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원수는?
마10:34-39
완도 전도 수련회-참석, 은혜받고 왔습니다.
노숙자, 중독자, 조폭 출신, 후배, 부산 사람들도 있었다.
버스킹 찬양 전도, 수요오전 예배 말씀 전했다.
*마태복음 10장 34절–37절 (개역개정)**
본문은 최고의 사랑이 최고의 관계를 만듭니다
*중년=자아가 파괴된 채로 삶을 포기한 사람=알콜 중독-삶이 엉망진창
아버지~학대, 성폭행 당함-남자 아이-성적 정체성 파괴-결혼-동성애에 빠짐
정상적인 가정을 꾸리지도 못함, 아버지를 저주하고 원망, 예수 믿고 간증
아버지가 나를 사랑한 것이 생각남-산에서 약초도 캐고 뭘 잡고~
중요한 것-그것은 그 아들 줄거니 손대지 마, 아들만은 손되어도 됨
*도입/우리가 관계 속에서 깊은 상처를 입는 이유는?
가장 깊고 밀접한 가족 사이에 문제가 발생하는 이유는?
전 날의 사랑의 맹세와 다짐은 어디 가고?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1. 잘못된 방식으로 사랑하기 때문이다. 35~36
사람의 원수가 집안 식구?
35.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버지와, 딸이 어머니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36.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
-밀접한 가족 관계 단어:부자~, 모녀~, 시모 며느리~ 가장 친밀한 사이~
둘 사이의 질곡은 더 깊어집니다. 멀어지기도 하는 이유? 원수로 돌변
사랑이 과해지면 집착, 상대를 향한 기대가 커지면? 종종과 실망으로 바뀜
-기대치가 높다. 과도한 집착:나는 사랑한다고 한 마디하는데 가시처럼 박힘
-나는 그런 말을 했는지도 몰라요, 상대방은 그런 말에 피를 흘림
-괴로워한다. 가능하면 자녀가 성인이 되면 충고는 절제, 사랑과 격려하라
-세상에서 힘들고 지친 영혼이 가족에게서 힘을 얻는다.
-가정, 가족은 안전 그물망과 같다. 양들을 맹수로부터 지켜주는 울타리~
-만약 밀접한 가족 관계에 균열이 생기면? 그물망~사라짐, 찢어짐
보호막 울타리가 무너짐과 같다.
*직장 생활하는 청년~공무원-대민관계-60~70대 어르신들의 민원처리
스트레스~ 모처럼 아버지 집을 방문~ 힘든 이야기를 아버지 털어놓음
야 그것도 하나 못 견디냐? 아버지 입장에서 이야기함
청년은 그냥 내 이야기 털어놓고 위로를 받으려 함, 아버지 반응은?
청년이 폭발해서 한 밤에 집 나와서 찬 안에서 한참 울다가 직장 복귀
*테너-김동규-이태리 유학-대성한 가수-이혼-공황 장애-집을 왔다.
어머니가 첫 번째 한 말은? 밥은 묵었냐? 바지가 다 젖을 정도로 통곡~
지금은 어머니와 행복하게 살고 있다. 밝게 환하게~ 즐겁게~
본문은 밀접한 관계의 상처로 위기에 빠진 우리에게 해결책을 제시
-예수님은 사랑을 포기하라는 뜻이 아니다.
-모든 관계의 중심에 예수 그리스도를 두고 사랑의 우선순위를 재설정하라
-거룩한 사랑으로의 초청이다. 그동안 예수님 중심의 가족관계 설정을 다시 디자인하라, 새롭게 만들라는 것이다.
-가족 갈등의 핵심은?
상대를 내 인생의 중심에 둔다면? 행복의 조건? 위기는 시작됩니다.
상대방을 하나님 자리에 놓는 순간, 그 사랑은 서로를 짓눌러 관계에 균열
상대방을 내 욕구 충족의 대상으로 할 때에 문제가 일어남.
-어린 자식을 자신의 성적 욕망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짐승보다 못함
인간의 죄성이 자녀 영혼을 망친다. 한 인생을 파괴시킴.
우리 가운데 그런 분은 없다. 그러나 정도의 차이는 있다.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는 상대방을 진정한 인격체로 존중할 때에 진정한 사랑 최고의 가족이 되는 것이다. 본문은 가족들이 서로 원수가 된 상태를 그림.
