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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와 시 서로 넘나들기
-2010신춘문예 당선 작품을 중심으로
채 천 수
Ⅰ. Login
올해도 전국에서는 각 신문사마다 시, 시조, 소설, 동화, 동시, 수필, 평론 영역의 가장 화려한 등용문인 신춘문예 당선자들을 배출했다. 먼저 당선된 분들에게는 늦게나마 축하를, 한 해 더 기다려야 되는 분들에게는 심심한 위로를 드린다.
당선된 작품과 심사평, 심사소감이 지면에 발표되어 더 거론할 것이 뭐 있나 하지만 그렇지가 않다. 당선자와 심사한 분을 의심해서도 아니고 새로 필자가 심사할 의도도 자격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다.
물론 각 신문사에 응모된 작품 중에서 최고 수작이 뽑혔겠지만 그것은 제한된 작품 중 상대적 우위를 의미하는 것이지 절대적인 완성도의 작품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또 신문의 지면 관계상 당선된 작품을 심도 있게 분석할 수 있는 지면이 허용되지 않는 점을 고려하여 당선작 자체만 두고 심도 있는 분석을 하면 각 신문사마다 배출한 당선작들이 가지고 있는 작품성을 독자들은 골고루 비교하며 맛 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아울러 시조와 시를 조금 비교해보는 것도 시는 시조에게 시조는 시에게 뭔가 할 말이 생길 것 같아 당선된 시조와 시를 개별 분석하는 과정을 거쳐 종합적으로 비교 분석하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이다.
Ⅱ. Main point-1
농민신문
청파래 배두렁이 비뚜름히 결쳐 입고/선창이 벌렁 누워 선하품을 하고 있다/전마선 세찬 물결에 아침노을 뒤척이고//다시마도 미역귀도 숨이 가쁜 이 하루에/더러는 재두루미가 먹구름 물고 날지만/뒤덮인 적조赤潮의 띠가 황금어장 옭죈다//어느새 눈물이 맺힌 배다릿집 늙은 아재/덩어리져 식어가는 늦은 밥상 받아든다/헝클린 반백의 머리 소금버캐 열리고//바지선 엔진소리 결계結界를 푸는 안개/자린고비 어부 조씨 짠 냄새만 거머쥐고/저 멀리 낭장망 너머 뛰는 숭어 겨냥한다
(민병도, 백이운 선)
-「숭어 뛰다」전문 /김봉집(1959년생)
이 시가 어촌의 현실을 이미지로 형상화하는데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은 그곳에 있는 사물과 정서를 정확하게 포착한 노력이다. 행마다 詩를 잡기 위해 적당한 어구漁具 같은 정교한 시어의 선택과 배치, 조합(밑줄 친 낱말들)에서 빼어난 언어의 회화성을 획득한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환경문제를 배치한 둘째 수 중․종장에서ꡒ더러는 재두루미가 먹구름 물고 날지만/뒤덮인 적조赤潮의 띠가 황금어장 옭죈다ꡓ라고 대비하여 생존의 문제를 물고오기도하며, 뒷부분으로 갈수록 열악한 생의 처지에 몰린 어부 ꡒ배다릿집 늙은 아재ꡓ와 ꡒ조씨ꡓ의 헝클린 입장이 ꡒ짠 냄새만 거머쥐고/저 멀리 낭장망 너머 뛰는 숭어 겨냥한다ꡓ로 반전되면서부터 긍정의 힘으로 종장을 마무리하는 것은 닫힌 감정의 詩路 에ꡒ뛰는 숭어ꡓ로 활로를 찾아준 것이다. 이것은 정형의 제약된 형식을 오히려 역으로 이용하여 자유와 활기를 누린다는 말이기도 하다.
