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예수를 만난 사람들(3) - 세베대 아들 야고보 |
동생 '요한과 더불어 '천둥의 아들'이란 별명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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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베대의 아들 야고보(1580~85, 1590~95년 / 유채화, 123×70cm / 톨레도 산타 크루스 미술관 소장). 작자 : 그레코(1541~1614)
손에 지팡이를 들고 마치 순례자의 모습처럼 묘사된 대야고보는 고대의 조각을 보는 듯하게 당당한 풍채이며, 예수의 제자들 중 첫 순교자의 기품을 느끼게 한다. |
| ●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라"
예수의 제자 중 야고보가 두 명이기 때문에 세배대의 아들은 대(大) 야고보, 알패오의 아들은 소(小) 야고보라고 불러 구분한다. 복음서의 여러 기록들을 종합해 살펴보면, 야고보와 요한은 주 예수의 사촌 형제였던 듯하다.
야고보가 정식으로 주 예수의 부름을 받아 그의 제자가 된 것은 갈릴리 호반에서였다. "조금 더 가시다가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보시니 그들도 배에 있어 그물을 깁는데, 곧 부르시니 그 아버지 세베대를 품꾼들과 함께 배에 버려 두고 예수를 따라가니라"(막 1:19~20).
예수는 야고보와 요한을 부르시기에 앞서 같은 갈릴리 호반에서 시몬과 안드레 형제도 제자로 택하셨다. 이들 네 명은 주 예수의 제자 중 핵심이 되었고, 사도의 명단에도 첫머리에 올라 있다(막 3:17).
야고보는 베드로와 요한과 더불어 예수의 전적인 신임을 받았다. 베드로의 장모를 고칠 때, 산에서 주의 모습이 변할 때,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 이들 세 제자는 예수와 함께 있었다.
야고보와 요한 형제의 어머니도 예수를 따르던 여인 중 한 명이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혔을 때 그 현장에 있었다.
"그 중에는 막달라 마리아와 또 야고보와 요셉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세베대의 아들들의 어머니도 있더라"(마 27:56).
세베대 일가는 대제사장과 아는 사이였고(요 18:15), 예루살렘에도 집이 있었던 듯하다(요 19:27). 프란체스코 수도회에서는 예루살렘 세베대의 집 부지에 최초의 교회가 서게 되었다는 말이 전해지고 있다.
● "너희는 '보아너게'이니라"
야고보와 요한 형제는 젊은 시절에 성격이 무척 사납고 성질이 급했던 듯하다. 마가는 예수의 제자들을 적으며 "또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야고보의 형제 요한이니 이 둘에게는 보아너게 곧 천둥의 아들이란 이름을 더하셨으며"(막 3:17)라고 기록하였다.
어느 날 주 예수와 그의 제자들은 예루살렘을 향해 길을 가다가 사마리아인의 한 마을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 마을에서는 예수 일행의 행선지가 예루살렘이라는 사실을 알고, 그 마을에서 머무는 것을 거절하였다.
"제자 야고보와 요한이 이를 보고 이르되 주여 우리가 불을 명하여 하늘로부터 내려 저들을 멸하라 하기를 원하시나이까"(눅 9:54).
야고보와 요한에게 엘리야와 같이 하늘의 불을 불러 내리는 능력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이들 형제가 불이 타는 것 같은 화를 낸 것만은 틀림없다. 야고보와 요한은 또 그만큼 뜨겁게 예수를 사랑한 것도 틀림없는 일이다.
"예수께서 돌아보시며 꾸짖으시고 (이르시되 너희는 무슨 정신으로 말하는지 모르는구나. 인자는 사람의 생명을 멸망시키러 온 것이 아니요 구원하러 왔노라 하시고) 함께 다른 마을로 가시니라"(눅 9:5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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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변모(유채화, 1520년쯤 / 바티칸 소장), 작자:라 파엘로. 예수 아래 엎드려 있는 세 제자 중 왼쪽 인물이 야고보이다. |
| ● "내 잔을 마실 수 있느냐"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마지막으로 예루살렘을 향해 가시던 때였다. 예루살렘에는 십자가의 고난이 예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때에 세베대의 아들의 어머니가 예수께 와서 절하며 자기 아들들을 위해 청탁하였다.
"나의 이 두 아들을 주의 나라에서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명하소서"(마 20:21).
주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데 대해 모든 사람들은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주 예수는 예루살렘에서 위력을 발휘하여 다윗시대보다 더 강대한 왕국을 세우고, 왕의 자리에 오르게 되리라고 하는 기대였다.
