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은 아름답다” 하지만 “시든 꽃은 아름답지 않다” 무슨 선문답이 아니다. 시든 꽃은 아무도 사지 않는다. 아직 만개하기 전이라야 잘 팔린다. 꽃을 사는 데 꽃말이 결정적 핑계를 제공하기도 한다. 입대하기 전에 애인에게 물망초를 안기려는 젊은이는 “날 잊지 말아요”라는 꽃말을 전하고 싶을 것인데, 2000년 여섯 번째 ‘풀꽃상’을 지리산의 물봉선에 드린 ‘풀꽃세상을 위한 모임’은 “나를 내버려 두라”는 꽃말을 되새겼다. 어머니 품 같은 지리산이 아닌가. 오염된 낙동강을 대신하는 식수용 댐으로 지리산을 수장할 수 없다는 의지를 표명한 거다.
‘인류복지’를 앞세우는 우리 생명공학자 중 어떤 이는 파란 장미를 개발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파란 장미가 인류복지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그이는 밝히지 않았지만, 파란 카네이션으로 큰돈을 벌어들인다는 외신보도는 연구비 제공자를 움직였는지 모른다. 하지만 파란 장미 역시 일본 자본의 지원을 받은 외국 생명공학자가 선점하고 말았다. 그렇다고 끝난 건 아니란다. 그 아직 장미는 파란색이 흐리단다. 왜 세계는 파란 장미 개발에 그리 성활까. 인류복지가 탐나기 때문일 리 없다. “불가능!”이라는 꽃말에 도전하려는 생명공학자를 자본이 한껏 자극했을 게 틀림없다.
백합의 꽃말은 “순결”이다. ‘순백의 백합’이라고 말한다. 영어로 lily. really와 발음이 비슷해 ‘lily white’는 ‘really white’로 들린다. 그래서 백합을 백인들이 특히 좋아한다던데, 그를 반영했을까. 유럽의 어떤 생명공학자가 백합에 노란 하트무늬를 넣는 연구에 매진한다는 소문이 들린다. 하트무늬 백합은 페튜니아의 파란색 유전자를 넣은 장미와 차원이 다르다. 에사키뿔노린재의 등에 선명한 노란색 하트무늬도 분명 유전자에 의할 터. 소문이 사실이라면, 바야흐로 곤충의 유전자를 꽃에 넣는 연구가 펼쳐지는 셈이다.
우리나라를 포함하여 중국과 일본 일원에 분포하는 에사키뿔노린재는 암컷이 12밀리미터, 수컷이 그보다 작은 10밀리미터의 크기로 햇살이 비치는 낮은 산의 낙엽활엽수 주변에 드물게 모습을 드러낸다. 뾰족한 노란 색의 삼각 머리판 뒤로 밝은 갈색의 등판이 편평하게 이어지다 둥글게 닫히는데, 그 한 가운데의 역삼각형 등판에 누가 가는 붓으로 그렸는지, 노란색 하트가 예쁘고 선명하다. 6월 층층나무나 말채나무 잎 뒷면에 50개 이상의 알을 붙여 낳아 7월 말 부화할 때까지 보호하는 모성을 가진 에사키뿔노린재는 작은 성체로 우리 땅에서 겨울을 난다. 결코 유럽의 땅이 아니다.
유럽의 생명공학자가 극동아시아에 와서 에사키뿔노린재를 가지고 갔는지 여부는 알 수 없다. 유럽에서 하트무늬를 가지고 있는 곤충이나 꽃이 있는지 역시 알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에사키뿔노린재 등의 노란 하트무늬는 탐나게 예쁘다는 사실이다. 생명공학자의 상상력에 상품가치를 계산할 자본이 연구비를 제공할 가능성이 없지 않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아시아의 에사키뿔노린재가 유럽으로 장도에 올랐을까. 어쩌면 우리 땅의 에사키뿔노린재가 아닐까. 연구를 위해 수많은 에사키뿔노린재를 사육하면서 희생시켜야 하겠지만, 수준이 떨어진다고 생각하기 싫은 우리 생명공학계도 에사키뿔노린재를 새삼 주목하고 싶을지 모른다.
