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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게시글
우리들의 이야기 스크랩 화왕산 억새 태우기 현장에서..
이종태 추천 0 조회 33 09.02.15 10:06 댓글 1
게시글 본문내용

1. 일자 : 2009. 02. 09(월요일, 맑음)  

    
2. 산행지 및 개요 : 창녕 화왕산

 

3.누구랑: 세심 산악회

 

4. 산행코스 
           옥천매표소(15:00출발) - (옥천계곡,60분) ->화왕산성남문- (15분)  ->배바위(정상)

           - (10분)->화왕산성남문 - (40분)->옥천매표소

                                                               (하산종료:20:00)/산행시간 3시간 

 

5. 산행후기 

오늘은 음력 정월 대보름날이다. 이 날은 보름 중에서 가장 으뜸을 의미하는 것으로 예로부터 각종 민속놀이와 풍습 등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내 고향 두동에서도 매년 이 날이면 서낭당에서 마을 사람들의 무사안녕을 기원하는 동제를 지낸다. 나는 아침 8시에 마을 사람들과 함께 동제를 지낸 후, 오후에는 창녕군 화왕산에서 행하는 억새태우기 행사를 참관하기 위해 아내와 함께 세심 산악회를 따라 길을 나섰다. 

  경상남도 창녕군 옥천리에 있는 화왕산은 예로부터 ‘불의 산’이라고 불리어 왔으며, 이곳에서 불이 나야만 풍년이 깃들고 평안하다는 전설이 전해져 온다. 화왕산 억새태우기는 이러한 전설을 배경으로 화왕산 정상에서 정월대보름에 상원제, 달집살기, 억새 태우기 등을 하는 행사이다. 이를 통해 국태민안과 남북통일을 염원하고 가정마다 액을 물리치고 화목을 기원한다. 이 행사는 1995년에 처음 개최한 이후, 3년에 한 번씩 행해져 올해 6회에 이르고 있으나 금번, 참사로 인해 폐지되었다.

  나와 아내를 비롯해 30명이 함께 탄 버스는 언양 가지산 터널을 지나 약 2시간 후에 화왕산 입구인 옥천 매표소에 도착 하였다. 이미 주차장은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차량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길 양쪽으로는 장사꾼들이 어묵, 칡즙 등과 같은 먹을거리를 팔기위해 장사진을 치고 있다. 우리는 가까스로 차에서 내려 수많은 군상들 틈을 헤치며 정상으로 향했다.

  옥천 계곡을 따라 나란한 포장도로는 정비가 잘 되어있어 다행히 많은 사람들이 올라가도 큰 불편은 없었고, 계곡 중간 중간에는 석축도 조성되어 있어 홍수에도 대비해 놓은 것 같았다. 철재 입구 문을 지나니 다리 위에서 스님이 시주 염불을 하고 있어, 시주를 한 후 야간 산행의 안전을 기도하기도 했다.

 30여분, 포장도로를 따라 올라가다, 우리는 왼쪽으로 난 지름길로 접어들었다. 이어 남문 0.7km지점에 이르니 움푹 파인 계곡이 나타나고, 건너편에 제법 커다란 바위 위의 전망이 꽤 괜찮아 보인다. 함께 가던 사람들이 곳곳에서 셔터를 눌러대고, 다시 어렵지 않은 오솔길을 따라가니 화왕산성의 성벽이 앞을 가로막는다. 화왕산성은 포곡식 산성으로 현재 남아 있는 산성의 둘레는 1,8km로 동쪽은 돌로 성벽을 쌓았으면 서쪽은 흙과 돌로 쌓았다.가야시대 부터 조선시대까지 장기간 군사적으로 이용 되었단다.창녕 조씨가 이 곳에서 성(姓)을 얻었다는 이야기를 새긴 창녕조씨득성비도 여기에 있다. 

  산성내로 진입하는 남문을 통과하니 드넓은 평원 위로 황톳빛 억새의 잔해들이 늘려있다. 만추의 산야를 뜨거운 몸짓으로 달구었던 힘찬 몸놀림은 어디가고, 듬성듬성 속살을 드러낸 채 누렇게 사위어져 누운 모습이 노쇠한 맹수의 슬픈 눈빛을 닮아있다. 이마져도 잠시 후면 한 순간에 스러져 버릴 풍광이러니...

