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희궁 옆 건물인 서울시 교육청을 통해 강북삼성병원이 있는 큰 길로 빠져나와
오른 쪽 방향 언덕길로 오르니
"홍난파 가옥"이라는 표지판이 보인다.
표지판을 보고 오른 편으로 방향을 틀면
서울성곽으로 가는 언덕길이 시작된다.
언덕길 입구엔 주택들의 담벼락으로 사용되던 성곽을 복원을 통해
600년 세월을 담은 성곽으로 다시 태어났다는 안내판이 있었다.
여기서 궁금증!
서울성곽은 어디서 어디까지이며 얼만큼 복원되었을까?
인터넷 서핑으로 정보를 얻었다.
"수도를 한양으로 옮긴 태조는 경복궁과 종묘가 완성된 이듬해인 1396년 서울성곽을 쌓았다.
농한기인 1∼2월 49일 동안 전국에서 11만 8000명을 동원했다.
주로 영호남과 강원·평안·함경도에 거주하던 사람들이었다.
경기·충청·황해도 거주민들은 바로 전 해에 궁궐 공사에 차출됐기 때문에 면제됐다.
압록강과 두만강 지역도 국방의 임무를 고려해 동원하지 않았다.
당시의 공사로 서울성곽은 북악산∼낙산∼남산∼인왕산 등 이른바 내사산(內四山)을 잇는 총 길이 18.6㎞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중략)
근대화와 함께 서울성곽도 시련기를 맞는다.
1899년 성문 안으로 전차가 드나들게 된다.
이후 1907년∼1908년 복선화가 추진되면서 숭례문과 흥인지문의 양쪽 성곽이 헐렸다.
이어 일제는 도로 개설을 위해 1913년에 남산과 장충동 사이 남소문 터 구간의 성벽을 헐었다.
1914년에는 서소문이, 1915년에는 돈의문이 헐렸다.
1928년과 38년에는 혜화문과 광희문의 성벽이 헐렸다.
이렇게 해서 총 길이 18.6Km 중 산지 성곽 10.5Km만 남게 됐다.
이후 1975년부터 복원이 시작됐고, 현재 인왕산·남산·숭례문 구간의 복원작업이 진행 중이다.
서울시장 공관 구간(86m)과 흥인지문 북쪽 동대문 성곽공원 구간(21m)도 계획대로 복원되면
원형 복원이 가능한 총 13.5㎞ 구간의 성곽이 모두 제 모습을 갖추게 된다.
하지만 나머지 5.1㎞ 구간은 사유지이거나 도로여서 사실상 원형 복원이 어려운 상태다."
-중앙일보 2012.4.06 기사-
또 다른 궁금증,
남대문(숭례문)과 동대문(흥인지문)은 알겠는데 서대문은 어떤 대문을 말하는걸까?
인터넷에서 찾아보았더니 (위 지도 참조)
서대문은 서울성곽의 4대문인 남쪽의 숭례문ㆍ북쪽의 숙정문ㆍ동쪽의 흥인지문ㆍ서쪽의 돈의문
가운데 서쪽에 낸 문으로서 "돈의문"을 말하는 것이다.
"돈의문"은 일제 강점기 때 헐려
강북삼성병원 앞 ‘돈의문터’라고 쓰인 목조 구조물만이 사라진 존재를 알려줬는데
원위치인 강북 삼성병원 장동 4거리에 2013년까지 전격 복원된다고 한다.
흠...
그럼 저 서대문역 근처에 "돈의문"이 생긴다는건가?
점점 역사도시가 되어가는 서울특별시...
옛 서대문인 "돈의문"이 복원되면 꼭 다시 와야겠다.
다시 홍난파 가옥을 찾아 전진!
이 아래가 사직터널이라는 것 같던데...
서울 성곽길에 오르니 왼쪽 아래로 서대문 아파트들이 내려다보인다.
아래 검은 부분은 옛 돌, 위에 하얀부분은 새 돌....
오른 쪽 위 하얀 건물은 "기상관측소"란다.
히야~~ 성곽길을 공원으로 조성했네!
공원엔 홍난파 작곡 "고향의 봄" 악보가 설치되어있고
악보를 본 다음 조금 올라가, 오른쪽으로 내려가야 "홍난파 가옥"을 만난다.
요 길 따라 내려가면 바로 오른 쪽에 있다.
친구들이 서 있는 곳은 홍난파 가옥의 앞마당 역할로 가끔 음악회가 열리는 곳이다.
