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시평 제130호 (2007년 3월 29일)
김경득 변호사의 한일 양국을 향한 제언
최영호 (영산대학교)
www.freechal.com/choiygho
재일동포의 인권신장에 헌신해 온 김경득 변호사가 서거한 것이 지금부터 15개월 전인 2005년 12월 28일의 일이다. 이듬해 2월에 도쿄 全電通會館에서 한일 양국으로부터 800명 정도의 추모객이 모여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 裵重度 田中宏씨를 공동대표로 하는 추도회 준비회는 그 후에도 일년간 존속하며 추도문집을 편집 발행하는 업무를 담당했다. 이윽고 올해 2월에는 도쿄의 한국YMCA에서 1주기를 기념하는 집회가 열렸고 이 자리에서 370 페이지에 달하는 『변호사 김경득 추도집』이 배포되었다.
이 추도집에는 한일 양국에서 80명이 넘는 사람들이 김 변호사를 추모하는 글들을 남기고 있다. 그 외에도 이 책에는 김 변호사의 유고(遺稿)와 함께 그의 주요 재판 변론들이 실려 있어, 생전의 그의 왕성한 활동과 폭넓은 인간관계를 느낄 수 있게 한다. 필자는 김 변호사의 유고 가운데 그가 한일 양국 사회에 던진 제언을 부분적으로 인용하여 그의 사상과 평소 문제의식을 소개하고자 한다. 이 유고는 그가 서거하기 두 달 전에 ‘후쿠오카 부산 NGO 교류회’ 발표를 앞두고 병상에서 구술한 것을 그의 사무소 직원이 받아쓴 것이라고 한다.
김경득 변호사는 그의 유고를 통해서 한국과 일본 사회를 향해 재일동포들에게 참정권을 부여하라고 주장하고 있다. 한일양국의 현 실정에 비추어볼 때 아직은 이상론으로서의 성격이 강한 주장이기는 하지만, 금후 재일동포의 인권을 위해서 한일양국이 수행해야 하는 과제로서 귀담아 들어야 할 주장이라고 생각한다.
근래에 들어 한국의 정치권과 사회에서 재외국민 참정권에 관한 관심이 높아져 가고 있다. 특히 2004년 하반기에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경쟁적으로 관련 법안 (선거법 개정안)을 제출한 일이 있다. 지난 2월 1일 김덕룡 의원이 선거법 개정안을 발의한 것을 포함하면, 현재까지 의원 제출 관련 법안이 총 5건에 달하고 있다. 이와 때를 같이 하여 NGO단체 ‘재외국민참정권연대’가 발족하여 현재 재외국민 부재자 투표의 부활 요구와 함께 재외국민 전반에 대한 참정권 부여를 촉구하는 서명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www.toworld21.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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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득 변호사 유고)
金敬得弁護士追悼文集編輯委員會,『弁護士金敬得追悼集』(新幹社, 2007. 2), pp. 310-314.
■ 본국(남북한) 사회에 대한 제언
재일 한국 조선인은 일본의 국적차별을 견디면서 본국 국적을 유지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후 60년간 그들은 본국 사회에 대한 국정참정권을 부정당해 왔다. 국정참정권은 국민의 기본적 권리이며 재외국민도 예외가 아니다. 남북 분단의 현실 아래에서 한국과 북한 어느 쪽을 본국으로 생각할지에 관하여 그들의 견해는 달라질 수 있다. 한국 헌법과 북한 헌법에 비추어 볼 때, 그들은 양국의 국민이 된다. 양국 정부는 재외국민에게 국정참정권을 인정할 경우에 재일 한국 조선인 모두에게도 이를 인정한다는 것이 논리적 귀결이다. 이것이 남북한 정부에 대한 국정참정권을 이중으로 인정하는 것이 된다고 하는 비판이 있다고 한다면, 어느 쪽 국가의 국정참정권을 행사할 것인가는 재일 한국 조선인의 개별적인 선택에 맡기면 될 것이다.
