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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영의 세계’란 하늘에 있는 피조된 영들의 세계에 관한 것인데, 우리는 성경을 배우면서도 우리들에게 직접적으로나 간접적으로 접근하는 영들의 정체와 사역에 관한 것들을 바로 알지 못하고 이러한 영들로인한 긍적적인 일들과 부정적인 일들이 뒤엉클어져서 사단의 역사를 성령의 역사로 혹은 성령의 역사를 사단의 역사로 오해하는 경우들이 적지 아니하다. 또한 성경을 알 만큼 알았다 하면서도 영의 세계에 관한 무지로 인하여 손해를 보는 일을 겪거나 더 좋은 기회를 상실하는 일을 당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영의 세계를 알아야만 한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날에도 그분의 천사들을 통해 그분의 일을 진행하신다는 사실뿐만 아니라 자기의 본래 직분과는 달리 활동하는 천사들과 세상신으로 타락해 버린, 옛 하늘의 영들의 현주소를 알아야만 영적 생활에 성공할 수 있다.
본서만으로 영의 세계를 완전히 파악할 수는 없지만 본서가 다루고 있는 교회가 고민하고 있는 문제는 영의 세계에 관한 무지이다. 지나치게 억압받고 있는 구조적 병폐를 인정하면서도 거기서 뛰쳐 나오지 못하고 있는 것은 교리에의 맹종이나 편견된 신학의 병폐 때문이다. 본서는 성경에 나오는 영의 세계의 일부만을 드러내려고 하는 고로 이것으로 완전한 해결을 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을 잘 이해한다면 영의 타락을 방지할 수도 없고 영들의 전쟁에 휘말려들지도 않을 것이다. 그리고 신자의 신앙 생활을 능력 있는 생활로 한층 더 높여 줄 것이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을 얻었고 날마다. 그의 말씀에 의한 변화를 체험하고 있다. 그러나 영의 세계에 대한 무지함으로 원수의 공격을 차단할 수 없게 된 것은 실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성경에 가르치신 말씀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배워서 알아야 하고 또 그대로 따르며 순종해야만 한다.
일찍이 미혹의 영에 관한 책을 내놓았지만 본서는 그 외의 것들에 대하여 다룬 것이다.
영적 지도자라면 영적 존재들에 관하여 깊이 알아야 한다.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 평생 목회를 하면서도 알아야 할 것들을 알지 못하거나 알려고도 하지 않는 안일함과 게으름에 빠져 있다면 지도자의 본연의 책임을 내동댕이쳐 버리고 있는 것이다. 평신도라 할지라도 영의 세계를 한 부분 한 부분 깨닫고 봉사하는 자가 된다면 초대 교회 평신도 지도자들의 사역과 같은 사역에 동참하는 자들이 될 것이다. 알지 못하는것을 합리화하고 무능한 것을 자랑삼는 어리석은 교회 지도자들을 본받지 말고 누구나 영적 생활을 위해서 알고 깨닫고 그리고 이기는 생활을 해야 한다.
본서는 주일 강단에서 가르친 내용을 펴낸 것이어서 장단점을 갖고 있다. 책으로서는 격식없는 글이지만 설교여서 현장감이 있는 좋은 면이 있을 것이다. 아무쪼록 영의 세계를 앎으로써 자신의 신앙 생활에 도움을 받고 교회 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높은 영적 지식을 습득하자. 교파에 따라 주장과 신학이 달라 약간의 갈등을 못 면한다 할지라도 본서는 성경에 나와 있는 사실을 밝힌 것이므로 무리가 없으리라 믿는다. 우리는 서로가 더 좋은 것은 존중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한 가지 덧붙여 강조하고 싶은 말은 교회 지도자는 반드시 영적 지도자여만 하며 영적 지도자라면 반드시 영의 세계를 확실히 알아야만 한다는 것이다/
본서의 내용이 절대적인 것은 아닐지라도 이는 강단에서 외친 나의 소리이니 참고하여 주기를 바란다. 그리고 영의 세계를 알리는 더 좋은 저서들이 많이 나오기를 고대한다. 그런 것은 기독교회의 장래를 위해서 기쁜 소식이며 본 저자도 환영하는 바이다.
본서의 내용 가운데 혹 납득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면 그것은 성서해석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이해하고 취사선택하여 주기를 바란다.
1993 5
시무언 김 기 동
목 차
제 1 장 하늘에 있는 세 영적 존재 ‧‧‧‧‧‧‧‧‧‧‧‧ 4
제 2 장 천사의 본질과 타락 ‧‧‧‧‧‧‧‧‧‧‧‧‧‧‧‧‧‧‧ 10
제 3 장 추수하는 천사들 ‧‧‧‧‧‧‧‧‧‧‧‧‧‧‧‧‧‧‧‧‧‧ 15
제 4 장 성도를 돕는 천사 ‧‧‧‧‧‧‧‧‧‧‧‧‧‧‧‧‧‧‧‧‧ 19
제 5 장 천사의 축복 ‧‧‧‧‧‧‧‧‧‧‧‧‧‧‧‧‧‧‧‧‧ ‧‧‧‧‧ 23
제 6 장 세상신과 부리시는 악신, 가변된 천사 ‧‧ 27
제 7 장 천사는 내주하지 않는다 ‧‧‧‧‧‧‧‧‧‧‧‧‧‧ 36
제 8 장 천사의 전한 말과 천사장의 소리 ‧‧‧‧‧‧ 42
제 1 장 하늘에 있는 세 영적 존재
“ ‧‧‧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후사로 세우시고 또 저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케 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위엄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저가 천사보다 얼마 만큼 뛰어남은 저희보다 더욱 아름다운 이름을 기업으로 얻으심이니 하나님께서 어느 때에 천사 중 누구에게 네가 내 아들이라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다 하셨으며 또 다시 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게 아들이 되리라 하셨느뇨 또 맏아들을 이끌어 세상에 다시 들어오게 하실 때에 하나님의 모든 천사가 저에게 경배할지어다 말씀하시며 또 천사들에 관하여는 그는 그의 천사들을 바람으로 그의 사역자들을 불꽃으로 삼으시느니라 ‧‧‧ 어느 때에 천사 중 누구에게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았으라 하셨느뇨 모든 천사들은 부리는 영으로서 구원 얻을 후사들을 위하여 섬기라고 보내심이 아니뇨”(히1:1-14)
하나님은 3위(三位)로 계신다
하나님은 자존하시는 분이시요, 영원 전, 곧 하늘이 있기 전부터 스스로 계신 분이시요, 유일하신 창조자이십니다.
하나님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 삼 위가 되십니다. 다시 말하면, 아버지의 인격과 아들의 인격과 성령의 인격을 각각 달리하시는, 그러나 일체(一體)이신 유일하신 하나님이십니다(요17:3).
○ 성부는 영원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 영원한 영성과 영원한 성품의 근본이신 이를 영원히 높여 부를 때에 이르는 말입니다. 그분은 스스로 계신 분이시요, 무소부재하신 분이시요, 전지전능하신 분이십니다. 그러나 그는 아무도 본 자가 없는 하나님이십니다(요1:18,요6:46).
(참고. 요5:19-23;36-37,요6:37,40-46,57,요8:18-19)
○ 아들은 하나님 아버지와 본래 동등하신 분이시나 스스로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자신을 낮추시고 오히려 비어 종의 형체를 가지시고 사람들과 같이 되신, 하나님 아버지의 품에서 독생하신 하나님이십니다(요1:18). 그분만이 아버지를 보았고 그분만이 아버지를 알고 계셨습니다(요6:46).
인간은 누구도 하나님을 볼 수 없으므로 하나님의 사심에 대하여 충분히 의심할 수 있지만, 하나님의 본체의 형상이신 아들을 봄으로써 하나님을 보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고 하나님의 뜻을 알았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것은 곧 하나님 아버지를 믿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버지 없는 아들이란 없기 때문에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음으로, 비록 눈에는 보이지 않으나 그의 아버지이신 하나님이 생존해 계심을 믿는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본체의 형상으로서,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눈으로 뵙고 하나님의 말씀을 귀로 듣고 그의 뜻을 행하는 것임을 확신할 수 있도록 보여주신 하나님이십니다.
○ 성령은 하나님의 영이십니다(롬8:9).
성령이 성도 속에 거하는 것은 마치 볍씨를 물에 담그면 물이 모든 볍씨 속에 스며들어 볍씨를 불려주는 것과 같습니다. 봄이 되면 농촌에서는 농사를 위해 모판을 만듭니다. 농부는 볍씨를 모판에 뿌리기 전에 볍씨를 물에 담가 불립니다. 그리하여 재우면 물에 퉁퉁 불어 볍씨는 푸른 색으로 변하여, 작은 푸른 색깔의 눈망울을 튀우기 시작합니다. 그러면 그 볍씨를 모판에 뿌립니다. 볍씨를 그릇 속에 넣고 거기에 물을 담아서 물이 모든 볍씨 속으로 들어가 볍씨를 다 불려 주는 것처럼 성령은 우리 안에 들어오셔서 그의 능력과 성품으로써 우리의 영혼을 다스리십니다. 볍씨 속에 물이 들어오듯이 성령이 성도 속에 들어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볍씨는 물 속에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그 안에 들어가 있다는 것은 우리가 그에게 속했다는 것입니다.
그가 우리 영혼을 지배하시면 그는 우리 안에 계시고 우리 영혼은 그의 안에 있게 됩니다. 즉, 우리가 그 안에 들어가지 아니하면 그는 우리 안에 들어오시지 아니하십니다. 우리가 마음을 열지 않고 변화하려고 하지 아니하면 그는 우리 안에 들어오지 아니하십니다. 그가 우리 안에 들어오신 것은 마치 그릇에 담긴 볍씨에 물을 부어 그 물이 볍씨에 들어가는 것과 같습니다. 그것은 곧 우리가 그 안에 들어가는 것과 같아서 그의 지배하는 능력과 그의 지배하는 권세가, 우리 속으로 들어와 우리가 그의 다스림을 받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 늘(Heaven)
하나님께서 하늘을 지으셨는데, 하늘에는 구름이 떠 있는 하늘과 별들이 떠 있는 궁창의 하늘과 그리고 그것들보다 더 큰 영원한 하늘이 있습니다. 여기서 영원한 하늘을 영계(靈界)라 합니다. 다시 말하면 구름이 펼쳐진 하늘은 새가 날으는 하늘이요, 그 위에 있는 궁창 하늘은 별들이 있는 하늘입니다. 이것들은 우주 안에 있으며 우주 바깥에도 또 하늘이 있습니다. 이는 영원한 하늘입니다. 우주는 영계인 하늘에 비하면 지극히 작은 곳입니다. 사람의 눈으로 보기에는 무한한 곳 같지만 그 위에 신들의 하늘이 있어서 이를 덮고 있습니다. 신들의 하늘도 하나님의 손으로 지으신 것으로(히1:10), 이는 아들을 위하여 아들에게 주시려고 지으신 피조된 영계입니다.
이 하늘은 하나님의 아들과 함께 피조된 영적 존재들이 거할 곳이요 하나님의 아들이 죽기까지 순종하신 후 부활하셔서 영광받으신 곳입니다. 그가 그 하늘에 임하신 것은 지금부터 불과 2천 년 전입니다.
하늘은 하나님의 우편 곧 아들의 보좌를 두신 곳입니다. 우편은 하나님이 가장 사랑하시는 위치를 말합니다.
하 늘(Hevean)
구약에서 하늘의 의미로 주로 쓰이고 있는 히브리어는 「샤마임」이다. 이 단어는 어원이 불확실한 복수형 단어이다. 이 단어가 쓰이는 경우는 크게 두 가지 범주로 나누어지는데 첫째는 눈에 보이는 하늘이고, 둘째는 하나님이 거주하시는 곳이라는 뜻의 하늘이다. 첫번째 범주에서는 창공이나 대기권을 지칭하기도 하고 또는 땅위에 있는 모든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히브리어의 모어(母語)라고 할 수 있는 아람어에서 하늘을 나타내는 단어는 「셰마인」인데 그 뜻은, ① 대기로 이루어진 하늘 ② 별들이 총총한 하늘 ③ 하나님과 천사들이 거하는 곳을 가리킨다.
신약에서 하늘을 나타내는 헬라어는 「우라노스」인데, 이 단어는 ‘덮다’, ‘둘러싸다'를 의미하는 한 어근에서 유래했다. 쓰이는 경우는 첫째는 눈으로 볼 수 있는 모든 것이 들어 있는 둥근 천정모양의 하늘 공간을 뜻한다. 구체적으로는 ⓐ 일반적으로 땅(지구)의 반대어의 의미로(히1:10,마5:18,막13:31,계10:6) ⓑ 대기권의 하늘 또는 공중, 구름과 폭풍우설이 모이고 천둥과 번개가 생성되는 지역의 의미로(마16:3,약5:18,행2:19,계11:6-7) ⓒ 별들이 있는 하늘의 의미로 (히11:12,막13:25,눅21:26,계6:13). 둘째로 별들이 있는 하늘 위의 영역, 하나님과 기타 천상적 존재들이 거주하는 곳을 뜻한다. 이 하늘은 천사들의 거처이며(마24:36,엡3:15,히12:22) 그리스도께서 부활 후 승천하여 가신 거처이고(막16:19,행1:10이하,2:34,히1:4)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장차 거기로부터 재림하실 것이다(살전1:10,4:16,살후1:7).
여호와의 사자
예수의 이름은 아버지의 본 이름이시고 여호와라는 이름은 그의 표호입니다(출3:15).
하나님의 아들이 보좌에 오르실 때까지 그 하늘을 지키며 보좌를 지킬 자를 거기 두셨는데 그는 곧 ‘여호와’라고 하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하늘을 통치하던 ‘여호와의 사자’입니다.
여호와는 하나님의 이름입니다. 비록 천사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현현하거나 가르쳤을지라도 여호와는 천사의 이름이 아니라 여호와의 사자에게 위임하신 하나님의 이름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들이 들어오심으로써 그 아들의 이름으로 하늘을 다스리십니다. 그러므로 여호와의 사자는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으로 사역하던 일을 마치고, 보좌에 앉으신 이에게 복종하게 됩니다(빌2:11). 그 천사가 비록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으로 저 높은 곳에서 역사하였지만 그는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없었고 또 하나님의 아들이라고도 불리울 수 없었습니다. 그는 아들이 아버지로부터 기업으로 받은 이름으로 보좌에 오르실 때에는 모든 일을 그에게 내주어야 할 사명을 받았습니다. 이와 같이, 여호와의 이름으로 역사하던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 오실 때까지만 역사하는 하나님의 전권대사였습니다. 이제 하늘에는 하나님의 전권대사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직접 통치하시고 주관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자가 힘입은 ‘여호와’라는 하나님의 이름보다 더 훌륭한 아버지의 이름을 기업으로 받으신 이가 ‘예수’라는 이름으로 보좌에 앉으셨기 때문입니다. 이때부터 예수의 이름이 공식적인 이름이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늘 보좌를 지키며, 하나님의 전권대사로서 이스라엘에게 잘 알려졌던 여호와라는 이름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만왕의 왕이신 이가 하늘에 가신 후부터는 다시는 하나님의 자녀들의 입에서 불리워지지 않는 이름입니다.
이전에는 여호와라는 이름으로 축복하고 사람을 거룩하게 하고 사람을 감시했습니다. 그러나 그 여호와의 이름은 사람을 거듭나게 하거나 구원할 수 없는 이름입니다.
그러나 예수라는 이름은 사람을 거듭나게 하시고 또 그 이름은 모든 자들에게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특권을 부여합니다(요1:12). 천사인 여호와의 사자가 기업으로 가지고 있던 이름보다 뛰어난 이름을 가지신 이가 마침내 보좌에 들어오심으로 이제 여호와의 이름은 사용되지 않는 것입니다.
나눔) 창조주 하나님과 피조물의 관계에 있어서 하나님은 ‘여호와의 사자’를 어떻게 사용하셨습니까?
○ 모세가 시내산 떨기나무 가운데서 보았던 하나님은 여호와의 사자 곧 하나님의 심부름하는 천사였습니다(출3:1). 그래서 사도행전 7장 30절에 ‘모세가 시내산 광야 가시나무떨기 불꽃 가운데서 본 이는 천사’라고 했습니다.
(출3:1) 모세가 그 장인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의 양무리를 치더니 그 무리를 광야 서편으로 인도하여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매 여호와의 사자가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그에게 나타나시니라
그렇지만 출애굽기 3장 4-6절은 ‘여호와’ 혹은 ‘하나님’이라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 여호와라 이름 한 그 천사가 ‘나는 너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하셨습니다.
(출3:4-6) 여호와께서 그가 보려고 돌이켜 오는 것을 보신지라 하나님이 떨기나무 가운데서 그를 불러 가라사대 모세야 모세야 하시매 그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이리로 가까이 하지 말라 너의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또 이르시되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니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니라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두고두고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의지했지만 그러나 아무도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습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6장 46절에는 ‘본래 아무도 하나님을 본 사실이 없고 오직 아들만이 하나님을 보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요1:18). 그러니까 이전에 본 사람들은 여호와의 사자를 본 것입니다.