중앙신인문학상
길을 깁던 바퀴들이 층층이 쌓여있다/수런대는 바람 사이 조등은 살을 깎고/겨울밤 몸을 부비는 수의 입은 일가의 산//맨 처음 어디에서 여기까지 온 것인가/지게차 꼬리 무는 운구행렬 곡哭도 없다/몸 눕힐 저 그늘 묏자리 망초꽃 다 내주고//늘 한 뼘씩 앞서려던 녹물 고인 도로 끝/슬관절 삐걱이며 계기판도 멈춰섰다/아버지, 잠의 집 끌고 그 산에 당도했을까//지상의 집들은 다 흔들리기 마련이지만/그래 그래 끄덕이며 사람들은 돌아가고/이제사 몸을 눕히는 용광로 속 등뼈 하나.(박기섭,정수자,박현덕,강현덕 선)
-「겨울 폐차장」전문/김대륭(1983년생)
언어의 균제미는 사유의 힘에서 나온다. 폐차장은 일터이며 죽음까지 공유한다. 모든 삶은 그 자신이 중심이 되어 운용되지만 여기 등장하는 아버지는 사회적으로 볼 때 중심인물이 아닌 주변인물이다. 인간의 삶과 죽음의 긴 여정을 시조 형식 한 장에 담은 첫수 종장을 빌리면 ꡒ맨 처음 어디에서 여기까지 온 것인가ꡓ라는 표현은 종결의 의미를 넘어 겹겹의 생각을 일으키는 또 다른 환기작용으로 다음 내용을 불러온다. ꡒ늘 한 뼘씩 앞서려던 녹물 고인 도로 끝/슬관절 삐걱이며 계기판도 멈춰섰다ꡓ에서는 주인공의 죽음을 주인공의 손발이 더 이상 접근할 수 없는 정지된 장소와 대상물을 통해 표현했다. 평소 그가 일하던 곳과 만지던 물건과 더불어 활동하는 모습을 연상시키며 죽음에서 삶을 끌어다 쓰고 있는 경우라서 최근 시조단에서는 색다른 표현법이기도 하다.
대구매일
어우르던 장구가 더운 숨을 토한다/생사의 경계선을 이랑인 듯 넘어와/울음을 되새김하며 소리로 환생한 소//옹차던 속 들어낸 여섯 치 오동나무에/조임줄로 다시 묶여 코 뚫림을 당할 땐/북면을 힘껏 조이며 공명통을 안는다//사포를 쇠 빗 삼아 쓸어주는 조롱목/완강하던 고집이 세마치로 조율되고/긴장한 소릿결들이 평온하게 풀릴 즈음//옻 밥을 먹은 소가 밭갈이를 나선다/열채로 엉덩이를 가볍게 두드리자/덩더꿍, 변죽을 울리며 타령을 끌고 간다. (박기섭 선)
-「양두고兩頭鼓」전문/유현주(1967년생)
훌륭한 상상력이 밀고 나간 표현의 힘을 본다. ꡒ장구가 더운 숨을 토한다ꡓ고 하니 장구의 전생은 소다. 두세 째 수가 장구가 완성되는 과정이기도 하지만 장구소리로 환생하는 소의 이야기가 스며있다. 그 과정의 전개 또한 장인의 손을 빌려 ꡒ코 뚫림을 당ꡓ하고 ꡒ북면을 힘껏 조이며 공명통을 안는다ꡓ는 것이다. 이것은 소→장구→시적 화자의 단련으로 이미지가 전화轉化되어가는 시인됨의 자기 수련 과정이기도 하다.
제약된 형식에서 의미 있는 가변성可變性을 추구하는 것이 시조의 매력 중 하나라면 마지막 수의 흐름이다. 만든 것은 옻을 칠한 장구요 장구 소리인데 떠오르는 것은 소의 엉덩이를 치며 몰고 가는 영상 하나를 더 물어낸다. ꡒ옻 밥을 먹은 소가 밭갈이를 나선다/열채로 엉덩이를 가볍게 두드리자/덩더꿍, 변죽을 울리며 타령을 끌고 간다ꡓ
시인이여, 이제 당신의 다른 노래 한 소절을 머잖아 또 듣고 독자들이 놀라겠구나!
