트-일본어 사전에서는 아바(ābha)가 겹씨를 만들며 뒤에 올 때는
‘~와 같은(like)’이나 아바(ābhā)와 같은 뜻으로 쓰인다고 설명하고 있다.
amitābha를 우리말로 정확하게 옮기면 ‘그지없는(無限) 빛’이라고 할 수 있는데,
한문경전에서는 무량광(無量光)으로 옮겼다.
낱말 끝에 ~ya(야)가 붙으면 ‘~에게’라는 뜻이다.
이 다라니는 지금도 정토 행자들이 많이 외고 있기 때문에 친숙하리라고 본다.
안심사본(1569) 만연사본(1771)
여기서 우리는 조선 중기 안심사본(1569)에서는 <南無=나무>로 읽었다는 것을 알 수 있고
아미따(amita)는 한자로 阿弥多라고 쓰고 읽기는 ‘아미다’라고 읽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편 그보다 200년 뒤인 만연사 본에도 똑같이 <南無=나무>라고 읽었고 <阿弥多=ᅙᅡ미다>로 읽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 대신 [ᅙᅡ]를 쓴 차이는 있지만 기본적으로 ‘아미다’라고 소리 나는 점은 같다.
후기에 들어와 [ᅙᅡ]를 많이 썼다는 것도 국어사에서는 흥미로운 일이다.
혹시 산스크리트의 [a]가 [어]에 가깝게 소리 난다는 점을 나타내려 했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도 든다.
2) 무량수여래 근본 다라니(無量壽如來根本陀羅尼)
① [정음] 나모。라ᄃᆞ나 ᄃᆞ라 야야。나막。알야。아미다바야。다타아다야。
② [한자] 曩謨。囉怛曩 怛囉夜野。曩莫。阿㗚野。阿弥跢婆耶。怛他蘖跢夜。
③ [산스크리트] 巧伕 先寒 氛仲伏 翑亦冔莁挐 衧卡毢衧媏
namo ratna trayāya. namaḥ ārya amitābhaya tathāgataya.
④ [뜻]
⒜ 나모。라ᄃᆞ나 ᄃᆞ라 야야。(namo ratna trayāya).
세 가지 보배(三寶)에 귀의합니다.
⒝ 나막。알야。아미다바야。다타아다야。(namaḥ ārya amitābhaya tathāgataya).
거룩한 아미다바에게, 여래에게 귀의합니다.
안심사본
이 다라니에서도 조선 중기 안심사본(1569)에서는 <曩謨=나무>로 읽었고,
아미따(amita)는 한자로 阿弥跢라고 쓰고 읽기는 ‘아미다’라고 읽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3) 보현보살 옹호 수지 진언(普賢菩薩擁護受持眞言)
이 진언은 보현보살의 보호(擁護)를 받는 진언인데, 내용에 삼보 귀의에 이어 아미따 붇다께 귀의하는 내용이 나온다.
우선 안심사본의 내용을 복원해 보면 다음과 같다.
① [정음] 나모。몯다야。나모。달마야。나모。시ᇰ가야。나모。아미다몯따.
② [한자] 南無。佛陁耶。南無。達摩耶。南無。僧伽耶。南無。阿弥陁佛陁。
③ [산스크리트] 巧伕 --- 巧伕 --- 巧伕 --- 巧伕 翑亦冔--
namo buddha-ya, namo dharma-ya, namo saṃgha-ya, namo amita buddha.
④ [뜻] 붇다께 귀의합니다. 가르침에 귀의 합니다. 쌍가에 귀의합니다. 아미따 붇다께 귀의 합니다.
그리고 200년 뒤 만연사본도 한자와 산크리트는 기본적으로 같지만 정음으로 옮기는 소릿값이 조금 다르다.
우선 한문에서 아미타(阿弥陁)라고 비탈질 타(陁)자를 쓴 것은 고려대장경의 한자와 똑 같다.
그러나 고려대장경은 모두 한문으로만 되어 있어 그 소릿값을 알 수 없었지만
몇 백 년 지난 조선 중기에 이 발은 [다]나 [따]로 읽는 다는 것을 진언집에서 밝혀주고 있다.
바로 만연사본에서 산스크리트 원문과 정확하게 일치하는 ‘ᅙᅡ미따’라고 쓰고 있기 때문이다
.
