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리문중 상계(上系)의 생활터전에 대한 고찰
중리문중 상계의 생활 근거지는 시대에 따라 울산 멍정·주남·관동(고야·은현) 일대로 이동하며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관련 족보와 울산 호적부, 울산읍지 및 효열록 등의 기록을 종합하면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우선 6세 우춘공께서 울산 멍정에서 주남으로 이거하여 정착하였고, 이후 잠와공 이겸수와 매헌공 이겸익을 비롯한 후손들이 대대로 주남을 중심으로 생활한 것으로 보인다. 그 계통은 창발–필성–시태–몽상으로 이어지며, 상당 기간 주남이 생활 기반이 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인와공 경도의 부친인 몽상공과 증조 필성공의 산소가 관동 지역인 은현리에 위치하고, 울산 호적부에도 관동 일대에 등재된 사실로 미루어 볼 때, 몽상공 대에 이르러 주남에서 관동 은현으로 이거하였던 것으로 판단된다. 이에 따라 인와공 역시 어린 시절과 청년기에는 관동 고야·은현 일대에서 생활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울산읍지에는 반계 이양오가 여행 중 돌래를 지나 인와공의 집을 방문하였는데, 인와공은 외출 중이었고 어린 아들이 손님을 극진히 대접하였다는 기록이 전한다. 이는 당시 인와공의 거처가 관동 은현리 부근이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라 할 수 있다.
인와공 경도는 부친 몽상공이 별세하자 50세의 나이에 3년 시묘살이를 하였으며, 부친의 산소는 은현리 뒷산에 위치한 것으로 전해진다. 또한 인와공이 향년 80세까지 장수한 점을 고려하면, 젊은 시절에는 관동에서 생활하다가 노년에는 아들들이 생활하던 주남으로 다시 이거하여 여생을 보냈을 가능성이 크다.
인와공의 아들 가운데 충언 제강은 혼인 후 주남에 생활 기반을 마련한 것으로 보이며, 증언 효강은 덕계 부근에서 생활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성언 의강공은 혼인 후 부모를 모시고 살다가 이후 주남으로 이거하였으며, 부모 사후에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하루도 거르지 않고 십여 리 길을 왕래하며 은현 선영을 배알하였다고 한다. 이러한 효행은 울산 효열록에 부친 인와공 경도와 함께 등재되어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다.
한편 성언 의강공 계통은 당시 상당한 경제력을 갖추었던 것으로 보인다. 기록에 따르면 집안에 노비가 있었고, 사후에는 통정대부의 증직이 내려졌다. 이는 생전에 지역 사회에서 일정한 기반과 재력을 갖춘 인물이었음을 보여준다.
또한 성언 의강 계통의 광호의 아들 성주·태주는 족보에는 등재되지 않았으나 울주 호적부에는 확인되고 있어, 후일 개명되었거나 족보 편찬 과정에서 누락되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상의 자료를 종합하면, 중리문중 상계의 생활터전은 초기 멍정에서 주남으로 옮겨 형성되었고, 몽상공 대에는 다시 관동 은현 일대로 이동하였다가, 인와공 이후 후손 대에 다시 주남·덕계 등지로 생활권이 확장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는 단순한 거주 이동이 아니라, 시대적 환경과 가족 구성, 혼인 관계, 선영 수호와 효행의 실천이 함께 작용한 문중 생활사의 흐름으로 볼 수 있다.
| 세대 | 인물 | 주요 생활터전 | 관련 내용 및 근거 |
| 6세 | 우춘공 | 멍정 → 주남 | 울산 멍정에서 주남으로 이거하여 정착 |
| 7세 | 잠와공 이겸수 / 매헌공 이겸익 | 주남 | 우춘공 이후 주남 중심 생활 |
| 8세 | 창발 | 주남 | 가계 계승 |
| 9세 | 필성 | 주남 → 관동 은현 관련 | 산소가 은현리에 위치 |
| 10세 | 시태 | 주남 | 주남 생활 지속 추정 |
| 11세 | 몽상 | 주남 → 관동 은현리 이거 | 은현리 산소·울산 호적부 기록 확인 |
| 12세 | 인와공 경도 | 관동(고야·은현) → 말년 주남 | 부친 시묘살이, 은현 선영 수호, 말년 아들 따라 주남 이거 추정 |
| 13세 | 충언 제강 | 주남 | 혼인 후 주남에 생활 기반 형성 |
| 13세 | 증언 효강 | 덕계 부근 | 덕계 인근 생활 기록 |
| 13세 | 성언 의강 | 관동 → 주남 | 부모 봉양 후 주남 이거, 은현 선영 배알, 효열록 등재 |
| 성언 의강 계통 | 광호의 아들 성주·태주 | 주남권 추정 | 울주 호적부 등재, 족보 누락 가능성 |
생활터전 이동 흐름도
멍정(우춘)
↓
주남 정착
(우춘 → 겸수·겸익 → 창발 → 시태)
↓
관동 은현 이거
(몽상)
↓
관동 고야·은현 생활
(인와 경도)
↓
후손 분거
├─ 주남 : 충언 제강 · 성언 의강
├─ 덕계 : 증언 효강
└─ 은현 선영 수호 지속
핵심 정리
초기 상계 생활터전 : 멍정 → 주남
몽상공 대 : 관동 은현으로 이동
인와공 경도 : 관동 생활 중심 + 은현 선영 시묘
후손 세대 : 주남·덕계 등으로 생활권 확대
문중 특징 :
선영 중심의 생활권 형성
효행과 시묘 문화 지속
혼인과 분가에 따른 생활터전 확장
인와의 부친 몽상과 증조 필성의 산소가 은현에 있었고 울산호적부에 등재되어 있는 것으로 보면 12세 인와공은 관동(고야나 은현)에서 생활한 것으로 보이며, 충언 제강은 결혼을 하면서 주남으로 생활터전을 잡을 것으로 보인다.
증언 효강은 덕계부근에서 생활하였고, 성언 의강공은 결혼을 하면서 부친을 모시고 살다 주남으로 이거한 이후 부모님이 돌아 가시자 비가 오나 눈이오나 십여리의 거리에도 하루를 거러지 않고 산소를 배알하여 울산 효열록에 부친 인와 경도와 함께 등재되어 있다.
또한 인와공이 시묘살이를 한 부친 몽상의 산소가 은현리에 있고 반계 양오가 여행을 하면서 돌래에서 지나가다 인와의 집에 방문하였는데 인와는 출타하고 어린 아들이 쌀밥으로 극진히 대접을 하였다는 울산읍지의 기록으로 보아 관동의 은현리 주위에서 살았음을 알 수 있다.
인와 경도가 50세에 부친 몽상이 돌아 가시자 3년 시묘살이를 하였고 인와공이 80세에 돌아 가신 것으로 보아 젊었을 때는 관동에 살다 노후(老後)에는 아들들을 따라 주남으로 이거하여 살았을 것으로 볼 수 있다.
성언 의강은 노비가 집에 있었으며, 사후 증직으로 통정대부의 벼슬이 내려진 것으로 보아 생전에 상당한 재력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성언 의강 갈래의 .광호 아들에 성주와 태주가 족보에는 등재되어 있지 않으나 울주 호적부에는 등재되어 있어서 개명되었거나 누락의 경우도 의심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