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6일부터 11월 2일까지 일주일간 중국 연변과 길림을 방문하고 돌아오며 짧은 시간이지만 바쁘고 보람 있는 선교여행을 하고 돌아왔다.
이번 여행은 중국 연변 병원이 없는 산골에 열한개의 병원을 세우시고 “해란강의 어부”라는 간증 책을 쓰신 김만식 목사님의 책을 읽은 우리 교회 집사님이 감동을 받고 연변 산골에 병원을 세우게 되어 9월 그 병원 개원식에는 못가고 벌써 첫눈이 내린 10월이 되어서 뒤늦게 가보게 된 것이다.
10월 26일(목) 김 목사님 기숙사, 해당화 식당
새벽 7시, 녹번동 시누이의 집을 나와 인천 공항에서 아시아나 9시 30분 연길행 비행기를 타고 기내에서 식사를 하다. 11시 30분, 연길 공항에서 마중 나오신 김만식 목사님을 만나 택시를 타고 짐을 싣고 연길 백산호텔에 와서 짐을 풀었다.
하루에 25불인데 참 좋은 편이다. 모든 직원들이 한국말을 잘하고 서너 명의 여직원들은 한복을 입고 안내를 하고 거의 한국 손님들이다. 연길시는 조선족 자치주로써 한글 간판이 위에 있고 그 밑에 중국어로 써져 있다.
연변 의과대학 외국인을 위한 김만식 목사님 기숙사에 가서 우리가 가지고 온 선교비와 약품, 양말, 수건, 볼펜 등 선물들을 드리고 김만식 목사님은 우리에게 홍경천과 깻잎가루와 토끼 똥 같은 약을 어떻게 복용하는가를 설명하고 꿀도 주셨는데 이 꿀은 설탕이 하나도 섞이지 않은 진짜라고 하신다.
주일 저녁에 길림에 가는 문제로 박 전도사님과 전화하며 길림에서 가까운 장춘에서 비행기를 타고 한국에 가기로 하고 비행기 표를 바꾸기로 하다.
저녁은 북한에서 경영하는 해당화식당에 가서 은어구이 여섯 마리(6불정도)를 시켰는데 한국의 도로묵 같은 것으로 북한산인데 작고 맛도 별로이고 비싼 편이다. 돌솥비빔밥이 3불인데 맛이 있고 김치와 깍두기가 맛이 있다. 배가 고팠는데 늦게 맛있게 먹었다.
옛날에는 한국 손님들이 많았는데 이북에서 미사일을 쏜 후로는 손님이 뚝 끊겼다고 한다. 손님이 많으면 서비스하는 한복을 입은 어린 예쁜 아가씨들이 노래를 한다고 한다. 이 아가씨들은 이 식당에서 자고 일하고 밖에 나가지를 못해 빛을 못 보아 창백하다.
25세 미만의 어린 처녀들로 몇 년 후에는 바뀌고 성분이 좋아야 이곳에 뽑혀 나올 수가 있을 것이다. 유명한 북한 화가의 그림들을 벽에 붙여놓고 팔고 있었는데 살아있는 것 같은 큰 호랑이 그림이 1800불 돈이었다.
김 목사님은 차도 없고 연변 의과대학 외국인 기숙사에서 11년 동안 살고 계시는데 방 한 칸에 침대와 주방기구와 온갖 잡동사니 물건들이 다 있고 너무나 초라하다. 화장실과 목욕탕은 공동으로 써야 하는 곳이고 쌀을 냄새나는 화장실에서 씻어 가지고 방에 와서 밥을 해야 하고 춥고 썰렁하다.
일일이 택시를 타야 하는 불편함이 있는데 차를 사라고 누가 돈을 주면 번번이 더 급하게 쓸 곳이 생겨서 써버리고 차를 사지 못했다고 하신다.
사모님이 뉴욕에서 2년 정도 더 직장을 다니시고 은퇴하고 연금을 타시게 되면 오셔서 두 분이 함께 남은 생을 이곳에서 헌신할 것이라고 하시다. 이곳은 벌써 눈이 왔고 일 년의 6개월이 추운 날들이다.
공산국가에서 기독교 병원을 열한 개나 세운 놀라운 기적을 이룬 목사님은 차 한 대도 없이 너무나 초라하시어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했고 감동을 주었다.
목사님의 별명은 사기꾼목사, 고자목사, 돈키호테 목사인데 사기꾼 목사는 학창시절에 마리아가 성령으로 아기를 잉태했다고 하니 친구들이 붙여준 이름이고 고자목사는 해병대시절에 상관이 창녀촌에 데리고 가는 인심을 썼는데 순결을 지켰더니 그렇게 불렀고 돈키호테라는 별명은 뉴욕에서 신학교 다닐 때 너무 엉뚱한 일을 저질러서 그런 별명이 붙었다고 한다.
목사님은 남이 생각하지도 못하는 그런 일을 하는 참으로 돈키호테 같은 엉뚱한 면이 있으신 것만은 틀림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