○ 아브라함은 분명히 여호와를 보았고 그 여호와를 집에 모셨습니다. 그러나 그는 여호와의 사자요 여호와의 이름으로 현현한 천사였습니다.
(창18:1-3) 여호와께서 마므레 상수리 수풀 근처에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시니라 오정 즈음에 그가 장막문에 앉았다가 눈을 들어 본즉 사람 셋이 맞은 편에 섰는지라 그가 그들을 보자 곧 장막문에서 달려나가 영접하며 몸을 땅에 굽혀 가로되 내 주여 내가 주께 은혜를 입었사오면 원컨대 종을 떠나 지나가지 마옵시고
창세기 18장 22절에는 “그 사람들이 거기서 떠나 소돔으로 향하여 가고 아브라함은 여호와 앞에 그대로 섰더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세 사람 중에서 한 분은 여호와였고 둘은 천사인데 그들은 거기서 떠났습니다. 아브라함을 떠났던 그 천사 둘은 소돔에 이릅니다. 그래서 창세기 19장 1절에 보면 “날이 저물 때에 그 두 천사가 소돔에 이르니”라 했습니다. 그러니까 아브라함의 집에 들렀던 세 분 가운데서 한 분은 여호와요 둘은 돕는 천사로서, 아브라함은 여호와 앞에 섰고 나머지 두 천사는 소돔에 이르렀다는 것입니다.
○ 하나님이 부리시는 여호와의 사자는 오직 하나입니다.
창세기 22장 1절에서는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셨다고 했고, 창세기 22장 10-12절과 창세기 22장 15-17절은 ‘여호와의 사자’가 부르고 지시합니다.
(창22:1-17) 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아브라함아 하시니 그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지시하는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10-12,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그 아들을 잡으려 하더니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그를 불러 가라사대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시는지라 아브라함이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매 사자가 가라사대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아무 일도 그에게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15-17,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두번째 아브라함을 불러 가라사대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를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나눔) 예수 이름과 여호와의 이름의 차이가 무엇이겠습니까?
천사장과 천사들
수많은 천사들 중에는 얼마의 천사장들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가브리엘도 천사장이요(단8:16;9:21,눅1:19,26) 미가엘도 천사장입니다(단10:13,21,유1:9,계12:7). 천사들은 자기들의 상전인 천사장을 수종들며 하늘에서 일을 합니다. 천사장 하나에 수많은 수종드는 부하 천사들이 있어 행동을 같이합니다.
가브리엘이라는 천사장은 좋은 소식을 전하여 주는 일을 맡고 있습니다. 옛날에 다니엘에게도 소식을 가져다 주었고, 침례 요한의 아버지인 사가랴에게도, 그리고 그의 모친 엘리사벳에게도, 그리고 처녀 마리아에게도 아주 기쁜 소식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이것이 그의 하는바 사역입니다.
그런가 하면 미가엘이라 이름 하는 자가 있으니 하늘의 군장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늘의 치안 담당 장관과 같은 존재입니다. 사람들의 생각에는 ‘아니, 천사들에게 무슨 치안이 필요 있겠느냐?’ 합니다. 그러나 그들도 의지가 있으므로 그들의 주장이 각각 다를 수 있고 고집이 다를 수 있어 의견이 분분하여 대립이 될 때도 있고 갈등이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열왕기상 22장 19-23절에 하나님 앞에 나와있는 하늘의 여러 천사들이 있었는데 의견을 각각 달리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천사들도 그들이 각각 독립된 의지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런 주장이 있고 저런 주장이 있으며 그래서 왈가왈부하며 그래서 의견 대립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이로 인하여 심하면 싸움까지 벌어집니다.
그 다음 천사장인 루시퍼가 있습니다(사14:12-15). 그가 타락한 마귀입니다. 요한계시록 12장 7절에 보면 ‘하늘의 천사가 타락한 마귀와 그와 함께 타락한 천사들이 미가엘과 더불어 싸우더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스랍(The Seraphim)과 그룹(The Cherubm)
천사들은 여호와의 사자, 천사장 또는 군장, 스랍, 그룹, 천사, 부리시는 악신, 악한 영들(사단, 세상신)이 있다.
이들중 스랍은 하나님의 보좌 주위에서 겸손하게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하는 직무를 가진 천사이다(사6:2-3). 이 스랍들은 각기 여섯 날개가 있어 그 둘로는 날며 하나님을 찬양한다.
또 그룹은 하나님의 보좌를 수호하는 천사들이다. 그래서 아담이 범죄 후 에덴을 지키는 일을 하였으며(창3:24) 하나님의 위엄을 나타내고 하나님의 처소를 이루고 탈 것이 된다(삼상4:4,삼하22:11,대상13:6,시18:9-10,시80:1,시99:1,사37:16). 또 그룹은 하나님의 정직하심과 공의로우심을 표현해주기도 한다(겔1:9,12,17-18,겔10:9-14). 그래서 성막에서 속죄소의 금판 위 양쪽 끝이나 휘장과 각 앙장에 수놓아 하나님의 영광의 위엄을 나타내도록 하였다(출25:18-22,민7:89,히9:5).
영혼과 육체
사람의 영혼은 육체 안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영혼에게 각각 육체를 주신 것입니다. 육체는 세상에 머물 수 있는 하나의 기회입니다. 즉 영혼이 세상에 잠깐 동안 머물 수 있도록 육체의 조건을 주셨습니다.
육체가 있는 동안에 인간은 천사보다 약점이 있습니다. 히브리서 2장 5-6절에 보면 사람은 ‘천사보다 못한 존재’라고 했습니다. 사람은 육체로 인하여 고난도 받습니다. 죽임도 당하고 병도 듭니다. 그리고 모든 시간을 초월할 수도 없습니다.
예수께서도 천사보다 잠깐 동안 못하게 함을 입고 오신 것은 죽음을 맛보려 하심이라 하였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육체 안에 성령을 주심으로써 성령으로 육체를 극복하고 성령으로 하나님의 자녀같이 행할 수 있는 영력(靈力)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육체는 성령을 받을 수 있는 기회입니다. 그러므로 육체가 있는 동안에 성령을 받고 육체가 있는 동안에 우리가 거듭나야만 합니다. 육체가 있는 동안에 거듭나지 않으면 거듭날 기회는 영원히 돌아오지 않습니다.
천사는 거듭날 기회가 없습니다. 현재로는 그들이 우리보다 나은 존재이지만 그들에게는 회개의 기회를 주신 일도 없으시고 거듭날 수 있는 기회가 되는 육체를 주신 일도 없으시므로 성령이 임하실 수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천사는 없습니다. 히브리서 1장 5절에서 말씀한 것처럼 천사들은 영원히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없는 존재입니다. 그들은 영원히 종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종으로 태어났지만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특별한 축복을 받은 존재들입니다.
[참고] 베뢰아 新書 41, 「영의 세계를 알자」, pp. 7-26.
제 2 장 천사들의 본질과 타락
하나님은 창조자입니다. 그가 모든 걸 지으셨으므로 하나님에 의해서만 만물이 존재합니다.
우주 안에 있는 별들과 지구 안에 있는 모든 것을 하나님이 창조하셨을 뿐만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아니하는 영적 존재들인 천사들도 하나님이 창조하셨습니다(골1:16-17).
천사는 무소부재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무소부재하시고 하늘에도 계시고 공중에도 계시고 하늘 밖에도 계시고, 하나님이 계시지 않은 곳이 없으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곳에 계셔서 회전하실 필요가 전혀 없으신 분이십니다.
욥기 1장 6-8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사단에게 ‘너는 어디에 다녀 왔느냐?’ 물으시니 “땅에 두루 돌아 여기 저기 다녀 왔나이다”고 사단이 말합니다. 또 2장 2절에도 “땅에 두루 돌아 여기 저기 다녀 왔나이다”라 했습니다(벧전5:8). 이처럼 천사는 무소부재하지 못한 존재입니다. 천사는 항상 왕래하는 그림자가 있지만, 하나님은 회전하는 그림자가 없으신 분이요, 무소부재하신 분이요, 그의 사랑하시는 자가 이리 저리 왕래한다 하더라도 하나님은 이리 저리 왕래하지 않으시는 분이시요, 인간이 혹 숨으려고 피할지라도 하나님은 거기 계시고, 인간이 혹 산으로 갈지라도 하나님은 거기 계시고, 혹 들로 갈지라도 하나님은 거기 계신 분입니다.
예수께서 여기 계시다가 저리로 가셨거나 또는 갈릴리에 계시다가 예루살렘에 가셨을지라도 그것은 육체로 계실 때에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움직이신 것이요 하나님께서 이리저리 왕래하신 것은 아닙니다.
천사는 생식 능력이 없다
천사는 생식 능력이 없습니다. 자식을 낳을 수 없습니다. 결혼할 수도 없습니다.
마가복음 12장 25절에 ‘천사는 장가도 가지 않고 시집도 가지 아니하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영원하신 하나님의 역사를 위하여 수명 연장 수단으로서 생식을 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아담 하나로 시작하여 온 인류가 태어났습니다. 인류는 아담 하나로부터 시작하였고, 천사는 단번에 수천 수만을 창조하신 것입니다.
인류를 만들 수 있는 영이 하나님에게는 유여하실지라도 하나만 지으신 것은 경건한 자손을 얻기 위함이라 하셨으니 곧 예수 그리스도의 안내자로 지음을 받은 것입니다.
천사는 거듭날 수 없다
천사는 거듭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천사는 회개의 기회를 얻지 못하고 오직 지음을 받던 처음 모양을 변화시킬 수가 없습니다. 그러기에 그들이 혹 타락하더라도 은혜가 없는 것입니다. 한번 타락하면 영영 버림을 당하고 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복음은 천사들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 아니요, 아브라함의 자손들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라 하셨습니다(히2:16).
인간은 변화 없이 육신으로 났다가 육신으로 그 끝을 맞이하게 하심이 아니요 한번은 꼭 변화를 받도록 지으셨으니 이는 거듭나게 하심이요, 거듭남으로써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가 되어 그리스도와 함께 후사가 되게 하신 것입니다.
구약의 사람들은 대개가 천사를 숭배하였습니다. 거듭나지 않은 사람들과 거듭남이 없는 시대는 천사를 오히려 두려워하고 숭배함이 당연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거듭나고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신분을 얻은 후에는 천사 숭배가 오히려 자신의 상을 잃어버리는 결과를 가져오고 맙니다(골2:18). 거듭난 사람은 율법 아래 있지도 않고, 진리와 함께 자유합니다. 그러나 거듭나지 않은 육체대로 있는 인간은 천사들보다 못한 존재로서 존재합니다.
인간은 육체로는 천사보다 못한 대우를 받을 수밖에 없는 약점을 지녔으나 영으로는 거듭남과 동시에 천사들보다 우월한 존재로서 하늘에서 우대를 받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여!, 우리를 도우소서!’ 한다면 하나님은 그의 천사들을 동원하여 우리를 지원하게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사랑하시는 자들에게 천사를 보내어 도움을 주실 것이요 우리는 그들을 눈으로는 보지 못하지만 권능을 받았다는 체험과 확신이 있어 하나님이 보내신 천사들의 수종을 받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우리에게 관심을 가지시고 우리에게 역사하시고 우리에 대하여 뜻을 품으시면 그의 부리시는 영이 와서 그의 뜻대로 당연하게 우리를 지원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현재는 천사들이 인간보다 조금은 우월하다
천사들은 인간보다 조금은 우월합니다. 천사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힘입어 피조된 빛보다 더 빠른 속도로 하나님 앞과 성도들 앞을 왕래하고 있습니다.
현재로는 천사들이 우리보다 월등합니다. 그들에게는 육체가 없으므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할 수 있습니다. 인간은 육체로 인하여 제한을 받고 있으므로 현재는 천사보다 못한 존재들입니다.
“누가 어디 증거하여 가로되 사람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권고하시나이까 저를 잠깐 동안 천사보다 못하게 하시며 영광과 존귀로 관 씌우시며”(히2:6)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육체를 주어서 이 땅에 잠깐 동안 머물게 한 것은 천사보다 잠깐 동안만 못하게 하신 것입니다. 육체를 입음으로써 인간은 고난을 받으며 주님께서도 육체로 사람이 되어 오심으로써 천사보다 잠깐 동안만 못하게 함을 입으신 것입니다. “오직 우리가 천사들보다 잠깐 동안 못하게 하심을 입은 자 곧 죽음의 고난 받으심을 인하여 영광과 존귀로 관 쓰신 예수를 보니 이를 행하심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려 하심이라”(히2:9) 하였으니 이로 인하여 천사들보다 잠깐 동안 못한 경험을 가지시게 되었습니다.
천사는 섬김을 받아야 할 자도 아니요 성도로부터 부러움을 받는 자들도 아닙니다. 만약 누구든지 자기가 일부러 겸손한 체하면서 천사를 섬기며 천사보다 열등한 모양을 보이고 있으면 자기 일생 수고한 면류관을 다 빼앗긴다고 말씀하셨습니다(골2:18,23).
그러므로 현재는 천사가 우리보다 월등한 존재로 보일지라도 우리들은 결코 그들보다 못한 존재가 아닙니다. 이는 육체가 잠깐 동안만 세상에 머무는 것같이 잠깐 동안만 천사보다 못한 존재일 뿐 우리는 천사들로부터 섬김을 받아야 하는 높은 수준을 가지고 있는 피조물입니다. 육체라는 것은 잠깐 동안만 천사보다 못한 조건으로 주신 것뿐이요, 이것은 영원한 것이 아니고 여기에는 어떤 소망도 없습니다.
그런데 육체를 즐기고 육체의 요구를 만족케 하고 육체에 희망을 두고 산다면 결국 멸망할 수밖에 없고 천사보다 못한 영원한 존재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자기의 영적인 위치를 천사 밑에 둘 것이냐?, 아니면 천사가 섬기는 자가 될 것이냐?를 결정해야 합니다.
천사는 육체가 없으므로 사람들이 육체로 겪는 그 어떤 영광도 받을 수 없습니다. 현재는 모든 육체보다 나으나 그것은 일시적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의 영이 우리 안에 들어오시기 이전엔 잠깐 동안 천사가 우월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이 오셨고 아들의 영이 우리 안에 들어오신 후에는, 우리가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되고 천사는 그때부터 우리를 섬겨야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천사를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왕래하면서 역할을 해줄 수 있도록 세워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구약교회는 주로 천사의 중보로서 율법도 전하여 주었습니다(행7:53).
하나님은 천사들을 보내셔서 그들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들을 위하여 돕는 일과 그리고 섬기는 일을 위하여 행동하게 하거나 움직이게 할 뿐입니다.
천사는 공의로 심판받는다
만물이 하나님을 위하지 않으면 공의의 심판을 받게 됩니다. 만물이 하나님을 위하여 지음 받았기에 하나님이 지으신 목적이 의가 되며 그 목적대로 그것들이 씌어지지 아니하면 그것이 불의가 되는 것입니다. 물건을 샀을 때 그것들이 주인의 목적대로 씌어질 수가 없다면 쓸모가 없어 버리게 되는 것과 같이 비싼 옷이라도 몸에 맞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버릴 수밖에 없습니다. 이처럼 창조자의 창조의 목적대로 되지 않으면 불의가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닭을 키워 알을 낳게 하여 알을 내먹습니다. 알만 내먹는 것이 아니라 마침내는 그 닭을 잡아 요리해서 먹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닭의 희생에 대하여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고 너무도 당연하게 여깁니다. 혹 닭이 어떤 생각을 할 수 있다 하더라도 그것에 유념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쓰려고 닭을 키우는 것이 사람이요 닭은 그렇게 씌어지는 것이 그들의 생존의 의미입니다. 잡아먹는 사람이나 잡아먹히는 닭 사이에는 아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습니다.
사람이 소를 길러서 멍에를 씌워 들에 나가 일을 하게 한다거나 달구지 같은 것을 끌게 합니다. 그러다 소가 늙으면 도살장으로 끌고 가서 잡습니다. 그리고 고기는 식육으로 쓰고 가죽은 구두나 가방을 만드는 데 사용합니다. 그러나 소는 사람에게 원망이나 불평을 할 수도 없거니와 혹 그럴 수가 있다 하더라도 그들의 원망을 귀로 듣는 이가 없으며 또는 소를 향해 양심의 가책을 받는 사람도 전혀 없습니다. 이는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그것들을 창조하시고 그것들을 사람에게 주셨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그것들을 길러서 쓰기도 하고 마침내 잡아먹기까지 합니다.
