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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부문 스크랩 [연재]한(恨)-소리 1회-
최석영 추천 0 조회 61 07.10.30 19:45 댓글 1
게시글 본문내용
 


한(恨)

 

-최석영-

 

6부 소리 1회



“당골래 당골래 머허는가? 아직도 자는 거시여?”

호들갑스런 춘고 어미의 부름이 아니더라도 월평이네는 어떻게든 일어날 참이었다. 주워 먹을게 있으니 풀방구리 쥐 드나들듯 하겠지만 또 그나마 춘고네가 없으면 이것저것 심부름 해줄 사람이 없으니 없으면 있느니만 못한 것이 사실이라 호들갑스런 그네의 주절거림에 넌덜머리가 나면서도 또 어쩔 수 없는 처지라 끙- 앓는 소리로 대신하고 이불을 젖히는데 방문을 열고 들어선다.

“오늘은 늦었소….”

“이- 오다가 독가촌으로 시집간 월선이를 만나각고 얘기 좀 허다 본께 때가 제워 부랬구만.”

“독가촌 월선이가 왜?”

“글씨… 어제가 소구이양반 첫 제사였다만.”

“벌써 그리됐는가? 방안에만 있응께 세월 간지를 통 모르것네.”

“어쪄? 다리 쑤신 건 좀 괜-찮혀?”

세월 무상이라 했던가. 아니면 남의 일이라 쉽게, 쉽게 가는가. 그 양반 죽은지가 엊그저께 인줄로 알았더니 제사였다니 무상타는 말이 새삼스럽다 싶은 월평이네가 혀를 끌끌 차며 다리의 안부를 묻는다. 어제 오늘 본 사이도 아니고 수년을 하루도 빠짐없이 보아놓고 또 새삼스레 묻는 것은 조롱꺼리로 한 말 일 터… 월평이네가 그런 그네의 심사를 모를 리 없어 외면한 채 제 할 일이나 하라는 듯이 내 뱉었다.

“오강이나 비워 주쇼.”

춘고네 가 입술을 삐죽이며 오만상을 쓰고서 요강을 들고 나간다. 그러면서 또 예나 없이 주절거리는 신세타령이 시작되었는데 그것이 또 귀신들이 주절거리는 것 만큼 이나 월평이네 심사를 어지럽혔다.

“에고… 시어미 똥요강 치운께 넘의 똥요강 치우는 이년의 팔짜는 또 먼 년의 팔짤 까나이. 어떤 년은 팔짜 좋아서 팔짜에 없는 딸로 호강을 헌디 어떤 년은 에미년 자석 놈 넘의 집 머슴살이 헌 신세고. 참말로 이 던전시런 시상 살이를 또 언제나 필랑가 어쩔랑가.”