① [정음] 나모。몯다야。나모。딸마야。나모。시ᇰ가야。나모。ᅙᅡ미따몯따.
이 진언에서도 <南無=나모>로 읽어 모든 다른 진언과 같다. 다만 아미따붇다(amita buddja)는 두 본이 조금 차이가 난다.
안심사본 만연사본(1) 만연사본(2)
Ⅳ. 맺는 말
이상에서 아미따불(阿彌陀佛)과 나모(南無)에 대한 조선시대 소릿값을 보았는데,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을 수 있다.
1. ‘나무’인가 ‘나모’인가?
조선시대 진언집들을 분석해 본 결과 진언에서는 산스크리트 나모(namo)를 다음 4가지로 옮겼는데,
한문이 달라 우리나라 식으로 한문을 읽으면 전혀 다른 소리들이 나오지만 진언을 외울 때는
모두 똑같이 나모(namo)라고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① 남무(南無)=나모
② 낭모(曩謨)=나모
③ 낭막(曩莫)=나모
④ 나모(那謨)=나모
그렇다면 언제, 왜 ‘나무’라고 읽게 되었는가? 이 문제는 이미 오대진언(五大眞言)이나
천수경의 변화과정을 통해 어느 정도 연구가 진행되었으나 다음기회로 미룬다.
그러나 결론을 이야기 하면 남무(南無)로 읽는 것은 잘못 전해졌다는 것이다.
2. 아미타인가, 아미따인가?
아미따의 조선시대 소릿값에 대해서는 3가지 진언을 분석한 결과 다음과 같은 결과가 나왔다.
(1) 무량수불설왕생정토주(無量壽佛說往生淨土呪)
[한문] 阿弥多婆
[정음] ① 안심사본(1569) : 아미다바
② 만연사본(1777) : ᅙᅡ미다빠
(2) 무량수여래 근본 다라니(無量壽如來根本陀羅尼)
[한문] 阿弥跢婆
[정음] 안심사본(1569) : 아미다바
3) 보현보살 옹호 수지 진언(普賢菩薩擁護受持眞言)
[한문] 阿弥陁佛陁
[정음] ① 안심사본(1569) : 아미다-몯다
② 만연사본(1777) : -몯따
이것을 좀 더 간추려 보면,
1) [한문] 阿弥多, 阿弥跢, 阿弥陁 : 현재 쓰고 있는 阿彌陀와 모두 다른 ‘타’자를 썼다.
2) [정음] ‘아미다’ 또는 ‘ᅙᅡ미다’라고 썼으며,
후대인 1777년에는 된소리로 ‘ᅙᅡ미따’를 썼다.
이상에서 본 바와 같이 우리가 지금 염하고 있는 ‘아미타불’이 천년이나 2천년 동안 사용했던 염불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가장 중요한 핵심은 어떤 것이 올바르냐 하는 것이다.
조선시대나 고려시대부터 지금까지 계속 써온 것이라도 틀린 것은 고쳐야 하는 것이다.
경전에서 사용된 용어는 발전되고 변화되면서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붇다께서 말씀하신 본디 그 말과 뜻을 충실하게 이어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글은 진실을 밝히는 것이지 염불수행자들에게 ‘나모아미따불’을 꼭 써야 한다는 것은 아니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끝으로 새로 번역한 『아미따경』 주) 6번에 쓴 ‘고유명사를 옮기는 원칙’을 덧붙인다.
이것은 앞으로 될 수 있으면 많은 사람들이 『아미따경』을 다운받아 읽으시고
거리낌 없이 문제를 제기해 토론을 해주십사하는 바람 때문이다.
글쓴이가 정토삼부경을 우리말로 옮기면서 우리나라에서 가장 널리 읽히고 있는 청화 큰스님의 번역본을 바탕으로 하고
여러 번 읽고 대조하며 작업을 진행하였습니다.
참으로 훌륭한 스님께 실로 큰일을 하셨구나 하는 생각을 많이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큰 스님도 무량수경에서 두 군데를 빼 먹고 번역을 안 하신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물론 인쇄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있었으리라고 생각이 들지만
경전을 옮긴다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를 생각하도록 해 준 좋은 본보기였습니다.
그래서 번역을 했더라도 일생을 고쳐가며 후대 한글세대가 쉽게 읽을 수 있는 번역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려고 합니다.
