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래에는 편리한 서해안고속도로를 이용해서 태안반도를 비롯하여 머드 축제로 유명한 대천해수욕장 등 충청도 서해안을 찾는 피서객이 크게 늘었지만, 파란 쪽빛 물결이 출렁이는 동해안은 여전히 최고의 피서지로 손꼽히고 있다. 한반도 지형이 서쪽으로 완만하게 기울어서 서해안은 뻘이 길고 바다는 중국대륙에서 흘러나오는 황하의 황톳물로 누렇지만, 동해안은 모래사장이 짧은 만큼 모래가 곱고 바닷물이 깨끗하기 때문이다.
동해안에서 피서객들이 붐비지 않고 가족 혹은 친구나 연인끼리 조용한 곳을 찾는다면, 강원도 최북단인 고성군에 있는 화진포(花津浦)해수욕장만한 곳도 없다.
고성군은 조선 중기 가사문학의 대가인 송강 정철(松江 鄭澈; 1536~ 1593)이 관동별곡 8경중 제1경으로 꼽은 명승지인데, 6·25전쟁 때까지 북한 땅이었다가 휴전 성립 후 군청이 있던 고성읍과 장전읍, 외금강면 등은 북한 땅이 되었고, 간성읍, 거진읍, 현내면 등은 남한 땅이 된 분단의 현장이다.
1973년 바닷물이 깨끗하고 수심이 얕을 뿐만 아니라, 수만 년 동안 조개껍질과 바위가 부서져서 만들어진 모나즈(monads) 성분 모래사장은 맨발로 걸으면 뽀드득 소리가 나고 발바닥의 감촉이 전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부드러운 것으로 유명한 거진읍 화포리에 화진포해수욕장을 개장했는데, 병풍처럼 둘러싼 울창한 송림과 하얀 모래, 깨끗한 바닷물과 함께 화진포해수욕장 앞바다에 그림처럼 떠있는 금구도(金龜島)가 절경이다.
노약자나 어린이 자녀를 둔 가정이라면, 그리고 조용한 곳을 찾는 피서객들에게 아주 적격인데, 고성군에서는 1990년 11월 주변에 있는 이승만 초대대통령 별장, 이기붕 부통령 별장, 김일성 별장, 그리고 동해바다에 한가로이 떠 있는 금구도 일대를 국민관광지로 지정하여 개발 중에 있다.
또, 2000년 K-TV에서 방영되었던 드라마 ‘가을동화’의 촬영지로도 널리 알려졌다.
김일성 별장에서 바라본 화진포 해변. |
화진포에서 화진포해수욕장 이외에 더 유명한 것은 거진읍 화포·원당리와 현내면 초도·죽정리 등 4개 마을에 걸쳐 연면적 2.3㎢, 둘레 16㎞ 규모의 자연호수 화진포호수다(강원도지방기념물 제10호).
화진포란 지명은 오랜 옛날 이곳에 살던 구두쇠 이화진의 설화에서 유래하는데, 부자였으나 구두쇠로 소문이 자자한 이화진은 어느 날, 한 스님이 찾아와서 시주를 청하자 시주대신 쇠똥을 퍼주었다. 이것을 본 며느리가 시아버지 몰래 얼른 쌀을 퍼서 스님에게 주면서 “우리 아버님의 큰 죄를 용서해 주라”고 빌었으나, 스님은 들은 체도 않고 고총산으로 올라갔다.
스님은 며느리가 따라오는 것을 보고, “그대는 나를 따라 오면서 무슨 소리가 나더라도 절대 돌아보지 말라"고 말했다. 며느리가 얼마 동안 스님 뒤를 따라 걷는데, 갑자기 뒤에서 ‘쾅’하는 소리가 나자 며느리는 자신도 모르게 뒤를 돌아봤다. 그 때 하늘에는 폭우가 마구 쏟아지고 이화진이 살던 집과 논밭이 순식간에 모두 호수로 변했다고 한다.
최근 고성군에서는 화진포 호수에 뒤를 돌아보다가 돌로 변한 며느리 동상을 세웠다.