* 예수님은 가족을 미워하라는 것이 아니다.
* 34절 나는 화평을 주러 온 것이 아니다. 검을 주러 왔다?
*원어-‘칼’은 전쟁에서 쓰는 거대한 장검이 아니다.
동물을 잡거나 정밀하게 베어내는 데 쓰는 작은 단도=수술용 칼이다.
예수님이 가져오신 ‘칼’은 무자비한 파괴를 위한 무기가 아니다.
예수님이 ‘칼’은 부패한 부분을 도려내는 영적 수술 도구이다.
* 예수님이 들고 오신 칼은 부패한 관계를 도려내는 영적 수술도구입니다.
하나님보다 가족의 눈치나 기분을 먼저 살피는 우상숭배적 관계는
반드시 균열이 생깁니다.
* 예수님을 바로 믿기 시작할 때 가족 내 가치관의 충돌이 일어나는 것?
당연한 과정입니다. 이 불화는 관계의 파멸이 아니다
잘못 맺어진 영적 질서가 바로잡히는 거룩한 진통!
내 삶에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로 세우기 위해 단호하게 잘라내야 할
‘거짓된 가짜 화평’ 칼로 베어내라는 뜻이다.
진리를 떠난 인생=예수님을 나나지 못한 영혼은?
일평생 가짜 화평으로 산다. 지금 현재는 문제가 없다.
그러나 때가 관계의 피로가 누적어 폭발한다.
예수님 없는 영혼은 가족관계, 밀접한 사이라도 수술부위 잠시 봉합한 상태
어떤 면에서는 잠시간의 휴전이요, ‘타협’이다. 언제 전쟁 발발?
*진리와 비진리, 영적 결단과 육신적 타협을 정밀하게 갈라놓는 분리의 도구*진리 앞에서 적당한 타협이란 없다,
죄와 분리시키라, 만약 이 분리가 일어나지 않으면
가정 내에 필연적인 긴장과 갈등이 생김을 예고
*35 불화하게 하려 함: ‘둘로 쪼개다’, ‘양분하다’라는 뜻을 가진 단어
신약성경에서 오직 본문에만 등장하는 단어입니다.
-어떤 소녀가 친구의 전도로 교회, 부모는 불신자, 신앙고백-반대 부인 정죄
결국은 집를 나옴, 신앙생활을 끝까지 이어나감, 교회에서 남편을 만남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됨, 가족과는 원수 사이~
*예수님의 의도는 가족을 파탄 내는 것에 있지 않습니다.
미가 7장 5~7절
세상 및 불신 가족과의 가치관 충돌로 인해 발생하는 구조적 균열*설명
6절 "아들이 아버지를 멸시하며 딸이 어머니를 대적하며 며느리가 시어머니를 대적하리니 사람의 원수가 곧 자기의 집안 사람이리로다.
왜?? 선지자 미가가 목도했던 남유다 사회의 도덕적·영적 부패가 극에 달한 상황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가장 두텁고 견고해야 할 가족 간의 신뢰와 사랑마저 무너지고,
서로를 불신하며 대적하는 비극적인 현실을 보여줍니다.
신약성경에서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을 세상에 보내실 때, 마지막 때의 혼란과 신앙으로 인한 갈등을 설명하시며 이 구절을 인용하셨습니다.
*누가복음 12:49 내가 세상에 불을 던지러 왔다. 화평-분쟁.
53 * 마10:35~36
미가서 7장 7절 이러한 절망적인 사회적 현실 속에서도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구원의 하나님을 기다리겠다는 선지자의 결단과 소망으로 메시지가 연결됩니다.
*예수를 그리스도라 신앙고백함으로 빚어진 관계의 오류를 수술하라는 것
-내가 화평을 주러 온 것이 아니다. 나는 칼을 주러 왔노라, 불~ 분쟁~
2. 예수님 향한 사랑이 최고의 사랑
내 십자가를 질 때, 소유욕이 아닌 섬김의 사랑이 시작됩니다 (38절)
*예수님은 모든 인간적 애정의 근본이자 1순위가 되어야 함을 강조하십니다.
*거룩한 거리두기:**
예수님이 내 삶과 관계의 중심에 들어오시면,
상대방을 ‘내 욕망의 채움판’으로 보던 시선이 멈춥니다.