몇 해 전부터 소갈 병을 앓아 자리보전하고 누운 월평이네는 읍내 박씨 집에 딸년 상연이를 첩으로 넣어 목구멍에 풀칠이나 하는 곤궁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굿판을 찾아다니며 굿을 해 신수와 사주를 봐 주는 것으로 연명을 하던 당골네가 모아둔 것 없이 주저 않았으니 딱 굶어죽을 신세가 된 것은 당연한 일, 굿판에 몇 번 따라 다녀본 것이 전부인 어린 딸년이 굿판을 따라니며 배워서 당골네 짓을 물려받을 수도 없는 일이라 두 모녀 딱 죽기만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상연이라는 년이 옆집 할애비 김생원에게 소일거리로 배우던 소리를 가지고 읍내 박윤호 라는 자를 찾아가 첩이 되겠다 자원하였다. 만석꾼의 일족이요 천하에 잡놈이면서도 야무져 일본에 있는 대학까지 나온 그는 신식답지 않게 소리를 좋아 하여 소리 잘하는 사람을 늘 끼고 살았는데 소리 잘하는 어린 첩을 구한다는 소문을 널리 내었던 것이다. 그 자가 사람 보는 안목이 있거나 아니면 사람이 죽으라는 법이 없었던지 상연이의 소리를 들어보지도 않고 첩으로 들이 앉혔다. 그러고 나서 따로 소리 선생을ㄹ 붙여 상연이에게 소리를 가르치더니 몇 년이 있지 않아 안방에 끼고 자는 애첩이 되었다. 상연이가 어찌 하였는지 윤호라는 자가 철마다 상연이 어미에게 쌀과 옷을 보내고 상연이는 달마다 돈을 보냈다. 약도 없고 돈도 없고 먹을 것도 없어 죽는 날만 기다리던 상연이 모친은 여물지도 않은 딸년 첩으로 팔아먹은 것이 기막히고 원통해서 눈물로 밤을 지새 던 중 아침저녁으로 춘고 어미가 찾아와 수발을 들어주니 세월이 무정하여 애간장이 녹던 서러움은 간데없고 씨알이 메 키는데 춘고 어미로 하여 막막한 지경은 면했으나 첩살이 하여 딸년이 번 돈을 춘고 어미 입에 털어 넣는 신세이고 보면 또 사는 것이 구차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입을 거면 입을 것대로 먹을 거면 먹을 것대로 제 꼬불쳐 가니 상연이가 달마다 보내오는 양식과 돈이 오갈 데 없이 사라지고 마는 것이다. 그렇게라도 하면서 듣기 좋은 소리를 하고 사람 마음이라도 편하게 해 주었으면 좋으련만 또 그년의 입이 가만있지를 못하고 요동을 치고 번 죽을 울려 사람 심사를 뒤집어 놓기가 일쑤였다.

“오늘이 닷샌디 어쪄? 니열 장에 댕개 오까?”

‘장? 작년에 소구이양반 돌아가시고 사흘 있다가 4대조 할아버지 제사를 지냈었다. 춘고 어메가 지금 제삿장 봐올 거냐고 묻는 말이구나. 망할 년 우리 집 제사로 제 식구들 배 채울 생각에 또 신이 나겠지.’

눈이 희번덕거리며 제사상에 올릴 것 보다 제 자식 놈들이 좋아 하는 것을 먼저 떠올리고 궁리하는 꼬락서니라니 가소로 와 코웃음만 나오는 것을 꾹 참는다. 상연이가 박윤호의 집으로 간지 서너 달이 지난 어느 때부터 조상님들이 보이지 않고 앞일을 예단하는 신기가 보이지 않았다. 아마도 그 어린 것이 박가 놈에게 짓밟힌 이후일 것이다. 이제 어미가 어미에게 신기가 사라졌으니 신딸인 상연이에게 신기가 들겠지만 신기가 있어도 무병이니 신 내림이니 하는 거추장스러운 징조가 없음을 다행으로 알고 소리 잘하는 첩년으로 학수고대할 뿐이다. 그러려면 먼저 월평이네가 무탈하여야 했다. 천하디 천한 신분의 당골네 딸년이 서방을 얻으면 얼마나 좋은 서방을 얻고 자식을 낳으면 얼마나 좋은 자식을 낳겠는가. 그저 몸 편하게 굶어죽지 않고 좋은 날 오기만을 바라고 살면 되는 것이다.

“내일 아침 장에 나가기 전에 들리게…”

작년 까지만 해도 월평이네는 춘고 어미에게 미리 제삿장 볼 돈을 주었었다. 하지만 올해는 그렇게 하지 않을 작정이다. 참 사람 마음이라는 것이 간사해서 돈을 먼저 받으니 다음날 아침 요강도 비워주지 않고 장으로 내빼는 바람에 하루 종일 오줌 참느라 고생을 많이 하였다. 해서 올해는 그러지 않을 참이다. 돈을 내주지 않자 뭉그적거리던 춘고 어미가 슬금슬금 밖으로 나갔다. 아침상을 봐 온다고 하지만 부엌에서 욕을 하고 싶어서일 것이다.