하나님은 사람이나 천사 그리고 만물을 하나님의 목적을 위하여 창조하셨고 또 목적대로 쓰려고 하시나 그것들이 하나님의 목적대로 쓰임받기를 거부한다거나 죽기를 불응한다면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목적에 위배됨으로 불의한 존재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사람이 곡식을 길러서 그것들을 식물로 쓰려 하나 그것들이 먹을 수 없도록 상했다면 결국은 내버릴 수밖에 없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사람이 곡식을 길러서 먹을 때나 먹을 수 없어서 버릴 때나 양심에 아무런 거리낌이 없음같이, 임자는 자기 것을 능히 임의로 취급할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도 자기 것을 쓰시는 것이나 마음에 들지 않아 버리시는 것에 아무런 거리낌이 없습니다. 그분은 의로우시므로 공의대로 심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시89:14,시116:5,시145:17,계15:3).
천사는 순종함으로 의를 이룬다
자연에게는 추궁당해야만 할 불의가 없어 심판이 없으나 의지가 있는 인간과 천사에게는 불의에 대한 무서운 심판이 있게 됩니다. 의지로 인해 하나님께 반역한 것이나 하나님의 일을 제한한 것들이 결국 큰 불의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것들 중에는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쓰실 수 있는 것들도 있고 반면에 창조할 때에 의지를 부여한 피조물들은 그것들의 의지에 명령을 부여하여 동의하게 하신 것도 있습니다. 그러나 의지를 부여하심은 그것들과 협의하여 하늘의 일을 하고자 하심이 아니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게 하려 하심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에 의해 일방적으로 취급될 피조물이 있는가 하면 순종하게 하여 쓰시려 하는 피조물도 있는 것입니다.
의지가 있는 피조물들이 순종하기 위한 조건으로 부여된 의지를 남용하여 조물주를 거역하는 데 쓰려고 한다면 그것이 불의인 것입니다. 천사나 인간이나 의지를 부여받은 피조물은 하나님의 명령이 있어야 삽니다. 의지가 있는 피조물은 순종함으로 의를 이루는 것이요 거역하면 불의한 것입니다. 즉 천사와 인간은 순종하여 의를 이루고 기타 피조물들은 일방적으로 쓰여지는 존재들입니다. 의지가 있는 피조물은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사전에 알고 순종하는 존재들입니다. 하나님의 하시는 일에 대하여 알고 순종할 때에 하나님의 의를 이루게 되고 알고도 불순종하면 멸망입니다.
하나님은 의지가 있는 피조물들로부터 의를 이루기를 원하십니다. 모든 피조물이 다 하나님의 공의에 대하여 알 필요가 없다 할지라도 의지를 부여받은 피조물만은 하나님의 공의에 대하여 알아야 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천사는 타락할 수 있다
하나님은 스스로 계신 유일하신 분입니다(출3:14).
스스로 계신 하나님은 타락 할 수 없습니다. 단지, 스스로 살 수 없는 존재들 만이 타락할 수 있습니다.
천사들은 하나님의 비밀을 맡고 있는 자들로서 하나님의 의도에 순종하는 것이 마땅한데 그중 일부가 하나님의 의도를 거역함으로써 하나님이 쓰시기에 합당치 않은 존재들로 타락한 것이며 그가 곧 사단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피조물들을 일방적으로 쓰시는 것도 그의 의요 그가 혹 버려야 할 것을 버리시는 것도 그의 의입니다. 하나님은 자기의 목적을 위하여 모든 것을 이루셨기에 결코 불의가 없으십니다. 그분의 창조의 목적만이 공의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베드로후서 2장 4절에 범죄한 천사를 용서치 아니하시고 지옥에 가두셨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유다서 6절에도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타락한 자를 영원한 결박으로 심판 때까지 가두었다고 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에스겔 28장 15절에 ‘그룹아 네가 지음을 받던 날에 완전하더니 마침내 불의가 드러났도다.’라고 말씀했습니다. 하늘에서는 하나님께 대한 순종만 있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불의를 좇는 피조물은 하늘에 머물 수가 없습니다. 땅으로 쫓긴 타락한 영들은 땅에서 그들의 임의로 얼마간 지낼 수 있도록 허락하셨지만 짧은 기간 동안뿐입니다. 심판이 이르고 마침내 지옥 형벌로 다스리시게 되면 그 모든 것은 끝이 나고 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시기에 공의를 거역하는 자는 누구도 하늘에 머물 수가 없습니다.
타락한 영들이 쫓겨 내려와 그들이 갇힌 곳에서 그들의 임의대로 행함으로써 그들의 불의가 더욱 증명되고 그들에 대한 심판은 정당한 것이 되는 것입니다.
타락한 천사는 신자들이라도 타락하게 합니다. 영적인 타락은 무섭습니다. 도덕적인 타락은 회개하고 돌이킬 수 있는 기회가 얼마든지 있지만 영적인 타락은 한번 미혹되면 그로 인해서 영혼은 영원히 파멸되어 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에게는 자신들의 운명을 점쳐 보고 싶은 심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불신자들이나 하는 일입니다. 그들은 어쩔 수 없이 미혹된 운명론자들입니다. 하지만 예수 믿는 자들은 운명론자들이 아닙니다. 예수를 믿으므로 우리의 영광은 하늘에 있고 우리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인도하심은 결코 점쟁이들이 알아볼 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운명을 알아 보려 하는 것은 타락입니다. 예수 믿는 우리는 숙명에 의해 사는 사람들이 아니라 성령으로 거듭났으며 진리의 성령이 인도하시는 진리로 사는 사람들입니다(요3:8). 그러므로 운명을 점치고자 하는 자들과 운명을 점치는 자들은 다같이 타락한 자들입니다(겔13:1-3).
점하듯이 예언하는 기독교 신비주의자들의 행위를 우리는 경계해야 합니다. 영적 타락은 결국 화인을 맞아 영원히 하나님으로부터 떨어지고 맙니다(딤전4:1-3). 우리의 믿음은 자신의 영혼을 온전히 주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성령은 점하는 신이 아니시고 오직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다시 가르치시며 깨닫게 하시는 이십니다(요14:26).
사람이 한번 태어나 죽음을 맛보아야 하는 육신의 사람은 운명적인 사람이었습니다. 이때는 희망도 없었고 어떤 권리도 없었습니다. 다만 일생 동안 죽기를 무서워함으로 매여있는 종의 신분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기회를 거역하는 자는 영원히 기회를 얻지 못합니다. 만약 누구든지 운명론자가 된다면 그 사람은 그 저주에서 벗어날 길이 없습니다.
이제부터 우리는 운명을 탓하지 아니하고 운명을 의지하지 아니하고 오직 믿음으로 살겠다고 결심해야 합니다.
[참고] 베뢰아 新書 41, 「영의 세계를 알자」, pp. 23-40, 41-54.
제 3 장 추수하는 천사들
하나님은 처음이요 나중이십니다(계22:13).
하늘은 처음이 아닙니다. 천사들도 처음이 아닙니다. 하늘과 그 안에 있는 것들이 다 있기 전 하나님은 영원 전부터 홀로 처음이신 유일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이 세상 땅도 없어지고 우주도 없어지고 해도 빛을 잃고 별들도 사라지고 사람의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다 없어져도 끝까지 남아 계실 분은 하나님 한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이 있기 전에 먼저 계신 분이요 모든 것이 다 끝이 날지라도 마지막까지 영원히 계실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창조하시되 아들을 위하여, 아들로 말미암아 창조하셨습니다(요1:2-3). 하나님이 모든 것을 아름답게 만드시고 온전하게 만드셨지만 그것들 속에서 하나님이 원치 아니하는 것들이 드러남으로써 하나님께서는 그것들을 심판할 권세를 아들에게 주셨습니다(마13:24-30). 아버지가 창조하실 때에 그 목적 하신 뜻대로 그것들이 유지되지 아니함으로 인하여 하나님을 근심케 하고 실망시킨 것들을 나중에 그 아들로 하여금 심판하게 하시려고 아들에게 심판할 권세를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조물주의 뜻대로 쓰여지지 못한 것들을 아들이 심판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심판하십니다. 그가 창조하셨으니 반드시 그가 창조하신 것들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농부가 밭에다 씨를 뿌린 것처럼 반드시 씨를 뿌린 자가 추수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알곡과 가라지를 구분하신다
“ ‧‧‧ 가라지의 비유를 우리에게 설명하여 주소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좋은 씨를 뿌리는 이는 인자요 밭은 세상이요 좋은 씨는 천국의 아들들이요 가라지는 악한 자의 아들들이요 가라지를 심은 원수는 마귀요 추수 때는 세상 끝이요 추수꾼은 천사들이니 그런즉 가라지를 거두어 불에 사르는 것같이 세상 끝에도 그러하리라 인자가 그 천사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그 나라에서 모든 넘어지게 하는 것과 또 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거두어 내어 풀무 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그때에 의인들은 자기 아버지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나리라 ‧‧‧ ”(마13:36-43)
농부가 밭에 씨를 심을 때는 좋은 씨를 심습니다. 그러나 좋은 씨를 심어도 그 안에서는 쭉정이도 나오고 또 쭉정이와 함께 이에 못지 않은 가라지가 생겨남으로 이것들을 구분하는 마지막 추수의 날이 올 것입니다. 이날을 심판의 날이라고 합니다. 세상 끝날을 추수하는 날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13:39).
추수꾼이 알곡은 타작해서 창고에 들이고 쭉정이는 모닥불에 태워버리며 가라지도 역시 불에 태워버립니다. 그때에는 알곡과 쭉정이로 구분하고 가라지와 좋은 곡식을 구분하여 주인은 좋은 곡식을 취하고 가라지와 쭉정이는 불태워버리는 것입니다. 세상 끝이 이와 같다고 하셨습니다. 또한 좋은 씨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천국의 아들들이라 하셨습니다.
새신자치고 훌륭하지 않은 사람이 없습니다. 말그대로 새신자입니다. 초신자들의 처음 신앙생활은 얼마나 깨끗하며 얼마나 착하며 양심도 하나님 보시기에 얼마나 아름답고 겸손한지, 훌륭하게 신앙 생활 합니다. 남에 대해서 알아보려고 하지도 않고 자기만 열심히 신앙생활 하려고 몸부림칩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가라지가 생겨났습니다. 종들은 깜짝 놀라 주인에게 가서 묻습니다. ‘주인이시여, 좋은 씨를 밭에 심었는데 어찌하여 가라지가 생겨났습니까?’ 이때 주인의 하는 말은 ‘원수가 그리했구나!’ 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 거룩한 신자에게서 처음 사랑이 사라지고 주님을 실망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가라지와 같은, 주인을 실망시키는 이들이 있어 하늘을 혼란시키고 있습니다.
어찌하여 좋은 씨를 심은 천국의 아들들 속에 가라지가 생겨납니까? 분명한 해답은 ‘원수가 그리하였구나!’ 입니다.
가룟 유다를 향하여 저는 마귀라고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도 처음에는 훌륭한 제자였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마귀는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가룟 유다의 마음에 넣어버렸습니다(눅22:3). 그로 인하여 그는 마귀의 하수인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좋은 씨를 심으셨으나 어느 틈에 마귀가 와서 가라지를 덧뿌리고 가버리면 결국은 타락하고 마는 것입니다.
◦ 보리밭을 보면 봄에 파란 싹이 곱게 나오다가 이삭이 나올 무렵 까맣게 병든 깜부기가 갑자기 생겨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좋은 줄기가 올라오다가 갑자기 변하여 깜부기가 되고 가라지가 되어 버리는 그 원인은 원수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마귀가 사람의 마음에 악한 생각을 집어넣고 그 마음을 병들게 만듭니다. 처음에는 겸손히 시작했던 사람이 졸지에 변해 버립니다. 그러면 이 가라지를 뽑아야 되겠는데 ‘뽑으리까?’ 하니 ‘뽑지 말라. 가라지를 뽑다가 알곡까지 뽑힐까 하노라.’ 하셨습니다.
또 호밀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사람 키보다 큽니다. 그 키가 2 m 가량 올라갑니다. 그러나 그 호밀은 기름진 땅에서 자라지 않고 물이 잘 빠지는 모래밭 같은 척박하고 건조한 땅에서 자랍니다. 뿌리는 굵고 깁니다.
그런데 가라지는 바로 그 호밀 뿌리 사이로 뿌리를 내립니다. 그러므로 혹 가라지를 뽑으려다가는 호밀까지 뽑게 됩니다. 호밀은 씨로 뿌렸을 때는 싹이 나고 자라지만 뿌리가 생긴 다음 그 뿌리가 한번 뽑히면 다시는 살지 못합니다. 그리고 가라지와 호밀은 잘 구별되지 않습니다. 다만 색깔이 약간 다를 뿐입니다. 밀 대는 조금 희고 가라지 대는 조금 진합니다. 또 호밀 대는 매끄럽고 가라지 대는 햇빛에 보면 솜털 같은 것이 돋아나 있습니다. 밀 이삭이 나올 때 가라지 이삭도 함께 나옵니다. 그러나 가라지를 뽑으려 하면 밀 뿌리 사이로 뿌리를 감아내리고 있는 가라지 뿌리가 밀 뿌리까지 들고 일어납니다. 가라지를 뽑으려다 밀도 함께 죽게 됩니다. 이것이 가라지의 성격입니다.
그래서 ‘추수 때까지 가만히 두자. 두었다가 추수할 때에 알곡은 단으로 묶어서 창고에 들이고 가라지는 단으로 묶어서 불살라 버리자.’고 한 것입니다(마13:24-30).
◦ 교회 안에도 가라지가 있습니다. 교회 안에도 가라지 같은 존재들이 있습니다. 그 때문에 다른 사람까지 시험에 들기도 합니다. 신기하게도 잘못된 사람을 징계하면 그 사람으로 인하여 다른 사람까지도 함께 시험에 빠지는 일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심판 날에 그런 자들을 심판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창조하셨기에 그가 반드시 심판하신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취할 것은 취하시고 버릴 것은 버리시는 그날이 반드시 온다는 것을 우리에게 경고하셨습니다. 만약 인류의 종말이 없고 심판이 없다면 우리가 예수 믿는 의미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심판 때에 믿는 사람과 안 믿는 사람이 확실히 구별되어, 믿는 사람은 하나님이 사랑하시고 안 믿는 사람은 바로 형벌하시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을 우리가 믿기 때문에 우리가 예수를 믿고 신앙생활 하는 것입니다.
천사는 추수꾼이다
○ 심판하시는 이는 예수요, 추수꾼은 천사들입니다.
천사들은 구세주가 아닙니다. 오직 주님이 부리시는 종일 뿐입니다. 그들에게는 사랑이나 긍휼을 베풀 능력도 권리도 없습니다. 천사에게는 은혜가 없습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천사는 오직 주인의 명령대로 심부름할 뿐입니다.
종의 사명은 주인이 ‘하라’ 하면 하고 ‘가라’ 하면 가고 ‘오라’ 하면 올 뿐인, 명령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서 거두어 들이라.’ 하면 거두어 들이고 또 ‘가서 뿌리라!’면 뿌릴 뿐이요 은혜를 베풀거나 사랑을 베풀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두렵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긍휼이 없이 냉정하게 일처리 할 자들입니다.
세상 끝날 추수꾼이 된 천사들의 손에 우리의 운명을 맡겨 버리시면 타작꾼들이 가라지를 처리할 때와 같을 것입니다.
추수꾼에게 어떤 동정심이나 인정이 있고 어떤 은혜가 있으면 추수가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추수꾼이 된 천사들은 그날에 가라지를 용서하지 않으며 그것들을 단으로 묶어서 불 속에 던지고 알곡과 가라지를 분명히 구분할 것입니다.
○ “그런즉 가라지를 거두어 불에 사르는 것같이 세상 끝에도 그러하리라 인자가 그 천사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그 나라에서 모든 넘어지게 하는 것과 또 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거두어 내어 풀무 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마13:40-42)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그날에 천사들이 찾아나서야 할 자들은 의인들 가운데서 모든 넘어지게 하는 것과 불법을 행하는 자들이라 하였습니다.
예수께서 ‘내가 십자가에 달려 죽으리라. 나는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에게 죽임을 당하게 되리라.’(마16:21) 하고 말씀하셨을 때, 그것은 하나님의 뜻대로 되어지는 일이었는데 베드로가 ‘주여, 그리하지 마옵소서.’(마16:22) 하고 주님을 위로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러자 주님은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사람의 일을 생각함으로 나를 넘어지게 하는도다.’(마16:23) 하시며 심히 꾸짖으셨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제자입니다. 그러나 수제자라도 순식간에 변하여 사단이 됩니다. 그가 예수를 넘어지게 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어떻게 베드로가 주님을 넘어지게 할 수 있었습니까?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않고 사람의 일을 생각함으로 나를 넘어지게 하느니라.’(마16:23) 하셨습니다. 그래서 ‘네가 하나님의 일을 위하여 나를 세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않고 사람의 동정을 함으로써 나를 넘어지게 하는도다. 사단아, 내 뒤로 물러서라.’고 책망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일에는 인정이나 애정이나 하찮은 감정이 앞서서는 안 됩니다.