조선일보
하지 무렵 짧은 고요 어둠에 잠겨 든다./별꽃 뜬 어둑새벽 그믐달과 살을 섞고/쟁쟁한 징소리 내며 두 손 밀어 올린다.//노굿이 날개 접고 지어가는 고치 속에/갇혔다 튕겨진 몸, 바람에 여위어 가고/이제는 못 삭힌 열망 갈증으로 남는다.//눈물로 녹여낼까? 꺼내어 든 물음표/외발로 등 기대고 소통의 문을 연다./화들짝 개나리 피어 또 한 생애 열리고.//번잡한 영등포역 문 헐거운 국밥집에서/인력시장 줄 선 사내 빈속을 달래 주는/그렇게 열반에 든다, 누추한 시대 성자처럼……(한분순 선)
-「콩나물 일기」전문 /조민희(1940년생)
ꡐ어둑새벽ꡑ부터 아녀자들의 노력으로 집집마다 콩나물에 물을 주던 시절이 있었다.우리들 각자의 존재는 콩 하나하나처럼 ꡒ노굿이 날개 접고 지어가는 고치 속에/갇혔다 튕겨진 몸ꡓ, 또 존재의 가치는 스스로가ꡒ꺼내어 든 물음표ꡓ에 얼마나 몸으로 답하며 순명하는 것이다. 서민성이 오롯이 담긴 콩나물국 한 그릇에 구직을 희망하는 시대정신의 숟가락이 놓인다.
ꡒ인력시장 줄 선 사내 빈속을 달래 주는/그렇게 열반에 든다, 누추한 시대 성자처럼……ꡓ 시대정신은 뭐 그렇게 거창한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세히 보면 우리들 의식주에 그 줄이 닿아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ꡐ신춘문예 사상 처음일지도 모르는(?) 고희에 등단을 어떻게 볼 것인가?ꡑ는 신문사와 선자의 몫으로 남긴다.
동아일보
앙가슴 하얀 새가 허공 한 끝 끌고 가다/문득 멈춘 자리/매듭 스릇 풀린 고요/콕콕콕/잔가지마다 제 입김 불어넣는//그 눈빛이 낯이 익어 한참 바라봤지만/난시가 깊어졌나,/이름도 잘 모르겠다/시간의/녹슨 파편이 낮달로 걸린 오후//은밀하게 징거맸던 앞섶 이냥 풀어놓고/곱하고 나누다가/소수점만 남은 봄날/화르르!/깃 터는 목련, 빈손이 사뿐하다(이근배 선)
-「새, 혹은 목련」전문 /박해성(1947년생)
감성의 붓놀림은 새로운 미의 표현에서 발견된다. 첫수 초장의 전구와 후구를 보라. ꡒ앙가슴 하얀 새가/ 허공 한 끝 끌고 가다ꡓ새가 허공에 나는 평범한 현상 기술을 정지된 허공을 동적으로 바꾸어 표현함으로써 갑자기 전구와 후구에 미적美的 긴장이 조성된다. 자유시에서는 이런 날렵한 비상의 이음새를 잘 가질 수 없는데 시조 한 장의 네 마디가 두 마디씩 응축되어 서로 밀고 당기는 자력현상에서 얻을 수 있는 형식미를 이용한 까닭이다.
제목을 보더라도 오랫동안 우리 시조의 분위기를 지배하는 엄숙주의를 밀어낸 구성이 재미있다. 즉 제목이ꡐ새, 혹은 목련ꡑ은 이음동어異音同語로 하나는 동動이요 하나는 정靜의 상징을 깔고 있다는 것이다.
대상에 대한 인식의 깊이는 지금 현상에 대한 대척점의 의미와 이미지도 쉽고 재미있게 가져와 사용하는 것으로 21C의 퓨전적인 사고를 바탕으로 한다.
따라서 ꡒ 봄날/화르르!/깃 터는 목련, 빈손이 사뿐하다ꡓ에서 줄친 부분과 같은 표현은 우연한 것이 아니라 필연성을 가진 말의 이음새를 보이는 출현이라 볼 수 있다.
