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으로 오세요,
우리 산에서
또 만나요.
“늘 건강과 행운이 가득하길 빕니다.”
♡…먼 시간속의 실종…♡
경포호수 해변과
소금강계곡 그리고
관악산에서
조금은 쌀쌀한 날씨에
바람이 많이 불어도
정말 공기는 좋았어요.
소금강 계곡에 들어
얼음판 위에
볼록 나온 돌 밝고 다니니
40년도 더 된 젊은 시절이
흐릿한 기억의 늪에
돌을 던지 듯 되살아난다.
소금강으로 올라
오대산 중턱의 텐트에서
세 사람이 합숙하게 된 것은
순전히 등산모에 붙여진
여러 산들의 기념배지 때문이었다.
우리들은 금방 친구가 되었고
하룻밤을 같이 진낸 이튿날 아침
그 사내는
정상을 다녀오겠다고 길을 떠났다.
아무리 서둘러도
해 동안에는 돌아오기 힘든 길이었다.
그 사내는 여인을
남겨 두고 가는 것이
못내 아쉬운 눈치였지만
여인의 표정은 태연했다.
그가 떠난 지 한 시간이 채 못 되어
순식간에 먹구름이 몰려오고
주위가 어두워지며
빗방울이 굵어 졌다.
쏟아져 내리는 빗물은
갑자기 개울로 변했고
텐트 안까지 으스스
추위가 몰려왔다.
텐트를 옮길 겨를도 없이
그 속에 갇히게 되었다.
비는 어둠까지도 한꺼번에
몰고 오는 듯 했다.
시커멓게 밀려드는 산그림자는
우리를 당황하게 했다.
텐트 속에 그대로
앉아 있을 수 없었고
여인을 두고 혼자
내려 갈 수도 없었다.
당황한 나는 걱정스레 말했다.
그 사람 어떻게 됐을 까요?
여태껏 돌아오지 않으니 말입니다.
그 사람 돌아오지 않을 거예요.
여인은 남의 일처럼 중얼댔다.
그럼 이 빗속에서
정상을 향했단 말입니까?
아뇨, 하산했을 거예요.
예? 아니 내려가다니요?
여자는 그 말엔
대답을 하지 않았다.
버너 불에 비친
여인의 옆얼굴은
우수에 잠겨 있었다.
좀 뜸했던 빗소리는
또 요란해 졌다.
텐트 밖을 내다보니
칠흑의 어둠이었다.
아무리 기다려도 빗소리는
멈출 것 같지 않았다.
나는 하직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가려 했다.
무서워요,
여인은 애원을 했다.
낮선 여인과 하룻밤을 새우기가
겁도 났고 호기심도 생겼다.
그분 밤중에 돌아오지 않을 까요?
돌아오지 않아요,
우린 헤어 졌으니까요.
네? 헤어지다니요.
그래요 우리는 마지막 결말을
산에서 내리기로 합의를 봤었죠.
그래도 무슨 좋은 타협점이
나올까 기대를 했는데
결국 헤어지기로 결정짓고 말았어요.
그래서 그인 하산 한 거구요.
나는 담요 한 장에 새우잠으로
밤을 새다시피 했다.
고백을 하고 난 뒤라 그런지
그녀의 잠든 모습은 평온해 보였다.
이튿날 잠에서 깨어났을 때
여인은 하산 준비를
서두르고 있었다.
그녀는 어젯밤과 전연
다른 사람이 돼 있었다.
말을 걸기조차 어려웠다.
어젯밤 일이 믿어지지 않았다.
그녀와 산을 내려 왔다.
그냥 헤어지기엔
뭔가 아쉬웠다.
그녀는 악수를 청해왔다.
햇빛이 그녀의 머리칼에 반짝였다.
산으로 오세요,
우리 산에서 또 만나요.
햇빛을 등에 지고 떠나가는
그녀의 뒷모습은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산에서는,
우연히 어깨를 마주 쳤다거나
높은 곳을 오를 때
손목을 잡아끌어 준다거나
텐트가 인접해 있다든가
그런 단순한 동기만으로도
친해 질 수 있다.
그러나
산을 내려오면
미련을 버려야 한다.
나는 멀어져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한참동안이나 바라보았다.
그녀는 한 번도 돌아보지 않은 채
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나는 한밤중에도 곧잘
산을 향해 떠나고 싶을 때가 있다.
머릿속엔 이상 하리 만큼
그녀에 대한 추억이 떠나지 않아서다.
텐트 속에서 하룻밤을 세웠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어서
가끔 한 번 더 그녀를
만나고 싶어진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그녀의 얼굴 모습은
기억에서 희미해졌다.
가끔 정상에 오르는 꿈을 꾼다.
올라도 오라도 가파른 산은
저만치 물러섰고
정상은 까마득한
추상의 그림 같아지고
산속에서
산의 실체를 잃고 헤매다
등반을 단념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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