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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인간으로서 주체적으로 삶을 살아내는 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우리는 시대적, 사회적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고, 선하든 악하든, 내게 영향을 끼치는 이들을 피할 수 없습니다. 싫든 좋든 내 '운동에의 의지' 또한 타자에게 나비효과를 일으킬 것입니다. 그러므로 선은 수용하고 악은 버리는 주체적 결정을 해야 하고, 매 순간을 잘 살아 내려면 세월을 아끼는 지혜와 용기가 필요할 것입니다. 모든 상황은 내가 결정하고 책임져야 한다 그 말입니다. 부모를 탓하지 말고 성장 배경을 탓하지 말고 운명을 사랑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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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연휴 이틀 연속 100을 찍었고, 오늘은 해님이 명품 햇볕을 비춰 줘서 뭐든 할 것 같습니다. 아싸 가즈아! 나의 '이 순간을 영원히!'의 플랜 중 하나로 CGV를 찾아갔는데 조조 타임이 맞지 않아서 영화 시청을 포기했고, 추석 특집으로 본 조용필의 "이 순간을 영원히!"로 대신했습니다. 5년 전(2020) KBS 스페셀 기획 <나훈아 편>에 이어 조용필 특집입니다. 신곡 <테스형>이 나왔고 이후 '오른손 왼손' 발언으로 문빠와 개딸들에게 욕을 오지게 먹었던 일이 떠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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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주목하는 것은 테스 형 VS 니체 형입니다."이 순간을 영원히!"라는 표현은 프리드리히 니체의 철학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이는 그의 사상 중 하나인 "영원회귀(Ewige Wiederkunft, Eternal Recurrence)" 개념과 맞닿아 있는 문구입니다. 니체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Also sprach Zarathustra)"에서 다음과 같은 생각을 펼칩니다. 이 질문은 곧 영원회귀 개념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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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순간이 다시 수없이 반복된다면, 너는 이 순간을 사랑할 수 있는가? Amor fati(운명을 사랑하라)! 3시간짜리 단독 콘서트 내내 75세의 노익장을 보여준 압도적 퍼포먼스(시청률 15.7%)를 리스펙트 합니다. <토지 21회>차입니다. "네 년이 어디 상전을 능멸하고 살길 바라느냐?(조준구)" "차리리 죽여라 어서(봉순)" 출애굽 직전에 잡힌 봉순이가 속옷 차림으로 고방에 갇혔고 조준구가 부인을 따돌리고 고방으로 돌아와서 봉순을 유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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꼽추 병수가 옷을 가져다주고 봉순이를 탈출 시킵니다. "모두 어서 내렷!" "빨리빨리!" 저런 건방진 년"만주 벌판에서 서희 일행은 비적들에게 끌려갑니다. "멈춰라 너희 중 두목이 누구냐? 허나 나를 살려준다면 사래하겠다" 서희는 간덩이가 부어 두목과 협상을 합니다. 범 무서운 줄 모르는 하루강아지를 죽이려는 순간 두목의 "잠깐!" 발언에 박수를 보냅니다. "왜 그 계집을 살려준 겁니까?" "푸하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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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밖에도 두목은 김두수(유해진)가 아닌가. 간도 용정이면 월선의 나와바리입니다. "여기서는 양반이 어딨고 상놈이 어디 있찌매" "애기씨 공노인이 왔습니다" "월선이 작은 아비입니다(공노인)" "일본군이 들어오면서 전쟁이 날 것이라며 민심이 흉흉합니다." "저 늙이에 대해 알아봐!이억만리 타국 땅 누굴 믿냐는 말이냐/(서희)" 공송애(공노인의 양딸)가 김훈장 이부자리를 펴주러 왔다가 일상을 스캔하고 갑니다. 서희는 비서실장 길상에게 사투리를 쓰지 말라고 주의를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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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김두수가 불 잡혀 온 금녀에 관심인 이유를 아시나요? "네 아비가 내 아편을 물고 황홀하게 죽었으니 빚을 갚아야지(두수)" "마차 세우라고 해?" 화장실 간다며 풀어준 금녀가 뒤통수를 치고 도망을 칩니다. "놔둬 뛰어봤자 벼룩이지(두수)" "서둘러 지으라 해서 짓긴 했는데..." "언 땅 위에도 봄이 오긴 올랑갑따(용이)" "분부하신 대로 공보관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조선인 거상이라고 합니다.