서울신문
모든 것이 사라져도 바람은 존재한다/수천 년 살아있는 혼들의 화석처럼/떠돌며 우리의 삶 속에 잔뿌리를 내린다//당신은 허공 속의 자궁에서 태어난다/힘들고 지친 자들의 울음을 파먹으며/온몸을 먹구름 속에 수없이 휘어가며//밤새 비 쏟아지고 나무를 두드렸던/바람 새들 불러 모아 한바탕 쓸고 간/마당엔 햇살 물고기 푸룩푸룩 뛰논다.(한분순, 이근배 선)
-「바람의 산란」전문/배경희(1967년생)
실체 없는 심상을 이미지로 잡아낸 정형의 융합은 내면의 형상화란 말에 다름 아니다. 시의 출발과 도착과정이 외면에서 내면으로 아니면 내면에서 외면으로 가는 길이 아닌가. 이론은 쉽지만 대상을 통해 하나의 이야기나, 그림, 이미지를 나름의 새로운 시적인 장치로 자연스럽게 녹여내기는 여간 어렵지 않다.
ꡒ모든 것이 사라져도 바람은 존재한다ꡓ 는 첫수 초장이 무형의 존재론을 담고 있다. 좀 더 그쪽으로 밀어붙이는 힘이ꡒ혼들의 화석처럼ꡓ무형을 유형의 퇴적으로까지 몰고 갔다. 까닭에 바람은 ꡒ삶 속에 잔뿌리를 내ꡓ리고 드디어 본격적인 생의 중심에서는 ꡒ힘들고 지친 자들의 울음을 파먹으며/온몸을 먹구름 속에 수없이 휘어가며//밤새 비 쏟아지고 나무를 두드렸던ꡓ 격정과 상처의 무늬로 흥건한 물기를 남겼다. 이런 내용은 어쩌면 바람 자체지 바람이 남겨두고 간 것은 끝수 종장에 반짝이는 ꡒ푸룩푸룩ꡓ한 ꡒ햇살 물고기ꡓ라는 찬란한 희망을 남겼다.
국제신문
병원 문을 나서다 하늘 올려다본다./아기인 듯 몸에 안긴 찔레 같은 어머니/기억의 매듭을 풀며 꽃잎 툭툭, 떨어지고//잔가시 오래도록 명치끝 겨누면서/수액 빠진 몸뚱이로 물구나무 서보라며/먼 바다 어느 끝으로 내몰리는 나를 본다//파도 끝 수평선은 붉은 줄 내리긋고/굽 닳은 하루해가 출렁이다 멈춰 선 곳/익명의 불빛이 와서 꽃잎으로 흔들린다(이우걸, 전일희 선)
-「찔레의 방」전문/오영민(1972년생)
노인문제는 이제 더욱 우리 사회의 중심에 있다. 세월은 어떤 사람도 그냥 내버려 두지 않지만 늙음을 스스로 준비하기엔 우리들 사회와 개인간의 관계와 운명이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ꡒ아기인 듯 몸에 안긴/ 찔레 같은 어머니ꡓ를 보면 전구는 삶 자체의 무능력함으로/ 후구는 삶에서 바라보는 죽음의 버거움으로 채워져 있다. 그 사이에 화자의 감정이ꡒ잔가시 오래도록 명치끝 겨누면서ꡓ앉아있기에 상처와 고통이 심화되어 휘둘리는 삶의 방향성이 ꡒ먼 바다 어느 끝으로 내몰리는 나를 본다ꡓ에 묻어있다. 어머니와 시적 화자의 상황이 인간의 정체성을 위협하고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어머니는 병원에 있지만 시인의 마음에 있는 어머니의 병환은 시인의 것이기에 제목이 ꡐ찔레의 방ꡑ이고 현실적 고뇌로 읽히는 ꡒ익명의 불빛이ꡓ ꡒ꽃잎으로 흔들ꡓ리는 것이다.
부산일보
갯버들 가장귀에 물구나무선 눈먼 햇살/풋잠 든 하얀 잎눈 이따금 들여다본다/도톰한 봄의 실핏줄 돋을새김 불거지고.//물비늘 풀어헤친 낯익은 수면 위로/명지바람 건듯 일어 빗살무늬 그려내고/웅크린 이른 봄날을 종종걸음 재우친다.//귓가에 기웃거리는 자갈밭 여울물 소리/백일 남짓 어린애가 옹알이하듯 재잘대고/산그늘 조금씩 끌어당겨 정수리를 덮고 있다.//몇 겹의 물굽이가 수만 번 날을 세워야/딱지 앉는 상처처럼 푸른 문신 새겨낼까/겨우내 숨죽인 강물, 접힌 허리 쭉쭉 편다.