천국은 마치 그물을 끌어올리는 자와 같다 하시고 물고기 중 좋은 것과 나쁜 것을 고르듯이 의인과 악인을 구별하신다고 하였습니다.
남을 실족케 아니할 수는 없겠으나 만일 남을 실족케 하면 자신에게 화가 온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마지막 천사들에게 부탁하지 아니하시고 그가 친히 끌어 안으시려고 팔을 벌리고 계십니다(눅15:29).
자기 영혼을 사랑하는 것은 곧 하나님을 사랑함이요 참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 놓은 것입니다.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과 볼 수 없는 자기 영혼을 아끼고 사랑함으로써만 자기의 영혼이 추수꾼의 손에 들어가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마음 속의 가라지를 제거하고 참마음과 참소망을 가지고 신앙을 지켜야 합니다. 그리고 성령의 도우심을 항상 의지해야 합니다.
[참고] 베뢰아 新書 41, 「영의 세계를 알자」, pp. 55-66.
제 4 장 성도를 돕는 천사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우리의 신앙은 체험이며 이를 고백하는 것이 신앙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각자가 자신을 낳아 주신 하나님에 대한 체험을 고백해야 합니다.
우리는 종교적 의미를 가지고 아버지라 할 것이 아니라 종교적 의미를 떠나서 실질적으로 자기를 낳아 주신 아버지를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가 종교인이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을 아버지라 함도 아니요 구원에 이르는 줄 알았기 때문도 아닙니다. 우리는 그분이 우리 자신을 참으로 낳아 주신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육체와 영혼을 지으셨습니다.
인간은 육체가 있어 한번 죽게 마련인데 육체는 심판을 받지 않을지라도 영은 반드시 심판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영이 거듭날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천사는 한번 죽을 수 있는 것이 아니므로 영이 거듭날 기회가 없는 것입니다. 오직 한번 창조된 것으로서 타락하면 영원히 버려 버리는 것이고 타락하지 않으면 영원히 하나님 앞에서 시험받는 것입니다.
인간의 영혼은 거듭나면 천사로부터 섬김 받는 존재가 되는 것이고 인간의 영혼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천사를 두려워하며 오히려 천사를 섬겨야 하는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천사로부터 섬김받는 존재가 되느냐?, 아니면 천사를 두려워하며 천사를 섬겨야 하는 존재가 되느냐? 하는 것은 인간 자신의 믿음의 결정에 달려 있습니다. 믿음으로 거듭나느냐?, 아니면 믿지 아니하고 그냥 천사의 밑에 깔리느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후사
우리는 천사를 두려워하며 천사의 종이 되어 그 아래 속하여 살 것인가? 아니면 천사의 섬김을 받는 존재가 될 것인가?를 결정해야 하는데, 우리는 마땅히 천사가 섬기는, 천사의 수종을 받는 하나님의 거룩한 자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누구든지 천사로부터 섬김을 받는 자가 되려면 거듭나야 합니다. 그때야 천사를 보내주실 것이요 그들은 성도를 진정으로 섬기게 될 것입니다.
로마서 8장 15절부터 말씀하기를 ‘우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음으로 이제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하느니라. 성령이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 자녀이면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후사니 영광 받을 후사는 그리스도와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천사를 두려워하고 천사의 영 앞에 굴복하는 자가 아닙니다.
구약 시대에는 천사를 두려워하며 천사를 공경하며 천사를 좇았습니다.
그러나 거듭난 우리에게는 오히려 천사가 수행하며 도우며 우리를 수종듭니다. 문제는 자기가 거듭났느냐? 거듭나지 못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1장 8절에, ‘하늘에서 온 천사라도 내가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받는다.’고 하였습니다. 다시 말하면 천사가 와서 다시 율법을 가르친다면 그는 저주를 받아야 한다고 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율법은 두려움의 영이요 진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진리에만 자유가 있습니다. 자유는 권세란 말입니다. 우리는 이미 잃었던 권세를 다시 찾은 것입니다. 이미 아담 안에서 죽었던 권리가 다시 회복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천사가 섬겨 주는 존재가 된 것입니다.
성도와 천사의 지위
천사는 현재는 우리보다 유리한 지위에 있지만 장래는 그러하지 못합니다. 성도들이 심판할 천사들은(고전6:3) 성도를 도우라고 보내심을 받았다가 가변된 하나님이 부리시는 악신들입니다.
이와 같이 자기의 천사가 심판을 받게 된다는 것은 참으로 불행한 일입니다. 천사들은 성도가 행하는 대로 역사할 뿐입니다. 선한 일을 행하면 그렇게 역사하고 부정한 일을 하면 그렇게 역사합니다.
자동차의 바퀴들처럼 앞바퀴가 좌로 가면 뒷바퀴는 좌로 가도록 밀어주고 우로 하면 뒷바퀴는 우로 가도록 밀어줄 뿐입니다. 이처럼 거룩한 성도가 방향을 가지고 있고 돕는 천사들은 뒤에서 밀어줄 뿐입니다. 그러므로 영이 미혹을 받으면 하나님께서 천사들에게 더욱 미혹을 역사하게 하사 마침내는 그 천사를 가변되게 하신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거룩해야 됩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하나님 앞에 기도하여 많은 천사가 자신을 돕도록 해야 합니다. 옛날 구약 시대 사람들은 천사들의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신약 시대 오늘날의 사람들은 천사의 도움을 무시하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을 보면 천사들의 많은 활동이 나옵니다. 또 베드로의 천사가 베드로를 옥에서 끄집어내고(행12:5-12), 바울의 천사들이 지진을 일으켜 옥문을 부수기도 했습니다(행16:25-26). 그러므로 우리도 우리를 돕는 천사가 우리를 온전히 도우며 하나님을 항상 뵙는 천사들이 우리 주변에 더 많이 오도록 간구해야 할 것입니다.
이처럼 초대교회는 천사들의 역사가 대단했습니다(행8:26;10:3;11:13;27:23).
권능(행1:8)이라는 것은 실질적인 인격이요 천사입니다.
예수께서 마귀의 시험을 받고 이기시니 천사들이 와서 그를 수종든 것처럼 우리가 ‘권능을 주옵소서.’ 하는 것은 어떤 바람이나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기분 같은 비인격적인 힘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고 실제로 인격적인 힘, 천사의 인격이 우리에게 내려와 우리를 도울 것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천사들은 성도를 위하여 지혜를 가져다 주기도 하고 더 많은 힘을 주기도 합니다. 심지어는 기도의 영력을 밀어주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항상 우리는 이러한 능력을 구해야 합니다. 성경에는 ‘여호와와 그 능력을 구할지어다. 그 얼굴을 항상 구할지어다.’(시105:4)라고 하였습니다. ‘주께서 나를 지원하는 인격적인 존재를 내게 보내사 나를 돕게 하소서.’ 하는 뜻으로 권능을 항상 구해야 합니다. ‘주여, 내게 권능을 주옵소서! 주여, 내게 천사를 주옵소서!’
성령이 임하시면 성령에 의하여 그를 돕는 권능들이 함께 임하신다고 하셨으니 하나님이 그러한 권능들을 얼마든지 보내 주시도록 사모하여야 합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일생이 천사가 수종을 들도록 해야 합니다. 성도의 특권은 일생을 천사들로부터 수종을 받는 일입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 앞에 전심을 다하여 권능을 구하며 믿음을 튼튼히 해야 합니다.
성도를 돕는 천사
하나님은 성도들에게는 선을 위하여 도우라고 천사를 보내셨습니다.
히브리서 1장 14절에 “모든 천사들은 부리는 영으로서 구원 얻을 후사들을 위하여 섬기라고 보내심이 아니뇨”라고 하였습니다.
○ 신자들에게는 거듭나는 순간에 천사를 배치해 주십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에게는 자기 천사가 있습니다. 세상에서는 권세 없고 무식하고 연약한 사람이라도 성도에게는 반드시 천사가 배치되어 있어 그를 돕고 있습니다. 볼품없어서 사람들에게서 무시를 당하고 있을지라도 그들의 천사는 하나님의 얼굴을 항상 뵙는다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의 얼굴을 뵙는 것같이 그들의 천사들은 하나님을 항상 뵙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너희는 지극히 작은 소자 하나라도 실족케 하지 말라. 저의 천사가 항상 하나님을 뵙느니라.’(마18:10)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를 괴롭게 하고 슬프게 하는 사람들을 향해 그는 침묵을 지킬지라도 그의 천사는 하나님을 뵈옵니다.
○ 성도를 돕는 천사들의 수는 사람에 따라 차등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 어떤 사람은 둘, 어떤 사람은 더 많이. 예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내가 기도하여 열두 영(營)도 더 되는 천사를 오게 할 수 없겠느냐?’(마26:53)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혹자는 전도를 많이 합니다. 외모로는 특별하지 않더라도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과 설득력이 대단합니다. 어떻게 그런 설득력이 있어서 저렇게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가?⇓하고 감탄하게 됩니다. 이는 그의 천사가 그를 도와 역사하기 때문입니다.
◦ 능력이란 천사들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권세는 하나님의 권리를 의미하나 권능이란 천사들을 말합니다.
주 예수께서 ‘너희에게 성령이 임하시면 권능을 받으리라.’(행1:8)고 하신 말씀 가운데서 권능은 성령이 임하신 자에게 따르는 천사를 말합니다. ‘예수께서 영광 받지 아니한 고로 아무에게도 성령을 주신 일이 없느니라.’(요7:39)고 말씀하셨고, 주님은 ‘내가 하늘로 간 다음에 성령을 보내 줄 것이니 그때에는 너희가 권능을 받게 되리라.’(행1:4-8)고 하셨습니다. 성령은 아버지에게서 나오시는 이시요 권능은 성령이 임하실 때에 성령이 임하신 자들에게 섬기라고 주신 천사들입니다.
예수는 천사들의 하늘에서 오신 것이 아닙니다. 아버지의 품에서 오셨다가 하늘로 가셨습니다. 이제는 하늘에서 오실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도 하늘에서 오시는 분이 아니라 아버지 품에서 오시는 분이십니다(요15:26). 아버지로부터 나오시는 이가 우리에게 오실 때 하늘에서는 천사들이 우리에게 내려온다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인자가 보좌에 오르신 후 왕권을 가지고 천사들과 함께 오시는 것을 볼 자들도 있다.’(마16:27-28) 하셨습니다. 그때에 거기 있는 자 중에 보지 못할 자들도 있고 볼 자들도 있다 말씀하신 것은 열두 제자 중에 보지 못할 자는 가룟 유다요 볼 자들이라면 남은 열한 제자들인데, 열한 제자들이 이 세상에 생존해 있을 때 주님이 왕권을 가지고 오신다는 말씀입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으로 성도들과 함께 계실 때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 안에 있음을 너희가 알리라.’(요14:20)고 하셨습니다. 이처럼 곧 성령이 임하실 때에는 보좌에 앉으신 이의 왕권을 가지고 임하시는 것이요 성령이 임하실 때에 권능의 천사들을 보내신다는 말씀입니다.
히브리서 1장 7절에 “또 천사들에 관하여는 그는 그의 천사들을 바람으로 그의 사역자들을 불꽃으로 삼으시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성령이 임하시면 권능을 받고’(행1:8)라 한 말씀처럼 성령이 임하실 때 권능이 함께 따라 내려와서 그들에게 임하여 그들을 돕는다는 것입니다. 천사는 성도를 도우라고 보냄을 받은 자로서 모든 사람에게 배치된 자입니다.
○ 구약성경 다니엘(단3:1-28)을 보면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유황불 속에 처넣어 죽이려 하였으나 그들을 불속에 던지려던 자는 타죽었고 하나님의 뜻대로 산 그들은 머리털 하나 상하지 아니한 이적이 나옵니다. 그들은 우상숭배를 거절하다가 느브갓네살 왕의 엄한 벌을 받게 된 것입니다. 왕이 불속을 자세히 본즉 그 세 사람 외에 또 한 사람이 그들과 함께하고 있었습니다. 그가 그들을 돕는 천사입니다. 그러므로 왕은 두려워하며 그 모든 행사를 취소하고 그들을 불에서 끌어내라고 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의롭게 살려고 하는 자들을 하나님께서는 위경에서 보호하십니다.
* 다니엘의 기도(단9:20-21;10:12-14)
◦ 열왕기상 19장 5-7절에 엘리야가 이세벨에게 쫓겨 거룩한 호렙산으로 도망가는데, 가다 가다 지쳐서 로뎀나무 아래 쓰러졌습니다. 그때 천사가 와서 어루만져 줍니다. 정신이 들자 떡을 주고 물을 줍니다. 다시 잠잘 때 또 어루만져 줍니다. 그러다가 다시 깨니 또 떡을 주고 물을 줍니다. 이렇게 하여 기운을 차리게 하고 호렙산까지 무사히 가게 합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의인들을 사랑하시고 그의 천사들을 보내시고 의인들이 외로울 때와 고독할 때에 어루만져 주시고 사랑해 주십니다.
○ 구약성경에는 천사들의 사역이 많이 기록되었으나 신약에는 많이 나와 있지 않습니다. 이는 구약 시대에는 밤에 촛불을 밝힘과 같고 신약 시대는 해가 올라옴으로 해서 촛불이 그 빛을 발하지 못하는 격입니다. 그러나 오히려 구약 시대보다 신약 시대에 천사들의 활동은 더욱 활발합니다. 요한계시록에 나타난 말씀들이 그 예입니다. 베드로는 헤롯왕으로부터 큰 박해를 받았습니다. 결국은 그에게 잡혀 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그 밤에 천사가 와서 베드로를 옥에서 끄집어 냈습니다. 이러한 순간을 베드로 자신도 마치 환상을 보는 줄 알았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천사의 사역은 분명히 환상이 아니었고 실제였습니다(행12:6-12).
이와 같은 일들은 그 후 신약교회에도 종종 있었습니다(행8:26). 그래서 히브리서 13장 2절에 ‘너희는 손님 대접하기를 힘쓰라 부지중에 천사를 대접한 자들이 있느니라.’ 했습니다. 옛날 아브라함이 그랬고 롯이 그랬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천사를 대접한 경험들이 있었듯이 현재도 그러합니다.
신자에게는 하나님의 도와주심이 절대로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기도하고 우리를 돕는 천사를 보내 주시도록 간청해야 합니다. 천사들은 우리의 모든 연약함을 도우라고 보냄을 받은 자들입니다.
[참고] 베뢰아 新書 41, 「영의 세계를 알자」, pp. 67-80.
제 5 장 천사의 축복
복은 오직 하나님에게서만 나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복을 명하시면 복은 창조됩니디다.
하나님은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명하시고 죽은 것을 산 것같이 명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호흡도 명하시고 모든 물질도 명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복을 명하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은 복을 명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계시에 의하여 우리가 존재하고 하나님의 계시에 의하여 우리가 살고 하나님의 계시에 의하여 우리가 복을 받는 것입니다. 지성을 드리면 복이 생겨난다고 믿는 것은 미신입니다.
복은 하나님의 약속, 하나님의 계시, 하나님의 명령에 의해서만 있는 것입니다.
우주를 창조하셨고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창조하신 것처럼 하나님은 복을 명하여 창조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피조물도 하나님이 복을 명하셔야 창대하고 번성해 가는 것입니다. 창조 다섯째 날에 물고기와 하늘의 새를 향해서 하나님이 복을 명하시니 그것들은 하늘에서도 번성하고 바다에서도 생육하고 번성하였습니다(창1:22). 이처럼 여섯째 날에 인간에게도 복을 명하셔서 창대하라 번성하라 하시니 인류가 땅에 번성하여 충만해졌습니다(창1:28).
○ 성경은 하나님이 복을 명하신다고 하셨습니다(시133:3).
하나님은 복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빛이 있으라 하시듯이 복이 있으라고 명하시는 분이십니다.
(시133:3)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
하나님이 복을 명하신 것이 우리에게는 권리가 됩니다. 자손들이 그 영광을 소유할 권리를 가질 수 있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명령 없이는 복이란 생겨날 수 없습니다.
복을 쌓아 놓으셨다가 주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복을 명하심으로 창조하십니다.
과일나무에서 해마다 열매를 딸 수 있는 것처럼 하나님이 명하시는 복은 계속되는, 영구한 복입니다. 하나님이 명하신 복은 복을 누리는 그 사람이 아니고 자기 아들도 그 복을 누리고 손자도 그 복을 누립니다. 하나님의 복은 대대로 천 대까지 그 복을 누릴 수 있도록 계속 창조되어지는 것입니다. ‘네 씨로 하늘의 별같이 바다의 모래알같이 하리라.’ 하시니 아브라함의 씨 하나가 하늘의 별 같고 땅의 모래같이 많은 자손이 된 것처럼 하나님이 명하신 복은 계속 창조되어 가는 것입니다.