(길상)" "모험이 없이 어찌 고향 땅으로 갈 수 있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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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희는 종잣돈을 털어 거간꾼을 통해 콩을 사라고 지시합니다. 봉순이의 창이 구슬픈 것이 귀한 생명 하나가 또 죽을 모양입니다. 울 밑에서 봉선화는 봉선의 꽃입니다. "영사 나리께서 서둘러 콩을 사라고 하시네(김영사관)" "그렇다면 러일 전쟁이 임박했다는 뜻입니까?(두수)" "소문에 만주 땅의 콩을 다 사셨다면서요?" 서희의 계획대로 콩값은 금값이 됩니다.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더니 최서희...반드시 죽여주마 내 손으로(두수)" 두수는 서희의 성공을 보며 절치부심, 와신상담하던 복수를 다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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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내린 비로 저장해 놓은 콩이 못쓰게 됐으니 큰일났습니다. 두수는 쾌재를 불렀고 서희는 난감했을 것입니다. 은 팔아서 콩을 샀고 콩을 팔아서 은으로 바꾸는 과정이 드라마틱 하면서 장사꾼으로 배장과 셈법이 돋보입니다. 보수 꼴통 김훈장은 서희가 일본군에게 콩을 팔았다는 사실에 당장 거두라고 호통하지만 서희는 아랑곳하지 않고 냉정 하게 김훈장의 뜻을 외면합니다. 나는 서희의 선택이 옳다고 보지만 상황윤리가 언제나 맞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소란 떨 것 없네 창고 안의 콩은 무사하지 않은가(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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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님! 도와주십시오 제발(서희)" "애기씨 맘이 어떤지 몰라도 내 배고파 죽겠다" "송선생에게 다녀오너라(서희)" "이 넓은 영토가 고구려 땅이었습니다(송선생)" "최서희가 물에 젖은 콩을 무상으로 나워 주고 있습니다. 뭐야! "유해진이 일본 말도 하네요. "멍청한 네놈들 때문에 내가 얼마나 난처하게 됐는지 아나" 김두수가 조선인 영사에게 조인트를 맞고 분통을 터트립니다. " 다 공보관 덕분입니다. 전쟁이 난다고 했고 군량미로 콩이 필요하다고 했으니 다 공보관 덕분입니다(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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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심이 네 이년, 기생 년 주제에 감히 땅문서를 빼돌려(홍 씨)" "어쨌소 땅문서 내놔요(홍여사)" '그까지 땅문서가 대수요 금이 있다면(조준구)" "사금을 골라내는 중입니다(사금 채취 주민)" "이 반짝이는 것이 다 금이라는 것이냐?(홍여사)" "본격적으로 금이노 나오면 대적들이 얼마나 들끓것인지..." 덕분에 사기꾼 미아모도가 광산 사업가되었습니다. 물건이 나왔으니 돈 줄이 필요할 것입니다. 돈을 빌리기 위해 사채 쓰는 건 지금이나 엣날이나 다를 바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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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준구가 금광에 기웃거리는 것이 사기를 당할 꼬락서니 같아 보입니다. 잔머리(지혜) 하나로 졸부가 된 조준구가 내가 봐도 빤한 사기행각에 넘어가는 걸 보면 욕심에 눈이 멀면 촉이 떨어진다는 야고보 기자의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아는 것처럼 시험(Test)은 중립적입니다. 시험받는(당하는) 자체가 좋거나 나쁜 것이 아니고 누구에게나 닥치는 '상황(situation)'이라는 뜻입니다. 다만 받아들이는 주체가 욕심을 부리면 시험은 유혹(Temptation)이 된다는 것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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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이는 장사를 하는 월선의 돈이 없어졌다는 말에 임이네를 의심하며 다그칩니다. "우리가 남이요?(임이네)" 견디다 힘들면 이강 따라 온나" "그들이 움직이기 전에 용정 땅을 사들여야지요(서희)" "이번엔 반드...최서희가 용정 땅을 다 사시겠다(두수)" 길상은 서희에게 평사리 땅이 서희에게 소중한 만큼 간도 땅도 이곳 동포에겐 중요하다며 중국의 조산족들주머니를 터는 일을 계속한다면 자신은 서희곁을 떠나겠다고 합니다. 장사가 동족의 피를 빨아먹는 일로 보는 길상의 발상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
2.