(정해송 선)
-「해토머리 강가에서」전문/김환수(1962년생)
시는 드러난 대상과 상황 구조 등에서 숨어있는 비의를 시인 자신만의 경험과 상상력을 총동원하여 찾아낸 언어의 재구성이라고 볼 때 김환수의 ꡐ해토머리 강가에서ꡑ가 그 보법에 아주 충실한 기본기를 보이고 있다. 해마다 오는 봄이지만 그 봄을 맞이하는 자세와 태도에 따라 인간의 감성은 항상 새로운 것.
ꡒ하얀 잎눈ꡓ이ꡒ도톰한 봄의 실핏줄ꡓ로ꡒ돋을새김 불거지ꡓ는 정적 이미지와 ꡒ백일 남짓 어린애가 옹알이하듯 재잘대고ꡓ라는 동적 이미지로 오는 어린 봄으로만 끝나는 것을 방지하려고 마지막 수는 온 산천에 확장되는 봄의 기다림을 바탕으로 한 ꡒ몇 겹의 물굽이가 수만 번 날을 세워야/딱지 앉는 상처처럼 푸른 문신 새겨낼까ꡓ라며 생의 현장에서 굽이굽이 인내하는 과정을 거쳐 다시 ꡒ겨우내 숨죽인 강물, 접힌 허리 쭉쭉 편다.ꡓ며 삶을 희망으로 되돌려놓고 있다.
경남신문
아버지,/수면을 두드리지 마세요/수평의 긴장을/간신히 지탱하는/해저의/섬과 섬 사이/안간힘을 보세요.//아버지,/낚싯줄을 던지지 마세요/거멀못 박아둔 자리/새물이 차올라/파도는/푸른 비린내/바다를 토막 내어요.//아가야,/열려말고 바다를 보아라/달을 안고 뒤척이는/바다의 설렘을/지금 막/사랑을 품고/마음 붉어지는 찰나란다.
(김연동, 이달균 선)
-「아버지와 바다」전문/조춘희(1980년생)
시라는 구조물은 시상의 원심력으로 시어의 구심력으로 유지 된다. 3수 중 앞에 두 수는 자식이 아버지에게 나머지 한 수는 아버지가 자식에게 말하는 형식으로 주고받는 수작시조다. 내용을 살펴보면 자식이 아버지에게 바라는 것이 있다. 아버지의 삶이 ꡐ두드리ꡑ거나 ꡐ낚싯줄을 던지ꡑ는 투쟁과 욕망일지 모른다는 자식의 순수서정에 아버지가 자식에게 보내는 순수서정은 ꡒ아가야,/열려말고 바다를 보아라/달을 안고 뒤척이는/바다의 설렘을/지금 막/사랑을 품고/마음 붉어지는 찰나란다ꡓ며 더 거룩하고도 넓다. 인간에게 주어진 환경에 대한 겸허한 수용과 사랑을 메시지로 읽을 수 있다. 다만 표현형식에서 초․중․종장의 어투 구조가 획일적인 것이 문제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경상일보
할머니 지문 찍힌 뽕잎마다 이랑진 삶/넉 잠 든 잠실에 들면 반투명 누에들이/큰스님 넉넉한 손처럼 가진 것 죄 내줄 때//이따금 명주실 같은 부드러운 바람결이/자디 잔 물비늘을 은어 떼로 풀어놓고,/풀벌레 달빛 속에서 반짝반짝 울고 있다.//지는 꽃의 뒷등마냥 적막한 누에고치/길을 버린 누에들은 곡기마저 물리친다,/폭폭한 제 속울음도 다 퍼내지 못하고.//마분지 빛 흐린 날의 장막 한 겹 걷어낸다./얼음 박힌 동치미국, 할머니 손맛 되새기며/시렁 위 채반에 올라 가만가만 숨 고른다.//호박벌은 귓전에서 풀무 소리 잉잉대고/가느스름 눈 뜬 채 장엄 열반 꽃 둥지 엮는,/한 살이 터억 매조지한 울 할머니 뒤태 같다. (윤금초 선)
-「5월, 누에고치」전문/이상선(1966년생)
할머니의 수고로움과 누에의 생에도 종교적 열반이 있다. 열반으로 가는 생의 흔적들을 살펴보면ꡒ지문 찍힌 뽕잎ꡓ에 묻은 노고나ꡒ가진 것 죄 내줄 때ꡓ의 배려,
ꡒ지는 꽃의 뒷등마냥 적막한 누에고치ꡓ에서는 사색을 발견할 수 있다. 세월의 매조지가 탄탄한 시다.