주님을 통해 상대를 바라볼 때, 집착이 아닌 존중으로 대하는 건강한 거리 와 참 자유로움이 생겨납니다. 삶에 여유와 미소가 산소처럼 솟아오른다.
우리는 자주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내가 너한테 어떻게 했는데”라며 관계에서 내 지분과 권리를 주장합니다.
그러나 예수님 중심의 관계는 권리 주장이 아닌 ‘십자가’에서 시작됩니다.
* 자기 십자가를 지는 삶:
* 십자가는 상대를 내 뜻대로 바꾸려는 강요를 내려놓는 것이다.
* 상대의 한계와 허물을 내가 짊어지는 것이다. 부족함을 내가 대신 채움
* 소유에서 섬김으로 예수님이 나를 위해 십자가를 지셨듯,
-가족과 이웃을 내 소유로 삼으려는 집착은 곧 자기 사랑이다.
-주님의 마음으로 섬기는 자리로 나아가는 것이 자기 십자가를 지는 삶
*나를 비워낼 때, 주님의 사랑으로 관계가 살아납니다 (39절)
내 힘, 내 자아, 내 기쁨만을 지키려 할수록 관계는 오히려 피폐해집니다.
그러나 주님을 위해 나를 비워낼 때 비로소 관계를 살리는 참된 사랑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잃음으로 얻는 신비:자기 고집과 자존심
상대를 통제하려는 욕망을 주님 앞에 내려놓는 사람=자기 목숨을 잃는 자
주님이 주시는 생명력 있는 사랑을 공급받습니다.
* 샘물 같은 사랑의 공급은 하늘로부터 임한다.
* 인간의 사랑은 조만간 밑천이 드러납니다. 언제 고갈될지 모른다.
예레미야 2:13 내백성이 두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파려 한 것인데 그것은 물을 가두지 못할 터진 웅덩이들이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최고로 사랑하여 그분으로부터 공급받는 사랑은
결코 고갈되지 않는다. 갈등과 균열이 가득했던 가족과 관계를 온전히 소생
* 나보다 더 사랑하는 (φιλο̄ν ὑπὲρ ἐμέ)
* Phileō 끈끈한 정, 신뢰, 혈연적 애정.
* ‘~을 초월하여’, ‘~보다 위에’라는 위치적 의미를 가집니다.
* 성경은 부모와 자녀를 사랑하는 것 자체를 금하지 않습니다.
문제는 그 사랑이 하나님을 향한 우선순위(우상숭배)보다 더 상위에 놓일 때 질서가 어긋난 사랑은 결국 서로를 집착~ 조종하게 만들어 관계의 파국
우리는 늘 십자가 사랑=예수님 사랑을 반석으로 하여 집이 지어져야 한다.
예수님을 중심으로 한 사랑의 관계가 진정한 사랑의 관계가 형성된다.
3. 결론/구속받은 사랑으로의 초대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관계의 갈등을 해결하는 길은 상대를 변화시키려고 애쓰는 것이 아니라, 내가 예수님과의 관계를 바르게 재설정하는 것이다.
하나님보다 자녀의 성공, 부모의 인정, 배우자의 반응을 더 위에 두면
그 관계는 결국 비극으로 끝납니다.
* 내가 먼저 변화되는 말씀의 칼을 타인(가족)의 허물을 베는 데 쓰지 말라,
* 내 안의 고집과 혈기, 통제욕을 베어내는 데 사용해야 합니다.
* 예수 그리스도를 최고로 사랑하는 사람만이,
나에게 상처 준 가족을 십자가의 용서로 품을 수 있습니다.
내 힘으로는 사랑할 수 없지만, 주님의 사랑이 내 안에 채워질 때
집안 식구를 참된 화평으로 섬기게 됩니다.
주님이 가져오신 '칼'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하나님 없는 거짓 평화를 깨트리고,
영적 우선순위를 바로 세우라는 주님의 초청입니다.
내 삶의 제1순위를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 두십시오.
그때 주님께서 여러분의 가정에 세상이 줄 수 없는 참된 화평과 회복의 역사를 시작하실 것입니다.
예수님을 내 삶의 최고의 자리에 모시십시오.
주님을 가장 뜨겁게 진하게 사랑할 때,
비로소 우리는 부모를, 자녀를, 배우자를 상처 주지 않고
가장 안전하고 풍성하게 사랑할 수 있습니다.
삶과 가정이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에 두고 다시 태어나는
거룩한 회복이 있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