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SI 요원 한종호
▲ <밀실에 갇힌 예수> / 한종호 지음 / 꽃자리 펴냄 / 408쪽 / 1만 7000원
"오랫동안 기독교 언론 언저리에서 활동해오면서 직접 보았던 한국교회의 실상은 너무나도 암담했습니다. 교회에 속한 자로서 교회에 대해 비판의 칼을 드는 심정은 우울하고 무겁습니다(7쪽)."
한종호. 그를 알고 지낸 지 벌써 10여 년이 지난 듯하다. 그동안 그에게서 본 것은 창호지를 베는 장검(長劍)의 날카로움이었다. 이런 점에서 그는 검객(劍客)이다. 그가 칼집에서 칼을 뽑아 치켜들 때, 칼날이 떨면서 울리는 소리에 모골송연(毛骨悚然)하다. 그러나 그는 그냥 무사(武士)가 아니다. 그는 현대적 종교 감시관이며 예언자이다. 한종호는 종교적 불의를 결코 묵과하거나 좌시하지 않는다. 한국교회 설교 비평을 시작한 이도 한종호이다. 그런데 이게 다 한국교회를 그만큼 사랑하기 때문임을 눈치채지 못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한종호는 '한·종·호', 즉 '한국교회에 종교다움을 호소하는' 사람이다.
한종호는 선비이다. 칼이 되는 글을 쓰려면 내공이 깊어야 한다. 그는 타고난 예리함과 문장력, 그리고 집요함, 즉 선비적 근성을 갖고 있다. 숭(崇)·도(道)·명(明)·화(和)·법(法). 높이어 기리다, 마땅히 향하다, 부르심에 답하다, 스미어 어울리다, 그리로 흐르다. 한종호는 종교적 본질을 다섯 한자로 간결하게 정의하고 명쾌하게 풀이한다. 이 다섯 글자에 그가 말하려는 것이 다 담겨 있다.
무엇보다 한종호는 검사(檢事), 아니, CSI(criminal scene investigation) 요원이다. 그가 조사하는 범죄 현장은 바로 한국교회이다. 그런 점에서 그는 CSI, 즉 '교회 죄 수사관(Church Sin Investigator)'이다. 그런데 그가 담당하는 범죄 사건은 한국교회 유력자들이 예수를 밀실에 가둔 강력 범죄이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현실의 교회는 예수님을 밀실에 감금하고 있습니다. 교회의 제도 속에서 질식시키고 있고, 교회의 탐욕을 위해 진짜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아야 하는 것이 되고 만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의 주인공은 예수님이 아니라 교권을 쥐고 있는 이들이 되고 말았습니다. 교회가 보여주고 있는 것은 예수님의 삶이 아니라, 이들의 힘입니다(8~9쪽)."
이 얼마나 엄청난 사건인가! 한종호는 밀실에 갇힌 예수를 찾기 위해, 예수가 밀실에서 질식사하기 전에 구하기 위해, 예수를 다시 광장으로 데려오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관련 우범자들을 체포하고 그들을 예리하게 심문한다. 그는 마음이 무겁다. 그가 끈질기게 조사해 온 한국교회는 세상을 정화하고 깨끗함을 유지하게 해주는 세상의 소금이 아니라 세상을 병들게 하는 슈퍼 '세균'이(었)기 때문이다.
용의자 김 트리오
나는 한종호가 쓴 책을 읽으면서 거의 전적으로 그에게 동의한다. 그러니 혹시라도 내가 그의 단점을 들춰낼 것이라고 기대하는 사람들은 실망할 것이다. 예전에 그가 쓴 전병욱에 관한 책을 읽으면서, 나는 한종호로 빙의(憑依)하기도 했다. 한종호는 이 책 한 가운데서 "기독교는 이 시대에 종교로서 계속 필요한가?"라고 질문한다. 이러한 배치는 매우 의미심장하다. 그가 이 책에서 말하려는 핵심이 바로 그것이라는 사실을 여실하게 보여 준다. 그는 염려한다. "결국 한국교회 안에는 예수님이 계시지 않는 게 아닌가 하는 회의가 생겨납니다(6쪽)." 종교 검사로서의 한종호는 바로 이 의혹에 주목한다. 그리고 예수 실종 의혹 사건을 수사하기 시작한다. 도대체 한국교회에서 예수는 어디에 계시는가?