Ⅲ. Main point-2
신춘문예 시조 당선작 이야기에서 시 당선작 이야기를 곁두리로 놓는 것은 무슨 의도냐고 묻는다면 이제 시조를 시조 안에서가 아닌 시조 밖에서 한번 3찰 (관찰-통찰-성찰)하자는 것이다. 시라는 큰 테두리에서 새로운 미학적 구조를 보이는 새로운 작품을 좀 자세히 분석거론하면 신춘 시조가 시로서 가지고 있는 장점과 또 부족한 점이 있다면 어떤 길을 새롭게 다시 걸어야 하는가를 발견할 수 있다는 확신에서다.
한국일보 〈검은 구두/김성태〉-〈눈여겨볼 점 : 일상의 관찰력〉ꡒ궤도를 이탈한 적 없는 그가 걷는 길은/ 가파른 계단이거나 어긋난 교차로입니다ꡓ나 ꡒ주인이 바뀐 지도 모르고/ 구불구불 길을 내며 집으로 갑니다ꡓ등만 봐도 삶을 싣고 가는 정신이나 인간이 사용하는 작은 것에서도 의외성을 발견하는 탐구 전략이 꿰맨 자국 없는 표현으로 자연스럽다.
조선일보〈풀터가이스트/성은주 1979년생〉-〈눈여겨볼 점 : 불안의 형상화〉poltergeist는 불안정하게 소란을 피우는 영靈을 지칭하는 것으로 현대인의 삶을 탐구하면서 그 내면의 중심에 불안감이 하나의 큰 축으로 버티고 있음을 호소한 작품으로 그 징후의 가구佳句를 살피면 다음과 같다. ꡒ우주를 떠돌던 시선은 나를 더듬기 시작하네ꡓ,ꡒ 접시가 입을 쩌억 벌렸어ꡓ,ꡒ누워있던 골목들 일제히 제 넋을 출렁였지ꡓ
동아일보 〈붉은 호수에 흰 병 하나/유병록 1982년생〉-〈눈여겨볼 점 : 집중하는 언어 구조의 힘〉생물(오리의 죽음)의 마지막 한순간을 끈질기게 물고 늘어졌다. 절명의 시이기도 하다.
끈질긴 그의 눈이 잡아낸 처절한 시행을 소개하자면 다음의 것들을 놓칠 수는 없겠지.
ꡒ오리의 목을 자르자 붉은 고무 대야에 더운 피가 고인다/ 목이 잘린 줄도 모르고 두 발이 물갈퀴를 젓는다/습관의 힘으로 버티는 고통ꡓ, ꡒ기울이면 그래도 몇 모금의 붉은 잉크가 더 쏟아질 것이다ꡓ 제목으로 제시한 ꡐ붉은 호수에 흰 병 하나ꡑ 목이 잘린 오리의 피와 흰 몸통을 상징함은 물론이고 인간의 욕망이란 팔레트는 누군가의 피를 그 속에 담아 그의 붓에 묻힌다는 것이다.
경향신문 〈직선의 방식/이만섭 1955년생〉-〈눈여겨볼 점 : 사유의 깊이와 방식, 안정감〉지식정보사회의 대표적인 선의 표정은 직선이다. 이만섭(55세)의 문명 해석에 동참하면 이런 구절이 나온다. ꡒ직선일수록 자신만만한 표정이다ꡓ,ꡒ나태하거나 느슨한 법 없이/망설이지 않고 배회하지 않으며ꡓ,ꡒ가령, 빨랫줄에 바지랑대를 세우는 일은/ 직선의 힘을 얻어/허공을 가르며 쏘아대는 직사광성을/놓치지 않으려는 뜻이 담겨 있다ꡓ 이 「직선의 방식」은 삶의 또 다른 한 쪽에는 곡선의 느린 방식이 있음을 여백에 깔고 있음은 물론이다.