  나는 저녁 찬바람을 막아줄 두툼한 옷을 겹쳐 입고, 불길을 차단하기 위해 억새풀을 배어낸 공지를 따라 등산객들을 헤치며 배바위 쪽으로 향했다. 십 여분을 따라 올라가니 전망은 더할 나위 없이 근사하고, 서문 근방에 다다르자 초대가수의 노래와 농악놀이 장단이 흥을 돋워준다. 배바위 정상에 이르니, 많은 사람들로 북적이고, 바위 아래로는 고급카메라를 소지한 사람들이 불꽃의 장관을 담기위해 진을 치고 있다.

  우리는 다시 달집 놀이 행사를 보기위해 아래로 내려온 후 저녁을 먹고 대기하였다. 행사장 주위에는 간이식당과 응급환자용 천막이 쳐져있고 마이크에서는 쉴새없이 안내방송이 나오고 있지만 무슨 소린지 통 알아들을 수 없다. 사람들의 면면을 보니 국회의원을 비롯하여 창녕의 내로라하는 사람들은 다 모인 것 같다. 그러나 실질적인 면보다 왠지 형식에 치우친 감이 든다.

 잠시 후, 산 위로 보름달이 떠오름과 동시에 달집점화가 시작되고, 초록색 대나무로 만든 달집은 금새 붉은 화염으로 활활 타올랐다. 사람들은 모두 환호를 지르면서 저마다 올해의 소망을 기원하고, 아내와 나도 두 손을 가지런히 모은 채 우리 가족의 평안과 무사를 빌었다. 

  달집 태우기 행사가 거의 끝나갈 무렵, 달집 근방, 좌측 봉우리의 7부 능선, 그리고 반대편 봉우리의 8부 능선지점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억새 태우기 점화가 시작되었다. 이미 가뭄으로 바짝 마른 억새풀들은 불길을 당기자마자 사르륵 거리며 타올랐고, 성난 불길은 먹이를 낚아채듯 붉은 혀를 날름거리며 화왕산의 곳곳을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불길은 점점 거세지고...  거센 불길이 다시 바람을 만나 포효하니 화왕산 일대는 이내 불바다로 변하기 시작하고... 나는 그 모습을 두려움과 놀라움에 넋을 잃은 채 바라보았다. 집어삼킬 듯 하늘로 솟아오르는 불기둥이 용트림을 칠 때마다 곳곳에서 사람들의 환호성이 터진다. 거대한 용광로로 변한 화왕산에 점차 불길이 잦아들면서, 매캐한 연기가 하늘을 뒤덮을 무렵, 건너편 배바위 근방에서 갑작스럽게 불길이 다시 일기 시작했다.

  어른거리는 불빛사이로 황급히 피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이고, 들것에 사람이 실려나오는 모습도 보인다.. ‘ 아!!  사고다!!’  주최 측에서는 불꽃행사를 중지하고 부산스런 움직임이 일기 시작하지만 워낙 많은 사람들이 운집해 있어서 자세한 내막은 알기가 어려웠다. 심상찮은 느낌을 안고 하산하는 행렬을 따라 내려오니 웅성거리는 사람들 사이로 안좋은 소식들이 들리기 시작한다. ‘사고가 나서 네 명이 사망했다는...’  이어 연합뉴스에서 문자 메시지가 날라온다. ‘화왕산 참사 네 명 사망 수십 명 부상....’

  어떻게 이런 일이..  나는 너무나 망연해서 걷잡을 수 없이 가슴이 떨려왔다. 어쩐지 무모한 행사란 느낌이 순간순간 들었는데 결국 이런 대형사고가 터질 줄이야... 그리고 그 참사의 현장에 함께 있었다니..  돌아오는 내내 마음은 착잡했고 곳곳에서 안전을 확인하는 문자를 받아야만 했다.

  돌아와서 인터넷 등을 통해 알아보니, 예고된 참사이고 인재였다니 또다시 안전불감증이 어이없는 사태를 빚어낸 것 같다. 언제나 사후약방문식으로 변명과 임시방편에만 급급하니 이러한 인재가 끊이지 않는 것이다. 그날 아내와 나는 무사히 돌아올 수 있어서 참으로 다행스럽지만, 불행한 일을 당한 분들을 생각하면 너무나 가슴이 아프다. 그날 운명을 달리하신 네 분의 명복을 빌며, 지금도 병상에 계신 부상자들의 쾌유를 빈다.