‘지금 이 순간이 영원히 반복된다면, 나는 이 삶을 사랑할 수 있을까?’ 니체는 그렇게 물었고, 조용필은 노래했다. 당신은 뭐라고 답할 것인가? 한 인간으로서 주체적으로 삶을 살아낸다는 것은 과연 무엇을 의미할까. 글쓴이는 조용필의 공연과 니체의 ‘영원회귀’를 연결지으며, 개인의 삶과 시대적·사회적 조건 속에서의 자기결정과 주체성에 대해 깊은 성찰을 풀어낸다. 이 글은 단순한 감상이 아니라 철학, 대중문화, 역사드라마, 그리고 오늘날 현실에 대한 복합적 읽기이자 삶의 자세에 대한 고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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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필의 “이 순간을 영원히”는 단순한 감성적인 선언이 아니다. 글쓴이는 이를 프리드리히 니체의 '영원회귀' 사상과 연결하며, 한 인간이 ‘지금 이 순간’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묻는다. 니체의 질문은 단순하지만 날카롭다. “이 순간이 다시 수없이 반복된다면, 너는 이 삶을 긍정할 수 있는가?” 그 물음 앞에서 ‘사랑한다’고 대답할 수 있다면, 당신은 비로소 운명을 사랑하는 자(Amor fati), 즉 자기 삶의 철학자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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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필은 75세의 나이에도 압도적인 3시간 공연을 완주하며 ‘삶을 무대처럼 살아내는 자’로서 이 질문에 몸으로 대답한다. 거기에 글쓴이는 깊은 리스펙트를 보낸다. 글에서 특히 흥미로운 것은 조용필의 신곡 ‘테스형’을 매개로 테스형 VS 니체형이라는 대조를 시도한 부분이다. 소크라테스를 빌린 ‘테스형’은 인생의 부조리 앞에서 “왜 사는지 모르겠다”고 탄식하지만, ‘니체형’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삶을 긍정하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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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비는 단순한 말장난이 아니라, 우리가 삶의 모순과 고통 앞에서 취할 수 있는 태도를 고민하게 만든다. 테스형(회의적이고 체념적인 질문)vs 니체형9결단하고 긍정하는 응답) 이 지점에서 글쓴이는 분명한 입장을 취한다. “부모를 탓하지 말고 성장 배경을 탓하지 말고 운명을 사랑하시라!” 이것은 단순한 의지의 외침이 아니라, 삶을 책임지는 존재가 되겠다는 철학적 결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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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희는 장사꾼이지만 단순한 이익추구자가 아니다. 그는 역사적 전환기 속에서 물자와 정보를 무기로 활용하며 실천적 윤리를 실현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반면 김두수, 조준구 등은 기회주의자이자 권력 지향적 인물로, 현실의 그림자를 대변한다. 글쓴이는 이 캐릭터들 속에서 인간의 욕망, 도덕, 시련, 복수, 계산, 그리고 ‘시험(Test)’의 본질까지 읽어낸다. 그리고 그것을 철학적으로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시험은 중립적이다. 욕심이 개입되면 그것은 유혹(Temptation)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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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은 곧, 모든 상황은 주체의 해석과 선택에 따라 달라진다는 니체식 세계관의 변주라고 볼 수 있다. 주체적 삶이란 무엇인가? “모든 상황은 내가 결정하고 책임져야 한다.” 이는 주체의 탄생을 선언하는 말이다. 누구도 네 삶을 대신 살아주지 않는다. 타인, 사회, 제도, 과거의 영향력을 인정하되, 그것들에 휘둘리지 않고 현재의 선택을 통해 스스로를 구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니체의 ‘초인’ 개념과도 맞닿아 있다. 지금 이 순간이 영원히 반복된다면, 나는 이 삶을 사랑할 수 있을까?
2025.10.8.wed.악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