문화일보 〈골목의 각질/강윤미 1980년생〉 -〈눈여겨볼 점 : 호소력과 삶의 진정성〉그녀가 써내려간 의미 있는 몇 행을 옮기는 것이 이 시대문명과 궁핍한 삶의 각질에 빨리 당도하는 길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ꡒ청춘보다 비싼 방값에 대해 이야기했다/닭다리를 뜯으면 값싼 연애를 혐오했다ꡓ, ꡒ전단지가 골목의 각질로 붙어있다 붙어있던/ 자리에 붙어있다 어쩌면/골목의 뒤꿈치 같은 이들이/균형을 잡으려고 안간힘을 쓰다가/ 굳어버린 희망의 자국일 것이다.ꡓ등에서 그녀의 청춘과 그 청춘이 거주하는 골목 풍경이 선명하다.
Ⅳ. Logout
이상에서 당선자들의 신춘 시 몇 편을 분석한 내용 중에 중요한 공통점을 찾아 신춘 시조와 비교하며 기술하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1. 당선자가 시로 쓴 대상이 우리 시대 개인과 개인, 개인과 사물, 사물과 사물 간에 발생하는 사회구조와 문제점을 새로운 자기 발견이 담긴 언어로 표현을 꾸려가고 있었다.
2. 자유시라 형식의 제한은 받지 않지만 작품마다 군더더기를 빼낸 노력이 보이고 있어 시 전체의 격을 떨어뜨리는 구句나 행行을 버리면서 자기 시의 숙도를 높이고 있었다.
3. 내용의 구조와 전개방식을 살피면 서사, 서정, 이미지 형상화 등이 시적 효과를 위해 전략적으로 행과 연에 적절하게 분포되어 있었다.
4. 당선자들의 연령층이 높아지고 있어 문학이 청년들로부터 점점 멀어져있음을 볼 수 있었다.
5. 낯선 제목이 많고 그에 따른 새로운 집을 짓는 기술 또한 경험과 어우러진 훌륭한 상상력이 뒷받침하고 있었다.
6. 시에서〈눈여겨 볼 점〉으로 작품마다 그 경향으로 제시한 내용을 보면 이 시대가 안고가야 할 문제들이 무엇인지 독자들이 공감할 부분이 많았다.
7. 시조에서는 잘 다루어지지 않는 영역과 제목이 있다는 것은 시조 발전을 위해 깊게 생각해 볼 문제다.
8. 자유시의 자유는 군더더기를 줄이는 구속으로 풀어야 정제된 시가 되고, 시조의 정형은 제약을 역易으로 이용한 지혜로 맺고 풀어야 가락과 내용이 함께 살아나는 좋은 시가 됨을 볼 수 있었다.
9. 특히 시조의 구조적 특징으로 구와 구, 장과 장 사이를 이용할 때 빈부, 고저, 장단, 냉온, 완급, 경중, 청탁, 명암, 대소, 원근, 천지, 노소, 전후 등을 적절히 배치하여 가락과 내용에 효과를 보는 경우가 많이 발견되었다.
10. 시에서 어떤 극점에 도달하는 부분에는 특히 종교적 삶이 투영되어 있었다.
11. 당선된 시나 시조에서 이제 더는 경험이나 감각이 배제된 관념 덩어리로 공허하거나, 뻔한 익숙함과 상투적 표현이 앉을 자리는 허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인간의 삶에 꿈이 없다면 예술은 존재하지 않는다. 까닭에 시나 시조는 여기가 아니다. 시대의 과녁에 반드시 명중시켜야 할 언어 화살로 새로운 삶을 건설하기 위한 지식과, 기능과 태도를 항상 절차탁마하여 그 언어미학의 중심에 화살을 날려야 한다.
첫댓글 아이고 채천수 시인님
이렇게 공부를 많이 하시는 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