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평을 걷다(양수역에서 양평역까지)
1. 최강의 추위가 시작되는 이날, 대한민국에서도 대표적으로 추운 ‘양평’을 걸었다. 양수역 바로 옆에는 멋진 길이 만들어져 있다. 과거 기차가 다니던 철길을 개조하여 길을 만든 것이다. 길은 철길의 흔적을 담고 연이어 이어지는 터널을 통과한다. 갖가지 조명을 미적으로 설치한 터널 내부는 오랜 시간의 흔적을 담고 있는 터널 내부의 거친 질감과 조화를 이루며, 과거 이 곳을 지나던 기차의 추억을 떠오르게 한다. 어렸을 적 외삼촌이 살고 있던 원주의 신림역을 가기 위해서는 청량리에서 중앙선을 타야했다. 그때 계속적으로 이어지던 어두운 터널이 현재 사람들이 걷는 길로 변신한 것이다.
2. 옛 기차길을 따라 걷는 길은 현재의 철도와 나란히 병행한다. 과거와 현재의 기차가 공존하는 장소이다. 이 길의 매력은 과거의 추억만은 아니다. 기차길과 함께 남한강도 같이 흘러가고 있다는 점이다. 차가운 공기 때문에 더욱 화창해진 푸른 하늘 아래 강물은 서서히 얼어가며 겨울의 정점을 향해 흘러가고 있었다. 한 쪽에는 철길이, 다른 쪽에는 강물이 흘러가는, 추억과 낭만이 최상의 조합을 이루는 길이었다. 차가운 날씨에도 제법 많은 사람들이 걷고 있었다. 길을 따라 경의중앙선의 역들을 하나씩 만난다. 적막한 장소에 쓸쓸히 서있는 ‘신원역’과 제법 많은 사람들이 있고 식당도 볼 수 있는 ‘국수역’은 대조를 이룬다. 국수역에는 ‘청계산’으로 올라가는 길안내를 볼 수 있었다.
3. 이 길은 걷기 전용길은 아니다. 자전거와 걷는 사람 모두를 위한 길이다. 그렇기 때문에 길은 편안하게 정돈되어 있다. 아무런 생각없이 무작정 걷다보면 새로운 역이 나오고 그렇게 양평의 중심으로 향하게 된다. 아신역을 지나자 양평의 전경이 눈에 들어온다. 이제 대한민국 대부분 장소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아파트이다. 양평 또한 거대한 신축 아파트가 하늘을 점령하고 있다. 아파트와 함께 현대적인 공원도 동시에 만들어진다. 쾌적하고 편안한 환경이 조성되며 도시는 외형적으로 깔끔한 모습으로 변모한다. 그 과정에서 모든 도시는 표준화된 모습을 갖게 되며 어느 곳을 가도 동일한 반듯함을 가질 뿐이다. 여성들이 아름다워지지만 성형수술로 모두가 유사한 모습으로 개성을 잃어버린 아름다움과 같은 현상이다.
4. 강은 빠르게 얼어가고 있었다. 수심이 낮은 곳에서는 아이들이 걷을 정도로 단단하게 얼었다. 일기예보는 극한의 추위를 예고하고 있었다. 한동안 만나기 어려웠던 추위를 경험할 것같다. 단단하게 얼어가는 강물을 보면서 강원도 지역에서 겨울축제를 준비하는 사람들의 깊은 한숨을 듣는 듯하다. 얼음은 단단하게 얼어가지만 모든 축제가 코로나19 확산의 우려 때문에 중단되었다. 작년에도 축제가 대부분 열리지 못했다. 날씨가 너무도 따뜻해 얼음이 얼지 않았기 때문이다. 올해 너무도 좋은 겨울 축제의 환경이 조성되었지만, 또 다른 복병이 축제의 개최를 막았다. 준비된 계획이 언제나 유동적인 변화에 무력해지고 인간들의 노력도 예기치 못한 힘에 의해 공허해지는 시대가 온 것이다.
5. 내가 선정하는 ‘좋은 길’의 목록에 올린다. 좋은 길의 조건에 많은 부분이 해당되었다. 편안하게 방해받지 않고 걸을 수 있으며, 힘들거나 불편한 장소를 만나지 않으며, 철길과 터널 그리고 강물과 함께 걸을 수 있는 길은 쉽게 만날 수 없는 낭만적인 장소임에 분명하다. 양평의 좋은 점은 양평에서 또 다른 길이 열려있다는 것이다. 양평역에는 강원도와 경상도 지역으로 갈 수 있는 KTX, 일반열차의 시간표가 게시되어 있었다. 떠나온 곳으로 돌아가는 표 대신에 또 다른 곳을 떠나고 싶은 충동을 불러일으킨다. 수많은 여행의 가능성을 담고 있는 장소, 양평역에서는 왠지 가능성이 주는 변수의 많음에 혼란스럽다기 보다는 수많은 선택지가 존재한다는 사실에 기쁨을 갖게 된다. 한반도 동쪽 여행의 중요한 기점으로 ‘양평’을 다시 찾아야 겠다.
첫댓글 양평 드라이브 길은 한강을 끼고 달린다. 카페와 모텔 ㅡ 연인들의 산책과 점심, 데이트 코스로 유명했지만 그 역시 과거의 추억으로 변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