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랑드르의 화가 브뤼헐(Pieter Brughel the Elder)은 주로 성서, 신화, 귀족을 대상으로 했던 당시의 화풍을 과감히 벗어나 일반 서민들의 생활 모습을 즐겨 그렸다고 하는데...그의 두 아들 역시 브뤼헐 못지 않게 화가로 이름을 날렸는데, 큰 아들은 무시무시한 지옥의 장면들을 즐겨 그렸기 때문에 '지옥의 브뤼헐'로, 작은 아들은 꽃을 소재로 한 정물화를 잘 그려서 '꽃의 브뤼헐'이란 별명을 얻었다고 한다.
위의 그림은 당시 플랑드르 지방에서 널리 유행했던 화풍을 살린 그림으로, 대중의 삶에서 사용되는 속담들을 그림 속에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그림을 분석한 비평가들의 견해에 따르면, 브뤼헐은 이 한 장의 그림 속에 무려 126가지의 속담(proverb) 또는 관용구(idiom)를 표현한 장면을 담고 있다고 하는데...그야말로 이 한 장의 그림이 인간의 다양한 삶, 즉 인생의 전시장을 표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하, 몇 가지의 장면을 골라 그 부분이 표현하고자 하는 속담이나 관용구를 확인해 보자(그림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감상하는 거야). 물론 그림 한 장에 백 여 개의 속담이나 관용구를 표현하자니 그림 한 장면에 여러 개의 속담, 관용구를 포함하고 있다고 하니 미리 참고하고 감상해야겠지?
1. 악마조차 강보에 묶을 수 있다(고집은 어떤 어려움도 극복한다)
2. 기둥을 물어 뜯는 사람(종교적인 가식이 있는 사람)
3. 한 손에 불을 들고 다른 한 손에 물을 든 사람은 믿지 말라(두 얼굴의 인간)
4. 돼지가 통 마개를 물어 뜯는다(부주의가 재앙을 불러 온다)
5. 벽에 대고 머리를 박다(불가능한 일에 시간을 낭비하다)
6. 어란(청어알) 얻으려고 청어 한 마리를 굽다(작은 일에 과잉 투자하다)
7. 비누거품 없이 바보 면도해 주기(타인 속이기)
8. 거위가 맨발로 다니는 이유는 아무도 모른다(분명하진 않아도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다)
9. 예수의 얼굴에 아마 수염 붙이기(기독교 신앙심의 허울을 쓰고 자신의 속임수를 감추기)
10. 밑 빠진 바구니에 떨어지다(자신의 속임수 들통나게 만들다)
11. 물에 햇빛이 비치는 걸 보지 못한다(남의 성공을 질투한다)
12. 돈을 물 속에 던지다(자기 돈을 낭비하다)
13. 흐르는 물을 거슬러 헤엄치는 건 좋지 않다(여론에 맞서긴 어려운 일이다) 14. 모자를 담장 너머로 던져 버리다(나중에 어떤 이익을 줄지도 모르는 것을 함부로 버리다)
15. 남편에게 파란 망또를 걸쳐 준다(남편을 속인다)
16. 두 마리 개가 뼈다귀를 두고 싸우면 다른 개가 훔쳐 간다(싸우거나 다투면 손실만 보장할 뿐이다)
17. 여우와 학이 식사하다(상대를 기만하면 되갚음 당한다)
18. 불타는 석탄 위에 앉다(참을성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