한종호가 수사한 바에 의하면, 한국교회에 예수가 없다는 것이다. 한종호는 이 엄청난 사실을 밝혀낸다. 그런데 왜 예수가 없는가? 한국교회가 예수를 체포해서 밀실(密室)에 감금해버렸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들이 지금 예수라고 내세우는 것은 누구인가? 그건 가짜이다.
예수의 실종, 그리고 밀실에 갇힌 예수. 한종호는 이 충격적인 사건을 파헤친다. 그러면서 그는 상황의 위급함을 알려 준다. 과거 비민주적 시절, 우리는 밀실의 음험함과 섬뜩함을 뼈저리게 체험했기에, 무엇보다 '밀실'은 우리를 고문과 죽음의 공포에 사로잡히게 한다.
"예수가 밀실에 갇혔다!" 예수 스스로가 위험을 피해서 패닉룸에 자신을 가둔 게 아니라, 누군가에 의해서 강제로 어딘가에 갇혔다는 것이다. 그리고 더 큰 문제는 그곳이 어디인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남산의 지하 고문실, 예레미야, 그리고 벤허가 갇혔던 지하 감옥, 아니면 앤이 천일 동안 갇혔던 런던탑일 가능성도 크다. 아무튼 밀실이라는 곳은 탈출의 귀재도 빠져나오기 힘든 '큐브'이다. 어디가 현실이고 어디가 몽환인지 알 수 없는 매트릭스이다. 그들은 예수를 이 밀실에 가두고, 그들이 원하는 인간으로 개조하려는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아무도 모르게 영원히 그곳에 가둬 놓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강제로 밀실에 갇혀 고문당하는 예수는 지금 그곳에서 탈출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도대체 누가 예수를 밀실에 감금했단 말인가? 한종호는 도스토옙스키가 쓴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 등장하는 대심판관, 즉 예수를 죄인으로 몰고 간 대심판관들이 한국교회에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학부생들을 대상으로 이번 학기에 말씀과 정치라는 과목을 강의하는데, 이 과목 개설은 "도대체 한국교회는 왜 이럴까? 어쩌다 이런 지경에 빠졌는가"를 심각하게 고민한 결과이다. 한국 기독교는 어떻게 성서적인 기독교와 이다지도 다르단 말인가? 구약시대의 예언자들이, 그리고 예수가 제 목숨 바쳐 모범을 보이신 그 종교와 어쩌면 이렇게나 다를 수 있단 말인가?
나는 그 까닭을 일본 제국주의와 미국 제국주의에서 찾았다. 이 점에서 나는 한종호에게 전적으로 공감한다. 그는 예수를 밀실에 가둔 자들이 "일제시대·미국 지배 체제 소산물이 결합해 만들어낸 기득권층"이라고 말한다. 한마디로 그들은 합성 괴물이다.
그 기득권층들이 바로 예수를 밀실에 감금한 자들이다. 한종호는 그들의 수괴들을 거명한다. 그들은 '김 트리오'인데, 팀 이름은 '지금은 김 트리오 전성시대', 줄여서 '지김전'이다. 김진홍, 김장환, 김동호. 그리고 객원 멤버 김홍도. 이들이 내 거는 구호는 '모르는 게 약', '식자우환'이다. 그들은 단순 무지 무식의 환상적인 세상을 동경한다.