시편에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시1:3). 그러나 악인은 그렇지 않다 하였으니 복이 없는 자는 악인이라고 칭하였습니다.
그런데 복이란 물질이 아니고 오히려 그 물질을 지배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함이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온 명령입니다. 복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은 물질이 있느냐? 없느냐?가 아니라 하나님이 명하신 명령을 소유하고 있느냐? 소유하지 못하고 있느냐?, 명하신 능력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그것입니다.
○ 하나님의 명령을 받는 것은 영혼입니다. 하나님이 복을 명하시면 그의 영혼이 받습니다. 우리가 주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면서 하나님의 명령을 영혼이 받아들이며 또한 영원히 간직합니다.
영혼은 하나님이 명하신 복을 소유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명하신 복은 거듭났을 때에만 소유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죽었던 영이 그리스도로 인해서 되살아났으므로 이제는 하나님이 명령하신 복을 소유할 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가정이 하나님의 명령을 받을 수 있다면 예수께서 삭개오의 가정에 오시듯이 복이 그 집에 머무를 것입니다.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겠다.’(눅19:5) 하실 때 삭개오는 복을 창조하시는 이의 음성을 듣고 즉시 주를 영접하였으니 그는 복 받은 사람입니다(눅19:9).
그런데 시편 147편 15절에 ‘그 명을 땅에 보내시니 그 말씀이 속히 달리는도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은 빠른 속도로 달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에 복을 명하시니 복이 급속도로 달려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누가 그 복을 빨리 받아들이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되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즉시 순종하여 받아들여야 합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자는 복을 받을 것입니다.
‘주님이 내게 복을 명하시면 나는 그 복에 순종하겠습니다.’라고 진실을 고백해야 합니다. 그런 사람이 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복이 없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이 없다는 뜻입니다. 그가 건강을 명하시면 우리는 건강할 수 있습니다. 그가 물질을 명하시면 물질도 생기고 생명을 명하시면 생명도 생깁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명령을 받아들이지 않고 거절하고 있기 때문에 복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복은 인간의 개념으로 보지 말고 하나님의 뜻으로 보아야 합니다. 복은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지는 것이지 인간의 뜻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복을 명하시기를 사모하여 그 명령을 구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복을 받으려면 복을 명하신 말씀을 주야로 사모해야 합니다. 복을 사모하는 것과 복을 명하신 말씀을 사모하는 것은 같은 것입니다. 결국 복이란 하나님으로부터 약속도 받으며 보장도 받는 것입니다.
복(福)과 축복(祝福)
성경에 복이란 말씀과 축복이란 말씀이 있는데 그 의미는 다릅니다.
하나님은 복을 주시는 분이시나 천사는 복을 주는 자가 아니고 축복하는 자입니다. 천사에게는 복을 줄 능력이 없습니다. 복을 창조해 낼 권리가 없습니다. 오직 조물주 하나님 아버지만이 복을 명할 수 있습니다. 복을 창조할 수 있습니다. 그 만이 복을 주십니다. 천사는 복을 주는 자가 아니고 빌어 주는 자입니다. 글자 그대로 ‘祝福’(축복) 하는 자입니다. 그래서 야곱이 ‘나를 축복하소서.’ 하며 천사를 붙들고 간구한 것은 자기를 위하여 복을 빌어 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의로운 자의 간구를 들으시니 의로운 천사들의 간구는 하나님께 상달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12장 2-3절을 보면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내가 너에게 복을 주리라.’ 하시면서 ‘다른 사람이 너를 축복하면 내가 그에게도 복을 주겠다.’ 하셨으며 ‘네가 남을 축복하면 내가 그에게도 복을 주겠다.’고 하셨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하나님 아버지는 복을 주시는 이시고, 그 외에는 복을 빌어 주는 자들이란 말입니다.
예수께서도 ‘너희가 이제까지는 내 이름으로 기도하지 않았으나 이제는 기도하라.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라.’ 하셨습니다. 이렇게 예수께서도 아버지가 하실 일에 대해서 자기는 빌어 주겠다고 하셨습니다. 로마서 8장 34절에서도 말씀하시되, ‘그는 하나님 우편에서 밤낮 우리를 위하여 간구해 주시는 분이라.’고 하셨고, 로마서 8장 26-27절에서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지만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신다.’ 하시면서 하나님은 성령의 생각을 아시고 또한 성령은 하나님의 뜻대로 간구하신다고 했습니다.
즉,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되 ‘시몬아, 사단이 너를 밀 까부르듯 하려고 청구하였으나 내가 기도하였느니라.’ 하심같이(눅22:31), 성령도 친히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고 예수께서 친히 간구해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연약하여 미처 간구치 못하는 것을 성령은 성도를 위하여 간구해 주시며 혹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주님께서 대신 간구하시며 허물을 사함받게 대신하여 간구하여 주십니다.
천사의 축복
“ ‧‧‧ 밤에 일어나 두 아내와 두 여종과 열한 아들을 인도하여 얍복 나루를 건널새 그들을 인도하여 시내를 건네며 그 소유도 건네고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 그 사람이 자기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 야곱의 환도뼈를 치매 야곱의 환도뼈가 그 사람과 씨름할 때에 위골되었더라 그 사람이 가로되 날이 새려 하니 나로 가게 하라 야곱이 가로되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그 사람이 그에게 이르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그가 가로되 야곱이니이다 그 사람이 가로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사람으로 더불어 겨루어 이기었음이니라 야곱이 청하여 가로되 당신의 이름을 고하소서 그 사람이 가로되 어찌 내 이름을 묻느냐 하고 거기서 야곱에게 축복한지라 ‧‧‧ ”(창32:13-32)
천사들도 성도를 위하여 복을 밤낮 비는 자입니다. 옛사람은 천사에게 제발 복을 빌어 달라고 간구하며 매달렸으나 지금은 천사가 성도를 도와야 할 의무를 가졌으니 성도는 천사를 부리는 자입니다. 우리가 천사들 앞에 결코 부끄럽지 아니함으로 그들이 밤낮 간구한다면 우리는 형통할 것입니다(계8:3). ‘천사들아, 나를 위하여 복을 빌라.’ 하고, 하나님께는 ‘권능을 주시옵소서!’라고 구한다면 참으로 형통할 것입니다.
야곱이 ‘나를 위하여 복을 빌지 않으면 나는 당신을 놓지 않겠나이다.’ 한 것처럼 정말 다부지게 붙들고 천사에게 ‘일하도록 나를 도우라. 나를 위해서 일하라. 나를 위해서 빌라.’ 한다면 천사는 그를 돕는 자로서 그 일을 해내고야 말 것입니다.
거룩한 천사만이 복을 빌 수 있습니다. 이미 가변된 천사라면 복을 빌수 없습니다. 성도가 거룩할 때 천사도 거룩하고, 거룩한 자를 더 거룩하게 하시는 이가 거룩한 간구가 있을 때에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의롭고 거룩할 때만 거룩한 천사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본인이 의롭고 거룩하지 못하면 천사가 그를 지원할 아무런 능력을 갖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야곱처럼 자기 천사들로 일하게 하기 위해서는 거룩해야 합니다. 천사는 거룩한 자를 도우라고 보냄 받은 자입니다. 거룩하지 아니한 자를 위하여 복을 빌 책임은 없습니다.
성도가 거룩해야 그의 천사도 거룩하고, 성도가 미혹을 받으면 그의 천사도 미혹하는 자가 됩니다. 거룩하지 못한 자의 천사는 복을 빌지 않습니다. 거룩하지 못한 자에게는 차라리 유혹을 역사하사 오히려 믿음이 떨어지게 하고 타락하게 만들고 하나님을 떠나게 만들고 그들을 하나님과 원수가 되도록 이간시켜 버립니다(롬1:28-32). 평소에 많은 기도와 거룩한 생활과 의를 사모하는 믿음이 있어야 권능을 많이 받으며 그 권능들이 그를 위하여 일하게 됩니다. 우리가 복을 빌기에 합당하고 복을 빌기에 거리낌이 없도록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의롭고 거룩하고 열심이 있고 참으로 정직하여야 천사들도 일할 수 있습니다.
진정 우리가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할 때 하나님이 우리를 도우라고 보낸 천사가 우리를 위해서 밤낮없이 복을 빌게 될 것입니다.
나눔) 자기를 위하여 밤낮없이 복을 빌어 주는 자가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자고 있는 동안에도 천사는 자지도 않고 밤새 저에게 복을 주소서 복을 주소서 한다면 얼마나 감사하겠습니까? 그런데 축복을 부탁하는 자가 하나님 앞에서 의를 저버린 행위를 일삼고 있다면 과연 천사들이 그를 위하여 축복하겠으며 또 그렇게 한들 그 복이 임할 수 있겠습니까?
[참고] 베뢰아 新書 41, 「영의 세계를 알자」, pp. 81-91.
제 6 장 세상신과 부리시는 악신, 가변된 천사
하나님은 온전하신 분이십니다. 그는 좌로나 우로나 치우침이 없는 분이시며 그가 좌로 행하시든 우로 행하시든 그분이 행하시는 것은 공의요 그의 행하시는 바는 의로움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온전하심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하나님을 원망하는 것은 불신앙입니다. 하나님은 회전하신다거나 어떤 변화가 있으신 분이 아닙니다. 우리의 신앙은 자신의 영혼을 위해서 도무지 원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절대로 원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원망하는 것은 자신의 영혼을 해롭게 하는 일입니다. 그분에게는 원망받을 일이 없습니다. 그분이 하시는 일이 그분의 뜻이요 그는 원망받을 일이 없는 분이십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을 원망하는 것은 결국 자기 영혼을 저주하는 어리석은 행위입니다.
성경 속에 일어난 사건들에서 공통점은 망하는 자들마다 하나님을 원망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피조물의 의지는 자유 의지이다
하나님은 온전하신 분입니다. 온전하신 하나님께서 아들을 위해서 하늘과 모든 것을 창조하시고 그 아들을 위해서 하늘에 천사들을 창조하셨는데, 천사들은 하나님처럼 온전한 자들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들은 말하기를 하나님이 온전하신데 온전하신 하나님이 만든 천사들이 어째서 타락했는냐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의지는 좌로나 우로나 선택하여 치우치는 의지가 아니고, 방향을 이리로 행하시나 저리로 행하시나 그가 하시는 일은 단 한 가지도 잘못됨이나 후회할 일이 없는, 완전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피조물의 의지는, 자유 의지입니다. 선택할 수 있는 의지입니다. 이것을 택할 것이냐? 저것을 택할 것이냐? 하는 자유 의지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하나님의 의지는 하나님의 영원한 뜻이요 온전한 뜻이요 영원히 후회할 것이 없는 공의이나, 피조물의 의지는 자유 의지입니다. 의지에 자유를 주었기 때문에 의를 택할 수도 있고 불의를 택할 수도 있습니다. 만일 천사가 의를 택하면 그는 거룩한 천사가 될 것이요, 그가 불의를 택하면 저주를 받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도 의지의 자유를 주셨습니다. 의지를 존중하여 ‘선악과를 먹으면 죽을 것이고 먹지 않으면 살 것이라.’ 하셨으나 하와는 그것을 먹고 말았습니다.
피조물의 의지에 자유가 부여된 것은 하나님만 못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에게는 자유라는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하시는 일은 온전한 것이요 그의 하시는 일은 모두가 공의입니다.
그러나 피조물에게는 의지의 자유가 부여됐으므로 선악간에 선택해야 합니다.
세상을 미혹하는 세상신
“그 중에 이 세상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취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고후4:4)
하늘의 천사들은 천사장의 타락으로 인하여 함께 쫓겨 내려와 세상신이 되어 세상을 미혹하고 멸망시키려 하나 그들의 최후의 날은 정해져 있습니다. 심판날은 마침내 오고야 말 것이요(요12:31), 드디어 오고야 말았습니다(요16:11).
그와 함께 쫓겨 내려왔던 천사들은 세상을 미혹하는 세상신들이 된 것입니다.
에베소서 2장 1-2절을 보면 ‘우리가 과거 죄로 인해 죽었을 때에 우리의 영은 공중권세 잡은 자 곧 세상 사람들 속에서 역사하는 영을 좇아 세상의 풍습을 따라 살았다.’고 했습니다. 세상 풍습을 좇아 사는 사람들에게 역사하는 영은 마귀와 그의 사자들입니다. 세상신들이 하는 일은 미혹하는 일인데 곧 이단의 영과 적그리스도의 영과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방해하는 불신앙을 역사하는 영입니다.
인간은 세상에 있는 다른 피조물들과는 달리 하나님의 아들이 세상에 들어오실 때에 그를 돕는 자요 그의 잉태와 그의 죽음과 그의 증인으로서 필요한 존재들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속성에 종교성이 있는 것입니다. 마귀는 하나님을 찾고자 하는 인간의 속성이 있음을 알고 이를 훼방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알 만한 신성을 우상숭배하는 일로 더럽혔습니다. 종교성이 강한 사람들에게는 세상신들이 깊이 접근하여 미신을 좇게 하거나 우상숭배하는 종교에 얽매이게 합니다.
종교적 신앙심이 있는 자들에게는 세상의 미혹의 영들이 접근하여 미신을 좇게 하고 우상을 숭배하게 하고, 더 나아가서는 적그리스도가 되게 합니다. 말하자면 자신은 무신론자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곧 세상신으로부터 완전히 억압당한 자들입니다.
(엡2:1-2)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그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부리시는 악신(미혹케 하는 영)
“여호와의 신이 사울에게서 떠나고 여호와의 부리신 악신이 그를 번뇌케 한지라 사울의 신하들이 그에게 이르되 보소서 하나님의 부리신 악신이 왕을 번뇌케 하온즉 원컨대 우리 주는 주의 앞에 모시는 신하에게 명하여 수금 잘 탈 줄 아는 사람을 구하게 하소서 하나님의 부리신 악신이 왕에게 이를 때에 그가 손으로 타면 왕이 나으시리이다 ‧‧‧ 하나님의 부리신 악신이 사울에게 이를 때에 다윗이 수금을 취하여 손으로 탄즉 사울이 상쾌하여 낫고 악신은 그에게서 떠나더라”(삼상16:14-23)
천사는 가변할 수 있습니다. 원수된 천사들이 함께 이곳으로 쫓겨내려와 세상신이 되었듯이 거룩한 성도를 돕던 천사들도 졸지에 가변되어 버릴 수 있습니다. 그 책임은 전적으로 그가 수종든 성도 자신에게 있습니다.
○ 천사들은 자신들이 섬겨야 할 자를 위하여 열심히 도우며 하나님의 일을 하게 합니다.
그런데 신자들이 어느 순간에 처음 열심을 저버리고 다시 세상 사람들과 같이 타락의 길을 걸으며 어느새 그들의 습관을 받아들이고 옛 생활을 다시 사모하는 까닭은 그를 돕는 천사들의 사역이 줄어들었기 때문입니다. 이때부터는 비록 신자들 틈에 끼어 예배와 기타 교회 행사에 다 참여한다 할지라도 영적으로는 불신자와 다를 바 없게 되어 버립니다.
이들은 하나님을 원망하고 하나님의 일에 대해 불평하고 원망하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자를 가증히 여기시고 하나님의 선한 역사를 하는 천사를 거두시고, 부리시는 악신을 내려 역사하십니다. 그 악신은 타락한 신자를 괴롭히는 일을 하게 됩니다. 그가 곧 미혹의 영입니다.
하나님은 있는 자에게는 더 있게 하시나 없는 자에게서는 그 있는 것들도 빼앗으시는 분이십니다.
신자의 가증한 신앙 생활은 하나님을 크게 실망시키며 그 결과 하나님은 그에게 유혹을 역사하십니다. 탕자가 아버지를 떠나려 할 때에 이를 막지 않고 내보낸 것처럼 하나님은 굳이 떠나려 하는 자들을 붙들지 아니하고 내보내시되 돌아오려는 자들은 붙들어 주고 돌아오게 하는 분이십니다. 그러기에 교회 생활 많이 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졸지에 변할 수 있습니다.
(딤전4:1-2) 그러나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케 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좇으리라 하셨으니 자기 양심이 화인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하는 자들이라
○ 사울왕에게 보내졌던 천사들 가운데 한 영은 일찍이 가변되어 하나님의 부리시는 악신으로서 부림을 받았습니다. 어느 날 하나님은 선한 일을 위한 천사를 거두시고 부리시는 악신을 그에게 보내셨습니다. 그러므로 그 영이 사울왕을 몹시 번뇌케 했습니다(삼상16:14-15).