예를 들어 한국은 인구 약 20만 명에 한 명 정도로 국회의원 수가 배정되고 있다. 오늘날 재일 한국 조선인을 총 60만명으로 본다면, 일본 열도를 3등분하여 각각의 지역에서 19살 이상 국민에게 국정참정권을 인정하고 재일동포의, 재일동포에 의한, 재일동포를 위한, 선거를 통하여 참으로 그들의 총의를 나타내는 대표자를 한국 국회의원으로 선출해야 한다. 이러한 국회의원 선거가 4년에 한 차례 시행되고 대통령 선거가 5년에 한 차례 시행된다면, 그러한 선거를 통하여 재일 한국 조선인의 바람직한 모습, 본국에 대한 제언 등이 활발하게 논의될 것이다. 그것은 앞으로도 일본에서 그들이 본국 국적을 유지하며 살아가기 위한 기본적 권리이다.
■ 일본 사회에 대한 제언
재일 한국 조선인은 일본의 지역사회에 거주하는 주민이다. 민주주의의 기본은 지방자치에 있으며 지방자치의 기본이 주민자치에 있는 이상, 일본의 지역사회에 영주하는 그들에게 일본의 지방자치 참정권을 인정해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지난 (2005년) 6월 30일 한국 국회에서는 19살 이상의 영주외국인에게 지방자치단체의 의회의원과 단체장에 대한 선거권을 인정하는 법안이 통과되었다. 일본에서는 1998년 10월 民主黨과 公明黨이 공동으로 처음으로 영주외국인 지방참정권 부여 법안을 국회에 제출했으며, 1999년 10월에 自民黨 自由黨 公明黨의 3당 연립정권이 발족했을 때 정책협정 가운데 지방참정권법을 성립시킬 것을 포함시킨 일이 있다. 그러나 관련 법안이 4차례나 제안되었으면서도 아직 성립을 보지 못하고 있다.
재일 한국 조선인 등 특별영주자들에 대해서 외국인참정권 대신에 일본 국적을 적극적으로 부여하는 법안을 성립시켜야 한다는 반대론도 있다. 하지만 특별영주자 이외에 31만 명을 초과하는 일반영주자들이 있으며 이들이 수년전부터 매년 4만명씩 증가하고 있는 상황에서 국적 취득법안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전후 60년에 걸쳐서 일본사회에 정주하면서 5세(世) 탄생의 시대를 맞고 있는 재일 한국 조선인은 일본과 남북한 사이의 민족적 대립 감정을 완화하고 상호 이해를 심화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가교적 역할을 담당할 수 있는 존재이다. EU에서 지방참정권의 상호 개방이 실현되고 있는 것처럼, 동아시아에서도 정주외국인의 지방참정권을 상호 인정하는 일이 다민족 공동사회 실현과 동아시아 공동체 구축을 향한 착실한 첫걸음이 될 것이다. 그것은 동아시아의 전후 과제인 국가간 민족간 nationalism 대립의 완화와 역사의 청산으로도 이어질 것이다.
일본 국회에 신속하게 외국인 지방참정권을 실현시킬 것을 요구하고 싶다.
■ 재일 한국 조선인 사회에 대한 제언
재일 한국 조선인은 한일간 북일간 중요한 가교적 역할을 담당하는 존재이다. 그러한 존재로 계속 남을 수 있기 위해서는 그러한 존재다운 의지와 자각을 지닌 재일 한국 조선인으로서의 교육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60년에 걸친 남북 분단의 영향을 받아 재일 한국 조선인 사회의 민족학교는 현재 경직화되어 있고 쇠퇴해 가는 위기에 처해 있다. 앞으로의 한일관계와 북일관계 그리고 동아시아에서 자신의 역할을 자각하는 참된 민족교육을 확립하기 위해서는 재일 한국 조선인들이 총의와 예지를 결집하여, 새로운 민족학교를 하루라도 빨리 설립할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