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날, 나라가 방송하나를 두고 시끄러웠던 적이 있다. 법원의 광우병보도 무죄판결에 대한 논란 때문이다. 당시 법원의 1차 결심 판정이 나온 날, 하필 본 영화가 '굿 나잇 앤 굿 럭(Good Night and Good Luck)'이다. 그 걸 보려고 해서 봤던 게 아니다. 어쩌다 채널을 돌리면서 마주친 것이다. 영화는 사회적 광기에 맞선 방송언론의 고뇌와 참모습을 그리고 있다. 텔레비전 방송은 그 기능상 그 때나 사회적인 영향력 차원에서 지금이나 논란의 대상이다.
마셜 맥루헌이 설파했듯, 정보 양이 빈약하고 불투명한 반면 직관적이며 감성적인 '핫 미디어(hot media)'의 대표적인 게 바로 텔레비전이다. '바보상자'란 비하적인 용어도 그 때문에 나왔다. 영화에서 에드워드 머로우(Edward R. Murrow)는 직접 '바보상자'라는 말을 언급한다. 이 말을 머로우가 처음 사용해 오늘 날에 이르렀는지는 모르겠으나, 이 말을 근 60년 전에 머로우가 들먹이고 있는 모습은 좀 생경스러운 한편으로 그 의미가 좀 더 각별하게 들렸었다.
美 CBS의 명 앵커로 실존인물인 머로우는 영화에서 TV의 '생각과 정보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이 것을 도외시하면 이른바 '바보상자'가 된다는 점을 웅변키 위한 것이다. 1950년대 초반 미국을 강타한 '매카시즘'이란 반공 깜빠니아에 방송언론이 올바르게 맞서려면 '생각과 정보'가 있어야 한다. 미국의 CBS가 그래서 만든 게 'See It Now'라는 프로그램이었고, 여기에 CBS의 명 앵커 에드워드 머로우가 등장해 주요 사회이슈의 이면을 파헤친다.
매카시 상원의원과 맞선 CBS와 에드워드 머로우는 결국 승리한다. 사회적 광기는 종종 조작과 위선, 협박을 무기로 한다. 여기에 굴하지 않고 대응하는 방법은 다른 게 없다. '진실'이란 무기다. 언론의 사명 중에 불변의 진리도 바로 '진실'에 대한 추구일 것이다.
당시 우리의 경우로 되돌아 가 보자. MBC의 광우병 보도가 진실 된 것이었나, 아니면 허위적인 것이냐를 두고 검찰과 방송사측이 공방을 벌였는데, 결과는 '진실' 쪽으로 일단 가닥이 잡혔다. 법원의 1차 공판 결과이지만, 국민들은 참 혼란스러웠다. 앞서 상급법원은 '허위'를 전제로 한 결판을 내린 바 있기 때문이다.
광우병보도가 진실, 아니면 허위사실에 기초한 것인지는 MBC와 관계자들이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이와 관련해 당시 한 가지 짚고 싶었던 것은 MBC 내부에서 조차 판결내용이 잘못된 것이란 여론이 공공연하게 나오고 있다는 것이다. 광우병보도 정정보도 공판당시에도 MBC측은 "(광우병보도가)허위였지만 몰랐다"라는 교묘한 말로 발뺌을 시도한 적이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 무렵 '굿나잇 앤 굿럭' 영화를 보고 인터넷 검색을 해봤더니, MBC와 연계시킨 글들이 꽤 있었다. 역설적이게도 MBC가 사회적 광기와 권력에 맞섰다는 방송언론이라는 점에서, 영화를 그즈음 논란의 대상이었던 MBC측의 입장에서 보고 있는 듯한 글들이었다. 선전과 선동에 약한 대중은 가끔 집단 최면의 관점에서 이런 愚를 저지르기도 한다. 아울러 그 때 MBC 뉴스데스크에서 도중하차한 신 머시기 앵커와 에드워드 머로우를 견주기도 하는 글들도 있었다. 그 양반은 지금은 몇 선의 국회의원이다.
지금 생각해봐도 참 혼란스럽다. 과연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기만이고 허위인가. 머로우의 클로우징 멘트 '굿 나잇 앤 굿 럭'은 참 역설적이다. 진실을 수호하고자 하는 입장에서의 고뇌와 부담이 담긴 멘트다. 바른 말을 하는 입장은 떳떳하다. 진실에 대한 소신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더라도 살아있는 권력이나 미친 듯이 날뛰는 광기 앞에서는 위축되기 마련이다.
“잘 주무시기를, 그리고 행복하시기를(good night and good luck) ...”
시청자들을 향해 마지막 멘트를 던지는 머로우는 시청자들과 함께 사실 자신도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나는 잘 잘 수도 없고, 행복하지 않으니..."
"회사 결정에 따라서 저는 오늘자로 물러납니다. 지난 일 년여, 제가 지닌 원칙은 자유, 민주, 힘에 대한 견제, 약자 배려, 그리고 안전이었습니다. 하지만 힘은 언론의 비판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아서 답답하고 암울했습니다. 구석구석과 매일매일, 문제가 도사리고 있어 밝은 메시지를 전하지 못해 아쉬웠지만, 희망을 품은 내일이 언젠가 올 것을 믿습니다. 할 말은 많아도 제 클로우징 멘트를 여기서 클로우징하겠습니다."
중도하차했던 신 머시기 앵커는 당시 이 말로 클로우징 멘트를 대신한다. 그의 원칙이 자유, 민주, 힘에 대한 견제, 약자 배려 등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지금 보면 좀 구차하고 생경스럽다. MBC가 지난 날 좌파정권아래서, 그리고 지금 또한 좌파정권에서 하고 있는 방송이 과연 신 머시기 앵커의 말처럼 그런 원칙과 가치관을 바탕으로 한 것이었는지 한번 묻고 싶다.
아울러 이 정권이 허공을 향해 들쑤시는 있는 듯한 이른바 ‘가짜뉴스’와 관련해 역시 MBC 출신의 박 머시기 의원이 행동대장 격으로 나서고 있는 것, 또한 MBC의 그런 민낯을 보여 주고 있는 듯해 안타깝고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