춘고 어미가 부엌으로 나 간지 얼마 안 되어 방으로 다시 들어서는데 묘하게도 뒷걸음질 치면서 들어선다 싶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사단이 나고 말았다. 신발을 신고 총을 들이댄 사내가 뒤따라 들어서며 입을 손에다 대었다. 조용히 하라는 신호다. 아침은 지나고 점심나절이 다 되어가는 때이니 도둑이나 산적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으나 총을 들이댄 상대가 누구인지는 모르겠다.

“놀라게 해서 미안합니다. 다리를 다친 터라 더 이상 도망 갈 데가 없어 이렇게 숨어들었습니다. 다리가 나을 때 까지만 있게 해 주십시오.”

‘누굴까? 말 하는 것으로 봐서 나쁜 사람처럼 보이지는 않는데…’

월평이네가 고개를 끄덕이자 사내가 방에 앉았다. 춘고 어미도 월평이네 등 뒤로 숨어 앉으며 새알만해진 가슴을 쓸어내리며 일단은 자신을 죽이지는 않을 사람이라는 사실에 안도하는 눈치다.

“뉘시오? 뉘신데 총을 들고 그러오?”

어지러운 세상이었다. 동학이 난을 일으키고 일제가 상감을 몰아내고 나라를 중국 어딘가에 다 가 세우고 독립운동을 한다고 하였고 군자금을 모은다는 자들이 갑부들의 집을 털었다는 흉흉한 소문이 돌고 있었다.

“걱정하지 마시오. 나는 절대 나쁜 사람이 아니오.”

말하는 본새가 배운데 있는 사람이고 눈에 살기가 없는 것으로 봐 돈이나 바라고 사람을 죽이는 위인은 아니었다. 그럼 일경에게 쫓기는 독립꾼이다. 독립꾼, 굿판을 벌리고 한을 풀고 한을 위로하는 게 업이었기 때문일까 월평이네 생각에 나라를 뺏겼다는 것도 알 수 없는 일이고 나라를 되찾겠다는 것도 우스운 일, 당골 네 같은 천것에게, 백성에게 나라란 도무지 불필요한 것이다. 나라라는 것이 백성에게 뭐 해 준 것이 있어야 필요하든가 말든가 할 것이 아닌가.

 “먹을 걸 좀 주시오.”

춘고 어미가 겁에 질린 얼굴로 부시적 거리며 일어나 부엌으로 나가 상을 봤는데 사내는 부엌으로 난 쪽문을 춘고 어미를 감시하였다. 춘고 어미가 밥상을 들고 들어오자 춘고 어미 손발을 묶고 입에는 재갈을 물린 다음 총을 내려놓고 밥을 먹기 시작했다. 몇 날 며 칠을 굶었을까? 바가지에 퍼 담은 밤이 금 새 푹 줄고 수북이 담았던 김치가 동이 날 지경이 되어도 입으로 들어가는 밥숟가락이 줄지 않았다.

‘눈에 익다. 저 매서운 눈매가 누굴 닮았는데…’

상연이가 굿을 배우기 위해 징을 이고 굿판을 따라 나선 적이 있었다. 삼산리 최진사 집이었는데 그 집 마님이 월평이네에게 집안 대소사의 굿을 맡기고 있는 터라 일 년이면 한 번씩 큰 굿판을 벌려 집안의 안녕과 번영을 빌곤 하였는데 그날따라 액운이 들었는지 마당의 개가 미친 듯이 짖어대더니 상연이에게 달려들어 종아리를 물어뜯은 것이다. 그 때 한양서 높은 공부를 한다는 도련님 한분이 달려 나와 약을 바르고 극진히 치료해 준적이 있었다. 지체 높은 양반집 자제가 천한 당골네의 딸년을 그리 보살피고 보호 하다니 그저 몸 둘 바를 몰라 하고 있었는데 말을 높이지 않는가. 이제 막 말을 배우기 시작한 것도 양반이랍시고 씀벅씀벅 하대를 하고 무시하는 일이 예사 그렇게 잘생기고 훤칠한 분이 말을 높이다니 그저 민망하여 고개부터 숙이지 않았던가.