많은 꾸짖어 바로 잡아주시기 바랍니다.
고유명사에 대한 논의를 기다리며,
아미따경 : http://www.upaper.net/bulmowha/1034147
6) 고유명사를 옮기는 원칙.
앞으로 사람 이름이나 땅이름처럼 고유명사를 한자로 옮길 때 뜻으로 옮기지(意譯) 않고 소리 나는 대로 옮긴 것(音譯)은
산스크리트 본디 소리를 찾아 그대로 살린다.
불경을 가장 많이 옮긴 현장(玄奘)은 ‘5가지 번역하지 않은 것(五種不飜)’이라고 해서
다음 5가지는 뜻으로 옮기지(意譯) 않고 소리 나는 대로 옮겼다(音譯).
① 다라니(dhāraṇī, 摠持) 같은 주문,
② 바가반(Bhagavān, 婆伽梵, 世尊)같은 홀이름씨(固有名詞),
③ 잠부(jambu, 閻浮) 같이 인도에만 있는 나무,
④ 아눋따라-싸먁-쌈보디(anuttara-samyak-saṁbodhi, 阿耨多羅三藐三菩提) 같은 가장 높은 깨달음을 표현한 용어,
⑤ 쁘랒냐(prajñā, 빨리어= 빤냐 pañña, 般若)처럼 불교만 가지고 있는 독특한 용어 같은 5가지다.
그러나 한자는 소리글자가(表音文字) 아니고 뜻글자(表意文字)이기 때문에 소리 나는 대로 적는다는 것이 매우 어려웠다.
인도유럽 계통의 소리글자인 산스크리트는 자음이 여러 개 겹치는 경우가 많고,
한자음으로는 도저히 나타낼 수 없는 낱말이 많았는데,
그럴 경우 ‘몇 글자 합해 한 소리내기(二合, 三合)’ ‘첫 낱소리(音素)와 뒤 낱소리를 합해 한 소리 내기(半切)’ 같은
어려운 방법을 통해 간신히 해결하였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면서 이런 법칙들이 지켜지지 않게 되었고,
나라와 왕권이 여러 번 바뀌어 수도가 옮겨지면서 표준어가 달라지고,
나라가 넓기 때문에 지역에 따라 전혀 다른 소리로 읽으면서 번역할 때의 소리와 전혀 다른 소리를 내게 되었다.
특히 현재의 표준어라고 할 수 있는 보통화(普通話)는 3~5세기 경전을 번역 할 당시의 읽는 법과 완전히 달라
마치 다른 나라 말과 같은 경우가 많다.
한국은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한국식 한문으로 읽어버려 본디 산스크리트와는 완전히 다른 소리를 내게 되었다.
세종이 완전 소리글인 ‘백성을 가르치는(訓民) 바른 소리(正音)’를 만들었으나 아직까지 불교계에서는 그 좋은 점을 살리지 못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번역에서는 될 수 있는 대로 위에서 본 ‘5가지’는 산스크리트 원음을 함께 곁들이고,
그 소리를 ‘바른 소리(訓民正音)’ 쓰는 법에 따라 옮기기로 한 것이다. 처
음에는 어색해도 습관이 되면 더 친근감을 느낄 것이며,
특히 유럽 말을 배운 새로운 세대에게는 틀 린 한자음보다 더 쉬울 것이고,
불교를 국제화 하는데도 크게 도움이 되리라고 본다.
첫댓글 나모아미타불_()_
나모아미타불
감사합니다()()()
_()_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
나모 아미따바 나모 아미따윳
저도 무량수경의 빠진 부분이 궁금합니다.
잘못된 부분이 있으면 고쳐야 하는것 아닌가요.
훌륭하십니다
더욱 많은 가르침 주시옵소서
나모 아미타불!
南無阿彌陀佛 南無阿彌陀佛 南無阿彌陀佛
감사합니다
오늘도 정성것 올려주신 좋은 글과.법문에 잠시 머물다 갑니다.
항상 건강에 유의하시고,즐겁고 행복하세요.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나모아미따바.
덕분에 바르게 칭념하고 있습니다.
깊은 마음으로 감사드립니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감사합니다.성불하세요_()_.
감사합니다.나무아미타불나무아미타불나무아미타불나무아미타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