그리고 얼마 후에 하나님의 부리시는 악신은 사울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이튿날 다시 사울왕에게 하나님의 부리시는 악신은 힘있게 내렸습니다(삼상18:10). 그 영이 얼마 후 떠났으나 그후에 또 다시 임하였습니다(삼상19:23-24). 그러므로 사울이 예언자 행세를 하면서 벌거벗은 몸으로 길에 누워 예언함으로 백성들 중에 큰 웃음거리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후로도 사울왕은 악신에게 시달리다가 결국은 최후에 저주를 받고 말았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이 부리시는 영들 가운데는 거룩하게 쓰여지는 자들도 있고 또는 더럽게 쓰여지는 자들도 있는데, 이 모두는 하나님의 부리시는 천사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부리시는 영들 중에 가변된 천사들의 유혹이 우리들에게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을 원망하는 죄에 빠지고 맙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유혹을 역사하심은 이스라엘을 거룩하게 하려 하심이었습니다. 그의 성도들을 거룩하게 하여 다시는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려 하심입니다.
(겔14:9-11) 만일 선지자가 유혹을 받고 말을 하면 나 여호와가 그 선지자로 유혹을 받게 하였음이어니와 내가 손을 펴서 내 백성 이스라엘 가운데서 그를 멸할 것이라 선지자의 죄악과 그에게 묻는 자의 죄악이 같은즉 각각 자기의 죄악을 담당하리니 이는 이스라엘 족속으로 다시는 미혹하여 나를 떠나지 않게 하며 다시는 모든 범죄함으로 스스로 더럽히지 않게 하여 그들로 내 백성을 삼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려 함이니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셨다 하라
○ 세상신들은 불순종하는 불신자들에게 역사하는 영이며, 하나님이 부리시는 악신은 하나님의 거룩한 종들을 견책하실 때 쓰시는 영입니다. 그러므로 사단의 미혹은 지옥에 가게 하고 영혼을 망하게 하나, 하나님의 부리시는 영의 유혹은 예수의 날에 영혼은 구원을 얻게 하나 상급은 없게 합니다(고전3:10-15).
하나님께서 불로 시험하시는 것은 곧 유혹을 역사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힘써 노력하던 것들을 다 소멸하는 이유는 불로(히1:7) 시험하시는 일을 견디지 못하고 마침내 유혹을 받고 넘어져 버리기 때문입니다. 믿음 생활은 거룩해야 하고 철저해야 합니다. 금으로 집을 짓듯이 해야 합니다. 그렇지 못한 자들은 마치 나무나 풀로 집을 지은 자들 같아서 하나님이 가증히 여기시고 불로 시험하실 때에 견디지 못하고 마는 것입니다. 예수의 공로로 겨우 구원만 얻은 영으로 남게 될 것입니다(행12:21-23).
○ 간혹 신자들에게서 귀신을 내어쫓은 후 곧 다시 들어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는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어쫓았으나 그가 다시 들어오는 길을 막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귀신은 불신자든 신자든 세상신이나 부리시는 악신이 역사할 때 침투합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무엇보다도 회개하여 돌이켜 살려고 해야 하고, 불신자는 회개하고 주 예수를 믿어야만 합니다. 그런 후에 귀신을 자기에게서 쫓아낸다면 다시는 들어오지 못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가증한 일을 버리고 오직 하나님의 사랑받는 일만이 있어야 합니다.
불신자들이 회개하지 않고 귀신만 쫓으려 한다면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들은 이미 세상신들의 지배를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신자들은 미혹의 영을 멀리 떼어버리지 않고는 귀신을 쫓아낼 수가 없습니다. 미혹의 영들은 귀신이 침투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 주기 때문입니다.
에스겔 14장 9절에 보면 바로 ‘선지자라 할지라도 유혹을 받은 것 곧 이런 부리시는 악신으로부터 억압을 받은 것은 하나님이 그리한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에스겔 14장 3-4절에 ‘마음에 자기 우상을 가지고 있는 연고라.’고 했습니다. 교만하고 회개할 줄 모르는 자기 우상을 가지고 있는 연고로 하나님이 그런 자들을 받아들이지 아니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나는 방법은 회개입니다. 회개만이 벗어날 수 있는 길입니다. 회개할 때 하나님은 부리시는 악신을 거두시고 그를 돕는 선한 일을 하는 천사를 보내실 것입니다.
병 나으라고 기도 열 시간 하느니 차라리 한 시간을 깊이 회개하는 것이 낫습니다. 그리하면 하나님은 악신을 거둬들이시고 다시 그를 돕는 선한 일을 하는 천사를 주사 역사하게 하실 것입니다.
사단과 하나님이 부리시는 악신은 다릅니다. 하나님이 사단을 부리시는 것이 아닙니다. 사단은 이미 하나님과 원수 되어 떨어져 나간 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부리시는 악신은 다릅니다. 하나님의 부리시는 악신은 그의 천사들입니다. 세상의 신은 사단의 종이요 하나님의 부리시는 악신은 하나님이 쓰시는 종입니다.
그러므로 불신자가 받는 미혹은 사단의 역사요 성도가 받는 징계는 하나님의 사랑의 징계요 사랑의 채찍입니다(히12:3-13,고전10:13).
가변된 천사
천사장 하나가 하나님을 거스르고 범죄하여 쫓겨내려올 때에 그의 사자들도 함께 쫓겨 내려왔던 것처럼 성도라 할지라도 하나님이 보시기에 가증하고 또한 성령이 보시기에 가증하면 권능들은 가변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성도를 도우라고 보내심을 받은 천사들은 하나님 보시기에 그 주인이 가증하면 가변되어 버린다는 것입니다. 마침내 신자의 일생을 괴롭히는 미혹의 영이 되어 미혹하는 일을 하게 됩니다. 어떤 이에게는 가변된 천사가 하나나 둘 정도 있을 것이지만, 어떤 이에게는 그 이상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그의 곁을 멀리 떠나 있지 아니하여 언제라도 하나님께서 유혹을 역사하시면 즉시 행동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부리시는 악신들은 하나님을 반역한 사단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섬기며 그의 뜻대로 순종하는 영들입니다. 그러나 성도가 하나님을 거역하고 가증한 행실에 빠지게 되면 하나님은 그 영들에게 가증한 일을 역사케 하십니다. 그러니까 부리시는 악신은 하나님이 징계하실 때에 쓰시는 도구로 사용받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유혹을 역사하심은 곧 징계에 해당합니다.
하나님은 좋은 것으로 복을 역사도 하시지만 유혹도 역사하신다는 것입니다(사66:4). 마태복음 13장 12절에서 ‘하나님은 있는 자에게 더 있게 하시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는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는 무조건 주기만 하시는 긍정적인 면만 있는 것이 아니고 있는 것을 빼앗기도 하시는 부정적인 면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마태복음 25장 29절에서도 ‘하나님은 있는 자에게 더 있게 하시고 없는 자에게서 빼앗으신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는 지원하시는, 적극적인 일도 하시지만 때로는 있는 것을 빼앗으시는 소극적인 일도 또한 하십니다.
○ 아합에게는 많은 선지자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합왕은 엘리야와 같은 훌륭한 선지자의 충고를 듣지 아니하고 거짓 선지자, 이세벨의 선지자들의 유혹을 계속 받아들였습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가증히 여기셨습니다.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은 임금이 하나님의 종 선지자의 말을 듣지 아니하고 거짓 선지자의 말을 듣고 유혹을 받자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유혹을 택하여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보좌 주위에 둘러선 영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누가 저를 저주받아 죽게 할 것인가?’ 하시니, 어떤 영은 이렇게 하겠다 하고 또 다른 영은 저렇게 하겠다 하였습니다. 그때 한 영이 나아와서, ‘제게 좋은 방법이 있습니다. 제가 그를 꾀겠습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그에게 ‘그를 어떻게 꾀겠느냐?’ 물으시니 ‘내가 거짓말하는 영이 되어 왕의 선지자들의 입술에 있어서 그 입술로 거짓말을 하게 함으로써 왕을 속이겠습니다.’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천사에게 그렇게 하라고 허락하자 그 천사는 곧 나가서 거짓말하는 영이 되어서, 왕의 모든 선지자의 입에 있으면서 그 선지자들의 입술을 주장하였습니다. 그 결과 아합왕은 길르앗 라못에 가서 죽임을 당했습니다.
(왕상22:19-23) 미가야가 가로되 그런즉 왕은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소서 내가 보니 여호와께서 그 보좌에 앉으셨고 하늘의 만군이 그 좌우편에 모시고 서 있는데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누가 아합을 꾀어 저로 길르앗 라못에 올라가서 죽게 할꼬 하시니 하나는 이렇게 하겠다 하고 하나는 저렇게 하겠다 하였는데 한 영이 나아와 여호와 앞에 서서 말하되 내가 저를 꾀이겠나이다 여호와께서 저에게 이르시되 어떻게 하겠느냐 가로되 내가 나가서 거짓말하는 영이 되어 그 모든 선지자의 입에 있겠나이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너는 꾀이겠고 또 이루리라 나가서 그리하라 하셨은즉 이제 여호와께서 거짓말하는 영을 왕의 이 모든 선지자의 입에 넣으셨고 또 여호와께서 왕에게 대하여 화를 말씀하셨나이다
이와 같이 성도들이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아니함으로써 하나님 보시기에 가증히 여기신 바 되면 성도들을 섬기라고 보냄 받은 그들의 천사들도 가변됩니다.
하나님은 축복도 역사하시고 유혹도 역사하십니다.
그러니까 다섯 달란트를 받은 자가 다섯 달란트를 남겼을 때 그가 남긴 다섯 달란트를 그에게 주시고 일하지 않은 자가 가진 한 달란트를 빼앗아 그에게 더 얹어 주신 것처럼 있는 자는 더 있게 하시고 없는 자는 있는 것도 빼앗으신다는 말입니다.
믿음이 있는 자에게는 믿음을 더 있게 하시고, 성령을 순종하고 성령을 잘 모시고 그에게 온전히 복종하는 자에게는 권능들을 더 주셔서 더 열심으로 일하게 하시나 그가 믿음을 떠나 하나님 앞에서 가증하면 그 믿음을 빼앗으시어 그에게 유혹을 역사하십니다.
사울왕의 천사들 중에 일부는 이미 가변되어 사울왕의 주위에 있었습니다. 한번 가변된 천사는 그가 섬기던 이를 멀리 떠나지 않습니다. 바느질할 때 옆에 있는 가위마냥 필요할 때는 갖다가 쓰는 것입니다. 가증할 때는 이것을 갖다가 집어넣어 역사하게 하시고 하나님의 뜻대로 바로 돌아섰을 때는 그것을 빼내고 선한 일을 위한 천사를 보내시곤 합니다.
성령이 보시기에 가증하면 하나님이 유혹을 택하여 주십니다. 하나님이 축복만 역사하시는 줄로 생각하면 안 됩니다. 오늘날 신자들이 처음 은혜 받고 처음 얼마 동안은 열심도 있고 훌륭히 신앙 생활을 하지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성령을 속이기 시작하므로 성령의 지배를 소멸합니다. 성령의 능력을 소멸합니다. 그렇게 될 때에 하나님은 그를 도우라고 주신 권능을 가변시킬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권능이 많던 사람이라도 권능이 가변되어 졸지에 부리시는 악신 되면 넘어질 수 있습니다.
디모데전서 4장 1절에,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케 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좇는다.’ 했습니다. 하나님이 그를 가증히 여기시면 믿음에서 떠나 미혹케 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좇게 됩니다. 그런 자들은 양심이 이미 화인 맞아서 외식하는 자들이라 했습니다(딤전4:2). 권능이 가변되어 버리면 양심이 화인 맞은 사람마냥 두려움도 없고 거리낌도 없습니다.
그래서 5장 12절에 ‘처음 믿음을 저버렸으므로 심판을 받느니라.’ 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축복만 역사하지 않고 유혹도 역사하신다는 사실을 알고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에스겔 14장 9절을 보면 ‘만일 선지자가 유혹을 받고 말을 하면 나 여호와가 그 선지자로 유혹을 받게 하였음이라.’고 했습니다. 만일 선지자라도 유혹을 받고 진실하지 않은 거짓 예언을 했다면 이는 하나님이 유혹받게 한 것이라 하셨습니다. 훌륭했던 선지자가 졸지에 변하는 것은 하나님이 유혹을 받게 한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불신자가 타락하는 것은 사단의 역사, 세상 신의 역사이지만 거룩한 성도가 졸지에 변하는 것은 하나님이 유혹을 역사한 것입니다.
(겔14:9-11) 내가 손을 펴서 내 백성 이스라엘 가운데서 그를 멸할 것이라 선지자의 죄악과 그에게 묻는 자의 죄악이 같은즉 각각 자기의 죄악을 담당하리니 이는 이스라엘 족속으로 다시는 미혹하여 나를 떠나지 않게 하며 다시는 모든 범죄함으로 스스로 더럽히지 않게 하여 그들로 내 백성을 삼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려 함이니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셨다 하라
하나님이 이렇게 하심은 그를 멸하여 지옥으로 보내려 함이 아니라 그 백성 가운데서 이런 일이 다시는 없게 하려고 하시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천사가 가변되면 얼마나 괴롭게 하는 존재가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미혹이란 그렇게 역사하는 영들을 말함입니다.
우리는 사울왕에게 주셨던 천사들이라도 가변된 악신과 아직 거룩한 천사가 번갈아 역사함을 주의하여 보아야 합니다.
사무엘상 16장 14절을 보면 부리시는 악신은 이전에 이미 가변된 천사였습니다. 그는 사울을 떠났다가 다시 와서 그를 번뇌케 하다가 다시 그를 떠났습니다(삼상16:23). 그러다가 하나님이 부리시는 악신을 다시 힘있게 내리시매 그가 또 사울을 미혹하였습니다(삼상18:10). 그리고는 곧 떠났습니다. 그러다가 하나님의 신이 또 그에게 내리니 그가 또 미치광이마냥 벌거벗고 드러누워서 예언하였고 마침내 속담거리가 되었더라 했습니다(삼상19:23-24). 사울의 일생은 이처럼 미혹의 영에 시달리다가 마침내 망하고 말았습니다.
한편 고린도전서 5장 5절을 보면, 거룩한 성도가 이방인도 할 수 없는 짓을 함으로써 바울은 교회가 함께 기도하여 이런 자의 육신은 사단에게 내어주고 영이나 예수의 날에 구원받게 하자 하였습니다.
믿음이 없으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믿음을 가져다 주신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믿음을 가지도록 성령을 부으시고 믿음을 가지도록 역사하셨어도 끝까지 믿음을 소유하지 않고 오히려 믿음에서 떠나 미혹케 하는 영의 미혹을 받으면 하나님이 결국 그것을 가증히 여겨 유혹을 역사하시게 됩니다.
그래서 데살로니가후서 2장 11절에 ‘이러므로 하나님이 유혹을 저의 가운데 역사하게 하사 거짓 것을 믿게 하심은’ 하고 하나님께서 유혹을 역사하셨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마귀는 지옥에 가도록 역사하지만 하나님은 권능을 거두신다는 말입니다. 그리하여 그의 천사로 하여금 오히려 유혹하는 신이 되게 역사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믿음 없는 자에게 믿음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믿음이 없는 자에게 도리어 믿지 못하도록 유혹을 역사하사 거짓 것을 믿게 하심은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로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였습니다.
열심이 있던 신자가 졸지에 타락하는 것은 그 사람이 이미 유혹에 빠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드리려는 거룩한 예물에 대하여 말라기 1장 6-10절을 보면 불의한 재물은 심판을 받게 하셨습니다. 불의한 재물을 가지고 다시는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는 자가 있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무조건 다 받아들이신다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은 예물을 기뻐하시나 가증한 물건은 결코 받지 않으시는 거룩한 분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가증한 자들이 그들의 가증한 예물을 단에 드리지 못하도록 문 앞을 누가 막아 주었으면 좋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천사들을 시키셔서 문 앞을 막아서 그 가증한 예물을 하나님의 거룩한 곳에 드리지 못하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참고] 베뢰아 新書 41, 「영의 세계를 알자」, pp. 93-106, 107-121.
제 7 장 천사는 내주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영존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는 스스로 영원히 존재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그가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우편 하늘 보좌에 앉아 계시고, 그가 보내신 보혜사 성령은 아버지의 품에서 나오셔서 성도들의 심령에 거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의 심령은 곧 성령의 전입니다. 심령이란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대속함을 받은, 거듭난 거룩한 영을 말함이요 이곳이 성령이 거하시는 전이라는 것입니다.
육체와 인격
인간과 다른 점은 인간은 짧은 세월 동안만 존재할 수 있는 육체를 입고 있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혼과 영을 합해서 영혼이라고 하며, 육체와 혼은 조건상으로는 각각 분리하나 기능상으로는 분리하지 않습니다. 사람의 육체는 인격 기능인 혼과 함께 있을 때에야 비로소 인격을 나타내게 됩니다. 인격이란 지성과 의지와 감정, 이 세 가지 기능을 갖춘 것을 말하는데 인간 육체가 있음으로써 육체 안에 지성이 있고 육체와 함께 의지가 있고 육체와 함께 감정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천사는 육체가 없는 영적인 실체만으로 인격을 얻고 있습니다. 그들은 지성을 갖춘 영적 존재요, 의지를 갖추고 있는 영적 존재요, 감정을 가진 영적 존재입니다. 인간은 육체와 함께 함으로써 인격을 확보하고 있으나, 그들은 육체 없이 오직 영적 실체만으로써 인격이 있는 것입니다.