그들 중에서 김진홍이 보여 주는 무지함과 무식함은 단연 금메달감이다. 김진홍은 정확하게 김홍도보다 열 배 단순 무식 과격하다. 그는 주변을 경악케 하는 사고의 급격한 전환. '줄서기'라는 독재 시절 국민 계몽용 구호를 정치적 기술로 인식하는 원초적 권력 추구 본능을 부끄럼 없이 드러낸다. 그리고 '권력자의 영원한 친구'로 명명하는 김장환이 평생 한결같이 보여준 권력 지향적 삶. 그는 약자에게 한없이 강하고 강자에게는 한없이 약한 현실 적응의 귀재이다. 그리고 김동호가 보여 주는 노련한 줄타기는 순진한 사람들을 속이기에 충분하다. 그는 청부(淸富)가 아닌 청부(請負)업자이거나 청부(請富)업자임에 분명하다.
네 죄를 내가 알렸다?
청부(請富) 기획사 소속 가수들인 김 트리오가 애창하는 노래는 "'한 손에는 권력, 다른 손에는 재력을 쥐고' 나가 싸우자"이다. 이런 점에서 그들은 이 시대의 새로운 향토예비군 명예 중대장들이다. 그리고 그들이 부르는 응원가는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이다. 이 세상에서 모든 것을 다 누리고 가자. 권불십년(權不十年)이고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 권력무상(勸力無常)이요 인생무상(人生無常)이다. 그러니 힘 있을 때 다 얻고 맘껏 누리고 살자. 할렐루야! 이렇듯 세상 이치를 통달한 이들이 좋아하는 탑 쓰리(Top 3) 성경 구절은 다음과 같다.
1. 그 시작은 미미하지만 그 끝은 창대할 것이다.
2. 할 수 있거든 이 무슨 말이냐? 믿는 사람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3. 나에게 능력을 주시는 분 안에서 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세상이 만만치 않고, 냉엄한 세상에 적응하지 못하면 결코 살아남지 못한다는 사실을 태어날 때부터 간파한 인생살이 천재들이다. 무엇보다 그들은 다윈을 능가하는 진화론 옹호론자들이다. 적자생존(適者生存)의 논리에 빠진 김 트리오적 한국교회 지도자들은 무전유죄·유전무죄의 복음을 전파하느라 여념이 없다. 그리고 순복음교회가 보여 주는 '세속적 성공 주의와 결합한 성령 운동'은 모든 것을 창조 이전의 혼돈 상태로 돌려놓는 놀라운 퓨전의 능력, 그리고 앞날이 캄캄한 선견지암(先見之暗)의 결과이다. 그들이 추구하고 실현하려는 '경제성장과 교회 성장의 맞물림'은 한국교회를 성장시킨 것이 결국 박정희였음을 입증한다. 그래서 그들은 박정희와 이건희를 영웅으로 숭배하려 한다. 아, 이 치기 어린 유아기적 사고 구조여!
그런데 예수를 정복 군주의 표상으로 삼고 십자가를 앞세우고 세계를 정복하려는 기독교 제국주의를 주창하는 그들에게서 드러나는 가장 큰 문제는 무엇보다 그들 자신들이 얼마나 위험한 세균들인지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한종호는 이렇게 말한다.
"진짜 예수는 밀실에 갇혀 죄수처럼 지내고 있는데, 이들이 파는 가짜 예수의 오래된 약(구약)과 새로 만든 약(신약)이 교회라는 시장에서 팔리고 있다. 그걸 먹으면 어찌 될까? 바로 그게 아편이다. 세상의 고난을 모르는 척하고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 정신이 몽롱해지는 아편 말이다. 그걸 먹이고 있는 한국교회는 결국 아편 장사 아닌가? 세상에 어떤 이들이 고통으로 신음하고 있는지, 누가 부패한 권력으로 제 사심을 채우고 있는지, 어떤 부정의가 판을 치고 있는지 도무지 관심이 없게 만든다. 아편에 빠진 종교인들은 그래서 하나님과 대적한다(212쪽)."