야고보와 요한의 간청에는 두 가지 점에서 잘못이 있었다. 그 하나는 메시아와 그가 이룩할 나라의 성질을 잘못 알았다는 것과 다른 하나는 이들 형제의 이기심과 허영심이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너희가 구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내가 마시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으며, 내가 받는 세례를 너희가 받을 수 있느냐"(막 10:38).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은 한 목소리로 "할 수 있나이다"라고 대답하였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내가 마시는 잔을 마시며 내가 받는 세례를 받으려니와,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내가 줄 것이 아니라 누구를 위하여 준비되었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막 10:39-40).
열 제자가 듣고 야고보와 요한에 대해 화를 냈다.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섬김'을 가르치셨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막 10:45).
열두 제자들은 주 예수의 말씀을 그 즉시 이해하지 못하였다. 이 때로부터 한 주간 후 그들은 주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는 것을 보았다. 그제서야 제자들은 '섬김'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예수의 우편과 좌편에 두 흉악범이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 그 중 한 명은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고 하였다. 다른 한 명은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하고 말하였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눅 23:43).
주 예수의 우편과 좌편, 그 무척 가까운 자리가 무엇인가 하는 것을 제자들은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예수의 온정이 넘치는 단절과 거부는 결국 예수의 은혜로 말미암아 초월하여 자기 속에 흐르고 있다는 사실을 제자들은 알 수 있게 되었다.
● "야고보를 칼로 죽이니"
때는 주후 44년 봄, 무교절 축제의 시기였다. 헤롯 아그립바 1세는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하여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을 박해할 계획을 세웠다. 헤롯은 맨 먼저 예수의 제자 야고보를 칼로 목 베어 죽였다.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가 박해의 첫 대상이 된 이유는 분명하였다. 그가 여느 사도들보다 더 열심이고 활동적이며 또 다른 사람에 대한 감화력이 컸기 때문이었다. 수제자 베드로조차도 헤롯의 박해 리스트에서 야고보 다음이었다.
사도행전에는 헤롯 왕이 "요한의 형제 야고보를 칼로 죽이고"(행 12:2)라고 간결하게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역사가 에우세비오스는 그의 '교회사'에서 야고보의 순교를 다루고 있다. 에우세비오스는 믿을 수 있는 전설이라고 하며,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의 말을 인용하고 있다.
"야고보를 재판소에 연행한 사람은 야고보의 신앙 간증을 듣고 감격한 나머지 자기도 그리스도 신앙을 고백하였다. 때문에 두 사람은 다 사형 언도를 받았다. 형장으로 끌려 가며 그는 야고보의 축복을 간절히 원했다. 야고보는 잠시 생각하고 나서, '샬롬, 당신에게 평안이 있을지어다'라고 하며 그에게 입맞추었다. 그리고 두 사람은 함께 목이 잘렸다".
야고보는 주 예수께서 지상에 계실 때 주의 잔을 마시며 주의 세례를 받겠다고 말한 바가 있었다. 그는 마침내 주 예수의 고난의 잔을 마셨고 피의 세례를 받았다.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는 예수의 열두 사도 중 첫 순교자의 면류관을 쓰게 되었다.
오랜 전설에 따르면 대야고보의 유해는 산티아고 드 콤포스텔라에 옮겨졌으며, 10세기에서 15세기에 걸쳐서는 세계적인 순례지로 유명하였다. 그의 이름을 따서, 야고보 기사수도회, 야고보 수도원, 야고보 신앙동지회, 야고보 구호소, 야고보 성가 등이 생겨났다. 오늘날에도 야고보는 스페인 순례자의 수호 성인으로 우러러 모셔지고 있다.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는 그의 형제 요한과 더불어 '천둥의 아들'이라는 별명이 주어질 만큼 과격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그는 또한 주 예수의 우편이나 좌편에 앉게 되기를 원하는 야심가이기도 하였다.
야고보는 장점보다는 단점이 많은 갈릴리의 어부 출신이었으나, 주 예수의 가르침을 받고 성령으로 성결해짐에 따라서 능력 있는 신앙의 증인이 되었다.
야고보의 신앙은 여느 사람의 신앙이나 마찬가지로 은혜의 체험이었다. 즉, 예수의 죽음과 부활에 동참하는 참된 현실 체험이다. 예수는 참으로 죽으셨고 또 참으로 부활하셨다. 야고보는 이 예수의 증인이 되어 마지막 순간까지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고 또 싸우다가 영광스러운 순교를 하였다. 그의 이름은 생명책에 크게 기록되었으리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