김일성 별장(왼쪽)과 이승만 별장 집무실. |
화진포 호를 중심으로 다리 건너 내륙 쪽에는 초대 대통령 이승만의 별장이, 바닷가 쪽에는 김일성 별장이 있는데, 상반된 두 개의 별장만으로도 관광객의 호기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고성군에서는 이승만 대통령 별장, 김일성 별장, 이기붕 부통령 별장 등을 모두 묶어서 안보기념관이라고 하며, 이승만 대통령 별장이나 김일성 별장 중 어느 한 곳에서 어른 2000원, 소인 1500원, 어린이 1000원씩 입장권을 사면 두 곳을 모두 관람할 수 있다.
화진포 호수를 바라보는 낮은 구릉지에 지은 이승만 대통령 별장은 아담한 한옥인데, 약간 비탈진 길을 올라가면 작은 건물 안에 이승만의 일생을 보여주는 사진과 자료를 전시하는 작은 건물이 아래에 있고, 그 건물 바로 위에 별장이 있다.
사실 별장이라고 해도 대통령의 집무실과 침실, 그리고 부인 프란체스카와 마주앉은 거실의 마네킹이 전부여서 아무리 1950년대라곤 해도 한 나라의 대통령 별장이라는 건물이 고작 20평도 되지 않는 작은 건물이라는 사실이 조금은 의외로 여겨졌다. 대통령의 별장이 집무실과 겨우 두 사람이 앉을 정도의 방을 생각하면, 검소했다고 해야 할 지 당시 우리의 국력이 그 정도였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할지 조금은 마음이 숙연해진다.
이승만 대통령 별장이 있는 화진포 반대쪽인 김일성 별장은 동해를 바라보고 있는데, 해안 절벽 위의 소나무 숲속에 높다랗게 자리하고 있어서 "화진포의 성(城)"이라고도 한다.
이곳은 일제강점기인 1937년 일본이 중일전쟁을 일으키면서 함경남도 원산에 있는 외국인휴양촌을 이 지역으로 강제이주 시켰는데, 1938년 독일인 건축가 H. Weber가 예배당으로 지은 건물이라고 한다.
휴전협정이 체결되기 전까지 북한의 점령지였던 이곳에 김정일이 본처 김정숙과 아들 김정일, 딸 김경희 등 가족이 하계 휴양지로 왔다고 해서 "김일성 별장"이라고 하는데, 당시 6살이던 김정일이 소련군 정치사령관 레베제프 소장의 아들과 별장 입구에서 어깨동무를 하고 찍은 사진이 이를 입증하고 있다.
김일성 별장은 6·25 전쟁 동안 대부분 파괴되었던 것을 1964년 본래의 건물을 철거하고 재축하면서 군인휴양지로 이용하다가 1995년 지금의 건물을 지었는데, 냇가 돌을 시멘트로 쌓은 3층짜리 건물은 산중턱에 있어서 한층 전망이 좋고 높다랗게 보인다. 건물 안에는 옛 모습을 담은 사진자료를 비롯해서 김일성 가족이 사용했던 응접세트 등 각종 생활용품이 전시되어 있다.
김일성 별장에서 바라본 화진포와 금구도 |
고성 앞바다와 화진포의 절경이 일품이지만, 특히 김일성 별장 3층 옥상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더욱 전망이 좋다.
해변에서 약300m쯤 떨어져 있는 금구도는 바위가 거북 모양을 닮은 데다 가을철이면 섬에서 자라는 대나무 숲이 노랗게 변해 섬 전체가 황금빛을 띤다.
전해오는 이야기는 이 섬에 고구려 광개토대왕 3년 8월 ‘화진포 거북 섬에 능을 축조하기 시작하여 광개토왕이 죽은 뒤 장수왕 2년에 시신을 안장했다’고 하지만, 삼국사기에는 그런 기록이 없다.
그밖에 화진포해수욕장 옆에 해양박물관이 있어서 여러 가지 해양생물들이 어린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하지만, 남북분단의 현장과 함께 이제는 역사속 뒤안길로 사라진 인물들이긴 해도 1950년대 남북한 두 정치지도자의 단면을 엿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아스라한 광개토대왕의 전설까지 들을 수 있는 화진포만한 피서지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