아무도 모르게 예수를 밀실에 가두고, 예수를 빙자해서 돈을 버는 사람들. 그들은 성경을 아편으로 변질시켜서 사람들을 아편중독에 이르게 한다. 그래서 아편전쟁이라도 일으켜야 할 판이다. 그들은 기독교인들에게서 정상적인 판단 능력과 행동 능력을 제거해 버린다. 그리고 누군가가 예수가 실종되었다고 의혹을 제기하면 그 사람을 몰아세운다.
"무슨 이야기를 들어도 모두 사탄의 편에 선다. 사회적 약자들이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문제를 제기하면 불법행위라고 여긴다. 어디에도 호소할 데가 없어 몸부림을 치면 과격하다고 난리를 핀다. 부자들의 안전을 위해서 기도하는 목사들은 그래서 사회적 약자들을 범죄자처럼 대한다. 예수님께서 사셨던 모습과는 완전히 반대다. 그러니 이들은 예수님을 죄인으로 몰아버릴 판이다. 도대체 우린 어떻게 하면 좋을까? 이런 세상과 교회 앞에서 진정한 신앙은 어떻게 해야 복구될 수 있을까(212쪽)."
예수 없는 기독교, 아니, 예수를 죄인으로 몰아서 추방해 버린 기독교. 그들은 그 자리에 욕망을 놓았다. 그러나 '믿음의 능력은 욕망의 도구가 아니다'. 그래서는 안 된다. 이것은 모든 사람들이 다 아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이 공공연한 이야기를 오로지 김 트리오 같은 자들만 모른다.
광야의 소리꾼들
요즘엔 무신론자들이 기독교를 옹호하는 기이한 현상을 본다. 앙드레 보통은 <무신론자들을 위한 종교>에서 종교가 공동체를 위한 대안들을 제시해 준다고 주장하고, 마르크스주의 문학평론가이며 무신론자인 테리 이글턴은 <신을 위한 변호>에서 종교를 백해무익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신랄하게 비판하면서, 기독교인들이 밀실에 가둬 버린 예수와 성서를 다시 광장으로 내놓으려 한다.
한종호는 '밀실 사회와 광장의 예수'를 대비하면서, 예수를 밀실에서 구출하려는 '광야에 외치는 자들의 소리'들을 소개한다. 그들은 청부 기획사 소속 가수들인 김 트리오와는 달리 광야 기획사 소속 가수들이다. 한종호가 이 시대 가장 뛰어난 소리꾼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복음의 멋진 바람'을 일으키는 김기석 목사이다. 김기석은 '결별하고 쫓겨나고 밀려난 바로 그 울타리 밖이 새로운 하나님 나라의 중심이 되는 출발점이라는 점에 주목'하는 '인식론적 혁명'을 연주한다. 그리고 '백향목 세상의 전복'을 통해 '겨자 풀의 미래'를 꿈꾼다.
한종호가 한국교회의 영원한 멘토로 여기는 분은 '이 나라 신학과 운동과 역사에 박힌 빛나는 보석' 늦봄 문익환 목사이다. 그는 지금도 '역사의 여리고성'이 반드시 함락될 것을 우리에게 들려 준다.
그리고 유영모와 함석헌. 이 비범한 인물들, 이들이 바로 '빈들에 외치는 소리'들이다. 유영모는 근원 불명의 한국교회 스타 목사들이 얼마나 무지몽매한지를 보여 주는 평가 기준이다.
"다석 유영모는 우리에게 자신에게 이미 있는 말로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길을 풀어낸 존재이다. 조선의 역사와 풍습과 삶과, 사유 방식이 깃든 말에 하늘의 얼김이 배이면 그것이 하늘의 얼김을 받은 몸이 된다. 그 몸이 토해 내는 말은 어느새 하늘 말씀이 되어 우리의 숨결로 변모한다. 그 숨결이 가득 찬 세상은 생명 세상이 될 수 있다(134쪽)."