백합 꽃잎에 노란 하트무늬가 어떻게 발현되면 좋을까. 큰 무늬가 가운데 하나? 작은 하트무늬들이 두 줄로? 아무튼 문제는 에사키뿔노린재의 유전자를 먼저 분석해야 한다는 점일 텐데, 쉽지 않겠다. 하트무늬에 관련된 유전자가 꽤 많을 텐데, 에사키뿔노린재의 염색체 어느 곳에 필요한 유전자들이 어떻게 배열돼 있는지 알아야 하고, 그 유전자들을 어떻게 백합에 이동시켜야 할지 파악해야 한다. 잘 못 넣으면 하트무늬가 찌그러지거나 뒤집어질 수 있다. 그러면 연구개발비를 초월할 상품가치는 발생하지 않을 게 아닌가.
생명공학이여 안심하라. 이미 150년 전 저 유명한 에디슨이 말씀하셨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고. 무릇 대부분의 연구개발이 그랬듯, 다만 연구 시간과 설비와 인력과 함께 연구비가 모자랄 뿐이지 않은가. 숱한 실패와 좌절을 딛고 개발에 성공한 수많은 의약품과 항생제와 제초제와 살충제들을 보라. 반도체는 어떤가. 연구와 개발에 들어간 비용을 한순간 보상한 상품들이 시장에서 불티나게 팔리지 않던가. 기대가 큰 만큼 상업주의는 기다릴 것이다. 2월 14일과 3월 14일, 높은 가격을 마다하지 않을 연인들 앞에 내놓을 순간을
걱정이 없는 건 아니다. 손에 무해하다는 주방세제를 아기용 분유로 착각하고 따뜻한 물에 탄 신랑이 꿀꺽 삼키고 죽은 일본의 사례를 무시하면 안 된다. 유전자조작 목화의 잎을 먹은 인도의 양들이 소화기관에 질산이 발생해 죽은 사례로 보아 조작된 에사키뿔노린재의 유전자가 위장으로 이동해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을 고려해야 할지 모른다. “이 백합은 어린이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 보관하시고, 시들면 진한 황산으로 녹이거나 잘 밀봉해 소각 처리해야 합니다!”라고 경구가 필요할지 모른다. 개발에 참여한 생명공학자는 조작된 유전자의 수평이동 부작용을 사전에 인지할 수 없다. 하트무늬 백합에 마음을 열어 결혼한 부부가 아이를 낳았을 때, 아이의 몸에서 노란 하트무늬가 발현될 가능성은? 당연히 모른다. 눈을 질끈 감고 무시하자. 확률이 낮을 테니.
호수 표면에 서성이는 소금쟁이도 노린재 종류다. 호수 바닥의 맹주 물장군도 그렇다. 하지만 우리나라에 600여 종에 달하는 노린재 대부분은 물 밖에서 잎을 먹는다. 그래서 해충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살충제를 뿌린다. 온갖 과일과 곡식을 축내며 뽕나무 잎을 갉아먹기 때문인데, 노린재는 천적에게 잡히면 냄새를 낸다. 손가락이 한동안 노릿하다. 그래서 노린재다. 단순히 냄새로 천적을 피할 수 있었던 시절, 자연에서 노린재는 천적을 두려워하는 곤충의 일종이었는데 살충제와 제초제가 흥건해지자 해충이 되었다.
일부 친척과 달리 낙엽활엽수 잎을 조금 축내고 여름날 태어난 에사키뿔노린재는 겨울을 어떻게 날까. 단풍철이 지나 사람들이 조용해지면 낙엽 속에 들어가 동면할까. 곤충학자들은 궁금할 텐데, 에사키뿔노린재는 사람의 연구 분야에 통 관심이 없다. 타고난 대로 살아가는 에사키뿔노린재는 꽃이 아닌데, 등의 무늬를 탐내는 사람 때문에 몹시 성가시다.
첫댓글 환경단체 소식지에 보낸 올해 마지막 동물이야기의 주인공은 에사키뿔노린재입니다. '스스로 그러한' 자연을 자연 그대로 보려하지 않고, 돈벌이 대상으로 생각하는 사람, 그런 사람에 의해 교란되는 생태계, 그 생태계에서 내일을 걱정해야 하는 우리와 우리 때문에 고통받는 주변 생물을 돌아보았습니다. 생명공학이 그 혼란을 일으키는 첨병입니다.
인류복지에 결코 도움이 될 수 없는 그런 연구에 많은 시간과 많은 연구비를 들여서 하고 있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