드디어 홍난파 가옥!
홍파동 홍난파 가옥 (紅把洞 洪蘭坡 家屋) / 등록문화재 제90호
소재지 : 서울 종로구 송월1길 38, , 2-46 (홍파동)
홍파동 홍난파 가옥은 지하 1층 지상 1층의 붉은 벽돌조 건물로 독일계통 선교사의 주택으로 지어졌다
근처 송월동에 독일 영사관이 있었기 때문에 이 일대에 독일인 주거지가 형성되었는데 주변의 건물들은 다 헐리고 이 집만 남아 있다.
특히 이 집은 ‘고향의 봄’을 작곡한 홍난파가 6년간 지내면서 말년을 보냈는데 이 때문에 ‘홍난파 가옥’이라 부르고 있다.
홍난파는 이 집에서 지내면서 그의 대표작 가운데 많은 작품을 작곡했다. 서쪽 길에서 대문을 통하여 마당 안으로 들어서면 계단을 따라 현관에 이르게 된다.
이 집의 지붕은 다른 서양 선교사 집보다 경사가 가파르며 거실에는 벽난로가 있다. 남쪽에 있는 현관과 이어지는 복도로 서쪽에 거실, 동쪽에 침실을 두었다.
이 집은 가파른 경사대지를 활용하여 서쪽에 지하실을 두어 공간을 알뜰하게 활용하는 1930년대 서양인 주택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1층 동쪽에 있던 두 개의 침실은 홍난파 기념관의 전시실로 사용하기 위하여 벽을 터 버림으로써 원래 모습을 잃어버렸다.
-인터넷 지식-
나는 전에 이 곳을 들어가본 적이 있는데
서울시가 홍난파 가옥을 복원해 준 대신 관리는 유족들에게 맡겼다고 한다.
홍난파 선생의 손주며느리를 위시해 가족들이 돌아가며 전시관과 시설물을 관리하며
안내와 운영을 도맡아왔는데, 하필 이날따라 손주며느리가 볼일 보느라 자리를 비워
들어갈 수가 없었다.
실내엔 홍난파 선생이 생전 작곡한 노래 (봄처녀, 고향의 봄, 낮에 나온 반달 등)가 흘러나오고
선생의 사진들과 이력, 악보, 피아노,바이올린이 놓여있는 응접세트가 놓여있는데
아주 정갈하고 예쁘게 꾸며져 있다.
(주말엔 개방하지 않으니 평일 낮에 가야한다.)
홍난파 가옥을 나와 오른 쪽 골목으로 깊숙이 들어가면
오른 편 담자락 끝에 심상치 않은 고목이 눈에 띈다.
"행주대첩"으로 유명한 "권율 장군" 집터에 있는 400년 된 고목,은행나무였다.
서대문구 "행촌동"이란 지명은 이 은행나무 때문에 생긴 이름이란다.
은행나무가 어찌나 큰지 한 컷에 다 담을 수가 없다.
이 곳도 서대문구가 추천하는 골목길 관광 코스란다.
은행나무 바로 앞에 있는 이 수상쩍은 건물이 무엇인지 궁금하지?
이 집이름은 "딜 쿠샤" (힌두어로 희망의 궁전, 이상향, 행복한 마음)
문화 역사적 의미가 있는 이 건물이 이름과 달리 왜 이렇게 열악한지 의문을 풀어줄 기사를 소개해볼께
"종로구 행촌동 1-99, 1-89번지에 위치한 딜쿠샤는 1898년 아버지와 함께 한국에 들어와 무역상이자 언론인으로 활동한 앨버트 테일러가 1923년부터 살았던 미국식 2층집이다.
테일러는 당시 UPI통신사의 서울특파원으로 활약하며 1919년 3·1운동을 뉴스로 타전해 전 세계에 알렸다. 테일러는 이로 인해 6개월간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됐고 1942년 조선총독부가 미국으로 추방령을 내릴 때까지 이곳에 살았다.
딜쿠샤는 힌두어로 ‘희망의 궁전, 이상향, 행복한 마음’을 뜻하며 인도 북부의 곰티 강 인근에 있는 딜쿠샤 궁전에서 이름을 따왔다.
지하 1층, 지상 2층의 붉은색 벽돌로 된 건물인 딜쿠샤는 근대 건축사적으로도 의미가 깊은 곳이다.
건물 맞은 편에는 행주대첩에서 공을 세운 조선시대 권율 장군이 심었다고 전해지는 은행나무가 있다. 문화재 전문가들은 이곳을 권율 장군의 집터로 추정하고 있다.