 

<한국일보 참사현장 리포트>

10일 오전 경남 창녕군 창녕읍 화왕산. 등산로를 따라 1시간쯤 올라 화왕산성 동문을 넘자 매캐한 냄새가 훅 끼쳐왔다. 전날 정월대보름 억새태우기 행사 도중 4명이 숨지고 60여명이 다친 참사 현장이 가까워진 것이다.
억새밭이 있던 정상 부근, 온통 시커먼 검댕을 뒤집어쓴 18만㎡의 평원에는 여기저기 희뿌연 연기가 피어 올랐다. 9일 밤 늦게 가까스로 잡혔던 불길이 이날 새벽 다시 발화한 것이다.
이날도 산림청 헬기 4대가 동원돼 잔불을 끄는 사이, 경찰과 소방공무원 등 800여명이 투입돼 수색 작업을 펼쳤으나 추가 희생자는 발견되지 않았다.참사 현장에는 주인 잃은 카메라와 등산 지팡이, 등산객들이 먹다 남은 사과와 귤, 김밥 등이 시커멓게 그을린 채 곳곳에 널브러져 있었다. 화마(火魔)가 인파를 덮치자 살 길을 찾아 이리저리 뛰다 뒤엉켜 아수라장이 됐던 당시 상황을 짐작케 했다.특히 인명사고가 집중된 화왕산 남쪽 배바위 능선에서는 카메라 7대, 카메라 삼각대 3개 등 고가의 유류품이 대거 수거됐다. 달집태우기 행사본부와 산 정상으로 번지는 억새불기둥이 가장 잘 보이는 곳이어서 사진 애호가들이 포진했던 지점이기 때문이다.
4명이 숨진 이곳은 억새평원과 관람객 사이를 갈라놓은 방화선에서 6~7m 가량 떨어졌지만, 돌풍에 편승한 거대한 불기둥의 위력을 피하지 못했다.

불길에 휩싸였다 얼굴에 화상을 입고 천신만고끝에 목숨을 건진 김모(53ㆍ창원시 중앙동)씨는 "바싹 마른 갈대밭에 붙은 불이 돌풍이 부는 순간 날아다니듯 순식간에 인파를 덮쳤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창녕군은 관람객 안전을 위해 폭 30~50m의 방화선을 구축했다고 밝혔으나, 경찰 조사 결과 2~3m에 불과한 곳도 있을 정도로 위치에 따라 방화선 폭이 들쭉날쭉 했다.
수시로 바뀌는 산 정상부의 풍향에 대비한 안전조치도 소홀했다. 그러나 방화선 폭과 안전요원 배치 인원 안전성 적정여부에 대한 법률적 규정이 없어 책임자의 과실 규명에는 어려움이 예상된다.
또 창녕군은 행사 준비 과정에서 지난달 삼성화재에 보험을 들었으나, 보상금 규모가 사망시 최고 1억원(한도 3억원), 부상자 200만원(한도 1,000만원)에 불과해 사상자에 대한 보상을 둘러싼 진통도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경찰은 이날 사망자 지문채취를 통해 김모(67ㆍ여)씨의 신원을 확인했으며, 나머지 3명에 대해서는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DNA 정밀감정을 의뢰했다. 또 창녕군 공무원을 상대로 안전요원 배치를 비롯한 안전조치 적정성 여부 등에 대해 수사를 벌이고 있다.

한편 김충식 창녕군수는 이날 올해를 끝으로 억새태우기 행사를 폐지한다고 밝혔다.


 

 ▼사적 제64호.1963년 지정. 면적 18만 5724m2. 조선 전기의 기록을 보면 둘레가 1,217보(步:1보는 6尺)이며, 성 내에는 샘이 9, 못이 3, 또 군창(軍倉)이 있었다고 한다. 창녕뿐 아니라 영산(靈山)·현풍(玄風)까지를 포용하는 성으로서 군사적으로 주요 요충지
였으며,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실용적 가치를 느끼지 못하다가 임진왜란이 발발하여 왜적이 순식간에 대로를 따라 북상하게 되자 이 성의 군사적 가치를 인식하게 되었다고 한다. 곽재우(郭再祐)의 의병 근거지였으며, 그는 이 성을 굳게 지킴으로써 왜군의 경상우도
침입을 막을 수 있었다. 임진왜란이 소강상태에 들어갔던 1596년(선조 29)이나 전쟁이 끝날 무렵인 1598년에 비변사(備邊司)는 이 성의 군사적 가치를 재인식하여 산성수축의 긴급함을 건의했다는 기록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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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09.02.16 08:49

    첫댓글 형님 비조동제지내고 가서 그런지무사히 산행마치고오셔서 잘 되었습니다 잘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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