천사들은 각각 독립된 인격이기 때문에 각자의 의지로써 하나님께 순종할 수 있고 또는 각자의 의지의 선택만으로 반대의 행동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이 천사를 지을 당시에는 완전하더니 마침내 불의가 드러났도다라고 하였으며 이는 천사의 의지로써 불의를 드러내고야 만 것입니다. 이와 같이 그들은 의지가 각각 있어서, 때로는 큰 충돌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영혼(πνευμα)과 혼(σώμα)
사람의 육체는 영혼이 거하는 장소입니다.
영혼은 영원한 존재입니다. 영혼은 사람이 이 세상에 머무는 동안 육체라고 하는 장막 속에 거하다가 어느 날이 장막이 무너지면 영혼과 육체는 영원히 분리되어 육체는 흙으로 돌아가고 영혼은 성령에 이끌려,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보좌가 계신 하늘로 올리울 것입니다(롬8:11)
육체라는 것은 이 땅에 혼이 머무는 동안 거하는 장막일 뿐입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육체에만 관심이 있고 육체를 나의 실체로 알기 때문에 영혼에는 관심조차 없습니다. 그러나 영혼이 ‘나’입니다. 영원한 존재인 영혼이 ‘나’입니다. 그리고 육체는 ‘내 것’ 곧 영혼의 것입니다. 내가 임시로 거하는 처소입니다. 영혼이 이 땅에 머물면서 하나님을 위해서 일할 수 있는 동안만 거할 수 있는 장막입니다. 말하자면 육체는 영혼에게 각각 주신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어떤 사람은 육체가 이 땅에 머무는 동안에 온전히 일하다가 가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영혼이 더 머물러 하나님을 위해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을지라도 그것을 사용하지 못하고 맙니다.
사도행전 5장에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거기서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죽는 것을 혼이 떠난 것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아나니아의 혼이 떠나니’라고 기록되었고 또 ‘삽비라의 혼이 떠나니’라고 기록되었습니다.
그러나 사도행전 7장에서 스데반은 죽을 때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했고(행7:59), 예수께서도 ‘아버지여 내 영혼을 부탁하나이다.’ 하시고(눅23:46) 또 ‘그 영혼이 떠나시다.’라고 하였습니다(마27:50). 귀한 죽음에는 ‘영혼이 떠나니라.’ 했지만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죽을 때는 ‘그 혼이 떠나니’라고 했습니다(행5:5).
혼이라는 말은 원문에는 ‘쏘마’(σωμα)라고 되어 있습니다. 곧 ‘육체’와 관련된 날로 표현 되어 있습니다. 왜 ‘영혼이 떠나니라.’고 하지 않고 ‘혼 곧 육체가 떠나니’라고 했습니까? 이것은 그 영혼과 그 몸이 함께 있어 일생 동안 주의 일을 할 수 있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갈 수 있었는데 영이 더 이상 세상에 머물러서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없을 지경이 되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몸이 영으로부터 분리되었기 때문입니다.
말하자면 사람의 몸이 영과 함께 더 머물러 있는다면 그는 하나님을 위하여 일을 더 할 수 있었을 텐데 그 몸이 떠나버림으로써 그 결과 영은 이 땅에 더 이상 머물지 못하고 가버릴 수밖에 없게 된 것입니다. 자기에게 선물로 주시고 기회로 주신 육체의 기회를 영원히 잃어버리고 만 격입니다.
이와 비슷한 말로 고린도전서 5장 5절에서 사도 바울은 말하기를 어떤 구원받은 자가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치 못한 일을 함으로 그 육체는 사단에게 내주어 멸하고 그 영은 예수의 날에 구원받게 하자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그 영으로부터 몸을 분리시켜 떨어져 버리게 하자!’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그 몸을 가지고 사용할 가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의 영을 더 이상 세상에 머물게 하지 말고 그것으로 세상에서 마감짓게 하여 영이나 예수의 날에 구원받게 하자고 했습니다. 이와 같이 ‘혼이 떠나니라.’고 한 것은 영으로부터 그 육체가 분리되는 것을 말합니다.
누가복음 12장 19-20절에, 어떤 부자가 재물을 많이 쌓아 놓은 후 ‘내 영혼아, 평안하자. 내가 창고도 넓히고 많은 물질도 쌓았으니 이제부터 평안하자.’라고 했습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취하리라.’ 하셨습니다. 우리 개역성경에는 ‘영혼’이라고 번역되어 있지만 원문에는 역시 ‘혼’(σωμα)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영혼’(πνευμα)이라고 되어 있지 않습니다. 오직 ‘혼’이라고만 되어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네 영으로부터 육체 곧 혼을 취해 버리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영이 어찌 이 땅에 머물러서 행복할 수 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스데반은 죽음에서 ‘영혼을 부탁한다.’ 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으로부터 허락받은 그 모든 기간을 온전히 다 사용하고 영과 혼이 함께 세상을 마감하는 뜻이요 몸도 영도 허락받은 기간을 온전히 다 사용하였음을 뜻합니다.
우리 모두가 자기에게 허락해 주신 세상에 사는 육체의 날과 영혼의 사명을 다해야 합니다. 스데반은 영혼이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받은 사명과 육체가 정확하게 일치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한날에 영혼이 함께 떠났습니다. 어떤 자는 영이 떠나므로 혼이 멸망하고 어떤 자는 혼이 떠나므로 영은 이 땅에 더 머물지 못합니다.
이와 같이 육체는 영이 이 세상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는 기회입니다.
영은 자기의 육체 안에 머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육체는 영혼의 장막입니다(고후5:1). 이 장막이 무너지면 영혼은 떠나야 합니다.
귀신은 사람의 육체에만 침입할 수 있다
귀신은 사람의 육체에만 침입할 수 있으며 사람의 영에는 절대로 들어갈 수 없습니다. 혹 믿지 않는 사람들이라도 귀신은 결코 그 영으로 들어갈 수 없습니다. 다만 믿지 않는 자의 영은 죽은 것이기에 이는 마치 비어 있는 것과 같을 뿐입니다.
그러나 거듭난 사람은 그 영이 살았습니다. 거기는 하나님의 성전이므로 아무도 감히 접근할 수 없습니다. 과거 성전 안의 지성소에는 혹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이라도 감히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믿는 자에게 혹 귀신이 들어와 괴롭힌다고 할지라도 육체를 괴롭히는 것이지 결코 영에는 침투할 수 없습니다. 영은 성령만이 거하시는 거룩한 성전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하나님의 성전이라는 것을 잊어버리고 그런 생각을 소멸해 버립니다. 믿는 자는 누구든지 자기 영이 성령의 전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성령의 전을 존중해야 합니다. 자신이 하나님의 성전이라는 권위를 존중해야 됩니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하나님의 성전이라는 것을 잊어버리고 생각을 소멸해 버립니다.
혹이 성령의 권위를 소멸하듯 하나님의 성전의 권위를 소멸하면 하나님도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믿는 자는 믿지 아니하는 자의 신분과는 전혀 다른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고전3:16-17)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다시 말하거니와 영에는 귀신이 들어올 수 없습니다. 그러나 육체에는 들어올 수 있습니다. 귀신은 예수를 믿는 자나 안 믿는 자나 육체에 파고듭니다. 믿는 자에게는 그렇게 파고들어오는 귀신을 저주하여 박멸하고 추방할 권리가 있고 믿지 않는 자에게는 그런 권리가 없을 뿐입니다. 믿지 않는 자와 믿는 자의 육체에 귀신이 침투하는 것은 동일하나 그것을 박멸하고 저주하고 추방할 수 있는 권리가 믿는 자에게는 있으나 믿지 않는 자에게는 없습니다.
귀신이라는 존재는 인격입니다. 눈에 보이지 아니하는 실존이나 반드시 사람의 육체 안에 들어 있을 때만 자기의 정체를 드러냅니다.
그래서 신약성경에 보면 전부가 ‘귀신들려 눈멀고’, ‘귀신들려 꼬부라지고’, ‘귀신들려 귀먹고’, ‘귀신들려 벙어리 되고’, ‘귀신들려 병들었다’라고 기록하였습니다. 그러니까 귀신이 사람의 몸 밖에 있는 것을 말하지 아니하고 귀신이 들려 있는 것을 말합니다.
귀신은 사람의 몸에 들어와 있을 때만 그 인격이 드러나고 그 정체가 드러납니다. 그러나 귀신이 사람의 몸에서 1 mm라도 떨어져 나가면 아무런 인격적인 정체나 힘을 드러내지 못합니다.
혹자는 귀신이 어두운 곳에 숨었다가 갑자기 튀어나올 것 같은 예감에 퍽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귀신은 어두운 데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사람 몸 밖에 있거나 떠나면 사람을 해할 수 있는 권리도 없고 능력도 없습니다. 그가 사람 몸에 들어왔을 때만 사람을 괴롭게 합니다. 어둡고 음침한 곳에 갈 때 혹 귀신이 그곳에서 나올 것 같은 생각이 드는 것은 순전히 미혹이요 자신의 육체에 이미 들어와 잠재한 귀신이 그 같은 속임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자신의 몸 안에 이미 들어와 있는 귀신이 스스로 두려워하고 있는 경우라고 보면 됩니다. 귀신은 그의 육체 안에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무덤 사이에서 괴로움을 당하던, 귀신들린 자의 속에 들어 있던 귀신이 ‘주여, 나를 쫓아내시려거든 무저갱으로 들어가라 하지 마시고 돼지에게로 들어가라 하소서.’ 하니 예수께서 ‘그리하라’ 하셨고 귀신은 그 사람에게서 즉시 나와 돼지에게로 들어갔다고 했습니다(마8:28-34). 그러므로 돼지 떼가 일시에 바다로 뛰어들어 몰살하였다고 했습니다. 귀신은 돼지의 육체에 들어가 그것들을 바다로 몰고가 죽게 한 것입니다. 이처럼 귀신은 육체에 들어와 죽이는 자입니다.
믿는 자는 능히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을 저주하고 추방할 권리가 있어 쫓아낼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귀신은 미혹의 영의 도움을 받아 다시 침투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다시 침투하지 못하도록 박멸해 버려야 합니다. 그 권능은 오직 예수의 이름뿐입니다.
천사는 사람의 몸에 절대로 들어올 수 없다
천사는 사람의 몸에 절대로 들어올 수 없습니다. 신 구약성경을 통해서 천사가 사람의 몸에 들어왔다고 하는 말씀은 단 한 구절도 없습니다.
구약 시대는 성령이 믿는 자 속에 들어와 있지 아니한 시대입니다. 요한복음 7장 39절에 예수께서 영광, 곧 하늘 보좌에 오르셔서 그 영광을 받기 전에는 아무에게도 성령이 내리신 적이 없더라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요단강에서 침례 받으실 때 최초로 사람의 몸에 성령이 임하셨습니다(눅4:1). 이전에는 없었습니다.
구약 시대에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으로 현현한 천사도 육체에 들어온 적이 없습니다. 아브라함을 찾아왔으나 아브라함 앞에 있었고 아브라함도 그 앞에 있었다라고 창세기 18장 22절에 말씀했듯이 아브라함에게 찾아온 적은 있었어도 속에 들어간 적은 없습니다.
또 롯을 구원하던 자, 천사들이 롯의 속에 들어가서 롯을 끌어낸 것이 아니라 롯의 손을 붙잡고 끌어냈습니다. 롯의 몸 속에 들어가서 롯을 움직이게 하여 끌고 나온 것이 아니라 롯의 손을 잡아 이끌어냈다고 했습니다.
사도행전 12장에도 베드로가 옥에 갇혔을 때 그를 이끌어내던 천사도 베드로의 옆구리를 쳐 깨우고 급히 일어나라 했으며 신을 신고 따라오라 해서 베드로가 나와서 따라갔고 파수를 지나 쇠문에 이르니 문이 절로 열렸고 그곳에서 나와 한 거리를 지나니 천사가 곧 떠났다고 했습니다.
여호와의 사자나 천사는 결코 사람 속으로 들어가지 않습니다. 또한 예수께서 기도하실 때도 천사들이 ‘그를 돕더라.’, ‘힘을 돕더라.’고 했지 예수의 육체 안에 들어갔다고는 하지 않았습니다(눅22:43). 천사는 결코 사람의 몸에 들어가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귀신이 타락한 천사라고 하는 논리는 전혀 맞지 않는 것입니다. 선한 천사도 사람 속에 들어가지 못했거늘 하물며 어떤 타락한 천사가 사람의 몸속에 들어갈 수 있습니까? 오직 살아 있을 때 육체를 갖고 있던 귀신만이 사람 몸에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귀신은 육체 안에 들어가야만 하나 천사는 육체 안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 거룩한 천사들은 거룩한 성도들을 돕습니다.
(시91:11-12) 저가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사 네 모든 길에 너를 지키게 하심이라 저희가 그 손으로 너를 붙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리로다
천사는 절대로 사람 몸에 내주하지 않습니다. 다만 각종 생각을 가져다가 주는 일만을 거듭할 뿐입니다. 사람의 몸을 움직이는 것은 생각입니다. 곧 사람의 생각의 결과는 행동입니다.
우리는 열이라는 것을 눈으로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열은 분명히 존재합니다. 찬 바람이 들어오면 갑자기 추워지기도 하고 더운 바람이 들어오면 갑자기 더워지기도 합니다. 찬 바람을 사람의 눈으로 볼 수는 없지만 실제로 존재하는 것처럼 눈에 보이지 아니하는 천사들은 바로 이와 같이 성도의 분위기를 만들어 줍니다.
예수님의 제자의 마음에 마귀가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가져다 주었습니다(요13:2). 그러자 예수의 제자는 졸지에 예수를 파는 자로 전락해 버렸습니다.
사도행전 5장 3절이 ‘사단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라고 번역되었으나 원문대로라면 ‘사단의 생각으로 가득하여’라는 뜻입니다. 사단은 아나니아의 마음 속에 성령을 능히 속일 수 있으리라는 생각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행복한 가정을 시기한 악한 영은 마음에 동요를 가져다 줍니다. 그러므로 매사에 의심을 갖게 하고 불신하게 함으로써 마침내 가정 불화를 일으켜 놓습니다. 그러나 곧 후회하고 다시 정신을 차리지만 한번 부어 버린 악한 생각은 계속 머물러 그 사람을 괴롭게 할 수 있습니다. 이리하여 결심한 일을 수없이 넘어지게 하는 일을 되풀이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일들이 바로 자기 주변을 맴돌고 있는 악한 영들의 역사입니다. 그러므로 선한 천사들의 수종을 받을 때만이 행복한 시간이 될 수 있습니다.
거룩한 성도라 할지라도 믿지 않는 사람들 틈바구니에 가면 불안합니다. 그러나 신자들과 함께 하면 평안함을 느낍니다. 이처럼 자기가 분위기를 알듯 천사가 자기를 어떻게 돕고 있다는 것을 자기 자신이 잘 알 수 있습니다. 공연한 미움과 오해와 쓸데없는 생각이 들어와서 돌변하는 것은 이미 미혹의 영이 된 그 영이 역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갑자기 모두가 사랑스러워지고 모두가 예뻐지고 모두가 그리워지고 모두를 위해서 일하고 싶은 마음이 자꾸 생기는 것은 선한 천사가 좋은 생각을 갖다가 넣어줄 때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자기 혼자 걷거나 자기 홀로 독방에 있다 할지라도 분위기와 더위와 추위를 자기 몸으로 느끼는 것처럼 자기 가까이에서 역사하고 있는 영적 분위기를 알게 되는 것이 곧 영감입니다. 혼자 있어도 주님과 교제하는 마음이 풍성하게 되기도 하지만 기도하면서도 남에 대한 원망이나 미움의 감정이 드는 것을 느끼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이는 자신이 어디에 있든지 혼자가 아님을 말하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지 아니하는 화염검과 그룹들이 생명나무의 길을 가로막듯이, 눈에 보이지 않지만 신령한 일을 하고 싶어도 가로막아 할 수 없게 만들어 버리고 제한하는 것들이 있다는 말입니다.
이와 같이 천사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함께 예배하면서도 혹자는 거룩한 생각으로 충만하기도 하고 혹자는 더럽고 악한 생각들로 복잡해지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어떤 교회는 화목하고 또 어떤 교회는 고통과 혼란이 연속됩니다. 이는 거룩한 천사들과 미혹의 영들이 혼잡스럽게 활동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거룩한 권능을 간구해야 합니다(행4:29-31). 성령으로 살기 원하는 사람들은 성령께서 보내시는 거룩한 권능들인 천사들이 그들을 지원해 주기를 바라야 합니다.