이들이 바로 도종환이 쓰고 안치환이 부른 '담쟁이'들이다. 그리고 이들이 바로 나희덕이 쓰고 안치환이 부른 '귀뚜라미'들이다. 아니, 신의 깊이를 재기 위해, 신의 심장 속으로 들어가서 녹아 버린 '소금 인형'들이다.
밀실 타파! 광장 복구!
"밀실로 몰려난 이 하나님나라에 대한 소망을 광장으로 끌어내어 회칠한 무덤의 존재가 드러나고, 인간과 인간 사이의 신뢰를 회복하여 새로운 나라를 만드는 일에 우리의 기도와 결단이 모이지 않으면, 과거에 노동 기계로 전락한 우리의 몸은 이제는 상품의 대상이 되어 그 욕망을 채우는 일에 몰두하는 돼지가 될 뿐이다. 머리와 가슴에는 든 것이 없고, 그저 욕망을 좇아 사는 존재들이 우글거리는 사회의 미래에 가치나 사상이나 윤리나 이상, 또는 미래에 대한 비전은 '돼지 목에 진주 목걸이'일 뿐이다(268쪽)."
그래서 한종호는 예수를 감금한 김 트리오 일당을 섬멸하고 예수를 구출할 특공대를 조직하고, 밀실의 위치를 확인한 다음, 그곳에 침투해서 폭탄으로 밀실을 파괴하고 예수를 구출하려 한다. 그가 던지는 폭탄은 바로 산상수훈이다. 이미 산상수훈은 세습의 전당에 던져진 폭탄이며, '새로운 전투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이고, '혁명의 선언'이다.
"산상수훈은 그리하여 '혁명의 선언'이다. 성전의 기득권과 정의와 평화를 압살하는 일체의 권력과 사상에 맞서서, 진정한 하나님나라의 승리를 외치는 '예수의 선언(Manifesto)'이다(195쪽)."
한종호는 산상수훈이 선포한 '하나님나라의 주체들'은 마이너리티들이라고 하면서, 성서에 등장하는 변방 인생의 당당한 모습들, 즉 '주변부 인생이 새로운 역사의 주체로 탄생하는 하나님나라'에 주목한다.
"일상의 삶 속에서 드러나는 하나님나라. 그로써 증명되는 하나님의 자녀. 그것이 중요한 것이다. 예수는 바로 이를 일깨우고 있다. 온 마음과 온몸으로. 사랑과 평화, 정의와 자비에 자신을 쏟는 이가 진정 하나님나라에 속하는 아름다운 사람인 것을 확고하게 지지하고 있다(194쪽)."
그래서 한종호는 하나님나라를 꿈꾼다. 그런데 한종호가 꾸는 하나님나라 꿈은 요셉이 두 번 꾼 꿈과는 전혀 다르다. 요셉은 사람들 위에 군림하려는 제국주의적 무한 욕구를 반영하는 꿈을 꾼 대신, 한종호는 사람들이 서로 사랑으로 대하고 함께 어우러지는 세상, 주님 말씀을 따라서 작은 이들을 섬기는 날을 꿈꾼다. 이 얼마나 소박하고 마음 따뜻한 꿈인가. 이글을 마치면서 부탁한다. 우리 모두 밀실에 갇힌 예수를 구출하려는 한종호가 꾸는 꿈이 이루어지길 빌어 주자.
"진실로 밀실에 갇힌 예수께서 광장에 나오셔서 우리와 함께 덩실덩실 춤추시면서 하나님 나리의 잔치를 베푸시는 그날을 꿈꿉니다. 이 세상에 가장 작은 이들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라는 예수님의 말씀대로 살고 싶습니다(9쪽)."
이종록 / 한일장신대 구약학 교수