“데련님… 삼사이 데련님 이시제?”

“어찌 날 알아보시오?”

“저 모르시오? 월평이, 굿허던 당골레 월평이요.”

“월평이? 당골레?”

“그 때 마당에 개가 우리 딸을 물었을 때 서방님이 서양서 들여 온 약을 발라주고 메게 주고 그러셨구만요.”

“아- 그때 그 아주머니-!”

총을 든 사내는 삼산리 최진사 집 둘째 아들이었다. 그가 왜? 그 부잣집 아들이 무슨 일로 총질을? 삼라만상의 상념이 흐른다. 그 좋고 아까운 양반이 나랏일을 하는 것인가?

“데련님이 나랏일을 허시는 게요?”

“그렇습니다.”

대동단은 귀족 관료 유림 학생 의병 승려 여자 보부상 등 각계각층에서 단원을 포섭하여 독립운동을 하게 하는 한편, ‘대동신문'을 발간  하며 의친왕의 승인을 얻어 선언서를 인쇄, 상해 임시정부와 연락을 취하는 등 애국운동을 전개하였는데 삼산리 최진사 집 둘째 아들이 대동단 남원 지부 핵심 인물 이었고 이들은 서울 본부와의 긴밀한 연락을 하면서 남원지부의 활동목표를 정하였다. 항일운동에 동조하는 지방의 유지들을 포섭하여 독립운동 자금을 모금하고 중앙본부를 통 하여 상해 임시 정부에 헌금하는 것이 그들의 일차 목표였다. 그런데 최익환은 박정석이와 연계되어 있었다. 박정석은 유문경에게서 군자금 10원을 받고 장수에 사는 군 이상일에게서 130원을 받아 오인대(상해 임시정부에 오가며 독립자금을 운반하던 자)에게 전하고 운봉으로 돌아오는 길에 체포되고 말았다. 천만 다행인 것은 운반 책 오인대가 들어나지 않은 것이었으나 박정석과 연계되어 있던 최익환이 놈들에게 들어난 것이었다. 최익환은 대동단의 주도적 역할을 하였고 그는 대외 선전 외교를 맡고 있는 인물인데다 의친왕을 상해 임정으로 빼돌리기 위한 비밀 작전을 준비 중이었기 때문이다.

박정석이 체포 됐다는 소식을 들은 최익환은 기차를 타지 못하고 검문을 피해 운봉으로 숨어들기 위해 장수를 통해 방화동 계곡을 타고 사치를 넘어 소석마을 매방골(운봉 현감이 매 사냥했던 곳.)을 지나 짚은 골 고개를 넘어 용산마을 뒷길로 해서 산직골 고개를 넘어 서당안으로 해서 용은동을 지나 향교로 해서 삼산리 집에 들려야 했다. 그곳 마름 집 나무 청 바닥에 접촉자 명단이 있었다. 만일 최익환이 그것을 가져가지 못할 상황이라면 태워 없애야만 할 일이었다. 그런데 그만 용산마을 뒷산에서 발을 헛디뎌 발목을 삐고 말았다. 걷지도 못하고 몇 날 며 칠을 굶주린 탓에 동네에서 외딴 집으로 숨어들어 먹을 것을 구하려 했던 것인데 춘고 어미와 맞닥뜨린 것이다.

“어메… 어메…!”

춘고 동생 만복이가 제 어미를 부르고 있었다. 어전일일까? 생전 제 어미라고는 소 닭 보듯 하던 아이가 어미를 찾아 당골네 집 마당까지 들어온 것이다.


->계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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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07.10.31 17:20

    첫댓글 수고가 맣으세요, 새로 시작 되는 소리에 귀기울이고 갑니다,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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