딜쿠샤는 2006년 테일러 부부의 아들인 브루스 테일러가 방한하면서 실체가 정확히 알려졌다. 그는 서울시로부터 명예시민증을 수여받았고 또한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서울사진 17점을 서울시에 기증했다. 이후 문화재청이 같은해 등록문화재로 입법예고까지 했으나 저소득층이 수십년째 무단점유하고 있는 탓에 문화재 지정은 무산됐다.
앞서 이곳은 양기탁과 베델이 함께 발행한 대한매일신보의 사옥으로도 추정돼 서울시가 1990년대 중반부터 등록문화재 지정을 추진하기도 했다.
테일러 부부가 추방된 이후 딜쿠샤는 줄곧 저소득층이 무단점유해 1980년대에는 40∼50가구까지 거주했다. 현재는 10여 가구가 남아 화장실 1개를 공유하며 쪽방촌 같은 열악한 환경에서 살고 있다. 현행법에는 국유지 거주민들에 대한 이주대책을 규정하고 있지 않다.
종로구는 “향후 서울시와 협의해 거주민들에게 임대주택을 마련해 줄 수 있는지 확인한 후, 시에 문화재 등록 추진을 건의할지를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경향신문 2012. 8. 23 -
딜쿠샤 관광을 끝으로 "도심속 보물찾기" 또는 "서울 골목길 역사문화 탐방"의 대장정(!)을 내린다.
오늘 오전 10시 반 시청앞 2번출구에 모인 후 오후 3시까지 점심 시간 빼고 얼마나 걸었는지
구경이 끝나자 갑자기 피곤이 몰려와 권율장군 은행나무 앞에 털썩 주저 앉았다.
친구들이 준비한 간식을 나눠 먹고 휴식시간을 가진 뒤
"딜쿠샤"에서 나와 다세대 건물이 많은 왼쪽 길로 방향을 틀어 5분 정도 언덕길을 걸으니 산우회 친구들에겐 익숙한 인왕산 둘레길 입구가 나왔다.
오른 쪽으로 주욱 내려가,
길 건너 단군성전 옆,
사직공원 후문으로 들어가면
사직단 뒤 운동장이 나오고,
사직 공원 정문을 통해 큰 길로 내려가면 5분도 안 돼 경복궁역 1번 출구가 나온다.
우연히 비 때문에 얻은 "서울 도심 문화 역사 골목 탐방",
길고 긴 하루 여정 끝!
우리 모두 행복하고 흥미롭고 즐거웠던 것 맞지?
*PS:
함께 하지 못한 친구들이 참고할 수 있게끔
자세하고 친절한 정보를 덧붙이려고 했다.
친구들아!
산에 가기 힘든 겨울,
집안에 칩거하지만 말고 운동 겸 문화생활 겸 도심으로 한 번 떨치고 나가보려무나!
--재경 청주여고 홈페이지에 게재한 글--
첫댓글 서대문 인근과 사직공원 인근을 자주 지나치면서도
홍난파님의 고향의 봄과 권율장군의 가옥이라든지 딜쿠샤?는
오늘 그리움님을 통해 처음 전해 듣는 군요.
대리여행 인상깊게 잘했습니다. 청여고 화이팅!
도심속 보물찾기는 그리움님이 계속 수십탄을 해보심이 어떨까합니다.
비가 내리던 어느날의 즐겁고 행복했던 도심여행이 이제야 막을 내리는군요.
구석구석 찾아다니며 관련정보를 찾아서 이렇게 자세히 올려주시니 많은 도움이 됩니다.
여러 날 잡아서 서울성곽 순례길을 일주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네요.
지난 토요일부터 1박2일 동안 우이동 아카데미호텔에서 고교동창 반창회가 있었는데
우이동 계곡에는 하얀 눈이 쌓여있어서 겨울을 실감했습니다.
어제 책방에서 서울에 관련된 책들을 봤는데, 거의 모두 인터넷에 연재했던 것 같아 보였어요.
설명보다는 사진이 많았고 거의 모두 그리움 님 나와바리였습니다. 북촌, 삼청동, 서촌, 부암동, 정동, 낙산, 혜화동, 성북동,최순우고택 인근,남산 여기에 고궁 몇군데, 그리고는 맛집 카페 등등 이었는데 안내가 시원찮더군요.
열심히 찍고 써서 책 한 권 내시구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