만약 우리가 예배할 때 거룩한 천사들이 와서 역사한다면 그 예배는 정말 하나님의 뜻대로 진행되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그 예배가 하나님 보시기에 가증하면 거룩한 권능들은 오히려 뒷전에 서 있고 미혹의 영들이 역사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권위가 우리 안에 있을 때 그분은 우리를 돕는 권능들에게 더 열심히 우리를 도와서 우리들의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아니하도록 해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거룩한 권능이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우리 주변에서 열과 혹은 냉기와 같이 우리를 지원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아야 합니다. 영적으로 민감함으로 거룩한 권능이 역사하고 있는지 미혹의 영이 둘러싸서 역사하고 있는지 잘 알아채야 합니다.
영감이 있는 자들은 자신이 진실한지 가증스러운지 알 수 있듯이 주변에 역사하는 영을 잘 알 수 있습니다. 예수는 자신의 제자가 위로하는 말이라도 그것이 유혹의 말인지 아닌지를 아셨습니다(마16:23).
가증한 영들은 쉴새없이 가증한 생각을 갖다가 넣어 줍니다. 그러나 선한 천사들은 선한 생각을 가져다 줍니다. 그리고 성도의 처신을 도와줍니다. 우리가 온전히 성령께 순종하면 성령께서는 그가 대동한 권능들로 하여금, 우리를 지켜 주실 것입니다. 신앙 생활을 거룩하게 하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그들의 생각이나 기도를 도와서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더욱 사랑할 수 있도록 해줍니다.
마음이 있는 그곳에 물질도 있느니라 하셨듯이 마음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네 마음이 하늘에 있느냐, 없느냐를 네 자신이 시험해 보라는 것입니다(고후13:5). 자기 자신을 시험해 보는 것은 물질로도 능히 할 수 있습니다. 생각이나 마음을 어떻게 움직이느냐에 따라 자기 주변을 어떤 그룹들로 역사하게 하는가가 정해집니다. 자기 주변의 영적 환경을 아는 것이 영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여, 내가 당신을 순종하겠사오니 내게 거룩한 권능들만 주시옵소서. 내 주변에서 미혹하는 모든 영들은 다 물러가게 하시고 거룩한 권능들을 역사해 주시옵소서.’ 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참고] 베뢰아 新書 41, 「영의 세계를 알자」, pp. 123-36.
제 8 장 천사의 전한 말과 천사장의 소리
하나님은 참 신이십니다.
세상에 알려진 신들이 대단히 많습니다. 그들 가운데는 선한 일을 하는 신들도 있지만 사람을 미혹하는 악질적인 신들도 있습니다. 세상에는 알려진 신들뿐만 아니라 알려지지 않은 신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신이 참 신은 아닙니다. 오직 진리의 하나님, 참 하나님은 하늘에 계신 우리 하나님 한 분 뿐이십니다.
천사들로 하나님 말씀이 세상에 알려졌다
하나님의 말씀은 곧 하나님입니다. 이는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있기 때문입니다(요1:1-2).
하나님의 말씀은 ‘로고스’(λóγος)라 하며 하나님과 함께 계신 말씀이란 뜻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곧 하나님의 인격이나 품성이나 하나님의 영원하신 영적 권위를 나타내시는 하나님 자신이십니다. 이를 ‘로고스’(λóγος)라 합니다. ‘로고스’는 누가 부여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자신의 인격과 신성과 하나님의 속성까지 다 그대로 표현하시고 있는, 하나님이십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라는 의미를 막연히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이는 곧 ‘로고스’가 육신으로 세상에 오셨다는 말입니다. 그가 육신이 되어 오시기 이전에는 ‘로고스’입니다. 아직 아무도 그를 보지 못했으나 그는 신성과 또 하나님의 영원하시고 온전하신 속성을 지니신 영원한 인격이신 말씀이 세상에 육신으로 나타나신 분입니다.
조물주를 아무도 본 적이 없습니다. 뵌 적이 없는 그를 조물주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 바로 말씀 (로고스)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로고스’가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오셨을 때 사람들은 그를 보고 독생자의 영광이 있고 은혜와 진리가 그 안에 충만하더라고 말한 것입니다(요1:1-14).
그는 육신이 되어 오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그는 손으로 잡힌 바 되었고 눈으로 본 바가 되었고 사람들의 귀로 분명히 그를 듣고 확인한 바가 된 것입니다(요일1:1-2).
그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오시기 이전에, 그가 하나님과 함께 있을 때에 그는 ‘로고스’였습니다. 그는 우리 손으로 잡히지도 아니하셨고 만져지지도 아니하셨고 볼 수도 없으셨던 분입니다. 그러나 그 말씀은 하나님의 인격이나 그 신성, 그 모든 속성을 그대로 표현하시는 말씀으로 하나님과 함께 계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때에는 천사들로 로고스가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이를 율법이라고 합니다(갈3:19). 다시 말하면 천사들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우리가 알았습니다.
천사들로 하신 말씀은 곧 율법입니다. 율법은 견고하여 그 율법의 하는 일이란, 모든 범죄함과 순종치 아니함에 대하여 공변된 보응을 받게 하는 것입니다.
(히2:1-4) 그러므로 모든 들은 것을 우리가 더욱 간절히 삼갈지니 혹 흘러 떠내려갈까 염려하노라 천사들로 하신 말씀이 견고하게 되어 모든 범죄함과 순종치 아니함이 공변된 보응을 받았거든 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피하리요 이 구원은 처음에 주로 말씀하신 바요 들은 자들이 우리에게 확증한 바니 하나님도 표적들과 기사들과 여러 가지 능력과 및 자기 뜻을 따라 성령의 나눠 주신 것으로써 저희와 함께 증거하셨느니라
천사의 전할 말
말씀이 천사들로 하신 말씀은 율법이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셔서 예수로 하신 말씀은 진리가 되는 것입니다(요1:17).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이 천사들로 전해진 말씀을 듣는 것이 아니고 그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셔서 바로 예수로 하신 말씀을 듣고 있습니다. 그 말씀만이 진리입니다. 천사들의 입에서 나온 말씀은 진리가 아닙니다. 예수의 입에서 나온 말씀이 진리입니다. 율법은 천사들의 입으로 전해진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율법은 진리가 아닙니다. 정죄의 법일 뿐입니다.
죄인은 천사들의 정죄를 받으며 진리로 자유케 함을 얻은 자들은 천사들의 수종을 받게 됩니다.
세상 끝에도,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우리의 영적 생활을 지원하는 많은 천사들이 진리와 함께 나타날 것입니다. 이는 천사들을 붙들어 주려 함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자손들을 붙들어 주려 함이라 했습니다(히2:16).
우리가 진리로 거듭나고 생명을 얻으면 하나님이 천사들을 보내어 우리를 수종들게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인간뿐 아니라 힘센 천사들이라도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거나 진리에 서 있지 아니하면 그는 저주를 받는다고 하셨습니다. 하늘에서 온 천사라도 예수의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는다고 했습니다(갈1:8).
천사들로 하신 말씀도 견고하게 되어서 그것을 범하는 자는 형벌이 있거늘 주님으로 하신 말씀은 하나님이 보증하셔서 그 말씀에는 능력과 표적과 기사들과 여러 가지 이적이 함께 따라와 확증한다고 했습니다. 저주의 법도 유효한데 구원하는 법이 어찌 살아 있지 않겠느냐는 말씀이요, 천사들로 하신 말씀도 견고하게 되었으니 주로 하신 말씀은 이 세상 현장에서 능력과 표적과 이적들로 확증하신다는 것입니다(히2:3-4).
우리는 진리에 속한 사람들입니다. 우리 중 천사들이 전한 말에 의하여 살 자는 하나도 없습니다. 오직 진리에 거하는 자입니다.
우리는 천사들이 오히려 두려워하며 수종들 수 있게 만들어야 합니다. 우리가 만일 율법 아래 있으면 천사가 감시하는 자가 될 것이요, 우리들이 만일 진리와 함께 있으면 천사들이 우리를 수종들 것입니다.
자신의 영적 지위를 알아야 합니다. 천사들이 섬겨야 할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천사들 앞에서 부끄러움을 당하지 말라
천사들은 영의 세계를 감시하는 경찰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이는 천사들에게 하신 말씀이 현재도 유효하기 때문입니다. 경찰은 경호해 주고 수종들어 주다가도 죄인이 되면 수갑에 채워 끌고 갑니다. 천사들은 현재 영의 세계에서 경찰 노릇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네가 복음을 부끄러워하느냐? 그러면 나도 천사들 앞에서 너를 부끄러워하리라.’ 하셨습니다(막8:38,눅9:26). 복음을 즐거워 하고 복음을 기뻐하는 자에게 천사들은 열심히 수종들지만 복음을 부끄러워 하고 주님을 부끄러워 하는 자는 오히려 그들 앞에서 부끄러운 꼴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진리를 순종하면 하나님도 우리를 인정하시나 만약 복음을 부끄러워한다면 하나님은 천사들 앞에서 우리를 부끄러워하실 것입니다.
로마서 1장 16절에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했습니다.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그것이 믿음입니다. 비록 복음 때문에 핍박을 모질게 받을지라도 결코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만일 ‘네가 진리를 부끄러워하면 나도 천사들 앞에서 너를 부끄러워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천사들 앞에서 부끄러움 당하는 것이 참으로 부끄러운 것입니다. 천사들은 우리를 수종드는 자들인데 그들 때문입니다.
믿음에 격차가 있습니다. 믿음의 정도를 따라서 천사들 위에 있을 수 있고 천사들 밑에 내려갈 수 있다는 말입니다.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은 천사 밑에 들어간 자요, 진리 안에 있는 자는 천사 위에 있는 자입니다. 진리의 사람은 천사들이 수종들고 받들지만 복음을 부끄러워하는 자는 천사로부터 부끄러움을 당합니다. 천사는 그들을 끌어냅니다. 천사들이 의인 중에서 악인을 골라내며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을 끌어낸다는 말입니다. 사람들 앞에서 부끄러운 것이 부끄러운 것이 아닙니다. 천사들 앞에서 부끄러움을 당하는 것이 진짜 부끄러움입니다.
천사장의 나팔소리
○ 예수께서는 강림하실 때 천사들과 함께 오실 것입니다.
(마16:27)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때에 각 사람의 행한 대로 갚으리라
주 예수의 재림의 징조는 천사장의 나팔소리로 나타날 것입니다. 이는 비유가 아닙니다. 예수의 말씀은 그가 말씀하시고 하늘로 올리우시던 때와 같이 그 사실대로 임하실 것입니다.
(행1:11) 가로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 예수께서 강림하실 때는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오실 것입니다.
천사장의 나팔소리가 나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살아 남은 성도들은 순식간에 변하여 하늘로 올리워 공중에서 주님을 뵙게 될 것입니다.
(살전4:14-17) 우리가 예수의 죽었다가 다시 사심을 믿을진대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저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 우리가 주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이것을 말하노니 주 강림하실 때까지 우리 살아 남아 있는 자도 자는 자보다 결단코 앞서지 못하리라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이때에 천사들은 마귀를 쇠사슬로 결박하여 무저갱에 가두고 천년 동안 나오지 못하도록 인봉할 것입니다. 천사들이 이같이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마귀를 사로잡게 될 때가 곧 세상의 끝날입니다.
(계20:1-3) 또 내가 보매 천사가 무저갱 열쇠와 큰 쇠사슬을 그 손에 가지고 하늘로서 내려와서 용을 잡으니 곧 옛 뱀이요 마귀요 사단이라 잡아 일천년 동안 결박하여 무저갱에 던져 잠그고 그 위에 인봉하여 천 년이 차도록 다시는 만국을 미혹하지 못하게 하였다가 그후에는 반드시 잠깐 놓이리라
천사장의 나팔소리는 사람들의 귀로는 듣지 못합니다. 그러나 그 징조는 알 수 있습니다. 오늘날 세상의 일들이 되어가는 것을 보면 천사장의 마지막 나팔을 불 때가 가까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세계는 지금 이념 전쟁이 끝난 상태로 화해와 평화의 분위기로 나가고 있습니다만 또 다른 전쟁인 종교 전쟁이 복병처럼 도사리고 있다가 도처에서 머리를 들고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는 세계가 영적 전쟁으로 비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입니다. 종교 전쟁은 결국은 신들의 전쟁이요 이는 세상의 종말적인 징조들입니다. 이념 전쟁에 사용하려고 만들어 놓았던 가공할 무기들이 갑자기 종교 전쟁의 도구로 사용될 조짐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것이 천사들의 나팔소리와 함께 일어날 최후의 징조들입니다.
○ “일 후에 내가 네 천사가 땅 네 모퉁이에 선 것을 보니 땅의 사방의 바람을 붙잡아 바람으로 하여금 땅에나 바다에나 각종 나무에 불지 못하게 하더라 또 보매 다른 천사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을 가지고 해 돋는 데로부터 올라와서 땅과 바다를 해롭게 할 권세를 얻은 네 천사를 향하여 큰 소리로 외쳐 가로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기까지 땅이나 바다나 나무나 해하지 말라 하더라”(계7:1-3)라 했습니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사방의 바람을 붙잡은 천사들은 곧 세상의 전쟁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천사들인데 다른 데서는 ‘전쟁을 위하여 예비한 말들 같다.’고 까지 하였습니다(계9:7).
세계 정세는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는 천사들의 손에서 움직이게 되고 하나님은 그들에게 온갖 징조를 베풀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셨습니다.
자신들의 천사가 자신들의 건전한 신앙 생활을 잘 받들도록 하나님의 사랑 안에 반드시 거하여야 합니다. 세상은 천사들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하나님의 품안에 있습니다.
○ 하나님의 자녀들은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들이며 성령은 이들에게 임하시고 예수께서 강림하실 때에 이들은 첫째 부활에 참여하게 될 것입니다.
부활한 몸은 살과 뼈가 있습니다(눅24:39,고전15:44). 이전에는 흙으로 된 몸이었기에 흙으로 돌아가나 부활한 몸은 변화된 신령한 몸으로서, 부활한 몸 역시 살과 뼈를 갖게 됩니다.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가 복이 있다 하셨으니(계20:6), 우리는 그날을 몹시 고대하는 자들입니다. 그날에는 천사장의 나팔소리와 함께 임할 것입니다. 혈과 육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여도 신령한 자는 하나님의 나라를 얻습니다.
세상 끝날 천사들의 행적
세상 끝날에는 천사들의 활동이 두드러지고 빈번해집니다. 이는 예수의 재림의 징조들입니다. 예수께서는 천사장의 나팔소리와 함께 오신다고 하셨습니다. 요한계시록은 천사들의 끝날의 활동들입니다. 천사들의 나팔소리는 예수재림과 말세의 징조입니다.
세상 끝날은 천사들의 사역이 절정을 이루는 때라 할 수 있습니다.
신약성경의 사복음서는 예수의 공생애를 기록한 복음서요 그 다음은 사도들의 공생애와 성도들의 공생애를 기록한 책들이요 그 다음은 요한의 계시록입니다. 요한계시록에는 천사들의 최후의 나팔소리가 꽉 차 있습니다.
이미 예수께서 말씀하신 것같이 인자는 천사들과 함께 오실 것이며 또 천사들은 나팔소리로 세상의 끝을 알릴 것입니다. 현재도 천사의 나팔소리는 울리고 있습니다. 천사들의 나팔소리는 크고 작은 징조들을 베풀며 세상의 끝을 알리고 있습니다. 천사들은 최후에 세상을 황폐케 하던 마귀를 쇠사슬로 결박하여 무저갱에 가두어 천 년 동안 지킬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마지막에 천사들을 심문하게 될 것입니다(고전6:3). 그러므로 천사들 앞에서 부끄럼을 당치 아니하도록 하나님을 사랑하고 자기의 영혼을 사랑하는 신앙 생활을 해야만 합니다. 오히려 천사들을 꾸짖고 그것들을 심문할 권세가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신약성경의 사복음은 예수의 공생애만을 기록한 말씀들이고, 사도행전부터는 사도들의 전도 행적과 또는 목회에 관한, 말하자면 성도들의 공생애를 기록한 말씀들입니다. 그리고 요한계시록은 말세에 천사들의 행적을 기록한 말씀입니다. 천사들은 예수의 재림과 세상의 종말을 예고하거나 또는 종말적인 사건을 직접 이끌어 가는 일을 할 것입니다.【 참고. 계8:6-13,계9:1-6,계9:12-15,계10:1-3,계10:7-10,계12:7-9,계14:9-12,계18:1-3,계18:21-24,계20:1-3,계21:9-12,계22:16,계22:20 】
(계22:6-7) 또 그가 내게 말하기를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된지라 주 곧 선지자들의 영의 하나님이 그의 종들에게 결코 속히 될 일을 보이시려고 그의 천사를 보내셨도다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가 복이 있으리라 하더라∴
「영의 세계를 알자」, pp. 135-48, 149-6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